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27
57. 내전 (2)
뮤대륙의 미드랜드에는 12개의 국가가 존재한다.
그중 2개 국가가 제국이며, 나머지 10개의 왕국은 대왕국, 중견왕국, 소왕국 3개의 등급으로 분류할 수 있다.
케일론 왕국은 중부의 교통 요충지인 크로스비 왕국과 함께 2대 대왕국으로 손꼽히며, 군사, 경제, 문화 부분에서 제국에 준하는 국가다.
로엘 제국이 오랜 세월 케일론 왕국과 동등한 동맹 관계를 유지해 온 것도 그만한 국력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케일론 왕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기 후계자 선정에는 주변 국가에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삼자 입장에서 봤을 때 가장 베스트는 왕권을 1왕자에게 물려 주는 것이다.
마탑과 재상을 포함한 전통귀족파는 국왕의 세력으로 2왕자는 어디까지나 국왕의 도움으로 지금의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국왕이 마음을 고쳐먹고 1왕자에게 후계자의 자리를 약속해 준다면 2왕자의 주축 세력은 자연히 와해가 되며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반면 1왕자는 국왕의 도움이 없더라도 외가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워낙 막강했기에 2왕자를 후계자로 계속 밀게 된다면, 내전은 피할 수가 없었다.
내전은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재앙.
그럼에도 케일론 왕국의 국왕은 꿋꿋하게 2왕자를 후계자로 밀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국왕이 2왕자를 편애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가 왕비에게서 태어난 적자이기 때문이다.
케일론 왕국의 국왕은 누구나가 인정할만한 명군은 아니어도, 나름 공명정대하고 계산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국왕이 계산기를 들이밀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왕비였다.
현 국왕과 왕비는 정략혼을 통해 맺어진 사이가 아니다.
보기 드물게 사랑으로 이어진 관계였는데, 젊은 시절 아카데미에서부터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덕분에 왕국의 실세라 할 수 있는 크리산트 공작가의 여인을 제치고, 어중간한 변경백 가문의 여인이 왕비가 된 것이다.
뮤대륙의 왕가에서 보기 힘든 로맨스.
덕분에 케일론 왕국의 국왕은 업적보다도 연애사가 유명한 국왕이었다.
“아버지…….”
2왕자 마하엘은 푸르딩딩하게 온몸이 부풀어 오른 자신의 아버지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1왕자에게 있어 국왕은 냉정하고 차별적인 아비였을지 모르지만, 2왕자에겐 너무도 따뜻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아비였다.
케일론 국왕의 죽음은 어디까지나 2왕자로 인한 것.
끝까지 2왕자에 대한 애정을 굽히지 않았기에 강제적으로 제거가 되고 만 것이다.
“어머니, 그만 쉬십시오.”
왕비는 처참한 몰골을 한 국왕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그런 왕비의 곁엔 아직 10살밖에 되지 않은 공주가 혼란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족들의 건강을 걱정하며 눈물을 훔친 왕자가 휴식을 권했지만, 왕비는 국왕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2왕자는 입술을 깨물고는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도미니크 왕자, 크리산트 공작.’
국왕을 이렇게 만든 인물들을 떠올리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피어올랐다.
아직 누군가가 국왕을 죽였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국왕의 시해범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왕자가 갑자기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을 보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들의 세력이 자신들에 비해 우위에 있다고 볼 순 있지만, 그 차이는 근소한 수준이었으니.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 2왕자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바로 가족을 지키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나라를 역적의 손에 넘기지 않는 것.
2왕자는 국왕의 시신을 앞에 두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근위병단 단장과 근위기사단 단장이 국왕 침소에 들어서며, 2왕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송구합니다, 역적 도미니크 왕자의 추종자들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미니크 왕자의 추종자는 후궁 가넷사와 2공주 소피아를 비롯해 1왕자와 혈연관계에 있거나, 그쪽에 줄을 댄 왕족들을 뜻했다.
미하엘 왕자는 부하들을 책망하기보다 그 이유를 파악했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던 모양이군.”
정곡을 찌르는 그의 물음에 두 사람은 더욱 깊이 고개를 조아리며 면목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3 근위 기사단과 제2 근위 병단 만인장이 배신했습니다.”
근위 기사단 1개의 손실도 크지만 왕실군의 주축인 근위병단 만인장의 배신은 뼈아픈 손실이었다.
상황을 이해한 2왕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병력 집결 상황은?”
“수도방위군 전체와 근위병, 근위기사단이 모두 집결했습니다. 그리고 마탑에서도 곧 합류한다고 합니다.”
만인대 한 개가 빠짐으로써 약 1할의 병력 손실이 있었지만,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돈 아니었다.
