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17
53. 대기실 입장(1)
“당연히 그래야지. 폐하께서 영지도 추가로 내려줄 것이네.”
“기쁜 소식이군요.”
역시 일 처리가 빨라서 좋다.
그럼 나도 이제 대 영주이자 변경백이 되는 건가?
아마도 슈엔다르크 왕국과 국경을 마주한 국왕령을 내려주지 않을까 싶다.
영지의 모양새는 호리병 형태가 되겠지만, 나를 변경백으로 만들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부작용이 생기고 있네. 그거 알고 있나?”
“부작용이라니요?”
“자네가 워낙 잘나가니, 수행자에 대한 기득권자들의 경계심이 극에 달한 상태야.”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내가 아니더라도 수행자가 순조롭게 성장한다면 나중에라도 벌어질 일이었으니.
“하지만 이제 가볍게 볼 수 없을 것 같군.”
“무슨 뜻입니까?”
“앞으로 수행자들은 영주가 되긴 힘들 걸세.”
2왕자의 단언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수행자들을 제재하겠다는 뜻입니까?”
엄연히 따지면 2왕자에게 붙은 나는 국왕파라 칭할 수 있다.
같은 진영의 세력을 제재하겠다니, 미간이 좁혀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직 케일론 왕국은 그럴 생각이 없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상황이 다르지. 이미 국가 간 협의에 들어간 곳이 많아.”
불쾌하지만, 예상하고 있던 내용이다.
뮤대륙의 원주민들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견제가 들어오는 것이 당연했으니.
하지만 문제는 그 견제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나 때문이겠지만.
“이제 곧 3회차 수행자들이 몰려온다는데, 맞나?”
“네.”
“그래서 더 안달이 난 것일지도 모르지.”
3회차 수행자가 뮤대륙에 들어서는 것은 모레.
그 안에는 정우와 인식이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다가 역풍을 맞는 것은 아닐까요? 괜히 수행자들과 담을 쌓아서 좋은 건 없을 텐데.”
“그래서 다른 혜택으로 수행자들의 시선을 돌릴 생각인 듯하네. 그들도 수행자와 담을 쌓아서 좋을 게 없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는 거지.”
혜택이라.
이 세계의 어떤 혜택이 영주에 비하겠는가.
이거 잘하면 영주직을 수행하는 수행자는 나 이외에 영영 나타나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다.
수행자 중엔 뮤대륙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 많아 걱정이다.
개중엔 나와 클로이의 관계처럼 뮤대륙의 이성과 어울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일단 능력에 맞는 단승 작위와 국왕령 내의 저택을 내려줄 생각이라더군. 영지만 없을 뿐이지, 귀족이 사는 것은 같지.”
일반적으로 계승 작위는 영주에게 내려주는 것이며, 현재 대부분 국가의 단승 작위는 남작뿐이다.
그 말은 즉 자작위 이상의 단승 작위도 새롭게 만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공작위를 갖고 있어도 계승이 불가능하고, 영지도 없이 딸랑 저택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모든 것이 허울뿐인 명예지.
“그리고 수행자 특구라고 해서 왕실에서 운영하는 비과세 구역을 만들고 국가에 소속된 수행자에게 활동 보조금을 내려줄 예정이야.”
나쁘진 않은데, 그걸로 불만을 잠재우긴 힘들 것 같다.
이 세상의 원주민 입장에서 보면 우린 침략자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수행자들 중에 뮤대륙의 원주민과 반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 일로 괜히 뮤대륙인들과 벽이 생긴다면, 분명 언제고 불만이 터질 수도 있는 일.
이건 아무리 봐도 수행자들은 퀘스트 때문에 함부로 나라를 옮길 수가 없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가 나중에 퀘스트를 다른 나라에서도 자유롭게 받을 수 있게 된다면 해당 국가에서 수행자들을 보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또 수행자들이 한 곳에 뭉쳐진다면 괜히 위험도만 증가할 텐데.
“그리고 뮤대륙 인과의 결혼을 적극 추진한다더군.”
생각하는 거 하고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수행자들을 인정하기 힘든 것은 알지만, 아무리 봐도 최선의 방법은 그냥 현실에 순응하고 수행자들을 적극 받아들이는 것이다.
언젠가 마스터도 되고 대마법사가 될 수도 있는 인물들을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기존 기득권자들이 이를 허락할 리가 없다는 게 문제지만, 시대가 변하면 흐름에 따라야 살아남는 것이 당연했다.
“케일론 왕국의 입장이 변하는 일은 없을까요?”
내 물음에 왕자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최대한 현 상황을 유지해 봐야지. 하지만 장담할 수 없네. 아닌, 솔직히 말해서 우리도 대세에 따르게 될 가능성이 높아. 사실 수행자의 존재를 어려워하는 귀족은 1왕자 진영에만 있는 것이 아니거든. 무조건 수행자를 제한하진 않겠지만, 이전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 수밖에 없을 거네.”
“그렇습니까.”
