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19
54. 3회차 수행자(1)
K팝은 일본의 애니메이션처럼 서브컬쳐 취급을 받고 있지만, 그 파급력은 해를 거듭할수록 강해져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젠 한국의 유명 아이돌이 음원을 내면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에서 ‘40개국 1위’, ‘60개국 1위’ 같은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올 정도다.
오죽하면 몇 년 전만 해도 꿈도 꾸지 못하던 빌보트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겠는가.
덕분에 한국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아이돌임에도 해외에 팬이 있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그런 K팝 시장에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 그룹이 있었는데, 바로 대한민국 3대 기획사로 손꼽히는 SG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아이윌’이란 걸그룹이었다.
5인조 여성 아이돌 그룹인 아이윌은 보컬, 랩, 춤 모든 게 빠지는 것 없이 빼어났으며, 외모 또한 출중하여 ‘역대급’이란 지칭이 끊이질 않는 최고의 걸그룹이었다.
“이게 대체 뭐야? 꿈?”
아이윌에서 귀여운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출중한 랩 실력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주아’는 어둠에 물든 숲속을 둘러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밝은 달빛 덕에 주변 모습은 분별은 되지만, 밤의 숲길이라는 것이 대개 그러하듯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런 걸 자각몽이라 하나?’
모처럼 휴일을 앞두고 숙소에서 뻗었는데, 이상한 꿈을 꾸다니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분위기가 음산하고 낯선 장소임에도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을 꿈이라고만 생각했기에 그다지 공포심을 느끼지 않았다.
‘꿈을 꾸면 푹 잔 느낌이 아니니까.’
자각몽에서는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 주아에게는 즐거움보단 피로 회복이 우선이었다.
그녀는 뺨을 꼬집으며 잠에서 깨려 했지만.
“아야야…….”
볼에서 아릿한 통증이 밀려오며 도무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 씨. 뭐야?”
통증이 느껴지는 꿈이라니 희한하다.
그녀는 작게 고개를 내저으며, 풀밭을 이불 삼아 벌러덩 누웠다.
흰색 면티에, 회색 반바지 차림, 화려한 무대 의상과 달리 그녀가 평소 숙소에서 즐겨 입는 간소한 복장이었다.
덕분에 다른 사람이 본다면 얼굴을 붉힐 만큼 무방비한 모습이었으나, 주아는 신경 쓰지 않고 밤하늘을 살폈다.
‘별 많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쿠션 역할을 해주는 풀의 내음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꿈속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녀에게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다.
[퀘스트 발생]
등급: 최하
내용: 실리스 마을로 향하라.
보상: 최하급 보상카드, 신분증.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본 주아는 실소를 흘렸다.
‘무슨 게임이냐?’
그렇게 그녀는 이상 현상을 무시하며 눈을 감았는데.
-크르르.
어디선가 야생짐승의 기척이 느껴지며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냥 꿈이라며 무시하기에 그녀의 감이 보내오는 위험 신호가 가볍지 않아서 마른침을 삼키며 상체를 일으켰다.
사방이 어두운 숲속이라 그림자가 진 곳이 많아 쉽게 기척의 근원지를 찾지 못했다.
“하, 하하.”
그녀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괜히 웃음을 흘렸고, 머리로는 계속 ‘꿈인데 뭘 긴장하냐?’며 스스로를 바보 취급했다.
하지만…….
-부스럭.
그림자를 뚫고 녹색의 피부를 가진 난쟁이가 걸어 나오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을 쳐야 했다.
[고블린]
고블린의 체구는 초등학고 2~3학년 수준.
그러나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손에 날붙이를 들고 있으면 위험할 따름이다.
왠지 역한 냄새가 날 것 같은 고블린은 웃는 듯한 표정으로 주아에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그녀는 고블린의 걸음걸이에 맞춰 뒤로 물러났다.
-키아아악!
그리고 녀석이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들자, 주아는 기겁하며 도망쳤다.
“헉, 헉…….”
꿈속인데도 현실의 체력이 반영되는 걸까?
그녀의 달리기는 빠르지 않았다.
보통 아이돌 하면 댄스 레슨 때문에 체력이 좋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것도 데뷔 전의 이야기다.
데뷔 후 스케쥴에 치어 쪽잠을 자며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면 좋던 체력도 날아가는 것이 당연.
덕분에 다리가 짧은 고블린과의 거리가 쑥쑥 좁혀져 갔다.
주아는 지금 갈등 중이었다.
어차피 따라 잡히는 거 ‘그냥 뛰지 말까’란 생각과 아무리 꿈이어도 기분 나쁘게 생긴 몬스터의 칼날에 ‘놀아나긴 싫다’는 감정이 부딪혔다.
결국 그녀는 계속 달리는 것을 선택했는데, 그래 봤자 따라잡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키엑!
-석!
종아리가 불에 데기라도 한 듯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녀는 달리던 속도에 밀려 요란하게 바닥을 뒹굴었고, 전신에서 밀려오는 통증에 기겁하며 손을 떨었다.
