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22
55. 일어나기 시작한 변화(2)
나는 개마고원에 나타난 이질적인 탑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분위기만 봐선 뮤 대륙의 것이 확실해 보였는데, 탑에 다가가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저게 던전 같은 거면 퀘스트가 뜨던가, 아니면 안개가 발생할 텐데.
따로 입구는 보이지 않는 게 오벨리스크의 일종으로 보였다.
‘용이 주변을 배회한다고 하던데.’
나는 북한에서 알려준 용이라는 것이 드래곤이 아니라 용족형 몬스터일 것으로 추측했다.
드레이크나 와이번 같은 몬스터 말이다.
다짜고짜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드래곤 급의 존재가 등장하면 지금까지 열심히 균형을 이뤄온 난이도가 무참히 파괴될 테니 말이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지구를 파괴할 생각이라면 신이 나와 같은 수행자들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직접 드래곤급이라는 3대 악을 목격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당연히 드래곤이나 3대 악이라 해도 핵무기 앞에서 무사하긴 힘들다.
하지만 마법의 종주라는 드래곤을 핵무기로 타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마법과 지구의 과학 기술은 상성이 좋지 않아서 드래곤 한 마리가 마음먹고 파괴 행위를 벌인다면 지구가 일방적으로 얻어터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키아아악!
다행히 비행형 몬스터가 멀리 달아나는 일 없이 탑으로 되돌아왔다.
[회색 드레이크]
전투기를 연상시키는 몸매에 거대한 덩치를 가진 회색 드레이크 3마리.
다행히 퀘스트로 이미 질리도록 싸워본 몬스터였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드래곤이 아니라 다행이다.
드레이크들은 나를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적으로 판단했는지, 날카로운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들었지만,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그리고 시작된 전투에서도 시간을 끌 듯 녀석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기만 했다.
시간이 상당히 지났음에도 안개는 생성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척!
결국, 무기를 소환하여 드레이크를 정리했다.
“도축.”
피를 흘리며 싸늘하게 식어가는 드레이크의 사체가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자 도축 스킬을 사용했다.
[드레이크의 뼈]
[드레이크의 가죽]
아공간에 드레이크의 사체를 수습한 뒤, 창을 역소환 했다.
“완전히 뮤대륙에서 싸운 느낌이네.”
핸드폰을 꺼내보니, 오래가지 않아 화면이 검게 물들었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 주변은 지금 뮤대륙과 같은 환경이다.
몬스터의 이름이 메시지로 떠오르는 순간 알아챌 수밖에 없던 부분.
지도와 신분증 기능도 제대로 활성화가 되었고, 범위를 확인하니 탑을 중심으로 직경 3㎞ 정도가 뮤대륙과 같은 환경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사라지는 일 없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선 탑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탑의 높이는 대략 30미터, 폭은 5미터 정도다.
지금 고민하는 것은 이 입구 없는 탑을 파괴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내버려 둬야 하냐는 것이다.
-촥.
혹시란 생각에 성수를 뿌렸으나,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잠시 팔짱만 끼고 고민을 하던 나는 탑을 향해 1서클의 매직 미사일을 사용했다.
-퉁!
그러자 푸른빛이 투명한 무언가에 가로막혀 반사됐고,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매직 미사일을 파리 쫓듯 튕겨냈다.
이어서 나는 오리하르콘 롱소드를 뽑아 들었고, 검에 전력을 담았다.
그리고 마법과 오러가 더해져 휘황찬란한 기운을 머금은 검을.
“흡!”
일격필살의 각오로 휘둘렀다.
-콰아아앙!
“큭!”
검은 탑에 닿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나는 손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콰직!
이어서 반발력을 견디지 못한 손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서 검이 튕겼고, 처음으로 무기를 손에서 놓친 나는 덜렁거리는 팔을 내려보았다.
-스스스.
부러진 팔은 빠르게 회복하기 시작하며 곧 원상태로 돌아왔지만, 나는 질린 표정을 지어야 했다.
-탕!
-콰아앙!
아공간에 고이 모셔놓고 있던 총도, 재래식 대전차 미사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공격만 튕겨내는 건가 싶어 손을 짚어봤지만, 나 자체를 거부하듯 손바닥에서 터지며 뒤로 튕겼다.
아까 성수를 뿌릴 땐 멀쩡하더니, 이젠 완전히 나를 적으로 인식한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7서클 마법 스크롤인 플레임 블레스터를 사용했다.
