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21
55. 일어나기 시작한 변화(1)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조지훈.
수행자 연맹의 회장이자, 뮤대륙의 귀족이란 것은 들어서 알고 있다.
그리고 다른 수행자들은 꿈도 못 꿀 값비싼 물건과 돈을 턱 내주는 것을 보면 뮤대륙에 재산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꿈속 세상의 이야기.
세계 정부들과 은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수행자 연맹이란게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단체인지라,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잠에서 깨고 회사에 출근하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획사의 스케줄이야 어찌어찌 조치한다 쳐도, 쏟아지는 대기업들의 광고의뢰는 어떻게 된 것인지,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았다.
‘현재 벌어진 상황만 봐선 뒤에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검은손 그 자체잖아.’
대한민국 재벌 기업의 위세가 좀 대단한가.
그런 이들을 입맛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일개 졸부가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지훈 덕분에 수행자로서의 편의와 아이돌로서의 인지도를 더욱 높여줄 양질의 일을 얻게 되었다.
분명 버스를 제대로 탔지만, 이거 순순히 좋아해도 되는 걸까?
당장에라도 사장에게 뽀뽀를 날리고 싶어 하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주아의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있었다.
“그리고 주아. 네가 다음 뮤직원 MC다. 할 수 있지?”
“뮤직원이요?”
뮤직원이라면 대한민국의 대표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와, 주아언니. 대박!”
“언니 뭘 머뭇거려! 바로 한다고 대답해야지!”
“다, 당연히 해야죠. 언제부터인데요?”
“현재 MC인 은채씨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급히 하차한다는군. 그래서 당장 다음 주부터야.”
이제는 헛웃음이 날 지경이다.
‘일 처리 대박이네. 이것도 조지훈의 짓이겠지?’
그렇게 사장의 일방적인 통보가 끝이 났다.
사장은 주아에게 더 할 말이 있다며 그녀만 남기고 나머지 멤버들을 내보냈다.
“너 솔직히 말해, 대체 누굴 스폰으로 얻은 거야?”
아무래도 사장 역시 정확한 상황을 모르는 모양이다.
“스폰이라뇨. 제가 누굴 만날 시간이 없다는 걸 가장 잘 아시는 분이.”
억울하다는 주아의 반응에 근엄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사장이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이거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이런 게 가능한가? 대체 내 회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사장의 반응에 주아는 어색한 웃음만을 흘릴 뿐이었다.
지금 그녀가 느끼는 감정도 사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
메콩 강을 낀 베트남 호치민의 정글.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도록 하세.”
영국의 곤충학자 그레인은 현존하는 곤충 학자들 중에서 가장 많은 오지를 탐사했을 것이라 자부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주민들로부터 사람 팔뚝만 한 벌을 보았다는 목격담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당연히 곤충학자로서 가만히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요한 정글 속에 현지인의 노 젖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그레인은 마른 땅이 나오자 그곳에 정박해 보라며 배를 멈춰 세웠다.
베트남의 메콩강은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아직도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태초의 원시림이 남아 있다.
그는 현지인과 함께 조심히 정글을 헤집고 다녔고, 잠시 후 믿기 힘든 소리를 귀에 담게 되었다.
“위이잉.”
그것은 곤충이 날갯짓을 할 때 나는 소음과 같았다.
그나마 차이점이라면 그 소음이 바로 옆에서 울리듯 매우 크다는 것.
현지인은 심상치 않은 상황에 표정을 굳혔지만, 그레인은 수십 년 동안 정글을 헤집고 다니면서 처음 들어본 육중한 소음에 감탄사를 터뜨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레인의 눈에 놀라운 광경이 들어왔다.
“세상에…….”
소문대로 정말 거대한 벌들이 무리를 짓고 있던 것이다.
길이가 족히 30c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말벌.
장수말벌과 비슷한 종으로 보였는데,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갑옷으로 무장한 것 같은 단단한 생김새를 갖고 있었다.
그것들은 처음 보는 형태의 석재건물을 둥지 삼아 날개를 비비고 있었다.
둥지로 쓰이는 건물은 오래된 유적으로 보였는데, 돔형 첨탑에서 윗부분만 떼어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구멍이 뚫린 건축물 안으로 벌집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더불어 벌집 안에서 꿈틀대는 애벌레들의 모습에 그레인은 연신 감탄사를 흘리며 더욱 눈을 반짝였다.
“가야 합니다. 위험해요. 이런 곳에 유적이 있다는 소릴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현지인의 만류에도 그놈의 욕심이 뭔지, 그레인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말벌의 특성은 잘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그의 고집에 현지인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저게 어떻게 벌이라는 겁니까. 변종이라서 그 지식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아니, 귀찮게 왜 자꾸 이러나.”
“됐습니다. 그럼 저는 배로 돌아가 있도록 하겠습니다.”
“쯧, 그러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손을 내저으며 현지인을 돌려보낸 그레인은 조금씩 거대 말벌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만약을 대비해 효과 좋은 살충제를 꺼냈다.