‘이, 이거 꿈이지?’
너무도 생생한 감각.
도저히 꿈일 뿐이라고 쉽게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때서야 주아는 일말의 여유도 잃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놀렸다.
-키키킥!
마치 자신을 비웃는 것 같은 고블린의 모습.
그러나 주아에게 있어 그 모습은 악마의 미소처럼 느껴졌다.
“오지 마.”
녹이 잔뜩 슨 단검을 핥으며 다가오는 모습이 삼류영화 속 악당 같았지만, 이 상황에서 어찌 녀석을 비웃겠는가.
“꺼져!”
통증도 통증이지만 영문 모를 상황에서 공포심이 극에 달한 주아는 손에 잡히는 대로 고블린에게 집어 던졌다.
그리고 고블린이 단검을 내세우며 달려오자.
-키에엑!
눈을 질끈 감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거 꿈이죠? 꿈 맞죠? 엄마! 아빠!’
그때였다.
-빠아악!
어디선가 박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비릿한 액체가 그녀의 옷을 적신 것이.
그녀의 애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은 걸까?
“괜찮으세요?”
다급한 남성의 목소리와 함께 앞에서 무언가가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주아는 두 눈을 천천히 떴고, 건장한 체격의 남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꿈틀.
발아래에서 혀를 길게 빼 든 채 꿈틀거리는 고블린을 발견한 그녀는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이런 다리를!”
“자, 잠깐만요.”
그러나 이내 정신을 다잡은 주아가 웃통을 까고 있는 딱 봐도 수상한 남성에게 다가오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이래 보여도 그렇게 수상한 남자는 아닙니다. 상의는 고블린을 공격할 무기를 만드느라 써버렸네요.”
주아는 고블린 옆에 녹색 피를 한껏 머금을 천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T셔츠에 돌을 넣어서 둔기로 사용했던 모양이다.
그때서야 주아는 자신이 은인을 의심하는 짓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며 사과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상황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럴 만도 하죠. 잠을 자다가 갑자기 다른 세계로 끌려오면 누구나가 의심을 할 거예요.”
“다른 세계라니.”
“저 괴물 보면 알잖아요. 그리고 본인도 평범한 꿈이 아니라는 것쯤은 느끼고 있을 테고요.”
“…….”
그녀는 이마를 짚으며 이성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하지만 이성을 유지하고 싶어도 그게 쉬울 리가 없다.
상황이 좀 비상식적인가.
“다리 좀 보여주세요. 생각보다 깊게 베인 것 같은데.”
아이돌로서 낯선 남자에게 새까매진 맨발을 내미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주아는 일단 그의 말에 따랐다.
“천만다행이네요.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갔으면 동맥이 베였을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혈할 만한 것을 찾았는데, 주변에 마땅한 게 없어서 고민해야 했다.
고블린의 피가 잔뜩 묻은 상의를 사용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여성의 옷을 벗길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결국 바지를 내렸고, 상상치도 못한 상황에 주아는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고블린이 더 몰려올지도 몰라도 조용하세요.”
한 손에 바지를 들고 팬티 바람으로 입을 막아봤자 변질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 이래 보여도 의사입니다. 다리 지혈하려고 고무줄 있는 바지 벗은 거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끄덕.
그래도 그녀는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며 입을 다물었고, 남성은 상처 부위가 압박이 되게 바지를 감았다.
그렇게 지혈이 끝나고서야 안도한 주아는 팬티 바람의 남성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퀘스트 받으셨죠?”
“네? 아.”
“마을로 이동해야 안전합니다. 함께 가시죠.”
이 부상으로 어딜 간단 말인가.
그보다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남성의 모습에 주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고 계십니까?”
그에 남성은 작게 헛기침을 하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안전 구역으로 이동을 하도록 하죠. 숲속은 위험하니까요.”
의심도가 올라갔지만, 지금으로썬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악!”
역시 다리의 부상 때문에 제대로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남성은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주아 앞에 쭈그려 앉았다.
“업히라고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도 인기 아이돌인데 모르는 남성의 등에 업히는 건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는 팬티바람이었으니.
결국, 남성은 반강제적으로 그녀를 업었다.
“갈게요.”
“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지도기능이 활성화됩니다.]
다시금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오르며 작은 미니맵이 떠올랐다.
“원래 토끼를 잡아야 준다고 들었는데, 조금 바뀌었나 보네.”
주아는 남성의 맨 등에 가슴이 닿지 않게 조심하느라 그의 혼잣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런데, 우리 어디서 본 적 있나요?”
남성의 물음에 주아는 어색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어두워서일까?
아니면 쌩얼이라서 그럴까?
유명 아이돌인 그녀를 남성은 못 알아보았다.
어쩌면 작업일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복잡한 기분이었다.
“글쎄요.”
말끝을 흘리는 주아의 태도에 남성은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헉. 헉.”
그렇게 1시간쯤 걸었을까?