“파괴 불가 시설이군.”
그러나 7서클의 대마법에도 방어막은 탑을 견고하게 지켜냈다.
대체 이런 게 왜 필요한 걸까?
‘몬스터들의 침략 거점 같은 건가?’
이런 장소가 세계 곳곳에 생긴다면 당연히 난리가 날 수밖에 없다.
일반 시민들의 시선을 제2의 메르스(패러사이트) 사태와 남북한 종전협상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 상태에서 다시금 이런 기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다면 상황이 귀찮아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 반경 수 킬로미터가 전자 장비 불통 구역이 된다면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최대한 정보를 통제하고 사실을 숨기겠지만, 이렇게 계속 하나씩 무언가가 드러나면 국가가 현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기도 전에 먼저 국민이 알아챌 가능성도 있었다.
“귀찮네.”
머리를 벅벅 긁은 나는 저 멀리서 북한 수행자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 * *
아니나 다를까 전 세계 곳곳에서 개마고원과 같은 이상 현상이 확인되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해도 무려 50곳.
새로운 지형이나 몬스터의 존재가 일반에 목격되면서 통제 관리가 힘들 정도의 괴담이 일반인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상 현상들이 대체로 인적이 드문 곳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각국 정부에서 적극 수습에 나서면서 소문들이 서서히 수그러들기 시작했고, 거짓 정보로 현실을 왜곡했다.
이렇게 정부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니 사실이 조작사건으로 변모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개마고원의 탑처럼 다른 시설이나 지형도 파괴가 불가능한 수준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몬스터는 고블린부터 내가 사냥한 드레이크까지 다양하게 배치돼 있었는데, 안개가 발생하지 않은 만큼 출입이 자유로워 몬스터 토벌이 굉장히 수월했다.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군대에 의해 정리되었다.
급속 회복 능력이 없는 소형 몬스터들은 소총의 밥이 되었고, 대형 몬스터들은 전자 장비가 먹통이 되는 구역 밖으로 유인해서 미사일로 제거했다.
전자 장비를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지구의 군사력으로 몬스터를 사살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단 한 곳.
태평양 사모아섬 근처에 나타난 해상 저택 인근에서 씨서펜트를 발견했지만, 제거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씨서펜트가 수심 5㎞ 깊이의 해구 속을 노닐고 있어서 요격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사모아섬 주변에 미해군 핵잠수함들이 배치가 되어 씨서펜트의 접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뮤대륙 258일차.
“미친.”
케일론 왕국에서 가장 큰 산이라 할 수 있는 리터 산맥을 방문한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W-MART]
미국 국적의 세계적 유통 기업의 대형 마트를 뮤대륙에서 보게 될 줄이야.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그곳에 다가갔다.
지구에 발생한 이상 현상처럼, 반대로 뮤대륙에서도 지구의 것들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더욱 머리 아픈 건.
“멈춰! 다가오면 공격하겠다!”
인간도 함께 넘어왔단 사실이다.
이거 어쩌면 지구에서도 인간이나 이종족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저것들이 감히.”
마트 쪽에서 들려온 위협적인 목소리에 내 호위기사들이 열 받은 표정으로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제지하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만! 정말 그 이상 다가오면 공격하겠다. 최후의 경고다.”
셔터가 내려간 마트 안에서 총기를 겨누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리터 산맥은 드물게 몬스터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 산림 구역으로 인근 마을에서 약초나 버섯 등을 채취하며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도 많고, 몬스터가 아닌 짐승을 노리는 사냥꾼들의 주요 활동처이기도 했다.
즉, 운이 좋아서 저렇게 기세등등하게 소리칠 수 있는 거지, 다른 지역이었으면 진작에 몬스터의 밥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미국인가요?”
낮은 내 목소리가 마법을 타고 멀리 퍼졌다.
마트 안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네, 미국인입니다! 당신은 누굽니까? 이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나요? 우린 갑작스러운 두통에 기절했다가 깨어나니, 이 영문 모를 장소에 마트째로 옮겨졌습니다!”
“다가갈 테니, 공격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일단 오시죠. 다만 당신만 와야 합니다. 주변에 이상한 복장의 분들은 접근을 거부하겠습니다.”
나는 기사들에게 잠깐 기다리고 있으라며 마트에 다가갔다.
