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109화 (109/247)

# 109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09

49. 카카오 섬 원정대 (1)

“들어오세요.”

내 허락에 히로시가 당당하게 영주성 집무실에 들어섰다.

검은 코트 차림에 얼마 전 내가 선물한 용인족 뼈 장검 두 자루를 교차해 등에 멘 한결같은 모습.

히로시를 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고민을 짊어진 듯한 내 모습이 우습게 느껴진다.

내가 반갑게 맞이하자, 히로시는 경례 비슷한 이상한 인사를 건네고는 말했다.

“단장이 준 일루시네이터 카이와 화이트 리펄서 덕에 더욱 막강한 스타버스트 스트림을 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무기가 좋다는 뜻이겠지.

“마음에 드셔서 다행이군요.”

히로시를 포함한 1차 수행자 전원과 태영과 사치코, 최은우(마검사)에게도 용인족의 뼈 무기를 건네주었다.

용인족의 뼈는 미스릴과 동급이며, 그 재료로 드워프 장인들이 무기를 만들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쓰일 주력 무기라 할 수 있다.

수행자 중에 좋은 무기를 마다할 사람이 어딨겠는가.

당연히 그들은 감격하여 내게 극진하게 감사함을 표했다.

무려 27명에게 무기를 나눠주었는데도, 용인족의 뼈 무기가 많이 남았다.

지하 도시에서 습득한 양이 100㎏에 달했는데, 같은 부피대비 철보다 무게가 절반 이하로 가벼워서 그 양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이 장비들은 아껴 놓았다가 눈에 띄는 인물이 튀어나오면 전해줄 생각이다.

참고로 무기는 한 달에 한 번, 대대적으로 수거해서 드워프 마을에 방문해 수리 및 점검을 맡기기로 했다.

“앉으세요.”

나와 히로시가 마주 앉자, 클로이가 안주인처럼 차를 내왔다.

“진짜 뱀파이어 아닙니까?”

히로시는 클로이를 볼 때마다 꼭 이것을 묻는다.

아무래도 흑발에 붉은 눈동자가 그의 감성을 자극하는 모양이다.

“아닙니다. 민족 특성이에요.”

한두 번이 아닌지라 클로이는 이제 신경도 안 쓰고 반사적으로 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태연하게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언제나 환영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히로시는 내게 잘 물어봤다며, 천 주머니를 꺼냈다.

“지구에선 신경을 써본 적이 없는데, 뮤대륙에는 무섭게도 자금 압박이란 것이 존재하더군요.”

그야 그렇지, 금수저씨.

“사냥으로 벌린 돈으로만 생활하는 것이 어려워 찾아 왔습니다.”

퀘스트 진행과 생활비, 더불어 장비 유지비와 포션 값 등 수행자는 돈 쓸 곳 천지다.

그래서 어느 정도 짬밥이 되면 사냥 외에 다른 일을 벌이는 것 아니겠는가.

보아하니 돈 빌려 달라고 온 것 같진 않다.

나는 히로시가 테이블에 올린 헝겊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뭐 팔러 오신 겁니까?”

“아뇨, 동업을 제안하러 왔습니다.”

동업이라.

뜻밖이지만 상당히 호기심이 든다.

행동은 이상해도 히로시란 인물 자체는 높게 평가하고 있으니까.

내가 의심 없이 관심을 보이자 그는 신이 나서 말했다.

“따로 사업에 신경 쓰고 싶진 않고 대신 돈은 많이 벌고 싶은데, 왠지 단장이라면 극한으로 수익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헝겊을 열었다.

그 안에는 열매 하나가 들어 있었는데, 열매를 보는 순간 나와 클로이는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허.”

놀랍게도 그것은 카카오였다.

내가 클로이에게 부탁해서 미드랜드 전체를 수소문하여 찾고 또 찾다가 결국 포기 단계에 접어들었던 품목.

커피, 홍차와 달리 호불호가 적게 갈리고 생산성이 높은데다가 사치품이란 단어에 너무 잘 어울리는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금덩어리.

나는 얼른 부드러운 과육을 뜯고 그 안에서 씨를 꺼내 얇은 막을 제거했다.

원래는 씨를 건조, 숙성을 시켜야 깊은 향이 나지만, 확인을 위해 숙성을 생략하고 마법으로 건조 시켜 그대로 잘게 분쇄했다.

뜻하지 않게 마법 쇼를 보게 된 히로시는 작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하지만 나는 분쇄된 씨앗의 향을 음미하느라 신경 쓰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카카오였다.

“콜입니다. 아마 카카오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저일 겁니다.”

