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04
47. 가끔은 말보다 주먹이 나을 때가 있다 (2)
“뭐? 그란트 경과 병사 넷이 사망?”
“그뿐만 아니라, 소영주님을 포함한 나머지 인원은 전원 포박되어 영주성 지하감옥에 구속된 상태라 합니다.”
하인츠 백작가.
케일론 왕국의 오래된 공신 가문으로 왕국 남부를 대표하는 변경백이다.
무려 120명에 달하는 기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기병 2천에 중장보병 1천, 일반 보병 1만5천을 보유하여 왕국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영주다.
비록 군사력에 비하면 재력은 부족하단 평을 듣지만, 그것도 백작위 이상의 대귀족 사이의 이야기지, 자작이나, 남작이 비벼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보통 백작이 보유할 수 있는 병력은 사병 1만에 기사 100명.
하지만 그는 변경백으로 국왕의 허가가 있을 경우 최대 2만까지 병력을 늘릴 수 있는 재량권이 있었다.
자작이 남작보다 두 배 많은 기사를 보유할 수 있지만, 사병의 한도가 똑같이 5천인 것인 것을 생각하면 자작위 이하의 귀족과 변경백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이제 영주가 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남작위의 신입 영주라면 그 격차가 하늘과 땅 수준이라 평할 수 있다.
“남작이 감히 변경백의 후계자를 건드려?”
정확하게는 자신들이 먼저 지훈을 도발한 것이었지만, 이들이 행한 도발은 어디까지나 변경백이 주시하고 있다는 경고였지, 결코 싸우자는 것이 아니었다.
남부에서 하인츠 백작령에 비견되는 힘을 가진 영지는 없다.
그래서 반협박성으로 적대 영지의 주변에서 군사 훈련을 하는 등의 무력시위를 자주 벌였는데, 이런 식으로 겁도 없이 맞대응을 해오는 영주는 처음이었다.
더구나 백작가의 기사를 사살하고 소영주를 감옥에 가두다니, 담이 크다고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미쳤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지금 베르트 남작령의 병력 수준은?”
그의 물음에 정보를 다루는 가신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현재 병사 3천에 기사 20명입니다. 그런데 그 병사 3천이 대부분 전투에 능한 중급 용병 수준입니다. 장비도 굉장히 견실합니다.”
남작의 병력 보유 한도가 5천 명이지만, 실제로 5천 명을 전부 채우는 영주는 거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병의 존재는 돈 먹는 하마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영주가 되고 겨우 한 달 만에 뮤대륙 여기저기에서 정예 병력을 고용하더니 무려 3천을 채운 것을 보면 절로 인상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졸부자식.”
아마 이대로 한 달 정도만 더 지나면 병력 5천을 가득 채울 것으로 보인다.
병력 5천이면 중부의 백작들에게도 비빌 수 있는 전력.
백작 역시 모두가 병력 한도인 1만을 채우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머릿수만 맞춘 게 아니라 병력의 질도 높다고 하니, 변경백이라 해도 가볍게 볼 수 없었다.
이런 상대는 더 크기 전에 찍어 눌러야 하는데, 신입 영주에게 1년 동안 영지전을 신청하지 못하는 규칙이 이렇게 귀찮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현재 집무실에서 진행 중인 회의엔 총 네 명의 가신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백작에게 잘 보이기 위함인지 수시로 지훈을 깎아내렸다.
“그가 제한까지 병력을 모두 채운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세실 남작과 타르가 남작도 힘을 보탤 테니까요.”
세실 남작과 타르가 남작은 하인츠 백작과 함께 포위하듯 지훈의 영지를 감싸고 있는 인근 지역의 영주들이다.
그 둘 역시 1왕자 진영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베르트 남작은 영주이기 전에 수행자들을 이끄는 단체의 주인입니다. 더불어 상회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기에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죠. 최대한 빨리 제거를 해야 합니다.”
하인츠 백작은 가신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상황은 불쾌하기 그지없지만, 명분은 그쪽에 있었다.
“녀석을 암살하자는 거군.”
