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14
51. 패러사이트 퀸(1)
마스터급으로 분류되는 패러사이트 퀸과 전투를 벌이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 상황을 두고 고민에 또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현재 내 실력은 익스퍼트 최상급 중에서도 적수를 찾기 힘든 위치에 있지만, 결코 마스터급에 비할 수준은 아니다.
때문에 데스나이트 때처럼 퀸과 마주하면 위험한 것은 당연.
하지만 사전에 충분히 대비한다면 얼마든지 공략할 방법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부터 강해서 오크 등을 사냥하고 다닌 것이 아니지 않나.
지금은 전투 능력이 상승함에 따라 머리보단 몸을 움직여 싸우는 경우가 많았지만, 강한 적을 상대함에 있어 방법을 궁리하면 얼마든지 돌파구는 생기기 마련이다.
더구나 나는 그 강대한 적이 어떤 몬스터인지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은가.
“이야, 굉장히 반가운데.”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반겨주는 그리스의 내무부 장관.
나는 오리하르콘 창을 소환해 손에 쥐었다.
“어떻게?”
“성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지구인을 무시한 게 컸어. 고맙다 방심해 줘서,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방심을 했다고?”
나는 순식간에 젊은 여성의 것으로 바뀌는 얼굴을 보며, 오리하르콘 창에 모든 기운을 쏟아부어 일격을 내질렀다.
“그 실력으로 덤비다니, 죽여달라는 뜻이군.”
그러나 패러사이트 퀸은 내 일격을 너무도 간단히 회피했고.
창에 담겨 있던 충만한 기운은 건물의 벽을 무너뜨리며 그리스의 허공을 수놓는 별똥별이 되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 네 녀석을 정리하면 일이 더욱 수월해질 테니!”
사고 가속 속에서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는 패러사이트 퀸.
그녀의 순발력은 생명체가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그 모습에도 당황하지 않고, 신체 능력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창을 내질렀다.
-콰앙!
부드러워 보이는 맨손과 오리하르콘 창의 충돌.
결과는 오리하르콘이란 보물을 갖고 있음에도 내가 밀리고 말았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퀸의 머리 위로 마법이 떨어졌지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한 시선 끌기.
패러사이트 퀸의 발밑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발생하며, 사전에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펼쳐졌다.
-콰과과과과!
“컥!”
강력한 공격에 비명을 내지르는 퀸을 보며 나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게 방심이란 거야.”
갑작스런 급전개.
무척이나 긴 하루가 될 것 같은 상황 속에 나는 패러사이트 퀸을 찾아내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렸다.
***
‘신수를 사역마로 거느리고,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신기의 소유자이자, 성녀를 만날 수 있는 신분까지. 전부 이것을 위한 것이었군요.’
‘세상에 이유 없는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위대한 어머니의 안배였던 것이죠. 이것이 있으면 확실하게 원하는 바를 이루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성녀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미스릴로 만들어진 금속판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봉봉이를 보았다.
“봉봉아, 아빠 좀 도와줘야겠다.”
“응!”
민소매 티에 반바지 차림의 봉봉이는 이제 제법 의사소통이 된다.
물론. 봉봉이 본인의 언어 능력은 5살 수준이지만, 이젠 확실하게 자신이 생각을 표할 수 있었다.
나는 녀석의 녹색 머리카락(이파리)을 쓰다듬으며 미스릴 판 주변에 오리하르콘 무기 4개를 모두 꺼내 둘렀다.
더불어 성녀가 빌려준 성물을 꺼내는 것으로 준비 완료.
지금은 현실인지라 성물의 정보를 볼 순 없지만, 뮤대륙에서 보았던 성물의 상세정보는 아래와 같다.
[마를 쫓는 별]
-신화시대가 끝나고 찾아온 신마시대, 악마종이 창조주와 신족의 존재를 부정하며 발발한 대전쟁에서 하이랜드의 추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창공의 신이 내려 준 성물.
성층권 밖에서 악마 종의 동태를 살필 수 있다.
-탐색 범위: 지정 위치로부터 반경 100㎞
-고위 신관 이상 운용 가능
금속으로 만들어진 쓰레기통 같은 외관.
하지만 아이템 설명을 보면 결코 쓰레기통이라 칭할 수가 없다.
그것은 일종의 인공위성이었다.
우린 한국에 머물면서 지구 곳곳을 탐색할 수 있게 해주는 위성형 탐색 장비.
지금의 지구에 너무도 필요한 보물이었다.
