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12
51. 신수 봉봉 (2)
봉봉이는 신수다.
하지만 일반적인 신수와 다른 점은 바로 내 사역마란 것.
사역마란 주인과 영적으로 연결이 되며, 주인의 경험 또는 주인과 함께한 전투로 성장해 나간다.
때문에 같은 신수라 해도 어느 사역마는 일반 신수보다 약할 수도 있고 또 규격을 초월해 월등히 강해질 수도 있다.
나는 화분 밖으로 손발이 뚫고 나온 봉봉이를 보며 말을 잃었다.
“요정의 느낌이 아닌데?”
분명 내가 보았던 책에선 갸녀린 식물의 요정으로 표기가 되었는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머리 위의 이파리도 여러 갈래로 갈라져 제법 머리카락다운 모양새가 되었고, 내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그냥 애였다.
요정이 아닌 사람의 아이.
다만 몸에는 화분이 옷을 대신하고 있어,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아동학대로 신고할지도 모르겠다.
“너 그 흙 있어야 하지?”
더 큰 화분을 사서 거기에 심어두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나?
그냥 평범한 옷을 입히면 좋은데, 식물에게 흙이 필요 없단 건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봉봉이는 고개를 내저으며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흙 없어도 먹는 걸로 영양을 보충한다고?”
-끄덕.
그럼 더 이상 식물이 아니지 않나?
나는 말없이 녀석을 내려다보다가 머리를 쓰다듬고는 걸음을 옮겼다.
졸지에 애 아빠가 된 느낌.
문제는 아직 아이의 성별도 모른다는 것이다.
“방금 먹어치웠던 녀석들 있지? 그거 또 숨어 있는 데 없어?”
-도리도리.
그래, 애 아빠가 된 느낌이면 어떠하랴.
놀랍게도 봉봉이는 알 상태의 패러사이트까지 탐색해 내는 능력이 있었고, 범위도 굉장히 넓었다.
덕분에 모텔에서 수km 떨어진 창고에서 패러사이트의 충실한 종이 된 인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이형구의 동생을 포함한 K대의 학생들로 모두 부화 시기가 한참 지난 알을 품고 있었다.
다행이 그들에게 피해 없이 알을 제거할 수 있었지만, 기억착란 증세를 보이는 것을 보면, 뇌에 악영향이 간 것 같았다.
10일 넘게 알을 품은 채 조종을 받고 있었으니 이상이 있는 것이 당연했다.
아무튼, 정확한 거리는 몰라도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패러사이트 알까지 판별해내는 봉봉이의 능력은 우리에게 있어 희망이다.
비록 모든 나라를 돌며 위협을 제거하긴 힘들겠지만, 적어도 범위를 한정하면 노 패러사이트 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오늘부터 봉봉이를 등에 태우고 날아다니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주변을 살펴볼 생각이다.
하지만 그전에 옷부터 사야겠다.
***
봉봉이를 태우고 하늘을 날며 경기도 일대를 모두 탐색한 끝에 패러사이트 소굴을 두 군데 더 발견했으며, 그동안 소식이 없던 던전을 연천군 DMZ 북한 방향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당연히 패러사이트는 제거를 했고, 던전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서 패러사이트 탐색을 끝낸 후 클리어하기로 마음먹었다.
봉봉이의 정확한 탐색 범위는 4㎞ 정도로 단 하루 만에 서울을 포함한 경기도의 절반을 조사할 수 있었다.
아마 퀸이 한국을 신경 쓴다면 꽤나 똥줄 타는 상황일 것이다.
때문에 이어질 퀸의 행동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당연히 봉봉이를 제거하려 들겠지.
부디 ‘안전 구역’ 스킬이 제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함께 있을 땐 괜찮지만 내가 잠든 타이밍이 걱정이다.
수행자는 잠이 들어도 신의 보호를 받는다지만, 주변은 그렇지 못했으니.
그나마 ‘안전 구역’이라는 그럴싸한 스킬을 보유하고 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부모님과 함께 벙커에서 생활을 시켰을 것이다.
“카카오는 순조롭게 수확 중입니다. 그런데 지훈 님의 영지를 살피는 간자들이 많다 보니, 카카오의 생김새가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갔습니다.”