나는 카카오만 있으면 바로 초콜릿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현재 확장하고 있는 버터 생산 공장의 공정을 조금만 수정하면 되니까.

“오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못 찾았던 만큼 충분한 물량 확보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대체 이걸 어디서 찾은 겁니까? 물량은 충분한가요?”

내 물음에 그는 굳이 비밀로 할 생각이 없는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드 섬이란 곳이 있습니다. 아십니까?”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클로이는 미간을 좁혔다.

“이블랜드와 미드랜드의 경계선인 마가디슈강에 위치한 큰 섬입니다.”

나는 예전에 회색산맥 여행에서 보았던 바다와 같은 느낌의 강을 떠올렸다.

그 정도 규모라면 큰 섬 한두 개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단점이 이블랜드의 초입으로 치부된다는 것이죠. 몬스터가 득실대는 곳입니다.”

그런 장소라면 못 찾는 것도 당연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금지란 뜻이니.

나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히로시를 바라보았다.

“너무 위험하게 다니는 거 아니에요?”

왜 그런 위험한 곳을 다닌단 말인가.

“주체할 수 없는 모험심의 소유자인지라.”

히로시다운 대답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그곳에 카카오는 많던가요?”

그에 히로시는 씩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천에 깔려있었습니다. 그리고 강물의 흐름을 보면 조드 섬 남쪽인 이블랜드 비명의 숲에도 많은 카카오가 자생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량은 문제가 없다는 거군.

다만 그것을 수집하기 위해선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는 거고.

“어떤 몬스터가 있습니까?”

“제가 본건 주로 트롤과 오우거였고, 늪지에선 종종 자이언트 크로커다일이 튀어나오더군요.”

위험하게도 다니네.

물론 능력이 안 되면 알아서 잘 도망치겠지만, 연맹의 회장으로서 나중에 주의를 줘야겠다.

거기에 클로이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중심지엔 사이클롭스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드 섬의 별명이 거인의 섬이죠.”

사이클롭스와 자이언트 크로커다일은 상대를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마스터급 몬스터가 아니라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주인 없는 땅이니 잘됐네요. 정리하고 거점을 만들죠.”

그렇게 즉석에서 원정이 결정됐다.

카카오만 손에 넣으면 왕국 제일 상단이 되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업은 어떻게…….”

그러고 보니 카카오에 정신이 팔려 정작 히로시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히로시는 어느 정도의 조건을 원합니까?”

그는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하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순이익의 2할을 받고 싶습니다.”

이미 위치를 다 알게 되었으니 더 깎아 먹을 수도 있지만, 동료의 공을 가로채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도 나를 신뢰하기에 비밀을 두지 않고 서슴없이 물음에 답을 한 거니.

단순히 정보를 파는 것이었지만, 내 입장에선 카카오를 포기하고 있던지라 그 정보는 가치는 천금과도 같았다.

상황을 생각하면 순이익 2할이 절대 크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리고 계약금으로 백금화 300개를 얹어 드리겠습니다.”

“아이고오! 감사합니다!”

쿨한 인정에 히로시는 넙죽 고개를 숙이며 감사함을 표했다.

“오히려 내가 감사하죠.”

***

“마스터!”

히잡을 쓴 1회차 수행자 한냐가 무슬림임에도 적극적으로 달려와 안기려 했다.

-쿵!

“무슨 짓이야!”

하지만 김선아가 은근슬쩍 내민 방패에 제대로 부딪히면서 자빠지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은 한냐에게 가차 없는 김선아였다.

“회장님께서 불편해하신다.”

나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던 여성 수행자들은 김선아의 인간 쉴드에 가로막혀 하나같이 혀를 찼다.

나를 포함한 1회차 수행자 25명 중 여성은 5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녀들 모두가 나에게 큰 관심을 보이는데, 그 이유가 내 위치 때문이란 걸 알고 있다.

김선아는 조금 다르지만, 다른 여성들과는 접점이 얼마 없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냐도 천진난만해 보이지만 외모가 어리다고 실제로 어린 것은 아니었으니.

그렇다고 그녀들의 존재를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해프닝으로 생각할 뿐이지.

“오늘 이렇게 요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신이라기 뭐하지만, 여러분의 일정에 차질이 생긴 만큼 확실하게 보상하겠습니다.”

“에이, 우리 사이에 뭐 그런 걸 따집니까? 그리고 연맹 회장님이 모이라면 모이는 게 당연하죠.”

흑철과 용인족의 뼈가 몇 겹에 걸쳐 차곡차곡 쌓인 복합소재 사각 방패에 용인족의 뼈로 만들어진 숏소드를 착용한 독일인 발터가 호탕하게 웃음을 흘렸다.