이 병력이면 충분히 수도를 수호할 수 있다고 판단한 2왕자는 결연한 표정으로 국왕의 침소를 나섰다.
침소 밖에는 2왕자파의 귀족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국왕 폐하께서는 나를 후계자로 인정하셨다. 해당 내용이 담긴 문서는 수도 대신전에서 보관 중이며, 폐하께서 명을 달리하신 지금 내가 국왕의 대리인이다.”
이미 국왕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기에 이번 싸움의 명분은 어디까지나 2왕자에게 있었다.
“지금부터 나 ‘미하엘 데 로이드 케일론’이 국왕의 권한을 행사하여, 역적을 토벌토록 하겠다.”
***
[케일론 왕가의 정당한 후계자이자, ‘미하엘 데 로이드 케일론’의 이름으로 역적 도미니크 왕자를 토벌하겠노라.
강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역적의 가마에 올라타야 했던 이들은 넓은 아량으로 용서를 베풀 테니,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려 역적 토벌에 힘을 보태기 바란다.
역적을 토벌하는 자에겐 그에 합당한 보상을 약속하며 그 이름은 영웅으로서 후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베르트 백작성에서 후방지원을 하고 있던 클로이는 왕실에서 보내온 전체 통신 내용을 살피며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뭔가 중요할 걸 잊고 있는 느낌인데.”
하인츠 백작을 비롯해 남부 지역을 정리하기 위해 1만 5천에 달하는 병력을 직접 이끌고 출병한 지훈을 떠올리면 걱정이 밀려왔다.
상식적으로 지훈의 군대가 남부에서 패할 리 없다고 생각한다.
단순 숫자로만 치면 적이 우세할지 모르지만, 지훈의 가장 무서운 점은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군 시스템을 갖춰 놓았다는 점이었다.
베르트 백작령의 영지군은 언제든지 손실을 채울 수 예비병력을 갖추고 있다.
쉽게 말해서 변경백이 보유할 수 있는 병력의 최대한도가 2만이지만, 지훈은 아무리 손실이 발생해도 그 2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상태란 것이다.
말이 2만이지 상황에 따라 3만, 또는 5만의 효율을 낼 수도 있었다.
더구나 병력의 질 자체가 비교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출병한 1만 5천만으로 충분히 남부를 평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적성국인 슈엔다르크 왕국과 국경이 맞닿은 남부는 크게 발달한 지역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인츠 백작만 정리하면 남부는 지훈의 세상이라 봐도 좋을 정도.
하지만 얼핏 문제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도 좀처럼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1왕자가 너무 조용해.’
정보길드의 주요 간부라 할 수 있는 그녀에게 별다른 소식이 없던 것을 보면 정말로 단순히 남부를 방치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다른 꿍꿍이를 가진 것일 수도 있고.
방치면 그나마 괜찮지만, 다른 꿍꿍이가 있는데도 정보망에 걸리고 있지 않다면 큰 문제다.
그래서 이렇게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정리해야 할까?”
그녀는 만약을 대비해 한가지 준비한 것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계획을 실행하게 된다면 1왕자 진영뿐만 아니라 2왕자 진영, 심지어 자신에게까지 어느 정도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클로이는 혹시 자신이 놓친 것이 있나 싶어 몇 번이고 보았던 1왕자 측의 정보를 살피고 또 살폈다.
“마스터!”
그렇게 지훈의 책상을 차지하고 앉아 있던 클로이는 갑자기 영주성 집무실에 쳐들어온 자신의 부하를 보며 표정을 굳혔다.
그녀는 부하의 모습에서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고.
“로엘 제국에서 1왕자를 지지한다는 성명이 발표되었습니다!”
그에 클로이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이마를 짚었다.
설마 타국을 끌어들일 줄이야.
아니, 타국을 끌어들이더라도 그게 로엘 제국이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로엘 제국은 케일론 왕국의 전통적 동맹국으로 왕가와 황가 사이의 관계가 제법 돈독했기 때문이다.
양 가문은 혈연으로 복잡하게 연결된 상태인데, 설마 적통인 2왕자가 아닌, 1왕자와 손을 잡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만약 로엘 제국이 1왕자를 지원하고 나선다면 2왕자 측에 붙은 자신들의 상황은 최악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냥 성명만 낸 거야? 로엘에서 병력을 움직이지 않았잖아?”
당혹스럽긴 하지만 외세를 끌어들이는 가능성을 생각 못 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인접 국가들의 병력 이동상황을 꼼꼼하게 체크를 해왔는데, 어느 국가도 케일론 왕국을 향해 검을 들이밀 기미가 없었다.
“군대가 움직이는 일은 없을 것이랍니다.”