“수행자들이 특수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잘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그 또한 최상급 익스퍼트 수준의 강자고요. 그래도 어떤 경고보다 잘 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베르트 남작은 아르디오를 데리고 있지 않나? 만약 녀석이 위기를 넘기고 내 아들을 해코지하면 어쩌려고.”
“베르트 남작이 공격을 당했다는 뜻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주변 인물들도 공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소영주님을 함부로 해코지하지 못할 겁니다.”
암살에 실패하더라도 그로 인해 위기감을 느낀다면 성공한 것이란 뜻이었다.
결국, 백작은 다른 수를 생각지 못하고 가신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각하!”
잠시 후 백작의 의자 뒤에서 갑자기 솟아나듯 나타난 복면인이 회의 중임에도 끼어들며 보고를 올렸다.
“영지 내에 대량의 암살자가 들어왔습니다.”
암살자란 이야기에 백작은 미간을 찌푸렸고, 무엇보다 대량이란 단어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몇 명이기에 그러나?”
“제가 확인 한 것만 200명이 넘습니다.”
“뭐?”
집무실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겁했다.
“이거야 원, 그쪽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모양이군?”
하인츠 백작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굳었다.
부하들은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백작의 뒤에 그림자처럼 서 있던 복면인이 말했다.
“그런데 행동이 조금 묘합니다.”
“뭐?”
“마치 일부러 들키려는 듯이 너무 대놓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암살자들이 이곳을 들리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신들은 벙찐 표정으로 그게 무슨 말이냐며 반문했고, 얼굴이 붉어진 하인츠 백작이 의자의 팔걸이를 내려쳤다.
“허튼 생각 말라는 협박이로군!”
‘너희가 하면 나도 똑같은 짓을 할 거다.’ 즉, 사전에 암투를 차단하려는 조치인 것이다.
생각을 뻔히 읽고 있는 듯한 대응.
이는 백작가와 암투를 벌여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200명이 넘는 암살자를 그런 식으로 써먹는다니, 비상식인 것도 정도가 있지.”
“역시 졸부 근성이 뼛속 깊숙이 배어 있군요.”
몇몇 가신들은 가소롭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신중한 인물들은 지훈의 금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암투로 다퉈볼 만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암살의 성패는 얼마만큼 많은 돈을 투자했는가에 달려 있으니…….
백작은 인상을 찡그리며, 미간을 주물렀다.
“베르트 남작을 너무 우습게 봤군, 주도면밀한 놈이야.”
명분도 지훈에게 있고, 영지전도 불가능하고, 암투도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피해를 본 것은 백작이지만 그것을 되돌려줄 방법이 없었다.
기껏해야 밀어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착오에 대한 과잉대응으로 왕실에 상소하는 것이다.
마치 멋모르고 개미집을 건드린 느낌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백작은 짧게 혀를 차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일단 소영주와 병력들의 반환을 요구한다.”
“그런데도 베르트 남작이 목에 힘을 주고 버틴다면…….”
“그땐 별수 없지. 힘으로 안 된다면 권력을 이용하는 수밖에.”
***
[귀하의 영지에 구속되어 있는 본 가문 소영주에 대한 신속한 반환을 요청하는 바이며…….]
나는 하인츠 백작의 편지 내용을 살피며 실소를 흘리고는 구겨 버렸다.
“개소릴 길게도 써놨네.”
이런 내 반응에 클로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뭐, 돌려주고 끝내는 게 깔끔하겠지. 어차피 녀석들과는 적대 관계고 이번 일로 함부로 덤비지 못할 거야. 이쪽은 위협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란 걸 알았을 테니.”
어차피 소영주 녀석을 죽일 생각은 없다.
아무리 명분이 내게 있고, 국왕의 보호를 받는 신입 영주라 해도 대귀족의 후계자를 죽이고 무사하길 바라기란 힘들다.
차라리 소영주를 죽이는 것보다 계속 쥔 채 협박용으로 쓰는 게 나을 것이다.
하지만 소영주를 내놓지 않고 계속 쥐고 있어 봤자 그다지 얻을 것도 없다.
