# 130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30
59. 전쟁의 연속 (1)
케일론 왕국 남부지역에 소속된 영지는 총 16개.
이 중 3개가 국왕령이고, 6개가 2왕자파에 속해 있는지라 내가 정리해야 할 영지는 7개뿐이었다.
그러나 하인츠 백작과의 전투 한 번에 3개 영지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상황을 주시하던 나머지 1왕자파 영주들이 재산과 군사를 이끌고 도망치는 사태가 일어났다.
나와 하인츠 백작을 제외하면 남부 영주들은 모두 남작 또는 자작이다.
군사력도 별 볼 일이 없는데, 테라시아 후작이 포함된 2만 3천의 병력이 처참히 패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부 지역으로 뒤도 보지 않고 냅다 도망쳐 버린 것이다.
덕분에 나는 겨우 5일 만에 남부를 평정하라는 2왕자의 명령을 이행해냈다.
[테라시아 후작의 개입이 있었음에도 목적을 달성하다니, 정말 어려운 일을 해주었네. 자네가 없었으면 우린 더욱 위기에 놓이고 말았을 거야.]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전하를 돕겠다고 약속했던 일인데요.”
2왕자파에 몸을 실은 이상 나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내전이 오래 지속된다면 내 수입도 크게 줄 수밖에 없고, 독점권을 가진 상품의 단속도 어렵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몸담은 2왕자파가 내전에서 패하기라도 한다면 나는 영지와 작위, 상회 등 많은 것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
더불어 1왕자 측에 소드마스터가 두 명이나 있다고 해도, 승리를 가져올 방법 또한 있었다.
다만 그 방법이 최악의 선택으로 후폭풍이 크다는 것이 문제지.
그런데 2왕자는 내게 마냥 칭찬만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보 길드 사태는 아무리 봐도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가 힘들군.]
“이해합니다. 하지만 정보 길드를 방치했다면 더 큰 피해가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저도 부인의 돌발 행동에는 당황했지만, 우리를 위한 행동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 1왕자가 우왕좌왕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문제는 모든 정보가 자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이지.]
클로이로부터 정보 길드에 대한 이야기를 뒤늦게 보고를 받았을 땐 몹시 당황해야 했다.
그녀의 행동으로 정보 길드는 일시적으로 마비되었고, 여기저기서 항의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클로이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했다.
어디까지나 그녀의 결단은 나를 위한 행위였으며, 이번 테라시아 후작의 개입을 사전에 알아채지 못한 게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니.
더불어 과격한 통합 과정과 주변의 반발이 어떻건 결과적으로 나는 정보 길드를 손에 넣은 것이 아닌가.
그녀를 탓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문제라면 1왕자 측의 항의는 그냥 무시하면 되지만, 이렇게 2왕자를 포함해 아군 진영의 귀족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2왕자 측도 현재 상황을 생각하면 나를 강하게 탓할 수도 없었다.
지금의 나는 2왕자파에 없어선 안 되는 주축이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정보 길드를 손에 넣기 가장 좋은 시기였다.
1왕자를 혼란에 빠뜨리고 2왕자는 나를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까.
“결과적으로 사전 공작을 차단할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걸로 압도적인 정보적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후, 그래. 그건 맞는 말이야. 하지만 자네는 아군에게 경계심을 심어주었네. 앞으로 피곤한 일이 많이 생길 수도 있어.]
마음 같아선 ‘그러든가 말던가’라고 답하고 싶다.
하지만 2왕자파의 주요 귀족으로서 아직 얻어먹을 게 많은 만큼, 이 이상 그의 심기를 어지럽힐 필요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감수해야죠. 전하께서 제게 다른 뜻이 없다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대충 정황을 보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이해하고 있어.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언제까지 자넬 두둔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라네.]
“조심하겠습니다.”
[그럼 책망은 이쯤하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의견를 나눠보도록 하지.]
예상대로 그는 강하게 나를 압박하지 못했다.
속으로 작게 안도한 나는, 현재 상황을 점검했다.
일단 케일론 왕국의 국토는 네 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문화와 상업, 물류의 중심인 수도권 중부.
로엘제국과 국경이 맞닿아 교역으로 크게 발달한 북부.
80개가 넘는 영지가 위치한 곡창지대 서부.
왕국의 변방으로 치부되지만, 금지 및 미개척지가 많아서 큰 발전 가능성을 품은 남부.
참고로 동쪽은 대해와 연결된 바다로 특징이 없어서, 케일론 왕국을 이렇게 4개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덜하지만, 언제든 왕성을 노릴 수 있는 남부와 수도 방위군이 꽉 잡고 있는 중부는 2왕자의 세력권이며.
