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15
51. 패러사이트 퀸(2)
자신의 집무실에서 한가로이 차를 즐기던 그리스 대통령.
그의 머릿속은 얼마 전 함께 잠자리를 가졌던 내무부 장관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비록 두 사람 모두 나이가 적지 않고 가정도 따로 있었지만, 일탈이 가져오는 특수성 때문인지 그때의 기억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차를 마시며, 해선 안 되는 생각 빠져있던 대통령은.
-콰아앙!
“뭐, 뭐야?”
느닷없이 들려온 폭음에 기겁하며 급히 창밖을 살폈다.
대통령 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주택가.
그의 눈에 하얀 연기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정황상 큰 폭발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대통령님! 괜찮으십니까!?”
“테러인가?”
“현재 파악 중입니다.”
집무실에 들어선 비서실장이 머뭇거리자 대통령은 호통치듯 지시를 내렸다.
“난 아무 문제 없으니 무슨 일인지 확인부터 하게!”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비서실장이 물러가자 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창밖을 살폈다.
-콰아아앙!
-콰아앙!
하지만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 커다란 폭음이 멈추지 않고 연이어 들려왔다.
덕분에 고개를 숙인 채 엎드리게 되고 경호원들이 더는 상황을 낙관하지 않고 급히 집무실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대통령님,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지.”
대통령은 표정을 굳히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따르르릉.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전화가 울리고, 그것이 핫라인 회선임을 알아챈 대통령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통령님, 미국 버나드 대통령께서 급히 알릴 내용이 있다며 통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필 이 타이밍에?
아니, 이 타이밍이기에 더욱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 대통령은 얼른 연결을 지시했고, 이동을 요구하는 경호 실장에게 조용하라며 손을 내저었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과 관련하여 연락하신 겁니까?”
아무리 미국이 대단하다고 한들, 막 발생한 상황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대답은 긍정.
그리스 대통령은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대체 뭔 상황인 겁니까?”
-극비리에 투입된 연맹의 회장이 패러사이트 퀸과 전투를 벌이는 것이죠. 아마 곧 안개가 발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급한 대로 NSA 직원들이 주변을 통제하고 있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패러사이트 퀸이라니.
그리고 그런 중요한 일을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극심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또한 NSA가 자국민을 통제하다니 용납하기 힘든 내정간섭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버나드 대통령의 말에 그는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껴야 했다.
-패러사이트 퀸의 정체는 내무부 장관이었습니다. 왜 사전에 밝히지 않았는지 아시겠죠?
“그, 그럴 리가. 분명 성수로 매일 검사를.”
-실제론 검사를 안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퀸은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니까요. 마력을 지니지 않은 보통 사람들에겐 치명적인 능력이라 하죠.
“…….”
-그나저나 대통령 본인께선 제대로 검사를 하고 있는 것 맞습니까?
버나드 대통령의 물음에 바로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그리스 대통령은 공포심을 느껴야 했다.
“성수! 성수 가져와!”
-아무런 이상이 없을 가능성이 높긴 하죠. 괜히 대통령을 감염시켜봐야 의심만 살 테니.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말.
잠시 후 그에게 성수가 배달되었고, 한 모금 크게 마신 그리스 대통령은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며 크게 안도했다.
-시민들을 빠르게 대피시켜 주십시오. 최악의 경우 GBU-43는 물론 핵 사용까지 염두에 두고 있으니까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TNT 11톤급으로 폭탄의 어머니라 불리는 GBU-43만 해도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핵이라니.
버나드 대통령은 이곳이 한나라의 수도임을 잊은 걸까?
바닥에 주저앉은 그리스 대통령은 이마를 짚었다.
-이해를 바라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확실하게 패러사이트 퀸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더욱 큰 피해가 발생할 뿐입니다.
패러사이트 퀸을 반드시 제거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져 온다.