“뭐, 상관없어. 생김새를 안다고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우리가 조드섬에 방문할 때는 복장을 감추고 여러 조로 나눠 클로이가 알려준 경로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해 행적을 분산시켰다.
아마 누구도 우리가 이블랜드에서 카카오를 구하고 있다곤 생각지도 못할 것이다.
뭐, 사실 조드 섬에 대해 알아챈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곳을 개척한 사람은 나였기에 소유권은 어디까지나 케일론 왕국에 있었으니.
다만 나는 케일론 왕국에서 파벌 싸움에 휘말린 만큼, 괜한 잡음은 피하고 싶었다.
“그나마 그 쌍두룡이 더 이상 튀어나오지 않아서 다행이지.”
아직도 지난번에 봤던 북쪽의 왕 라그나베일이란 녀석을 떠올리면 오금이 저린다.
만약 녀석이 지구에 떨어진다면 핵미사일을 써도 한두 방으론 어림도 없을 것 같은 느낌.
누군가에게 무시를 당하는 게 이렇게 다행이라 여겨지긴 처음이다.
대신 자이언트 크로커다일이 한두 마리씩 강을 따라 나타나긴 하지만, 그 빌어먹을 쌍두룡에 비하면 애교였다.
현재는 조드섬과 영주성 창고에 암호화 텔레포트 게이트가 직접연결이 되어 있어서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병력이 출동 가능했다.
또 익스퍼트 상급과 중급의 기사들이 페어를 이뤄 일주일씩 로테이션으로 섬을 지키면서 안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1차로 수집한 카카오의 건조가 오늘 막 끝나서 매스 생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카카오 매스는 초콜릿을 만들기 위한 기본 공정이라 할 수 있다.
볶은 카카오를 분쇄하고 열을 가해 반죽을 만드는 것인데, 이 매스를 압착하면 나오는 하얀 지방이 초콜릿 생산에 필요한 카카오 버터다.
그리고 지방을 빼고 남은 건더기를 분쇄하면 흔히 말하는 코코아 가루가 된다.
그 카카오 버터를 다시 압착 전의 매스와 섞으면 우리가 흔히 아는 다크 초콜릿이 되는 것이고, 여기에 설탕과 분유를 넣으면 밀크 초콜릿이 된다.
한국에선 비싼 카카오버터 대신 값싼 팜유를 사용하여 초콜릿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어차피 카카오 버터를 만들고 남은 코코아 가루도 비싸게 팔아먹을 생각이니까.
“좋네. 곧 초콜릿 생산에 들어갈 수 있겠어.”
“그런데 초콜릿이 그렇게 맛있습니까?”
“아마 클로에도 먹으면 깜짝 놀랄걸? 아, 그러지 말고 카카오 매스 좀 가져오라고 해. 내가 즉석에서 만들어 줄게. 우리 잠깐 쉬자.”
“네.”
클로이도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인지라 얼른 집사에게 내 지시를 전달했고, 머지않아 집사가 큼지막한 카카오 메스 두 덩어리를 가져왔다.
나는 미리 준비된 우유 2리터 중 1리터의 수분을 날려 분유를 만들고, 이어서 카카오 매스 하나를 즉석에서 흡착해 버터와 가루로 분리했다.
이제부턴 섞기만 하면 된다.
분유와 매스, 버터, 설탕을 넣은 밀크 초콜릿과 분유 대신 우유와 녹인 설탕을 넣은 촉촉한 가나슈를 만들었다.
“와!”
얼떨결에 업무 중 마법쇼를 벌이게 되었는데, 클로이는 매우 즐거워했다.
나는 클로이에게 차갑게 굳힌 밀크 초콜릿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일말의 의심 없이 초콜릿을 입에 넣은 그녀는 더없이 크게 놀라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연신 ‘음! 음!’ 거리면서 감탄사를 터뜨렸는데, 느낌이 조금 야릇해서 괜히 민망해졌다.
밖에서 누가 들으면 오해할라.
“어때?”
“대단하네요. 왜 그렇게 카카오를 찾으셨는지 알 것 같아요. 이건 홍차나 커피의 시장성을 웃돌 거라 감히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는 보물이네요.”