“괜찮으세요?”
“그럼요. 문제없습니다.”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에이, 서로 도와야죠.”
자신을 엎고 이동하느라 전신이 땀범벅이 된 남성의 모습에 그녀는 불쾌함보다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래서 아까 전부터 남성이 걷기 편하게 신체 접촉에 연연하지 않고 바짝 밀착한 상태였다.
“어?”
그때, 지도에 하얀 점이 표기가 되었다.
“수행자다!”
그게 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는데, 주아를 업은 남성이 갑자기 환호하자 크게 움찔거렸다.
하얀 점은 정확하게 자신들에게 다가왔고, 그녀를 업은 남성도 그 점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중세영화에서나 볼법한 갑옷과 검을 찬 남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달려왔다.
“인식이형!”
“은우야!”
서로 아는 사인지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두 사람의 모습에 주아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죄송해요. 열심히 찾아다니긴 했는데, 오래 걸렸죠?”
“에이, 아니야. 이 넓은 구역을 수색하는 게 어디 쉽나. 그보다 설마 네가 마중 나올 줄 몰랐다.”
“원랜 옆 마을 담당이었는데, 여기 구역이 넓다고 클로이 님이 배치를 바꿔버렸어요.”
“올, 높게 평가받는 모양이네.”
“그래 봤자, 수색이죠. 클로이 님 눈에는 지훈 형님을 제외한 수행자는 전부 그게 그걸로 보일 걸요?”
“드디어, 소문만 무성한 클로이 님을 보는 건가?”
“그런데 왜 팬티 바람이에요? 업고 있는 여성분은 어떻게 된…….”
영문 모를 상황에 자기들끼리만 반가움을 표하는 것을 얌전히 지켜볼 수밖에 없던 주아는 은우란 남성이 자신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이윌의 주아 씨 아니세요?”
“…….”
잠시 자신의 직업을 잊고 있던 주아는 뒤늦게 화들짝 놀라며 알몸이나 다름없는 인식에게서 내려왔다.
“악!”
그러나 그녀의 부상은 가벼운 게 아니었다.
주아가 바닥에 쓰러지자, 두 남성은 당황했다.
“힐.”
하지만 정작 당혹스러운 것은 그녀였다.
그도 그럴 게 지혈대를 풀어버린 은우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오더니,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 갔기 때문이다.
“이야, 드디어 연예인 수행자도 생기는군요.”
이어서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웃음을 흘리는 은우를 보며 주아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연예인?”
인식이 깜짝 놀라고, 은우는 모르는 게 말이 되냐는 듯 농담하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걸그룹 아이윌의 멤버 주아 씨잖아요. 괜히 연예인은 잘 모르는 다는 식으로 작업 거시는 겁니까?”
“…….”
“설마, 진짜 몰랐어요?”
“아니, 아이윌은 아는데, 멤버 한 명 한 명은 모르거든. 그, 그러고 보니 아이윌 같기도 하고.”
“와, 이 형 완전 아재네.”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팬티 차림으로 다니는 게 내키지 않았는지, 인식은 주아의 피가 묻은 바지와 고블린 피가 묻은 옷을 입으며 은우를 바라보았다.
“클린.”
그에 그의 옷이 순식간에 새하얘지고 인식이가 주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영화나 만화의 하이라이트로 쓰일 법한 멋들어지는 순간이지만.
주아는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
“뭔 상황인지 좀 알려주세요.”
은우는 뺨을 긁적이다가 마을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을로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
당연하지만 수행자들이 숲속에서 개죽음을 당하는 일이 없게 수색 인원을 각 초보마을에 배치했다.
지도기능이 있는 수행자 1명과 용병이 20명씩 배치가 되다 보니, 1만 명에 달하는 인력이 3회차 수행자 탐색에 투입되었다.
덕분에 3회차 수행자 1천 명 중 단 5명만이 탈락했다.
3회차 수행자가 1천 명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수행자 지정권을 사용한다고 해서 정해진 숫자에서 인원이 추가로 더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낙오자는 다시 수행자가 되지 못했는데, 뭔가 다른 과정이 있는 건지는 몰라도 지정권을 받은 낙오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고생들 했어. 인식이는 늦게 발견돼서 꽤 위험했다며?”
“에이, 내가 뭐가 위험해. 여기 주아 씨가 위험했지.”
나는 3회차 수행자 중 지정권을 받아 수행자가 된 4명과 아이템 전달 겸 친목 도모를 위한 자리를 마련했는데, 인식이가 끌고 온 주아라는 여자 연예인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인기 아이돌이라…….’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내 영주성이었는데, 오가며 대충 설명을 들었는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겁을 먹은 듯한 주아는 시선을 피하며 눈알 굴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무래도 인식이는 그녀가 마음에 든 모양인지 도움을 주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이렇게 덜컥 데려온 거겠지.
원래대로라면 형식적인 대접만 하고 돌려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TV에서 몇 번이고 보았던 그녀를 실제로 접하는 순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