크리산트 공작의 세가 강하고 로엘제국과 국경이 맞닿은 북부는 1왕자의 세력권.
80개가 넘는 영지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서부는 혼재 지역이다.
당연히 내가 군사력을 표출한다면, 북부보다 치열한 영역 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서부가 적당하다 볼 수 있다.
소드마스터와 대마법사를 끼고 있는 1왕자, 2왕자가 눈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태에서 각각의 영역인 북부와 중부를 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알겠습니다. 그럼 서부로 진격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서부에 진출하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다.
남부연합이란 이름으로 2왕자파의 영주 6명이 힘을 합쳐서 진격한다.
당연히 총사령관은 나 베르트 백작으로 총 35,000의 병력을 지휘하게 되었다.
다만 다른 귀족들을 옆에 끼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 거슬리는데, 2왕자가 즉결권을 내려주어 허울뿐인 지위가 아니라 정말 사령관으로서의 권력을 쥐여주었다.
즉결권이 있다면 귀족이라 해도 명령을 위반으로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 병력 제한을 꼭 지켜야 하나요?”
[그게 무슨 말인가?]
“병력 제한만 없다면 더 많은 군인을 보유할 수 있는 상황이라.”
[흠…….]
여력이 되는데, 굳이 역적을 상대로 힘을 제한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내 물음에 왕자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설마 아무리 상황이 급박해도 규칙을 지켜야 명예롭다는 허튼 생각을 하는 것 아니겠지?
그는 내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최대 병력을 얼마까지 늘릴 수 있는가.]
“당장 추가할 수 있는 건 1만 명 정도입니다. 그러나 시간만 허락한다면 3만 이상도 가능합니다.”
내 대답에 왕자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그 인원들을 수도 방위군에서 고용토록 하지.]
“네?”
[자네를 위한 것이야, 일시적으로라도 국법을 어긴다면, 추후 논공행상에서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힘들 수도 있네.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은 이제 아군 진영에서 이권 다툼이 일어날 테니 트집 잡힐 이유를 만들어선 안 되지.]
“음…….”
[정보 길드 건은 내부 다툼이라고 마무리 지을 수 있지만, 국법을 어긴 것은 어떻게 포장이 힘들어. 대신 말이 수도 방위 사령부지 그 부대의 지휘는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겠네.]
내가 힘들게 만든 예비 전력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 잠시 불쾌함을 느꼈지만, 이어진 설명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왕자는 내게 당근을 던졌다.
[나는 논공행상으로 장난칠 생각 없네. 내전이 무사히 마무리되고 자네가 공작이 되기 충분한 공을 세운다면 내가 고용한 병력을 영지군으로 전환하면 될 거야. 일단 지금은 후작의 작위는 확보한 상태라 알려주고 싶군.]
그럼 별수 없지.
후작의 보유 병력 제한은 변경백과 같은지라 공작은 돼야지 병력을 더 늘릴 수가 있었다.
“일단 1만 명만 그런 식으로 운영토록 하죠.”
나머지는 내 영지군에 손실을 대비한 예비병력으로 남겨둘 것이다.
[좋아, 편성이 완료되면 보고하게.]
“알겠습니다.”
[승전보를 기대하고 있겠네.]
그렇게 내 전장은 남부에서 서부로 옮겨졌다.
그리고 테라시아 후작 또한 서부에 배치되었다는 정보가 흘러들어왔다.
나를 제거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1왕자의 결단.
개인적으로 테라시아 후작 때문에 죽음의 위기를 겪어 두렵긴 하지만, 소드마스터인 그와의 전투는 빠른 성장을 약속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 해야 할까?
이러다가 테라시아 후작을 스승으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아마 다음엔 더욱 독기 충만하게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 * *
케일론 왕국의 내전은 수행자 사이에서도 최대 이슈다.
연맹의 회장인 내가 내전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내가 포함된 2왕자 진영이 패배하게 된다면, 그나마 수행자에게 호의적이던 케일론 왕국의 성향이 뒤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미드랜드 국가에서 속속 수행자들에 대한 관리 방침을 내놓고 있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관리 방침’이란 그럴싸한 호칭과 달리, 혜택 몇 개 던져주고 수행자와 현지인 사이에 차별을 두는 법이었다.
수행자 연맹의 이름으로 각국에 항의했지만, 문제가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미드랜드의 국가들은 민주주의가 아닌 왕정국가였다.
