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29
58. 무서운 사람 (1)
[클로이가 케일론 암살자 길드 전체를 고용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정보길드는 발칵 뒤집혔다.
“암살자 길드를 전체 고용하다니 돈이 어딨어서?”
“클로이 애인이 누군지 잊었어? 그, 미친년이 드디어 일을 터뜨리는군.”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베르트 백작을 제거하기 위해 1왕자 측에서 테라시아 후작을 보냈잖아. 지금쯤 제거됐을 수도 있겠네.”
“그럼 1왕자를 죽여서 복수를 달성하기 위해 암살자들을 대거 고용했다는 건가?”
“그년이 아무리 막 나간다 해도 그 정도로 머리가 나쁘진 않겠지. 암살자만으로 마스터가 곁에 있는 1왕자를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암살자 길드가 얼마나 얍삽한데, 그런 의뢰는 받지도 않겠지.”
“그럼 대체 뭔데?”
“아마 클로이의 목표는 이곳일 거야.”
“정보 길드? 아, 1왕자파의 정보원들을 제거하는 거구나.”
“그래, 가장 확실한 복수방법이지, 1왕자파가 정보원을 잃고 까막눈이 된다면, 앞으로 내전을 이끌어야 하는 입장에서 큰 짐이 될 테니까.”
이런 추측은 꽤나 신빙성이 높아 보였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요원들은 모두 그와 같은 생각을 했으니.
“이건 너무 간 것 같다. 정보길드를 파괴할 셈이냐?”
최상급 암살자를 대동한 클로이가 길드 본부에 들어서자, 임시 길드장을 맞고 있던 장로와 주요 간부들이 그녀를 막아섰다.
“이번 일로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힘을 손에 넣을 기회가 있다면 확실하게 차지해야 한다고요.”
“1왕자 진영의 정보원들을 제거한다고 어찌 네가 힘을 손에 넣는단 말이냐. 길드의 혼란만 야기할 것이다.”
그에 클로이는 길드 로비 곳곳에서 자신을 살피고 있는 중립 정보원과 2왕자파 정보원들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1왕자파 정보원들은 쥐새끼들처럼 숨어버린 모양이군요.”
“이렇게 대놓고 움직이는데, 모를 수가 있나. 솔직히 너의 행동은 이해하기가 힘들구나. 마치 도망가도 상관없다는 것 같아.”
장로 입장에선 평소 일처리가 완벽한 그녀가 이렇게 허술한 짓을 저지른다는 것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마치 엄포만 내지르는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행동은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제거하세요.”
“뭐?”
클로이의 지시에 암살자들이 대놓고 정보길드로 밀고 들어왔다.
장로는 이게 무슨 짓이냐며 황당하단 반응을 보였는데, 암살자의 단검이 그의 가슴에 틀어박히자,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게 뭐하는.”
“왜 저의 목표가 1왕자 측 정보원이라 생각했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이년! 큭!”
여기저기서 터지는 비명소리.
놀랍게도 암살자들은 중립, 2왕자파 상관없이 고위 정보원들을 모두 제거했다.
중립은 그렇다 쳐도 아군이라 할 수 있는 2왕자파까지 말이다.
이런 무차별적인 암살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그리고 음지에 숨어 있던 1왕자파의 고위 정보원도 귀신같이 찾아내 제거해냈다.
물론 완벽하게 정리하진 못했지만, 서열 200위 이내 고위 정보원 중 8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이 단 하루 만에 일어난 일.
이쯤 되자 살아남은 정보원들은 클로이의 행동이 결코 즉흥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암살을 계획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전격적으로 진행이 되었고, 당한 이들은 반격할 틈도 없이 분쇄되었다.
그렇게 클로이는 철저하게 케일론 왕국의 정보길드를 유린했다.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건지 알려줄 수 있습니까?”
클로이를 향해 길드 본부에 구류된 서열 300위대의 정보원이 물었다.
용감한 그의 행동에 창살 없는 감옥에 구류 중이던 다른 정보원들의 시선이 쏟아지고, 클로이가 무표정하게 답했다.