하지만 성녀 측에서 바로 이것을 내어주지 못한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 내용 때문이다.
‘고위 신관 이상 운용 가능.’
이것을 운용할 수 있는 존재는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신성마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배운다고 해도 고위 기사, 고위 마법사와 동급인 고위 사제가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제한 사항을 해결해 줄 존재가 옆에 있었으니, 바로 신수인 봉봉이었다.
요정형, 아니 이젠 인간형이라 칭하는 게 나은 봉봉이는 악마종과 상반된 개념의 신수다.
악마종이 마속성인 것처럼 신수인 봉봉이는 성속성인데, 이런 특성을 이용해 신관을 대체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봉봉이가 신수라 해도 아직 성숙한 신수가 아닌지라, 고위 신관의 위치를 대체할 순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신성력을 부풀려줄 오르하르콘과 성물을 운용하기 위해 성녀가 직접 제작한 신성마법이 깃든 미스릴 판의 존재였다.
봉봉이가 일종의 온/오프 스위치라면 오리하르콘은 배터리고, 미스릴판은 장비를 운용하기 위한 컨트롤러라 볼 수 있다.
모든 상황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게 성녀의 말대로 이날을 위해 준비된 안배처럼 느껴질 정도.
그렇다면 미래 신문에 등장하지 않은 이대로 패러사이트들은 정리가 된다는 뜻일까?
“그럼 봉봉아, 한국부터 탐색해 볼까.”
“응.”
봉봉이가 내 지시에 따라 성물에 떠듬떠듬 좌표를 입력했다.
좌표가 제대로 입력이 되었는지 머지않아 성물이 우리의 앞에서 텔레포트 하듯 모습을 감췄다.
“보여?”
-끄덕끄덕.
“좋아 그럼, 바로 탐색을 사용해봐.”
그렇게 성물은 성공적으로 가동이 되었고, 한국을 탐색하던 우린 강원도 강릉과 전라남도 목포에서 패러사이트를 추가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닌지라 봉봉이는 수시로 지도에 점을 찍었는데, 큰 점과 작은 점으로 패러사이트 성충과 알 또는 유충 상태를 세밀하게 분류했다.
이런 식이라면 패러사이트 퀸을 찾는 것도 시간문제라 할 수 있다.
다만 탐색 반경이 100㎞나 된다고 해도 지구 전체를 뒤지려면 며칠이 걸릴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훨씬 희망적인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좋아, 잘했어.”
생긴 것은 5살짜리 아이지만, 봉봉이의 지능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가르쳐 주는 대로 지식을 흡수했다.
“지훈 님.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한국에 이어 북한, 일본까지 주변 국가를 탐색했으나, 패러사이트 퀸은 발견되지 않았고, 연맹 회장실의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들어섰다.
“고맙습니다. 참고로 언제든 해외로 떠날 수 있게 준비를 갖춰주세요.”
“알겠습니다.”
NSA의 테리 요원이 내게 어느 서류를 건네주었는데, 그곳엔 근래 들어 수상한 기색을 보이고 있는 각국 ‘주요 인사’들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세계 최고이자 최대의 정보단체를 지니고 있음에도 패러사이트 퀸의 존재를 단정 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심 가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미국은 각국의 정보단체와 협력하여 탐색에 열을 올렸는데, 대부분의 국가들 역시 이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 보니, 꽤나 협조적이었다.
그리고 테리가 건네준 것이 의심이 가는 주요 인사들의 정보가 담긴 서류였다.
마음먹으면 성수를 뿌리던가 해서 적의 정체를 밝혀낼 순 있겠지만, 한번 놓치게 되면 그 이후로 잡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는 만큼 섣부른 짓은 하지 않았다.
“많네.”
총원 72명.
이 중 패러사이트 퀸이 없을 수도 있지만, 우선적으로 조사할 대상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봉봉이와 함께 탐색을 시작했다.
“부통령과 연결된 멕시코 카르텔 보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중국 주석의 새로운 첩.”
“항상 수상한 이란의 최고 지도자.”
절대로 직접 날아다니며 탐색할 수 없는 범위.
하지만 ‘마를 쫓는 별’이란 네이밍 센스 최악의 성물 덕에 순식간에 의심분자들의 탐색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찾았다!”
드디어 패러사이트 퀸의 위치를 단정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스 내무부 장관]
나는 머리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끼며 장비들과 봉봉이를 챙기고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어? 회, 회장님?”
그리고 봉봉이의 보호자 역할로 김선아를 납치하듯 데리고 연맹 사무실을 나섰다.