천만다행이라 해야 할까?
하지만 항상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이어진 정보에 클로이는 헛바람을 삼켰다.
“대신 테라시아 후작을 1왕자 측에 파견한다고.”
-콰앙!
“빌어먹을!”
그녀가 흥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테라시아 후작이란 인물이 로엘제국을 대표하는 3대 소드 마스터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클로이는 얼른 이 사실을 지훈에게 알리기 위해 통신을 연결했다.
-클로이?
“지훈 님!”
그녀는 로엘 제국 소드 마스터의 참전 소식을 알렸고, 그 보고를 들은 지훈은 의외로 담담하게 답했다.
-알고 있어.
알고 있다니?
2왕자 측 정보요원이 알린 것일까?
그런데 이어진 지훈의 이야기에 클로이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테라시아 후작이 여깄거든. 지금 대치 상태야.
“…….”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병력의 숫자는 하인츠 백작이 많더라도 질은 압도적으로 지훈이 위다.
그러나 소드마스터가 하인츠 백작 진영에 낀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반대가 되어버린다.
소드마스터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칭호는 ‘1인 군단’.
일반 병력이 아무리 많다 한들 잡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말을 잃은 클로이를 안심시키듯 지훈이 말했다.
-최악의 상황이 되면 도망칠 테니, 걱정 마. 그리고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으니 항상 조심하고.
그리고 지훈은 상황이 안 좋은지, 급히 통신을 끊었다.
“내 잘못이다.”
클로이는 자신을 탓했다.
정보력이 떨어져서, 지훈을 지원해야 할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이런 사태를 사전에 알아채지 못한 것이라고.
지훈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마스터를 상대로 승리를 보장하긴 힘들다.
더불어 당장의 위기를 넘긴다 해도 1왕자파가 테라시아 후작을 앞세워 남부 공략의 뜻을 펼친 만큼, 계속해서 위협이 이어질 것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정보력은 필수.
손톱을 깨문 클로이는 차가운 눈으로 자신의 부하에게 말했다.
“그 계획을 진행한다.”
과연 이게 악수가 될지 선수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클로이의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정보혼란을 야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추후 길드는 지훈의 손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녀의 부하가 뛰쳐나가고 클로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부디 지훈이 무사하길 바라는 기도를.
***
남부를 평정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하인츠 백작령을 정리해야 한다.
당연히 여기서 한가지 선택지를 맞이하게 되는데, 과연 하인츠 백작령을 먼저 칠지, 후방의 안전을 위해 1왕자 진영에 소속된 남작령을 정리하고 갈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결과적으로 나는 적에게 시간을 주면 안 된다는 판단에 속전속결로 머리를 치고자 하인츠 백작령으로 향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이는 최악의 선택이 되고야 말았다.
우선 하인츠 백작의 영지군은 공성전의 유리함을 버리고 대회전을 치르겠다는 듯 성밖에 늘어선 상태였다.
처음에 이게 뭔 헛짓거린가 싶어 조소를 흘렸다.
하지만 이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느닷없이 하인츠 백작 진영에서 로엘 제국의 소드마스터가 튀어나오고, 기다렸다는 듯 후방에서 세실 남작과 타르가 남작의 연합군 5천여 명이 다가오면서 우리군은 포위당한 형태가 되고 말았다.
소드 마스터가 포함된 2만 3천의 병력.
전혀 예상 못한 상황이었다.
“과연 믿는 게 있으니, 국왕을 암살한 거였어.”
상대를 무시하면 안 되는데, 역시 사람이라 그런지 무심코 그들을 무시했던 것 같다.
그에 그라프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을 밝혔다.
“주군! 병력을 물려야 합니다! 후방이 방어력이 약하니 그곳으로…….”
그라프는 병력이 도합 5천밖에 되지 않는 두 남작의 군대를 뚫고 후퇴하길 바랐다.
당연한 판단.
누가 소드마스터가 중심을 잡고 있는 군대를 향해 덤벼들고 싶겠는가.
“만약, 내가 테라시아 후작을 묶어 놓는다면 나머지를 상대로 이길 자신 있습니까?”
내 물음에 그라프는 두 눈을 껌뻑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소드마스터만 없다면, 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족스런 대답.
나는 손에 익은 오리하르콘 창을 뽑아 들며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죠.”
“하지만 주군!”
테라시아 후작이 아니더라도 크리산트 공작과의 전투를 계속 염두하고 있던 입장이다.
모르고 당하면 피해가 크지만 충분한 대비를 갖춘다면 맥없이 무너질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한 번쯤은 겪어보고 싶었던 소드마스터와의 전투.
소드마스터를 상대로 내가 제 몫을 해낸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