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26
57. 내전 (1)
정보 길드는 외부에서 보기엔 하나의 거대 길드로 보이지만, 내부를 살펴보면 여러 파벌이 존재한다.
그 파벌은 별도의 길드라 볼 수 있을 정도로 각각의 색이 강한데, 이런 수많은 파벌이 연합하여 뭉쳐진 것이 정보 길드였다.
정보 길드는 중심을 잡고 있는 길드장의 세력이 워낙 막강하여, 지금까지 파벌 싸움이 심화되는 경우는 없었지만…….
“정보 길드장이 행방불명이라고?”
갑자기 상황이 급변했다.
“네, 정황상 암살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증거가 없어서 범인 색출이 힘들죠.”
“정보 길드장이 사라지면 가장 이득을 보는 세력은?”
“1왕자 진영입니다. 길드장은 중립이었지만, 국왕 폐하의 뜻을 존중했으니까요. 어쩌면 소드 마스터인 크리산트 공작이 직접 처리한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정보길드의 길드장 정도 되는 인물을 증거 없이 제거하려면 어쌔신들론 어림도 없다.
애초에 정보길드장 옆에 최상급 어쌔신들이 호위로 붙어 있으니 말이다.
내가 보기에도 마스터급 되는 인물이 나서지 않는 이상 이런 일 처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덤으로 정보길드 1왕자 진영에 소속된 파벌이 증거인멸에 힘을 보태줬고?”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것 빼고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없었다.
“길드장의 부재가 길어지면 부길드장이 나서는 건가?”
“아뇨, 장로가 나서게 될 겁니다.”
“왜?”
“서열 3위의 장로가 길드장의 휘하 파벌 소속입니다. 길드장이 없어진다면 파벌을 이끄는 사람이 장로가 되는 만큼, 자연히 서열 1위가 되는 거죠.”
앞서 말했듯이, 정보길드는 크고 작은 단체들이 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때문에 큰 세력을 이끄는 인물의 서열이 높을 수밖에 없다.
즉, 부길드장이 길드장이 되고 싶거든 가장 큰 세력을 만들거나 길드장의 세력을 분쇄하여 크기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길드장의 세력이 온전히 남아 있다면 후계자의 서열이 100위권 밖이라 해도 순식간에 서열 1위의 자리로 올라서게 되니, 영영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장로의 성향도 길드장이랑 비슷해?”
“장로도 중립이긴 합니다.”
정보길드의 장로라면 일전에 클로이에게 도움을 주었던 인물로 알고 있다.
길드장이 당한 마당에 그라고 해서 당하지 말란 법이 없었다.
“길드장을 공격한 게 길드를 차지하기 위함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애초에 부길드장이 2왕자의 후원으로 덩치를 키운 인물이라서요.”
그건 몰랐네.
길드장의 부재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게 1왕자 측이라 해서 당연히 부길마가 그쪽 사람일 줄 알았다.
“그들 입장에선 이대로 장로가 길드장이 되는 게 좋을 겁니다. 장로가 중립을 고수하는 입장이지만, 행방불명된 길드장과 달리 국왕이 어떤 요청을 하더라도 정치에 끼어들지 않을 확률이 높거든요.”
그건 그냥 국왕을 무시하는 것 같은데?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정보 길드 내에서 파벌 다툼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파벌이 다르더라도 이전 길드장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던 세력이 많거든요. 장로도 개인적인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카리스마가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더불어 여성 조사원과 이민자 출신의 조사원들을 알게 모르게 대우해 주었던 전 길드장과 장로는 무조건 능력을 우선으로 따지는 원칙주의자였다.
“크리산트 공작이 길드장을 제거한 가장 큰 목적은 정보길드 내부의 혼란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악의 경우 길드가 와해 또는 축소, 분리가 될 수도 있죠.”
“마치 정보 수집을 방해하기 위함 같군.”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정보 수집을 방해하려고 한다.
그 목적은 뭘까?
뻔하다.
바로 내전이지.
아직 2왕자가 추측한 날짜가 되기까지 3개월이나 남았지만, 1왕자 측이 우리의 스케줄대로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클로이도 위험하겠어.”