오히려 백작에게 극단적인 판단을 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놓아줄 생각이다.
“하지만 잘못을 저지른 이를 그냥 돌려주면 백작의 요청에 굴한 것처럼 보이니 벌금을 내게끔 해야지.”
벌금이란 게 흔치 않은 세계다 보니, 클로이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게 곧 몸값이라 이해를 하곤 얼마를 요구할 거냐고 물었다.
“백금화 1천 개 정도면 되지 않을까? 그래도 명색이 변경백의 후계자인데.”
백금화 1천 개면 내게도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
사실 보유 재산은 월등히 많지만, 결코 기분 좋게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태연한 내 대답에 클로이는 헛웃음을 흘렸는데, 이내 상관없을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죗값을 치르지 않고 풀어주면 모양새가 안 좋긴 하죠.”
그래서 나는 청구서 모양의 편지를 만들어 백작가에 보냈고, 이를 받은 하인츠 백작은 몹시 분개했다고 한다.
변경백 정도면 백금화 1천 개는 어렵지 않게 지불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는 소영주와 부하들을 찾아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귀족 특유의 자존심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며칠 후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황당함을 표했다.
[초대장]
그건 바로 왕실에서 날아온 초대장이다.
2왕녀가 주최하는 사교 파티가 있는데, 그곳에 참석을 바란다는 내용.
왕궁에서 초대장이 날아온 것은 처음인지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더구나 이 초대장의 발신인은 2왕녀 본인이 아닌 1왕자였다.
군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2왕자와 함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합 중인 1왕자 말이다.
2왕자에게 줄을 댄 내게 만나자는 건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안 가기도 찜찜하고 갔다간 2왕자가 이상한 오해라도 할 것 같고…….”
내가 혀를 차며 초대장을 만지작거리자 클로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하인츠 백작이 1왕자에게 부탁한 것 같군요. 얼마 전 백작이 왕궁을 찾아가고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을 보면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부모 등판이냐?
이럴 거면 차라리 얌전히 돈 주고 밥만 축내는 소영주를 데려가던가.
창피하지도 않나.
“아마도 1왕자는 이번 일로 지훈 님께 관심이 생긴 모양입니다. 이번 기회에 피아 구분을 확실히 하려는 것 같군요.”
기회가 된다면 영입을 시도한다는 건가?
짧게 혀를 찬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
케일론 왕국의 왕성은 국왕과 왕비가 기거하는 백금성을 중심으로 30개 대저택이 넓게 포진되어 있다.
덕분에 왕성은 하나의 도시를 연상시켰으며, 왕족들은 궁 내부에서도 마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해당 저택들은 후궁이나 왕자, 왕녀들에게 내려지는 것인데, 소유주의 심볼을 따서 이름이 정해진다.
2왕자의 심볼이 ‘달’이면 그가 기거하는 저택은 달의 궁이라 불리게 되는 것이다.
“초대장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뮤대륙 185일 차.
케일론 왕성 프리지아(붓꽃과 화초) 궁.
참고로 심볼이 꽃인 왕족은 모두 여성이라 생각하면 된다.
즉, 내가 참석한 저택의 주인은 여성 왕족이란 뜻이다.
아무래도 왕궁을 들를 일이 많지 않다 보니, 내게 초대장을 요구하는 기사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든다.
하지만 초대장의 발신인이 1왕자인 것을 본 그는 절도 있게 경례를 올렸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베르트 남작님.”
“감사합니다.”
그렇다.
나는 1왕자의 제안에 응해 사교 파티에 참석한 것이다.
아무리 내가 잘났다고 해도 1왕자를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1왕자의 휘하엔 많은 익스퍼트 최상급의 기사가 있었으며, 왕국군 총사령관인 외할아버지는 무려 소드마스터다.
그러니 힘없는 인간이 오라는 대로 가는 수밖에.
이미 프리지아 궁의 안뜰엔 많은 귀족들이 모여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나눴는데, 누구도 낯선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인원은 약 100명 정도 될까?