그리스 대통령 역시 그 생각엔 동의하지만 핵이란 단어는 쉬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너무 낙담하지 마십시오. 어쨌거나 그건 최후의 수단이니까요. 아직 연맹의 회장께서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연맹 회장을 응원하는 겁니다.
분통을 터뜨린 그리스 대통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공무원, 경찰, 군인 할 것 없이 아테네의 모든 공권력을 동원하여 피난 유도를 지시했다.
-이성적인 판단 고맙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어떻게 이성적일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분명 하겠다면 할 사람이니, 이쪽은 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 뿐입니다.”
버나드 대통령 입장에선 굳이 밝히지 않고 저질러도 되는 일.
그럼에도 사실을 알린 것은 지금부터라도 민간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그거면 됩니다.
그리스 대통령은 이를 갈며 집무실을 떠나 안전 구역으로 이동했다.
***
-쾅! 콰아앙! 서걱!
“빌어먹을 쥐새끼!”
“닥쳐 기생충!”
패러사이트 퀸의 주먹을 피해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창에 각종 버프를 담아 휘둘렀다.
하지만 그녀는 지구의 무술이라도 익혔는지, 몽크처럼 능숙하게 내 공격을 맨손으로 쳐냈다.
그러나 패러사이트 퀸은 내게 다가오긴커녕 기겁하며 몸을 뒤로 날렸는데, 발밑에서 7서클의 대마법이 발현되었기 때문이다.
‘세퍼레이션.’
마치 촉수처럼 기괴한 움직임을 지닌 수십 가닥의 하얀빛이 유도미사일처럼 퀸을 따라 움직였다.
사고가속 속에서 총알 같은 스피드를 보여 주는 퀸을 꿋꿋하게 따라가며 거리를 좁히는 마법.
실제로 그 스피드는 눈으로 좇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사고 가속 속의 세상이 오히려 평범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흡!”
결국 그녀는 회피 대신 마법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짧은 기합성과 함께 수도를 연달아 날리자 오러블레이드를 연상시키는 검은색의 칼날이 휘둘러지며 마법을 소멸시켜버렸다.
다만 마법에 의한 데미지가 제로는 아닌지, 일시적으로 패러사이트 퀸의 움직임이 경직되었고, 두 개의 마법과 내 투창공격이 이어졌다.
처음에도 사용했던 7클래스 플레임 블레스터와 6클래스 빛속성의 레이저 캐논.
그 두 개가 피할 틈도 없이 그녀를 덮쳤고, 강력한 두 마법이 건물 수십 채를 파괴하며 패러사이트 퀸을 멀리 날려 버렸다.
이번에도 그녀는 양팔을 교차해 막았지만, 처음처럼 무사하지 못했다.
양팔은 어깨 채로 떨어져 나가고 전신 곳곳이 갉아 먹힌 듯 구멍이 생겼으니.
-고오오오.
강력한 열기를 지닌 마법이 방사돼서인지 주변의 공기가 비명을 지르며 시끄럽게 울리고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누가 봐도 승기를 굳힌 상황.
하지만 그녀는 트롤을 상회하는 회복능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안심할 수 없었다.
그림자 이동으로 그녀의 뒤에서 등장한 나는 오리하르콘 롱소드를 소환하며 퀸의 목을 노렸다.
-깡!
그러나 패러사이트 퀸은 고개를 돌려 이빨로 검을 막아내는 묘기를 보여 주었다.
“허.”
그리고 그때.
-파아앗!
조금 늦는가 싶더니, 제법 높은 허공 위에서부터 안개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적의 강력함을 증명하듯, 사방을 포위하며 퍼져가는 안개의 규모는 이전과 차원이 달랐다.
[퀘스트 발생]
등급: 최상
내용: 패러사이트 퀸을 퇴치하라
보상: 선택형 보상카드(기여도에 따른 차등지급)
포인트(기여도에 따른 차등지급)
스킬 업 포인트(기여도에 따른 차등지급)
전투교범(기여도에 따른 차등지급)
바로 이걸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상대가 마스터급으로 분류되는 만큼 등급은 최상급.