“맞아, 그리고 특히 여성들이 좋아하는 맛이지.”
“세상에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 덤으로 쿠키에 눅진한 가나슈를 올려 직접 입에 넣어주었다.
“너무 맛있어요!”
울겠다, 울겠어.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전부 초콜릿과 가나슈 만든 다음,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아공간에 넣어두면 녹지 않고 형태가 그대로 유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거 많이 먹으면 엄청 살찌니까, 조심하고. 양치질 잘해.”
“네!”
그녀는 희희낙락 웃다가, 뒤늦게 밀려오는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곤 괜히 헛기침했다.
“복권은 궤도에 올랐고, 신문도 순조롭고, 홍차 증산에 커피도 모르는 귀족이 없어졌어.”
“수입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 초콜릿이 더해진다면 단숨에 왕국 제일 상단이 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은행은 예금을 매출이라 하기 뭐해서 그렇지, 현금 보유고는 이미 왕국 최고였다.
“2왕자와의 약속은 지킬 수 있겠어.”
***
복권의 위조 사건이 발생했다.
여러모로 이상한 녹색 복권(1등: 백금화 10개)이 당첨금 수령처에 들어온 것이다.
당연히 위조범은 즉석에서 잡혔고, 바로 치안부로 넘어갔다.
녀석은 체포 과정에서 자신은 정정당당하게 당첨이 된 것이라며 당첨금을 주지 않기 위해 수작을 부린다고 했지만, 복권을 위조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내 인쇄소에서 나오는 복권의 정교함은 손으로 따라 그린다고 될 수준이 아니다.
더불어 매회 차 복권의 무늬 패턴이 바뀌기 때문에 위조를 하려면 다음 회차로 넘어가기 전까지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참고로 현재는 복권의 회전율이 워낙 빨라서 5일 이내에 패턴이 바뀌고 있다.
설사 엄청난 노력을 들여 단시간에 겉모습을 똑같이 만든다 치더라도 내부에 쓰인 시리얼 번호 때문에 위조가 어렵다.
이유는 고액 당첨 복권은 시리얼 번호가 무식하게 길었기 때문이다.
당첨금이 백금화 100개짜리는 시리얼 번호가 30개, 백금화는 10개짜리는 시리얼 번호가 25개, 백금화 1개짜리는 시리얼 번호가 20개다.
이건 당첨금 직원도 절대 외워선 안 되고 필요할 때만 시리얼 카드를 꺼내서 대조해야 한다.
더불어 당첨금 직원에게 배부되는 1등용 시리얼 카드는 20장씩 첨부가 되는데, 그 중 19개가 가짜고 1개가 진짜다.
혹시라도 가짜 시리얼이 적힌 복권이 들어오면 복권을 가져온 사람은 바로 체포가 되며 시리얼 유출 경로를 파악하여 내무 동조자까지 처리가 된다.
시리얼 카드가 통째로 도난당하지 않는 이상 함부로 위조하기 힘든 노가다.
혹시라도 시리얼 카드가 도난당하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해당 회차 복권은 전량 폐기 처리되며 다음 회차 복권이 판매된다.
이 모든 것을 패턴이 바뀌는 5일 안에 위조범이 처리하기란 힘들다.
만약 이 모든 조치를 뚫고 완벽한 복권을 만든다면 어쩔 수 없다.
당첨금을 주는 수밖에.
대신 거액의 당첨자에 대해선 은밀하게 정보길드의 뒷조사가 이어진다는 것은 비밀이다.
그리고 어중간한 금액의 당첨자도 지나치게 많이 당첨이 된다면, 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귀족인 나를 상대로 사기를 치다간 죽임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들어온 위조 복권은 패턴도 1회차의 것이었고, 1등이라 써있긴 한데, 내부 시리얼 번호는 당첨금이 은화 1개짜리인 5자리였다.
솔직히 볼 것도 없는 퀄리티.
더구나 해당 회차의 당첨자는 이미 당첨금을 수령하고 내 영지에서 살고 있는 상태다.
