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101
46. 서울과 워싱턴 촌놈들 (1)
“이란이라……. 연맹원들 사이에서 지난번 이란의 사태가 패러사이트의 짓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더라.”
누구라도 이 상황이 되면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더구나 공교롭게 이란을 포함한 이슬람 국가들의 행동은 한결같이 비협조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이란이 크게 당하고 난 후 입을 닦고 잠수를 탔기 때문.
더 이상의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자중하는 것은 지나치게 인간적이다.
만약 패러사이트의 짓이라면 인간의 손실을 걱정할까?
오히려 유X브에 영상을 올린 게 지구의 지식을 손에 넣은 퀸의 짓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정답이라 확신할 수 없는 근거 없는 추측.
“이거야 원,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이라는 게 꽤 불편하네.”
동감이다.
나와 인식이는 동시에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시민들은 모르겠지만, 교실 한쪽 천으로 가려 놓은 장소에 무장한 특전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이는 혹시라도 패러사이트가 부활하는 즉시 사살하기 위함이었는데, 알에서 부화한 직후 ‘준성체’라 칭해지는 그 상태가 가장 약한 시기기에 타이밍만 잘 맞추면 화기로도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방심해서 놓치면 지난번 경험한 것처럼 순식간에 성체가 되고 만다.
그래서 시민들에겐 미안하지만, 커튼 뒤에서 언제든지 군인들이 총을 쏠 수 있는 상태로 대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군인들의 총은 패러사이트를 노리는 것이지 시민들을 노리는 게 아니다.
-검사가 이게 끝이에요?
-네, FYP는 신경계 바이러스라서 이 시험 용액이 닿으면 아프게 느껴지거든요. 아무 느낌이 없으면 감염되지 않은 겁니다. 그리고 이 약 챙겨가세요. 하루에 열 방울씩 생수에 섞어서 드시면 예방이 됩니다. 감염 후 3일 이상이 지나면 효과가 없지만 감염 초기에는 그 약으로도 치료가 되니까, 분실 시에는 반드시 보건소에서 받아가세요.
-감사합니다!
검사 과정은 아주 간단하다.
스포이드로 손 등에 성수 두세 방울을 떨어뜨리고 반응을 살피고 아무 이상이 없으면, 성수가 담긴 작은 병을 주기적으로 복용하라며 건네준다.
패러사이트 감염자를 찾는 것도 중요 하지만 확산을 막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국민들이 겁을 먹고 알아서 성수를 잘 챙겨 먹으면 패러사이트의 확산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FYP가 무슨 뜻이야? 누군 화입이라 하고 누군 화이프라고도 하던데.”
아무 명칭이나 가져다 붙일 거면 조금 더 그럴싸한 하게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FYP라 명칭을 정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내 감정이 담긴 뜻이었으니.
“퍽 유 패러사이트.”
공식명칭은 Fast Yare Parasite(빠르고 민첩한 기생충).
그러나 진짜 뜻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
그렇게 전 세계에서 같은 방식의 검사가 진행됐는데, 성수를 가져간 화학 전공의 몇몇 교수들이 예방약이 그냥 맹물이라며 SNS에 난리를 피웠다.
성수의 성분은 당연히 맹물이다.
신성 마법은 현미경을 통해 들여 본다고 보이는 것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언론과 정계가 똘똘 뭉치니 진실이 거짓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중간중간 방해가 들어오긴 했지만, 국가에서 눈에 불을 켜고 검사를 실시하니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한국의 경우 한나절 만에 국민의 3할이 검사를 마칠 수 있었다.
다른 국가들도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수행자들이 뮤대륙에서 돌아오고 나면 현실이 밤인 국가들은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건 하루 이틀 만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닌지라 어느 정도 끈기가 필요했다.
-러시아에 양성반응을 보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해당 인물의 격리 후, 성수를 체내에 투입하니 부화하는 일이 없이 패러사이트가 사멸했습니다.
-태국에서 패러사이트가 검사 도중 부화했습니다. 다행히 희생자 없이 성체가 되기 전에 총격에 처리했지만, 갑작스런 총성에 현장에 있던 태국 국민들이 검사에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해외 여기저기서도 패러사이트 감염자가 나왔다.
어쩌면 패러사이트는 한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안개 여기저기서 흘러나온 걸지도 모르겠다.
확률은 높지 않겠지만, 충분히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판단.