“어디 가?”
“오늘 못 들어 올 거야.”
일방적인 내 통보에 어딜 가냐고 물었던 정우와 연맹원들은 괜히 휘파람을 불면서 놀렸고, 김선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물론 다른 불순한 이유가 없다는 것은 김선아 본인이 가장 잘 알지만,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상상하고 만 것이다.
기밀 유지를 위해 밝히지는 않았지만, 내가 패러사이트 퀸과 싸우기 위해 한국을 벗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연맹원들은 이렇게 한가로운 반응을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헙.”
차량에 탑승함과 동시에 김선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이야기를 모두 들은 그녀의 얼굴은 당혹스러움과 걱정으로 물들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결코 맨땅에 헤딩하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우린 은밀하게 미국의 국적기를 이용해 그리스로 날아갔다.
이번엔 거리가 워낙 멀어 지난번처럼 경유하지 않고, 우린 비행기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덕분에 뮤대륙에서 지내는 5일 내내, 현실의 내 몸에 이상은 없는 건지 걱정했다.
하지만 당장 나와 김선아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미국, 한국의 요원들과 봉봉이가 우리의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테니 믿고 있는 수밖에.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이상없이 잠에서 깨어났고,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빠 저기!”
수km 밖에서도 패러사이트를 탐색해내는 봉봉이가 어느 집을 가리켰다.
“선아씨 봉봉이를 부탁합니다.”
“맡겨 주십시오.”
인명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지만 패러사이트 퀸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우린 이 상황을 그리스 정부에 알리지 않았다.
현재 내 위치는 퀸이 둔갑한 내무부 장관의 집으로부터 약 500미터 떨어진 지점.
매의 눈 스킬에 시력 강화 마법으로 목표지점을 살피던 나는 그림자 이동을 사용할 만한 장소를 발견하곤 바로 이동했다.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바뀌고 내가 도착한 곳은 유럽식 가정집의 거실이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거실에는 얼떨떨한 표정의 중년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가 바로 미리 숙지해 놓았던 그리스 내무부 장관, 즉 패러사이트 퀸이었다.
“이야, 반가운데.”
중년 여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누구나가 좋아할 예쁘장한 외모로 바뀌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마치 네가 왜 여깄냐는 불신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에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내려가는 것을 느끼며 긴말 없이 일격필살의 기운을 담아 창을 내질렀다.
-콰앙!
하지만 내 공격은 가벼운 회피 동작에 애꿎은 벽만 부쉈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횡 공격은 맨손에 가볍게 막히고, 창문을 깨뜨리며 사선으로 뻗어온 콜 라이트닝은 방전되듯 아무런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단 세 번의 공격.
그러나 전투력의 격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시시각각 내 머리를 부수기 위해 다가오는 주먹.
나는 겁먹을 것 없이 오히려 비웃음을 흘리며 비장의 수를 꺼내 들었다.
-지익!
그것은 뮤대륙에서 제법 흔하게 볼 수 있는 마법 스크롤이었다.
다만 내가 가진 것은 어중간한 마법 스크롤과 차원이 다른 물건이다.
‘플레임 블레스트.’
-콰아아아앙!
경악한 표정으로 팔을 교차한 패러사이트 퀸을 불의 기둥이 승천하며 집어삼켰다.
동시에 내무부 장관의 집은 사방으로 터져나가고.
-꺄아아악!
테러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상황에 그리스 아테네의 거리는 혼란에 휩싸였다.
“보기 좋은데?”
나는 맞은편 건물 지붕에 착지하는 나신의 여성을 보며 감상을 내뱉었다.
“그게 비장의 수인 거냐? 분명 강력한 공격이긴 했지만, 한 방으로는 부족해 보이는데.”
“그야, 그렇겠지.”
패러사이트 퀸이 이리 쉽게 당할 리 없다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부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공간에서 종이 더미를 꺼내 들어 허공에 뿌렸다.
그리고 종이들은 바닥에 떨어지는 일 없이 위성처럼 내 주변을 공전했다.
“그래서 많이 준비했어.”
그것은 6~7클래스급의 마법이 새겨진, 스크롤 더미였다.
내가 생각한 패러사이트 퀸의 공략법은 바로 이것.
돈으로 강력한 공격력을 사는 것이었다.
인상을 찡그린 패러사이트 퀸을 바라보던 나는 가볍게 창을 휘둘렀고, 4장의 스크롤이 한 번에 찢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