대놓고 불만을 토하지 않을 뿐, 누가 봐도 내가 이 이야기를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네의 기분은 이해하네. 그래도 우리 케일론 왕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히 나은 수준으로 수행자들을 대우하겠노라 약속하겠네.”
나는 쓴웃음을 흘려야 했다.
이거 뭔가 사단이 나도 크게 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일까?
2왕자 입장에선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는 판단에 이 정보를 알려 주는 것이겠지만, 아무리 배려라 하더라도 그 내용이 이 모양이면 결코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연하지만 나는 이용만 당할 생각이 없다.
앞으로 2왕자의 행동을 주시하며 도움이 안 된다 싶으면 과감하게 버리는 것도 염두에 둘 것이다.
그는 내게 가치를 증명토록 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의 가치를 훌륭하게 증명해냈고.
앞으로는 2왕자도 내게 자신이 가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줘야 할 것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애써 웃어 보이며 찻잔을 든 나는 건배를 하듯 그의 눈높이로 들어 올렸다.
***
[스킬업 포인트 3개를 획득했습니다.]
이번 시스템 퀘스트였던 드레이크 50마리 사냥을 완료하고 얻은 상급 보상카드 1장에서 스킬업 포인트가 나왔다.
상급 퀘스트 기본 보상으로도 스킬업 포인트 3개가 걸려 있었으니, 하루 만에 6개의 포인트를 얻게 된 것이다.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쓸데없는 현물이 나오는 것보다 훨씬 나은 보상이라 생각한다.
선택형 보상은 당첨이라 할 수 있는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되지만, 랜덤형인 일반 보상카드에는 꽝이라 할 수 있는 보상들이 매우 많았다.
지난번 상급 보상에서 이틀 연속 5억이 나왔을 땐 욕이 튀어 나올 뻔했다.
10억은 분명 많은 돈이었지만, 이제 현금에 목을 맬 만큼 사정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와 전 세계 재벌 가문의 후원으로 받아 챙긴 게 워낙 많아서 연맹 계좌에 쌓여 있는 돈만 수십조 원에 달한다.
덕분에 이젠 수행자들에게 활동지원금을 수억씩 지급하는 상황이다.
연맹이 정부의 후원을 받는 공식적인 기관이 되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 지원을 받았기에 활동지원금은 대부분 연맹원들의 용돈으로 쓰이고 있었다.
[크리티컬(패시브 / LV10)]
-15% 확률로 상대에게 4배에 달하는 피해를 입힌다.
어제 패러사이트 퀸을 잡고 얻은 스킬업 포인트를 모두 투자하여 레벨이 6이던 크리티컬을 마스터했다.
그리고 남은 2개의 포인트는 ‘직감(패시브 / LV4)’에 투자했다.
현재 내가 만렙을 찍은 스킬은 이렇다.
자동회복(패시브 / LV10)
전투보조(패시브 / LV10)
관통(액티브 / LV10)
기감(패시브 / LV10)
크리티컬(패시브 / LV10)
여기에 사고 가속의 레벨이 7, 직감이 6이다.
처음엔 스킬업 포인트를 얻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는데, 이젠 상급 퀘스트를 수행하면 포인트를 3개씩이나 주었기에 레벨링이 상당히 수월했다.
직감의 레벨 작업이 끝난 다음에는 ‘마법 방어력’과 ‘출혈’, ‘진실의 눈’ 순으로 레벨을 올릴 예정이다.
1회차 수행자들이 이제 막 스킬업 포인트를 쌓고 있는 단계인 만큼 나와 다른 사람들의 차이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출근하자 봉봉아.”
하루의 시작이라 할 수 보상카드 개봉 이벤트 후,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친 나는 어디서 난 건지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는 봉봉이와 집을 나섰다.
사무실까지 걸어서 5분 거리인 만큼, 차를 탈 필요가 없었다.
녹색 머리카락(이파리)을 지닌 특이한 생김새 때문인지 주민들이 봉봉이를 보며 수군거렸지만, 내가 고개를 돌리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선을 피했다.
아무래도 검은 정장 차림의 국정원 요원들이 수시로 집을 오가는 바람에 주민들 사이에 오해가 생기면서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진 것 같다.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게 하는 사람이 없어서 편하고 좋았으니.
“좋은 아침입니다, 회장님.”
“어? 그 애 뭐야? 설마 봉봉이?”
사무실로 향하는 동안 김선아와 정우, 인식이와 마주쳤다.
우리나라 수행자 대부분이 이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오가며 만나는 이웃에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김선아는 어제도 함께한지라 따로 할 말이 없었고, 두 친구의 관심이 봉봉이에게 쏠렸다.
그때 인식이가 무언가를 떠올리며 화제를 돌렸다.
“드디어 모레가 되면 나도 수행자가 되는 건가.”
게임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식이의 기대 어린 모습에 나는 실소를 흘렸다.
“설치다가 골로 간다.”
내가 지닌 5개의 수행자 지정권 중 두 개는 인식이와 정우에게 돌아간다.