곤충학자가 살충제를 갖고 다닌다는 것이 웃기지만, 정글에서 활동하다 보면 벌, 개미, 샌드플라이 등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많이 만나게 된다.
그도 안전을 생각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과연 저 거대한 녀석들에게 통할지는 미지수지만, 위험성보다도 새로운 발견이 가져오는 기대감이 월등히 컸다.
그는 거대 말벌을 분산시키기 위해 요란한 진동이 울리는 공을 꺼내 멀리 던졌다.
말벌은 진동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
장수말벌을 똑 닮은 녀석들이라면 분명 반응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
마치 헛수작 말라는 듯, 말벌들의 머리가 일제히 그레인의 방향으로 꺾였다.
시력 나쁜 말벌들이 그를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위이잉!
이어서 녀석들이 일제히 날아오르자 고집을 피우던 그레인도 겁을 먹어야 했다.
정신이 번쩍 든 그레인이 급히 살충제를 뿌리며 자리를 벗어났지만,
“끄아아악!”
얼마 안 가 애처로운 비명소리가 정글 숲에 울려 퍼졌다.
거대 말벌을 상대로 살충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
사모아 제도 북서부방면 해상.
한 남성이 한가로이 요트에서 낚시를 즐기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곤 여자친구를 불렀다.
“저거 건물 맞지?”
“그러게?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데?”
그런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암초 하나 없이 잔잔한 바다 위에 솟아 있는 새하얀 집의 존재였다.
“가까이 가보자.”
여자친구의 제안에 남자친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키를 잡았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두 사람의 눈이 커졌다.
“와, 대박인데?”
그것은 대충 지어진 임시 가옥이 아니었다.
마치 성을 연상시키는 듯한 거대한 저택이었다.
어떻게 이런 게 바다 위에 있을 수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짙은 푸른빛의 바닷속을 바라보니, 건물 밑으로 암초가 이어져 있긴 하지만, 굉장히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뭐야? 고장인가.”
그들은 신기해하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핸드폰이 갑자기 먹통이 되면 사진이 찍히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바닷속이 어두워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때.
밑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며 요트를 한입에 삼켜 버렸다.
***
7월 2일.
북한의 김정훈 위원장이 충실하게 내 명령에 따르는 존재가 되면서 남북한은 202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정확하게 70년 만에 종전을 선언했다.
그리고 오늘은 종전 선언 후, 처음으로 양국의 지도자가 친목을 도모하고 산업 전반에 걸친 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장소는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진행되었다.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북한과 남한과의 교류.
다 좋은데, 지금 살짝 짜증 나는 게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 내가 포함되어 있단 사실이었다.
더구나 ‘종전 감사원’이란 양국 공동 단체의 원장으로 말이다.
사실 오늘의 자리는 북한의 경제성장을 위한 협력보다도 D-DAY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비상 회의기에 원래부터 참여할 의사가 있었다.
그래서 조용히 모습을 감춘 채 월북을 하려 했는데.
연예인을 통한 선전도 좋지만, 수행자들의 리더라면 조금씩 세상에 얼굴을 비쳐 두는 것이 좋지 않겠냐며 대통령이 끈질기게 설득하는 바람에 거의 억지로 새로운 부처의 주인으로 정해졌다.
어차피 D-DAY이후 전면에 나서게 되겠지만, 굳이 지금 이렇게 설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짧게 혀를 차며 감사원 부원장이 된 연맹소속 북한 수행자에게 물었다.
“오늘 만찬 메뉴 뭐래요? 냉면 나와요?”
“그, 글쎄요?”
대통령과 국방위원장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가 되고, 카메라 셔터가 눈이 부시게 반짝였다.
그 상황에서 냉면이나 찾는 내 모습은 전혀 긴장감이 없었다.
-짝짝짝!
가만히 서서 박수를 치던 나는 두 지도자가 내게 다가오는 것을 보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주눅이 드는 김정훈 위원장의 모습에 나는 복화술로 말했다.
“웃어요.”
“하, 하하.”
아무래도 약의 의존한 시한부 인생을 살아서 자존감이 낮아진 모양이다.
우리는 약속한 것처럼 악수를 나눴다.
“요즘 요상한 짓 꾸미는 사람 없어요?”
“괜찮네.”
“혹시라도 뭔가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핫라인으로 연락하세요. 평양에 공간이동 설정해 놨으니까요.”
“그러지.”
그는 긴장감 가득한 태도로 대화를 나누고는 내 옆에 있던 북한 측 수행자이자 감사원 부원장인 리명철의 어깨를 두들기며 넘어갔다.
이어서 대통령도 내게 악수를 건넸는데.
“이거야 원, 옆에서 보니까 자네가 윗사람으로 보이더군.”
“그래요? 영상이나 사진으로 봐도 그렇게 보일까요?”
“아마?”
“뭐, 어쩔 수 없죠.”
“고맙네, 참여해줘서. 자네가 중심을 지키고 있어야 위원장이 이상한 짓을 안 할 것 같았거든.”