나는 경고의 의미로 위조 복권을 만든 인물의 처형을 요구했고, 치안청은 내 요구에 따라 그 사기꾼을 귀족 기만죄로 참수했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이번에 개도둑이 물러갔더니, 소도둑이 나타났다.
“네?”
나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당황하며 눈앞의 남성을 바라보았다.
“타밀 자작령의 은행에 10여 명의 도둑이 들어 약 180개의 백금화가 털렸다고 합니다.”
은행의 관리자인 베르트 상회의 금융총괄의 보고에 나는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은행 경비팀은 어떻게 됐어요?”
“5명 전원 사망했습니다.”
“그 외 사망자는요?”
“없습니다.”
갑자기 은행 강도라니.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긴 했지만, 실제로 털리니 충격이었다.
더구나 은행들은 치안이 좋은 동네에 위치한 데다가 경비팀 또한 중~상급 용병 수준이었다.
“일단 사망자 가족에게 위로금 전달하고 상회 운영자금으로 털린 돈을 메우도록 하죠.”
“상회 운영자금으로요?”
“괜히 다른 지점에서 돈을 빼 오면 이미지만 안 좋아지니까요. 관리 소홀로 도둑맞은 돈은 제 이름으로 다시 채워놨으니 안심하라고 공표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심려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총괄님도 너무 마음에 담지 마세요. 조사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가 나가고 클로이가 교대하듯 집무실에 들어섰다.
“상황 알고 있지?”
“네, 그런데 상황이 여러모로 이상해서 추가 조사를 하느라 늦었습니다.”
“설마 벌써 범인을 단정한 거야?”
“아무래도 영주가 의심이 됩니다.”
“영주?”
백금화 180여개는 엄청난 거금이지만, 영주가 다른 영주의 것을 강탈할 정도는 아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타밀 자작 혹시 1왕자 진영이야?”
“애석하게도…….”
아아, 그런 거였군.
대충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된다.
하긴 은행은 보통 영주성 근처에 있는데, 이렇게 쉽게 털린 게 이해가 안 되긴 했다.
“내가 요즘 너무 나댄다는 거고만.”
“아무래도 지훈 님의 신뢰도에 흠을 내려는 의도 같습니다. 타밀 자작의 뒤에는 중북부 대영주인 윌리엄 백작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붉은 복권 1등 당첨자들에게 세율 90%를 매기려다가 세법 위반으로 왕실에서 경고를 먹었죠.”
“기억나네.”
그 또라이 녀석.
결국 당첨자와 일가족이 우리 영지로 도망쳐 왔다.
당연히 윌리엄 백작은 자신의 영지민을 내놓으라며 난리를 쳤지만, 나는 가뿐하게 무시했고 영지민 이탈 유도에 대한 배상금만 내고 상황이 끝이 났다.
참고로 왕국에 지정된 ‘영지민 이탈 유도’ 배상금은 평민 한 명당 금화 2개.
그는 가족이 4명이었으니 금화 8개만 지불하면 끝이었다.
지금 그 가족들은 내 영지에서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중이다.
이미 영주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복권의 판매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
그런데도 과도한 세금을 매기는 것은 자기들이 직접 이탈을 부추기는 행위밖에 되지 않았다.
오히려 영지민 이탈 유도는 내가 아니라 윌리엄 백작이 한 것이다.
여러모로 나와 맞지 않는 인간.
자신을 위해선 평민은 안중에도 없고 자존심만 드럽게 강한 정형적인 배불뚝이 귀족이었다.
참고로 우리 영지는 당첨된 복권에 대한 세금은 제로다.
이미 수수료로 많이 챙기고 있는데, 여기서 더 빨아 먹으면 양심 없지.
“증거는 잡았어?”
“죄송합니다. 이미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서 정황상 증거밖에 없습니다.”
정황상 증거도 분명 증거라 할 수 있지만, 미드랜드의 귀족에겐 통용되지 않는 이야기다.
“나름 믿는 구석이 있으니 일을 저지른 거네. 뭐, 좋아…….”
“생각이 있으십니까?”
“타밀 자작령의 경제력은?”
“지훈 님에 비하면 발끝에도 못 미칩니다.”
“보여줘야겠네. 무기를 맞대고 싸우는 것만이 전쟁은 아니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