한번 국왕이 결정한 일은 뒤집기가 매우 힘들었다.
더구나 나를 제외하고 소속 국가에 영향력이 있는 수행자가 아무도 없지 않은가.
이쯤 되면 원인 제공자로 꼽히는 내게 불만의 화살이 돌아올 법도 한데, 연맹의 중간 관리자들이 잘 중심을 잡은 건지 내 앞에서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무튼, 신성 왕국과 함께 차별을 두지 않은 국가가 케일론 왕국이었는데, 성직자가 아닌 이상 귀족이 될 수 없는 신성 왕국과 달리, 케일론은 수행자도 영주가 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내가 진다면 이마저도 바뀔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케일론 왕국 내전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회장님,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회장님!”
덕분에 요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수행자들이 이런 말을 건네왔다.
하지만 나는 수행자들의 응원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대부분이 뮤대륙의 일만 신경 쓰고 있는데, 사실 현실도 뮤대륙 못지않게, 골치 아픈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배교자!”
-타타타타탕!
시리아 북동부 데이르에즈조르.
나는 IS 거점인 땅굴을 거닐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날아드는 총탄은 베리어 마법에 가로막혀 튕겨 나갔다.
나는 CIA로부터 건네받은 약도와 땅굴의 생김새가 미묘하게 다른 것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죽어!”
지금의 내 불쾌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IS 병사들은 연신 총을 난사했다.
‘안개 장막.’
결국, 나는 직접 정보를 캘 겸, 도주를 막기 위해 안개를 펼쳤다.
-콰앙!
나는 제법 높아 보이는 사람을 생포해 바닥에 쓰러뜨렸다.
안개 장막 안에선 언어가 번역되는지라, 거리낌 없이 지도자의 위치를 물었고.
그 IS 병사는 혀를 깨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미니맵을 띄워봐도 도무지 어디에 지도자가 숨어 있는지 파악되지 않았다.
거칠게 머리를 긁적인 나는 차갑게 말했다.
“그럼 전부 제거할 수밖에.”
현재 중동과 아프리카 곳곳에서 이상 지형을 차지하기 위한 이슬람 무장조직들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국가 통제에 따르는 종교인들의 경우 제한적이지만 이상 지역의 입장을 허락하고 있는 상태인데, 이 녀석들은 무조건 성지를 차지하고 말겠다는 마인드로 공격을 해오는 통에 전투가 끊이질 않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선 이들의 일소를 계획했고, 빠른 일처리를 위해 나도 거들었다.
지금까지 미군, NATO, 중동 각국이 무장 단체들과 전쟁을 이어왔지만, 완벽하게 무장 단체를 일소한 적은 없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미국과 NATO가 진심으로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고, 중국과 러시아 등 군사 강국들이 힘을 보탰다.
덕분에 기세 좋던 테러리스트들은 힘을 잃고 지금처럼 지하에 숨어든 상태였다.
-휙.
지도에 찍히는 붉은 점의 숫자는 대충 봐도 100~200수준이 아니었다.
오리하르콘 단검을 뽑아 든 나는 기세 좋게 달려드는 IS 병사들을 향해 매섭게 달려들었다.
곧 땅굴은 비명 소리와 피비린내로 가득 차고, 인간을 거의 가축처럼 베어버린 나는 빠르게 전진에 전진을 거듭했다.
“웁!”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미니맵엔 더 이상 적임을 표시하는 붉은 점이 남아 있지 않다.
나는 죽은 사람을 일일이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아, 미군에 도움을 요청했다.
완전무장을 갖춘 채 땅굴에 들어섰던 군인들은 하나같이 토악질을 했다.
“모두 죽인 겁니까?”
질린 표정의 미군 장교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새삼 인간으로서 생명에 대한 감각이 매우 무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현장을 미군에 인계하고 땅굴을 나서니, 언제나처럼 NSA의 테리 요원이 나를 반겨 주었다.
“이걸로 IS는 전멸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설사 전멸이 아니더라도 한동안은 설칠 수가 없을 것이다.
이제 알카에다도 거의 정리가 끝나가고 있다고 하니, 현실에서 만큼은 피냄새를 그만 맡았으면 좋겠다.
“지훈님.”
그런데 테리의 표정이 뭔가 말할 게 있어 보인다.
귀찮게 눈치 싸움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라 말할 거 있으면, 얼른 말하란 태도로 손을 내저은 나는 아공간에서 향이 강한 레모네이드를 꺼내 마셨고.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D-DAY에 대해 폭로를…….”
“푸훕!”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입안에 있던 음료를 내뿜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