대부분이 1왕자 진영의 사람들로 보였는데, 누가 파티의 주인공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원래부터 공주에게는 관심이 없었으니, 나를 초대한 인물을 찾아 정원을 둘러보았다.
“음?”
그러다가 클로이가 가져온 그림과 똑같이 생긴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랬더니 인파에 둘러싸여 껄껄 웃음을 흘리던 남성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자네가 베르트 남작인가 보군.”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도미니크 왕자 전하.”
자연히 그와 함께 있던 이들의 시선이 내게 쏟아지고 베르트 남작이란 이름에 주변의 많은 영애들의 시선이 모였다.
“자네의 물품을 쓰지 않고 귀족이라 칭할 수 없다는 말이 타국에서까지 돌더군. 나야말로 영광일세.”
귀족들은 우리 수행자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들의 파이를 뺏어 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바라보는 귀족들의 시선도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장 많이 느껴지는 감정은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딱 한 명.
1왕자 도미니크 곁에서 나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는 중년남성이 있었다.
아마도 그가 하인츠 백작인 모양이다.
“내가 자넬 보자고 한 이유는 대충 예상하고 있겠지?
분위기를 보아하니, 예상대로 핍박이 아닌 영입하기 위해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재산, 무력, 세력.
나는 어느 귀족보다 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귀족이 이를 느끼고 있으며, 수행자를 애써 무시하던 이들도 하인츠 백작 사태로 느낀 것이 많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감히 의중을 평할 수가 없군요.”
“의외로 능구렁이 같은 인물이고만. 뭐, 좋아. 길게 이야기할 필요 없지.”
그는 멋들어지게 손을 뻗어오며 말했다.
“베르트 남작 내 사람이 되겠나. 그럼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네.”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솔직한 물음.
그에 주변 분위기가 살벌해졌으나, 도미니크 왕자는 유쾌하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겠지. 자네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수행자 전체가 케일론 왕국에서 활동하기 힘들어질 것이네. 활동 제한에 사업 제한, 작위 제한 등, 많은 것들이 말이야.”
내 선택에 케일론 왕국 수행자들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건가?
“그리고 수행자의 존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귀족들은 케일론에만 있는 것이 아니네. 아마 조금만 부추기면 다른 나라들도 속속 수행자를 제한하려 할 거야.”
민주주의 국가에선 생각할 수도 없는 망발.
그러나 이곳은 악명 높은 봉건주의 국가이다.
실제로 1왕자만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가에 수행자의 권력을 제한하자는 주장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웃음으로 포장된 협박에도 내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도미니크 왕자의 얼굴이 점점 무표정으로 변해갔다.
“그걸 누구 마음대로 형님이 정하는 겁니까?”
그때였다.
낮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파티장에 울려 퍼지고.
누가 봐도 전사형인 1왕자 도미니크와 달리.
누가 봐도 학자형인 2왕자 미하엘이 등장했다.
그에 하인츠 백작의 시선 내게 향하고 나는 문제 있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너만 아빠 부르란 법 없잖아?’
곤란한 대답을 대신해줄 구세주의 등장이었다.
당연히 이는 우연이 아닌 내가 꾸민 짓이다.
“그는 내 사람입니다. 괜한 짓은 안 하셨으면 좋겠군요.”
도미니크 왕자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포커페이스가 무너졌다.
***
파티장의 분위기를 초토화시키고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나를 끌고 나온 미하엘 왕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짓은 레이디를 상대로 하고 싶군.”
그의 솔직한 감상에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뭘, 당연한 거지. 오히려 알려줘서 고맙네. 나는 자네를 정말 높게 평가하고 있거든. 그런 인물은 빼앗겨서도, 흔들려서도 안 되지.”
“감사합니다.”
두 왕자는 아무리 배다른 형제라 해도 같은 가족인데, 서로를 향한 눈빛은 무슨 원수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래도 미하엘 왕자 덕분에 나는 귀찮은 일 없이 파티장을 나설 수 있었다.
“자네 말이야.”
미하엘의 궁에서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나는 갑자기 진지해진 그의 눈빛에 의문을 표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출세할 생각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