보상도 두둑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최상급에서 등장한 선택형 보상카드라니.
잘만하면 사고 가속급의 사기 스킬을 또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전투교범까지 기본 보상에 끼어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이긴 것도 아니지만, 갑자기 온몸에 힘이 치솟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바위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는 검에서 미련 없이 손을 놓으면서 단검을 소환해 투척하며 뒤로 물러났다.
-투툭!
하지만 패러사이트 퀸도 바보가 아닌지라, 내가 거리를 벌리면 스크롤을 통한 마법공격이 이어지는 것을 알기에 우선적으로 회복한 오른손을 뻗어오며 바짝 따라붙었다.
단검이 이마와 쇄골에 박혔음에도 인상을 찌푸릴뿐 개의치 않는 모습.
-푸시시식!
오리하르콘 무기에 깃든 파마의 힘에 의해 염산을 부은 것처럼 상처에서 거품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패러사이트 퀸은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작은 부상에 연연하지 않았다.
‘일단 안개의 중심으로.’
일반인의 열 배가 넘는 순발력에 오러로 신체 강화를 하고 패스트 마법과 도약 스킬을 사용했음에도 그녀와의 거리가 벌어지긴커녕 점점 좁혀졌다.
-화악!
그러나 내가 이렇게 도망치는 이유는 시야를 제약하는 안개 존을 벗어나기 위함이었지, 겁을 먹어서가 아니었다.
안개의 중심에 다다르자, 시야가 탁 트이고.
나는 공격 반경이 50m에 달하는 파이어 스톰 스크롤 5장을 동시에 사용했다.
“미친!”
당연하지만 파이어 스톰의 범위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마법이란 것이 시전자를 어느 정도 보호하긴 하지만 절대적인 수준이 아니었기에 이대로라면 같이 마법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몸을 돌려 급히 자리를 이탈하려는 패러사이트 퀸에게 달려들었다.
“대, 대체 무슨 생각이냐!”
동일한 7서클의 마법이 5번 중첩되어 사용되다 보니, 발밑에서 요동치는 마력의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퀸이 도망치지 못하게 약 올리듯 창을 휘둘렀다.
그리고 거대한 불의 기둥이 솟구쳐 오르는 순간.
창에 모든 기운을 담았다.
-고고고고!
“끄아아아아악!”
생전 이렇게 끔찍한 비명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던가.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쥐어 짜낸 비명소리가 용암 속에 빠진 것 같은 풍경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나는 새파란 빛에 휩싸인 채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힘껏 창을 내질렀다.
-쿠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붉은 지옥.
그러나 손끝으로 창이 무언가를 관통한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폐가 타들어 갔는지, 더 이상 비명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창을 타고 느껴지는 진동이 이 끔찍한 공격 속에서도 그녀가 아직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고오오오!
파이어 스톰이 얼마 가지 않아 용오름처럼 하늘로 치솟고.
불의 기둥에 안개가 일시적으로 소멸하여 잠깐의 전투로 폐허가 된 그리스 아테나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흐으으으.”
창끝에 매달려 있는 가방 크기의 무언가.
“진짜 끈질기네.”
나는 바람 새는 소리를 내는 숯덩이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열기에 녹은 아스팔트처럼 흘러내리는 검은 피부.
마치 미라를 연상시키는 뼈가 고스란히 드러난 얼굴.
몸통은 흉부밖에 남지 않았으며, 이 상황이 돼서도 꿈틀대는 모습이 징그럽기 그지없다.
웬만해선 이런 동귀어진 같은 수법은 쓰지 않으려 했는데, 이 이상 확실하게 녀석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1일 1회, 모든 공격을 막아 주는 ‘신의 가호’를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신의 가호에 대해선 이미 오래전에 조사를 끝낸 상태.