셔터의 문이 올라가고 내부를 둘러보니,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짧게 혀를 찬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좋지 않았는데, 남성 대부분은 공격적인 눈빛을 띠고 있었다.
“설명해! 이게 무슨 상황인지! 경우에 따라선 관계자로 보이는 당신에게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어!”
다짜고짜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젊은 백인 여성의 태도에 나는 가볍게 무시하고 대표로 보이던 남성에게 물었다.
“이 장소로 넘어온 지 얼마나 됐습니까?”
내 무시에 여성은 불같이 화를 냈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말리는 바람에 허튼짓을 벌이지 못했다.
예민한 것은 이해하는데, 뮤대륙에서 저런 태도는 명을 재촉할 뿐이다.
“대충 5시간은 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섯 시간 동안 이곳을 지키고 서서 아무런 트러블이 없던 것은 천운이라 볼 수 있다.
이 사실을 인근 영주가 알았으면 병력을 끌고 와 참사가 일어났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영주의 병사가 공격받기라도 하면 이들은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다.
내 정보 수집 능력이 왕국에서도 최상위권인 게 이들 입장에선 천운이었다.
“혹시 인근 주민을 해하진 않았습니까?”
“아뇨. 거대한 늑대 3마리를 잡은 것밖엔……. 거지 차림의 사람들이 몇몇 다가오긴 했지만 모두 쫓아냈습니다.”
다이어 울프가 이곳까지 내려왔었나?
먹잇감이 풍부한 리터 산맥에선 흔치 않은 일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마트 안쪽에 쌓여 있는 상품들을 보곤 리더인 남성에게 말했다.
이곳이 지구가 아니란 점과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당연하지만 믿기지 않는 말에 사람들은 실소를 흘리고, 또는 내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척!
“이 미친놈아! 당장 우릴 돌려보내!”
이런 내 모습이 그렇게 불편했을까?
처음에 신경질을 부리던 여성이 권총을 뽑아 들며 내게 겨눴다.
“제니퍼!”
사람들이 기겁하며 다시 그녀를 말렸다.
하지만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무시했다.
“여러분을 돌려보내기 위해 노력은 하겠지만, 당장으로썬 방법이 없습니다. 한동안은 이곳에서 생활해야겠죠. 제가 숙소와 음식을 제공할 테니 함께 가시죠.”
당연히 이들에게 있어 내 말은 신뢰도 0%.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에 어깨를 으쓱인 나는 싫으면 말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럼 계속 여기에 죽치고 있던가요. 이 상황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는 당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말이 결정적이었을까?
“이 납치범 새끼!”
제니퍼란 여성이 든 권총에서 총성이 울리고, 탄환이 내게 날아들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가볍게 가볍게 손을 내저어 총알을 쳐냈다.
그리고 나를 공격한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튕기자.
-팟!
“꺄아아아악!”
팔목 아래 양손이 떨어지며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더불어 주변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총기가 하나같이 두 동강 나며, 무력이 강제로 해체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세계의 국가들은 봉건제로 운영이 되고 있으며 저는 귀족이자 영주입니다. 귀족을 공격하면 즉결 처형이죠.”
같은 지구인이고 나와 관계가 좋은 미국인이라고 해서 이들의 편의를 봐줄 의리는 없다.
더구나 나에게 총까지 쏜 인물에게 말이다.
그들이 정 집에 돌아가고 싶다면 충실하게 내 명령에 따르면서 입 닥치고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여러분을 돌봐 드리고 돌려보내기 위한 노력의 대가로 마트의 물건을 제가 수습하도록 하죠.”
맨손으로 총알을 쳐내고 손도 대지 않고 위협을 제거하는 묘기.
사람들은 볼을 꼬집으며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더 이상 함부로 덤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곳에 죽치고 있어 봤자 인근 영지의 군대에게 죽음을 맞이하거나 노예가 될 뿐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여유가 없습니다.”
나는 더 이상의 배려는 없다며 그들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인간을 아공간으로 옮길 수 있으면 편할 텐데, 애석하게도 생물은 아공간을 통해 다른 세계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들을 지구로 돌려보내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더불어 이곳에서 죽치고 있는다고 지구로 돌아갈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쉽게 돌려보낼 생각이라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테니.
결국, 이들은 겁에 질려 반강제적으로 나를 따라나섰고, 마트의 물건들은 모두 뮤대륙용 아공간 팔찌 10여 개에 차곡차곡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