“길드를 개혁하는 겁니다.”
“개혁이라니, 누가 봐도 파괴입니다만?”
“총원 2만5천여 명 중에 겨우 160여 명의 길드원이 제거되었을 뿐입니다. 그들이 없어도 길드는 충분히 잘 돌아갈 수 있어요.”
“하지만, 아군까지 제거한 당신을 믿고 따를 길드원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에게도 신뢰라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잃었고요.”
클로이는 신뢰라는 단어에 조소를 흘렸다.
“신뢰는 돈을 받고 정보를 팔 때 빼고는 없는 것으로 아는데요?”
“무슨 말을.”
“고객의 정보를 더 비싼 값에 적에게 팔아넘기는 경우가 어디 한두 번입니까? 그리고 서로 다른 파벌에 속해 힘 싸움을 벌이고 실제로 길드장처럼 암투도 제거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어디에 신뢰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클로이의 말은 정론이었다.
겉으론 길드의 간판을 달고 깨끗한척하지만, 속내는 도둑 길드, 암살자 길드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그녀는 정보길드가 사람을 죽이는 암살자 길드보다도 질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클로이와 설전을 벌이던 길드원은 잠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지만, 오히려 표독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당신처럼 비인간적인 인물을 리더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자신을 딸처럼 아껴준 장로님을 그렇게 매정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거부감을 일으키는 부분.
그것은 바로 클로이를 밀어주던 장로를 거리낌 없이 제거한 냉혈한적인 면모였다.
클로이는 아공간에서 한 서류를 꺼내 그 길드원에게 던졌다.
자연히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길드원들도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고, 이어진 말에 모두가 두 눈을 부릅떴다.
“장로가 1왕자와 결탁하여 길드장을 제거한 정황이 담긴 문서입니다. 찾기까지 꽤 애를 먹었죠. 그렇죠 셰릴씨?”
그러면서 장로의 파벌에 소속된 여성 정보원이 걸어 나와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 길드가 이런 곳이란 거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겉모습에 속지 마시죠. 착한척하는 그 인간에게 성 상납을 요구받지 않은 여성 길드원은 거의 없을걸요?”
그에 구류되어 있던 여성 길드원들이 어깨를 움찔 거리는 것이 보였다.
덕분에 클로이를 비난하던 길드원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물론, 내 행동은 비난받을 만한 짓입니다. 하지만 정보 길드를 하나로 통합하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벌어지겠죠. 동료를 믿지 못하는 환경이 그렇게 좋습니까?”
“…….”
“참고로 제거당한 2왕자파의 정보원들도 장로처럼 1왕자파와 결탁을 한 인물들입니다. 정보길드가 거의 1왕자파에 점령당한 상태였죠. 아랫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시선 분산용 암투의 희생양으로 사용된 겁니다.”
너무 형편 좋은 이야기.
애초에 그게 사실인지 지어낸 말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아무도 그녀를 비난하지 않았다.
“참고로 저는 돈 욕심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알 사람은 그 이유를 알고 있겠죠?”
갑자기 돈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뭘까?
모두가 클로이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당장 해드릴 건 없고, 여러분이 절 따른다면 급여를 두 배로 올려드리겠습니다. 또한 실적이 좋은 길드원들에 대해선 성과급을 추가로 지급하죠.”
뜬금없는 급여 이야기에 길드원들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혼란스럽겠지만, 머리를 식히고 고민해 보세요. 과연 무엇이 이득일지.”
그리고 클로이는 길드원에게 하루 동안 생각할 시간을 주었고, 결과적으로 약 6할의 정보원들이 길드에 남기를 희망했다.
***
한 번 당하고 나니, 테라시아 후작은 스크롤을 경계하며 속공으로 내게 딴짓을 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쾅! 쾅!
계속해서 무기를 맞대다 보니 그의 전투 방식에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종종 그를 위협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물론 시종일관 밀리는 것은 나였지만.
그래도 나는 기교에 의지하기보다 서서히 검과 마법 등 기본기로 그를 상대했다.
“건방진!”