패러사이트가 해외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었기에 지구 상에 무해한 구역은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K대 사태 때 안개를 경험한 학생들 몇 명이 이형구의 동생과 함께 사라졌는데, 이들의 행적이 파악되지 않아 걱정이다.
대체 이 나라에만 패러사이트가 얼마나 있는 건지.
나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귀찮은 생각을 떨쳐냈다.
“스트레스가 상당한가 보군.”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말을 걸어오는 하성훈 대통령.
이젠 하루가 멀다 하고 얼굴을 마주하다 보니, 처음의 불편했던 감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저만 그런 게 아니니까요.”
대통령도 패러사이트 사태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은 그 외에도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와 같았다.
묘한 동질감에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벙커의 규모가 엄청나고만, 이게 퀘스트의 보상인가?”
“네, 총 4개의 보상이 더해져 만들어진 거죠.”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용산 자택의 지하벙커.
지난번 패러사이트 처치 퀘스트에서 얻은 선택형 현물보상으로 다시 한번 지하본부를 설치한 덕분에 우리집 벙커의 규모는 거의 마을 수준이 되었다.
기존 벙커의 규모가 150여 평이었는데, 공간 확장 아티팩트를 이용해 3배로 키우고, 확장된 벙커보다 2배 큰 지하본부 2개를 연결했더니, 규모가 무려 2200평에 달했다.
“혹시 이쪽이 국방부 방향인가?”
“네, 저쪽이 육군회관 근처입니다.”
지하 벙커는 우리 집에서 연맹 본부 빌딩을 거쳐 용산 공권 방향으로 이어진다.
직선상으로 150미터밖에 되지 않는 거리.
그에 벙커를 주의 깊게 살피던 대통령이 말했다.
“혹시 국방부 지하 벙커와 연결할 생각은 없는가? 아, 이곳에 은근슬쩍 엉덩이를 들이밀며 주인행세 할 생각은 없네, 서로 비상통로를 연결해 놓은 게 어떨까 싶어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벙커에 이상이 생기면 그쪽으로 이사 갈 수도 있으니.
“안 그래도 국방부 주변 부지의 벙커를 크게 확장하면서 지하철과도 연결하고 있거든. 그리고 벙커가 아니더라도 비상시에 용산공원에 피난처도 꾸릴 생각이네.”
용산공원의 면적이 3.4제곱킬로미터인데, 이걸 평수로 고치면 100만 평에 해당한다.
여의도보다도 큰 면적이니, 제대로 피난처를 꾸리면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지하철도 비상시에 훌륭한 벙커 역할을 할 수 있으니 좋은 구상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여의도나 밤섬, 노들섬 등에 피난소를 꾸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피난소 간 이동도 어렵지 않으니.
어쩌면 대통령도 그런 식으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벙커를 연결하자는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러다가 서울 지하에 도시가 생기는 것 아닌가 모르겠군.”
“그만큼 더 안전하다면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하죠.”
우리는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지하 벙커에서도 가장 후미진 장소로 이동을 했다.
이어서 눈에 들어온 공간은 회색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은 신비로움을 갖고 있었다.
“이것이…….”
금색의 둥그런 금속판 위로 푸른 빛의 입체 마법진이 일렁이고, 그런 마법진 주변을 붉은색 빛 구슬 세 개가 공전한다.
“텔레포트 게이트입니다.”
신비한 풍경에 대통령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거 기대되는군.”
대통령은 연신 신기함을 표하며 게이트 위에 올라섰고, 나와 김선아, 이태영, 대통령 경호실장과 국정원 직원들이 함께 올라섰다.
그리고 중급 마석 하나를 꺼내든 나는 괜히 긴장한 정부 측 인원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텔레포트, 워싱턴 DC.”
나와 김선아 태영에겐 너무도 익숙한 특유의 텔레포트의 감각과 함께 순식간에 주변의 환경이 바뀌었다.
“어서 오십시오. 미국의 최우방 대한민국 손님들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화상 회의를 통해 몇 번이고 보았던 미국의 버나드 대통령이 환한 미소를 흘리며 하성훈 대통령과 내 손을 동시에 잡았다.
“실제로 뵈니. 굉장히 신기한 느낌이군요. 설마 살면서 미국 대통령님의 환영을 받는 날이 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미스터 조는 겸손하시군요.”
현재 우리가 위치한 곳은 미국 워싱턴 DC 북서부에 위치한 레이븐록 벙커.
일명 지하 펜타곤이라 불리는 장소다.