“최대한 조심하겠습니다.”
클로이의 현재 서열은 7위이며 남부 총괄이란 직급을 갖고 있다.
정보원으로서 그녀의 능력과 물주로서의 내 금력이 더해지면서 아직도 무섭게 힘을 길러가는 중이다.
워낙 빠르게 성장한 만큼, 결속도는 부족할지 모르나 클로이를 중심으로 한 세력은 이제 정보길드의 주축 중 하나라 할 수 있었다.
“조심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지. 그라프 경과 상급익스퍼트 기사 3명을 붙여줄게.”
이미 그녀에겐 익스퍼트 중급 이상으로 실력자가 10명이나 호위로 붙어 있다.
하지만 직감 스킬의 효과인지 이것만으로 안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네? 하지만 지훈님의 기사를 제가 끌고 다닌다는 게.”
“이미 베르트 백작가의 안주인이나 다름없잖아.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마.”
안주인이란 말에 그녀가 새침하게 웃었다.
우리는 이미 사실혼 관계나 다름이 없다.
5개월 가까이 한 침대를 사용하고 있었으니.
왠지 클로이의 성격이라면 이 혼란을 기회로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녀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무리하게 움직이다가 역풍 맞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위험하다 싶으면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바로 긴급전이 반지를 사용해.”
내 당부에 그녀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백작이 최대로 보유할 수 있는 병력의 수는 기사 1백에 사병 1만.
하지만 나는 변경백이기에 기사 2백, 사병 2만을 보유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군사 부분의 권한만 따지고 보면 후작과 동급.
애초에 후작이란 작위가 변경백에서 시작된 만큼,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과거 후작은 변경백을 일컫는 작위였으나, 지금은 ‘변경백과 동일한 지위를 지닌 중앙 귀족’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래서 국가적 지위는 변경백보다 후작이 높으나 군사력 부분만 따지고 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규정된 병력 숫자를 가득 채우면 웬만한 후작가들보다 강력한 군사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보통 국경을 맞대지 않은 후작가에서 돈 잡아먹는 하마인 사병을 1만 이상 유지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베르트 백작가 병력 현황]
기사 총원 200명
-호위 기사단: 최상급 1, 상급 18, 중급 1
-1기사단: 최상급 1, 상급 6, 중급 53
-2기사단: 상급 6, 중급 54
-3기사단: 상급 6, 중급 54
사병 총원 20,000명
-기병: 3,000
-중장보병: 5,000
-일반보병: 5,000
-쇠뇌병: 2,000
-궁병: 3,000
백작이 되고 겨우 20일이 지났을 뿐인데, 나는 변경백에게 주어진 병력 제한을 가득 채웠다.
기존에 25%의 병력을 채워둔 상태였고, 일전에 꼬투리를 잡혔던 것처럼 이미 변경백을 대비해 병력 충원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아주 자연스런 증강이었다.
기사와 사병의 한 달 급여만 무려 백금화 6천 개.
사병도 기형적이라 볼 수 있을 만큼 고급 전력이고, 장비와 말 등을 갖추는 데 백금화 3만여 개를 사용했다.
덕분에 케일론 왕국 남부 지역의 균형추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하인츠 변경백을 포함한 주변 영주들이 계속해서 우려를 표한다는 서한을 보내왔다.
더불어 내가 돈을 크게 풀어버리는 바람에 국왕령과 2왕자 진영 영지들의 경제가 일시적으로 호황을 맞이하면서 연쇄적인 군사력 강화 효과를 보았다.
이왕 돈을 쓰는 거 아군 진영에 써준 건데,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현재 케일론 왕국의 내전은 거의 기정사실화되어 가면서 1왕자 진영과 2왕자 진영에선 연신 회의가 벌어졌다.
하지만 나는 2왕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중요한 회의가 아닌 이상은 대리인을 출석시키고 퀘스트와 수련을 우선시했다.
그 결과.
‘5서클’에 입문을 하는 데 성공했으며 한창 익스퍼트 상급을 목표로 오러를 수련 중에 있다.
이 모든 것이 ‘잠재력 향상’ 스킬과 ‘전투 교범’의 효과가 중복으로 적용된 덕분이다.