그도 눈치가 있는지라 내가 자신을 쓰러뜨리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끼곤 난폭하게 검을 휘둘러 왔다.
나는 그럼에도 쉽게 결정타를 허락하지 않았다.
-핏! 서걱!
하지만 아무리 잘 싸운다 한들 경지와 공격력의 차이가 극심한지라 점점 부상을 입는 일이 많아졌다.
이미 오토쉴드와 신의 가호가 모두 발동되어 사라진 지 오래.
대신 괴물이나 다름없는 회복속도가 이를 커버해주었다.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 테라시아 후작은 분노보다 질린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카앙!
힘으로 정면돌파를 시도한 그의 공격을 용케 막아냈지만, 오러 블레이드의 반발력에 멀리 튕겨 나갔다.
“그 무기 때문에 여러 번 사는군!”
후작의 말대로 내 무기의 재질이 오리하르콘이 아니었다면 수차례 죽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그그극!
내가 자세를 바로잡는 동안 그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며 큰 기술을 준비했다.
이전까지와 확연히 다른 오러의 양이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치고, 땅과 공기가 공명하듯 요란하게 진동했다.
그리고.
-팟!
사고 가속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상대를 시야에서 놓쳤다.
나는 필사적으로 창을 세웠는데.
용인족의 뼈로 만들어진 창대가 부러지더니, 목 아래에서 화끈한 느낌이 들었다.
‘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감각.
더불어 손발이 내 명령에 따르지 않자, 목이 베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엘릭서!’
-팟!
새하얀 빛이 내 전신을 감싸고 손끝에 힘이 돌아오자, 이를 악문 나는 창날을 뒤로 던졌다.
-푹!
“허…….”
아무리 마스터라 해도 이 상황은 예상치 못했는지, 기습적으로 날아든 창날이 테라시아 후작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뒤로 걸음을 물린 그는 내 창날을 잡으려 했고, 나는 바로 오리하르콘 창을 역소환 했다.
어깨를 관통했던 창이 사라지자 후작은 제법 많은 피를 흘렸다.
“분명 목을 베었는데.”
역시 그게 목이 베인 감각이었구나.
황당함이 가득 담긴 테라시아 후작의 혼잣말에 나는 가슴 깊이 안도하며 창 대신 단검 두 자루를 소환해 들었다.
자칫 클로이가 가진 아이를 보지도 못하고 뮤대륙에서 아웃당할 뻔했다.
“겨우 목 베인 걸로 사람이 죽을 리 없잖아요.”
“제 정신으로 하는 소린가?”
내 능청스런 반응에 그는 불쾌하단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는 뒤로 크게 거리를 벌리며 자신의 아공간에서 리커버리 스크롤을 꺼내 사용했고, 어깨 관통상이 순식간에 치료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상처를 회복한 테라시아 후작은 다시 달려들지 않았다.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젓는 그를 보며 슬쩍 전장을 살피니, 하인츠 백작의 영지군이 항복하며 무릎을 꿇는 것이 보였다.
더불어 그라프의 손에 하인츠 백작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전투에 집중하느라 몰랐는데, 시간이 꽤 지난 모양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 물음에 그는 지체 없이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었다.
“다음엔 확실히 죽여주마.”
“그냥 친하게 지내면 안 될까요?”
“그 입을 찢어…….”
무시무시했던 테라시아 후작이 푸른빛과 함께 사라졌고, 나는 오금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목을 쓰다듬었다.
목이 베이는 느낌.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감각이었다.
“주군!”
그라프를 포함한 호위 기사단 소속 기사들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며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괜찮으십니까?”
“피곤하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소드마스터를 무려 30분 동안 잡아놓다니요!”
아마 이들이 빠르게 하인츠 백작을 해치우지 않았다면 몇 번이고 죽음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말 그대로 시간을 끌기 위해 싸웠고, 마스터와의 일대일 전투에선 분명한 완패였으니.
전투에선 졌지만, 전쟁에서 이겼다는 게 이런 걸까?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은 무서운 전투지만, 그래도 소득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테라시아 후작과의 전투로 익스퍼트 상급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