두 사람은 진즉부터 수행자에 대한 정보를 빠삭하게 숙지한 상태였고, 마을에 도착함과 동시에 용병길드를 찾아가면 나에게 연락이 닿게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두 사람은 가족만큼이나 중요한 인물들인지라 전폭적인 지원 아래 처음부터 풀 세팅을 맞추고 호위를 거느린 채 퀘스트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장담컨대 사치코, 태영보다도 월등한 성장 속도를 기록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내가 너, 금방 따라잡아 주마.”
“그러면 내 일이 줄어서 좋지.”
의욕으로 가득한 인식이와 달리 정우는 조심스러웠는데, 아직도 오러나 마법,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정하지 못한 모양이다.
더구나 정우는 남동생과 함께 입장하게 되어서 더욱 신중한 것 같다.
참고로 우리 부모님과 인식이의 누나에게도 제안을 했지만, 몬스터와 싸울 자신이 없다고 거절을 해서 4번째 지정권은 김선아의 남동생에게 돌아갔다.
이제 막 전역을 한데다가 태권도 선수 출신이라서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4장의 지정권을 사용하고 나머지 한 장은 낙오자에게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얼마 전에 아쉽게 죽은 140일차 수행자가 그 주인공.
낙오자가 지정권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기존의 능력을 보유한 채 3회차 수행자로 뮤대륙에 진입하게 될지, 아니면 기존의 능력을 잃고 새로운 수행자가 될 것인지.
최악의 상황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지정권을 하나 날리게 되는 거지만, 한 번쯤은 실험을 거쳐야 할 부분이라 생각했다.
“회장님, 손님이…….”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사무실에 들어왔더니, 태영이 슬쩍 내 눈치를 살피며 응접실을 가리켰다.
“누군데요?”
태영은 두 친구와 김선아를 제외하면 가장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내 눈치를 살핀다는 것이 뭔가 이상했다.
“중국 대사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대답에 나는 짧게 혀를 찼다.
과거 특수부대에게 공격을 받은 이후로 나와 중국은 가까워지는 일이 없이 계속 등진 상태다.
하지만 점점 나와 수행자 연맹의 가치가 커지고, 심지어 패러사이트 사태가 터지면서 이전처럼 콧대 높게 자존심을 세울 입장이 아니었다.
“아침 회의 시작하도록 하죠.”
“중국 대사는요?”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 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때문에 내가 굽히고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내 통보에 중국 대사는 감히 불만을 표하지 못하고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고 한다.
***
아침회의는 뮤대륙에서의 특별한 경험이나 알려지지 않은 정보들을 공유하는 자리다.
당연하지만 거기에는 2왕자가 밝힌 수행자 제재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었고, 이를 들은 한국 수행자들은 하나같이 아쉬움을 표했다.
다행히 이 일을 갖고 내게 트집을 잡는 수행자는 없었다.
생각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이 이번 뮤대륙 국가들의 대응을 이해하고 있었다.
반대로 입장 바꿔 생각해도 우리가 사는 이 대한민국에 다른 세계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빠르게 부와 권력을 손에 넣는 것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긴 힘들 것이다.
물론, 이해한다고 당연히 괜찮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 후 특별한 보고 내용 없이, 각자가 수행한 퀘스트의 정보를 공유했다.
당연히 가장 값어치 있는 정보는 아직 아무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급 퀘스트 구간에서 활동하고 있는 내 것이었다.
하지만.
“왜들 그러세요.”
정보를 제공 받은 이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드레이크의 목이 약점이라고 하셨지만, 목은 모든 동물의 약점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알아도 쉽게 처리할 수 없는 거지.”
“하루토님은 아직 어스웜에게 덤빌 엄두를 못해 상급 퀘스트 구간으로 넘어갈 기미가 안 보이는데, 드레이크를 오크 잡은 양 말씀하셔도…….”
그들과 눈높이가 다르다 보니, 이런 퀘스트가 나온다는 정도밖에 정보 수집이 되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무안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나중에 하루토에게 퀘스트 완료를 도와준다고 해야 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난 내게 태영이 괜히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회장님. 이제 중국 대사를…….”
“아, 그 사람이 있었죠. 알겠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정말로 중국 대사를 잊고 있었다.
우린 응접실로 이동했고, 머리가 반쯤 벗겨진 뚱뚱한 남성이 우릴 반겨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침회의는 거를 수가 없는 행사라서요.”
“이해합니다. 목숨을 걸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시는 분들에게 정보교환은 매우 중요한 일이죠. 갑자기 찾아온 무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계 평화라니, 무슨 거창한 말씀을.”
“어제 지훈 님께서 패러사이트 퀸을 처리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세계의 위기를 한 차례 구하신 겁니다.”
역시나 저자세로 열심히 내 눈치를 살피는 모양새가 왜 찾아 왔는지 안 봐도 비디오다.
“패러사이트 탐색 도움과 3차 수행자 건으로 찾아오신 거겠죠?”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굴한 웃음을 흘렸다.
콧대 높은 중국에서 이런 태도라니, 많이 쪼들리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