연맹소속의 1회차 수행자 모두가 이번 조드 섬 원정에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속에 구 어스클랜 소속의 1회차 수행자 8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이라고 해서 차별을 두지 않고 용인족 뼈 무기를 제공했는데, 그동안 관계도 많이 회복한 데다가 막강한 보물까지 쥐여주니,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

“맞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렇게 마음 놓고 무기를 휘두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아지경이란 걸 한번 느껴보고 싶거든요.”

“무아지경보다 중요한 게 재능이라니까. 그게 너와 나의 차이인 거야. 캥거루.”

“뭐래, 소시지 새끼가.”

김선아가 중급 익스퍼트가 되자 자극을 받았는지, 발터를 포함해 5명의 1회차 수행자가 추가로 중급 익스퍼트가 되었으며, 사지타도 4서클에 접어들었다.

“창피하지도 않냐, 이번 원정에 참여하신 회장님의 기사분들은 최소가 익스퍼트 상급이신데. 중급 됐다고 뻐기긴.”

“뻐길 만하지, 너는 저기 있는 2회차 애들이랑 같은 등급인 거잖아.”

“이 새끼가.”

거대한 워액스를 짊어진 호주 출신 제이콥과 독일인 발터가 계속 싸우자 이번에도 김선아가 나서서 자신의 방패를 검집으로 두들겼다.

“친한 것도 좋지만, 2회차 수행자분들은 처음으로 대규모 사냥에 나선 겁니다. 너무 긴장감을 흐트러뜨리지 마세요.”

역시 클랜을 이끌었던 경험 때문인지, 그녀의 대처는 굉장히 리더스러웠다.

예전에 같은 클랜 소속이었던 만큼 김선아에겐 꼼짝 못 하는 두 사람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김선아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곤 거의 100명에 달하는 인원을 바라보았다.

그라프를 포함한 내 기사 8명(상급 익스퍼트 이상)에 1회차 수행자 24명.

태영을 포함해 익스퍼트 초급과 3서클을 찍은 2회차 수행자 63명이 자원하여 이번 원정에 참여했다.

나를 포함하면 총 96명.

모두가 기사급인 만큼 대단한 전력이었다.

우리는 지금 미드랜드 남부와 이블랜드를 가르는 마가디슈강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바다 또는 거대 호수로밖에 보이지 않는 넓이.

강 밑에는 몬스터가 많아서 어업조차 금지된 곳이다.

“그럼 가보도록 하죠.”

이미 나는 2회차 수행자들의 부러움을 표하는 장비로 무장을 한 상태였다.

내가 신호를 보내자 동료들이 한자리에 뭉치고, 증폭효과가 좋은 오리하르콘 장검 ‘파이스’를 장비한 채, 플로트 마법을 사용했다.

파이스의 증폭효과는 135%, 거기에 증폭스킬 50%가 더해지니, ‘기본+185%’ 거의 2.85배 마법의 효과가 높아진다.

덕분에 다른 마법사들의 도움 없이 나는 96명의 동료들을 무리 없이 플로트 마법으로 허공에 띄웠다.

물안개 때문에 조드 섬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로 이동하면 20분이면 도착할 것이라 생각한다.

히로시는 허공 도약을 이용해 넘어갔다 왔다고 하는데, 1회차 수행자 중엔 아직 허공 도약을 익히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귀찮아도 이런 수고를 하는 것이다.

-후후훅!

나는 수레를 이끌 듯 비행으로 앞에 서서 플로트로 떠 있는 사람들을 이끌었다.

-키아아악!

“회장님! 와이번입니다!”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와이번은 하늘을 나는 오우거급의 몬스터.

나는 이미 사고 가속을 사용해 둔 상태였기에, 몬스터의 등장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콰릉! 콰릉! 콰쾅!

우릴 향해 날아오던 와이번 5마리.

하지만 각종 증폭이 더해진 ‘콜 라이트닝’이 하늘에서 연달아 쏟아지면서 와이번 5마리는 우리에게 닿지도 못하고 강으로 추락했다.

아무래도 2회차 수행자 대부분은 내 전투를 처음 보기에 대부분 놀란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익스퍼트 초급 입장에서 와이번은 홀로 상대하기 버거운 막강한 몬스터였으니 말이다.

잠시 후, 와이번 5마리에 이어 드레이크 3마리가 나타나고, 히피 떼까지 우리를 노리며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특히 히피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은 꽤나 장관이었다.

“이제 시작인데 뭘 그렇게들 놀라.”

어스 클랜 출신의 니콜라이의 핀잔에 2회차들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우린 10분여의 비행 끝이 목적지인 조드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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