‘1일 1회 방어’라는 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꽤나 다양한 활용방법이 숨겨져 있다.
지속성 마법은 그 자체가 1회 공격.
즉, 지속성 마법에 대해선 그 효과가 끝날 때까지 방어를 해준단 뜻이었다.
그리고 신의 가호로 펼쳐진 방어막이 유지되는 동안, 다른 공격을 통과시키는 것은 아니었기에 활용하기에 따라 일시적 무적 상태처럼 사용할 수도 있었다.
물론 꼼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인위적으로 신의 가호를 계속 지속하는 방법은 통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스스스.
이 상황이 되어서도 서서히 회복해가는 패러사이트 퀸의 모습에 나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럼 진짜 죽을 때까지 공격하는 수밖에.”
바닥에 꼬치처럼 패러사이트 퀸을 꽂아둔 나는 장검을 재소환하여 장작 패듯 도끼질을 했다.
살려달라는 건지, 딱딱하게 굳은 입을 움직이는 패러사이트 퀸.
더 이상 그녀에게 아름다움이란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흉물스럽기 그지없었다.
심장을 찌부러뜨리고, 목을 베도 소용이 없었다.
내가 계속 무기를 휘두르고 마법을 사용해도 녀석은 버티고 또 버텼다.
트롤과는 급이 다른 능력치.
그렇게 얼마나 지루한 작업을 이어갔을까.
-핏!
“어?”
방심한 틈을 타 발밑에서 작은 그림자가 솟구치더니.
내 목을 꿰뚫어 버렸다.
나는 벙찐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다가, 연이어 날아드는 검은 촉수를 피하지 못하고 몸 여기저기를 꿰뚫리고 말았다.
총에 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키킥! 멍청한 녀석.”
검게 그을린 패러사이트 퀸의 몸통 밑에서 요정 같은 작은 사람이 걸어 나왔다.
“꼴이 말이 아니지만, 결국 살아남는 게 승자 아니겠나.”
아무래도 그게 본체였던 모양이다.
내가 엉뚱한 몸통을 공격하는 동안 녀석은 땅속에서 저렇게 회복을 하고 있던 것 같다.
‘확실히 방심하면 안 되지.’
그러나 녀석이 모르고 있는 게 있다.
그건 바로 내가 레벨 30(기본10, 장비20)의 자동회복 스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어?”
나는 조소를 흘리며 촉수들을 검으로 잘라 내고 앙증맞은 사이즈의 패러사이트 퀸에게 다가갔다.
몸 여기저기에 생긴 구멍은 순식간에 치료되었다.
덕분에 이겼다고 득의양양하던 퀸이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너, 너 인간 아니야?”
“이런 인간도 있는 거지.”
아무래도 작아진 크기만큼 능력치도 많이 떨어진 모양이다.
“살려.”
나는 벌레를 짓이기듯 퀸을 검면으로 내려쳤다.
“아빠!”
-슉!
하지만 나보다 빨리 패러사이트 퀸을 공격한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봉봉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등장.
“그거 나 줭!”
재생성된 회색의 안개를 뚫고 나타난 봉봉이가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더니 패러사이트 퀸을 녹색의 줄기로 뀄다.
그리고 경악할만한 상황이 발생했는데.
“어? 어어!? 뭐, 뭐야 이 새끼! 으아아악!”
낚시처럼 패러사이트 퀸을 주욱 끌어당기더니, 그대로 한입에 삼켜버리는 것 아니겠는가.
“잘 먹었다!”
뜬금없는 상황에 뭐라 말도 못하고 놀란 표정만 짓고 있던 나는 갑자기 커져서 10살 정도의 소녀가 된 봉봉이를 보며 바보처럼 눈만 끔뻑였다.
[퀘스트 완료!]
막강했던 초반 포스와 달리 허무하기 그지없는 패러사이트 퀸의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