“딱히 하는 것도 없는데요. 크게 상관없습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 주니 다행이야. 이런 너무 말이 많았군.”
“왠지 지금 실검에 제 이름이 있을 것 같은데 괜한 추측일까요?”
“그, 글쎄?”
두 지도자 덕분에 제대로 카메라 마사지를 받는 나였다.
덤으로 내가 누군지 아는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잘 보이기 위해 알랑방귀를 뀌었으나, 나는 피에로처럼 영업용 미소만 흘릴 뿐 표정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이거야 원, 내 얼굴 아는 옛날 지인들이 TV 보면 까무러치겠네.
“회장님.”
그렇게 대충 사람을 물리고 두 정상의 뒤를 따르는데.
비서처럼 뒤를 지키고 있던 김선아가 턱짓으로 어딘가를 가리켰고, 그곳을 바라본 나는 미간을 좁혔다.
북한의 군인들이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어서 장성급 군인이 급히 김정훈에게 무언가를 전달했고, 이어서 김정훈이 내게 시선을 보냈다.
수행자의 힘이 필요한 어떤 돌발상황이 생긴 걸까?
나는 김정훈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개마고원에 서양 양식의 알 수 없는 탑이 생겨났다는군. 그리고 그 탑 주변을 용이 노닐고 있고.”
나는 진심이냐는 표정을 지었으나, 김정훈이 농담할 이유가 없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형 몬스터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전에 빨리 잡아야 한다.
혹시라도 놓치게 되면 두고두고 신경 쓰일 것이다.
“일단 평화의 집 안으로 들어가죠. 그럼 제가 몰래 빠져 나와서 직접 살펴보러 가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몇 가지 행사를 치르지 않고, 급히 평화의 집으로 들어갔다.
***
“야, 박우찬.”
“왜?”
초희의 부름에 일식 라면을 먹고 있던 박우찬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고, 가게 벽 쪽에 설치된 TV에서 송출된 영상에 입안에 머금은 것을 뿜어야 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종전 선언 후 첫 정상회담 실시간 중계!]
TV에선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남북 정상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는데, 어째 그 속에 익숙한 얼굴이 끼어 있었다.
[종전 감사원 원장 조지훈]
어째서 지훈이 김정훈과 악수를 하고 있는지 알려 주듯, 실시간 속보를 내보내고 있는 방송의 진행자들이 설명을 덧붙였다.
-종전 감사원이 생소하실 겁니다. 이는 남북 공동으로 설립한 부서이며, 남북한의 관계가 하루아침에 좋아질 만큼 감정의 골이 얕지 않기에 비상 상황을 대비하여 양국의 정부와 군사 시설을 감사할 수 있는 새로운 부서입니다.
-조 원장님이 상당히 젊고 잘생겼습니다. 원래 뭐 하시던 분인가요?
-서울대를 졸업하고 과거 국내 대기업인 ST통신에서 근무를 했었다는 내용 외에는 이렇다 할 정보가 없습니다. 현재 개인 소유로 보유하고 있는 투자회사가 있는데, 회사의 총자산이 약 1500억 정도인 것으로 나오는군요.
-응? 김정훈 위원장이 조 원장을 조금 어려워하는 듯한 눈치인데요? 자신만만하던 그에게서 처음 보는 모습이군요. 아니면 몸이 안 좋은 걸까요?
-대화가 제법 긴 걸 보면 원래 안면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대통령님과 대화도 굉장히 깁니다. 어쩌면 국가 기밀과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태도가 당당하고 두 정상을 앞에 두고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면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닌 듯합니다. 27살 나이로 새로운 정부부처의 장이라니 대단하군요.
상대의 정보가 워낙 적다 보니, 프로그램의 진행자 둘이 꽁트라도 하듯 추론에 추론을 거듭했지만, 초희와 우찬이는 결코 웃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완전히 멀어진 옛 친구.
그래서 더욱 신경이 쓰였다.
“대체 저 새끼 뭐야?”
“이 멍청한 새꺄, 그때 우리가 한 번만 웃고 넘어갔으면 얼마 좋았어?”
“웃기고 있네, 지가 먼저 짜증냈으면서.”
“씨발.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지훈이에게 엉겨 붙는 거였는데.”
“뒤진다.”
27살의 나이로 정부부처의 책임자고, 개인이 보유한 회사의 자본금은 천억대다.
누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위치의 상대였다.
그렇게 투닥대던 두 사람은 신경질적으로 사장의 허락도 없이 채널을 돌려 버렸다.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괴물과 괴현상의 목격담.]
[조직적인 장난인가, 아니면 기현상인가.]
[중국 후난성의 구름 속 성, 호주 퍼스의 검은 저택, 카자흐스탄 발하슈 호의 그림자 섬 등.]
TV채널에선 마치 미스터리 프로그램 같은 방송이 나왔지만, 그 내용에 크게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저 잘 보고 있던 뉴스의 채널을 돌려버린 개념 없는 커플의 모습이 거슬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