사업가로서의 경제력과 영주로서의 군사력, 개인의 무력 역시 훌륭하게 향상을 시키면서 2왕자 진영의 중추로 자리매김을 했다.
거의 2공작과 동일한 대우를 받고 있는 느낌이다.
나름의 위험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크게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
퀘스트도, 정치부분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무심코 뮤대륙과 케일론 왕국, 1왕자 진영을 알게 모르게 무시하고 있던 것 같다.
***
“아, 아이?”
나는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클로이에게 전달받고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그건 바로 클로이가 임신을 했단 소식이다.
“내게 아이라니.”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생긴 아이.
더구나 지구가 아닌 뮤대륙에서 이어진 핏줄이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놀랍긴 해도 결코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
내게 아빠의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몸처럼 아끼는 연인에게서 전달받은 임신 소식에 묘한 희열이 밀려왔다.
그러나 나는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클로이의 모습에 의문을 표해야 했다.
“왜 그렇게 죄인처럼 서 있어?”
“제가 아이를 가져도 될까 싶은 생각에…….”
참 그녀를 보면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스스로가 아빠의 자격이 있는지 고민하는 와중에 그녀는 자신이 엄마의 자격이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을 보니.
피식 웃음을 흘린 나는 클로이를 다독이며 말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결혼식을 성대하게 할 순 없을 것 같아. 그래서 조용히 식을 올려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정말 멋대가리 없는 청혼이지만, 클로이는 더없이 기쁜 표정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사실혼 관계가 아니라 클로이를 정식 부인으로 받아들였고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러나 딱 한 명,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어서오세요. 선아 씨.”
바로 관계가 미묘한 김선아의 존재였다.
결혼식 소식을 전달받았음에도 김선아는 내 성을 찾아와 담담하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의외로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크게 안도해야 했는데.
“클로이에게 선수를 빼앗겼군요. 하지만 지구에서 회장님 옆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제가 될 겁니다.”
그녀가 성을 나서면서 나직하게 내뱉은 선전포고와 같은 말은 나를 그 자리에 굳게 만들었다.
항상 묵묵히 옆을 지키고 딱히 욕심을 드러낸 적이 없는 김선아.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초래한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당돌한 년입니다.”
김선아와의 상황을 클로이에게 털어놓으니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내 측근이지만, 서로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지구야 어떻든, 지훈님은 뮤대륙의 대귀족이시니까요.”
그런데 의외로 클로이는 이것을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김선아의 말대로 제가 지구에서 보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나름 뮤대륙의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여겼지만, 황당할 정도로 허무한 반응이었다.
그렇다고 낼름 알겠다고 답할 만큼 굶주린 게 아닌지라,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
“국왕폐하께서 서거하셨습니다.”
“갑자기?”
나는 급히 집무실을 찾아온 클로이의 보고에 미간을 찌푸렸다.
정정하던 케일론 왕국 국왕의 서거.
항상 제 목숨을 끔찍이 아끼던 인물이던 만큼 당혹스러웠다.
“암살이야?”
“아직 확인은 안 됐습니다만…….”
“아니, 괜한 걸 물었네.”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범인도 누군지 뻔했다.
1왕자와 2왕자가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투던 상황에서 국왕이 죽었다는 것은 곧 ‘내전’을 의미했으니.
“그라프 경, 출전입니다. 영지군을 준비시키세요.”
“네, 주군!”
그리고 이어서 영주성의 통신 마법사가 그라프와 교대하듯 집무실로 뛰어들어오며 말했다.
“각하! 2왕자 전하로부터 통신이!”
“내용은?”
“1왕자가 폐하를 모살했다! 베르트 백작은 남부를 평정하라!”
올 게 오고야 말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비를 소환했다.
내전이 발생했는데, 신입 영주에게 1년 보호권은 있으나 마나.
“클로이, 1왕자 진영의 사업장들 철수를 명령해주겠어?”
“알겠습니다.”
우린 서로 무탈을 기원하며 나는 전장으로 향했고 클로이는 후방 관리 겸 정보취합을 위해 영지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