우리가 이렇게 서울에서 워싱턴으로 텔레포트를 할 수 있게 된 이유는 패러사이트를 잡고 받은 보상 중 선택형 현물보상에서 지하 본부를, 선택형 상급 보상에선 베이스 텔레포트 게이트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미국에 설치하여 서울과 연결하는 것을 버나드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당연히 그는 거절 없이 크게 환영하며 내게 상당한 보상을 약속했다.
그렇게 텔레포트 게이트는 NSA를 통해 옮겨졌고, 미국측 수행자를 통해 설치되었다.
이제 마석만 있다면 대한민국과 미국의 거리는 제로인 셈이다.
“이건 선물입니다.”
나는 버나드 대통령에게 텔레포트 게이트 이용이 가능한 중급 마석 10개가 담긴 케이스를 건네주었다.
“일전에 도쿄 던전에서 얻은 녀석입니다. 당장은 마석이 귀해서 많이 드릴 수가 없군요. 하지만 앞으로는 더 많이 얻게 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왕이면 마석이 안 생겨도 되니 평화롭기만 하면 좋겠습니다.”
당연하지만 공짜는 없다.
이것도 미국에게 받을 보상에 포함된 것이다.
“응?”
두 대통령과 달리 텔레포트를 게이트를 처음 경험하고 처음 본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벙찐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하긴 텔레포트는 거의 공상과학 수준의 마법이니까.
어깨를 으쓱인 나는 두 대통령과 함께 자리를 옮겼고, 수행자들은 묵묵히 따라왔다.
***
-쿵! 쿵!
나는 천장에 설치된 조명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버나드 대통령에게 물었다.
“저 안에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미국을 찾아온 이유는 텔레포트 게이트의 시연도 있지만, 그 외 다른 것을 살피기 위함이다.
“미안하군요. 미스터 조가 아니면 저 녀석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요.”
“미안할 게 뭐 있습니까? 오히려 그것을 이곳까지 운반한 여러분이 대단한 거죠.”
나는 두께 1미터의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진 육중한 금고문 앞에 서며 장비들을 소환했다.
워낙 장비들이 화려하다 보니 등장 이팩트와 착용한 모습은 게임속 고레벨의 장비를 현실로 가져온 듯하다.
덕분에 판타지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이 눈에 띄게 흥미를 표했으나, 나는 손을 내저으며 대통령과 관계자들을 뒤로 물렸다.
“문 열어 주세요.”
그들이 안전구역으로 물러나자 육중한 금고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휘이익!
-퉁!
금고의 문은 미닫이 형식으로 열렸는데, 안쪽을 살피기도 전에 검은색의 날카로운 가시들이 총알처럼 날아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사고 가속을 사용한 나는 그것들을 창으로 가볍게 쳐냈고, 안에 있던 거체가 기어 나오려 하자 창을 옆면으로 휘둘러 녀석을 날려 버렸다.
10여 미터에 달하는 육중한 덩치가 날아가 처박히자 금고 전체가 울렸다.
-스물스물.
털처럼 보이는 수백 개의 검은 촉수가 일렁이고, 마치 갯지렁이를 연상시키는 생김새는 혐오감을 일으킨다.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패러사이트.
미국에서 성수로도 치료가 되지 않는 감염자를 데려다가 이곳에 격리한 덕에 생포할 수 있었다.
-키키키킥.
단 한 번의 충돌로 힘의 차이를 느꼈는지 녀석은 쉬이 덤비지 않고 이상한 울음소리를 냈다.
“내려와, 네가 깔고 앉은 게 얼마짜린 줄 알아?”
참고로 이 금고는 미국에서도 가장 많은 금이 저장된 장소다.
아무리 패러사이트가 강력하다 한들 두께가 1m에 달하는 스테인리스강을 뚫진 못한다.
-키에에엑!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도 없고 도망칠 틈도 없다.
결국, 패러사이트가 요란하게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당연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녀석은 훨씬 적은 질량을 가진 나에게 얻어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그때.
-파악!
이대로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는 건가 싶더니 안개가 발생하며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대충 알겠네.”
일반적인 안개는 랜덤으로 발생하지만, 수행자 근처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고.
수행자와 몬스터가 전투 상태에 들어가게 될 경우에는 거의 확실하게 안개가 생기는 것 같다.
금고의 절반 정도가 안개의 중심에 포함되어 있어서 전투에 불편함이 없었다.
[퀘스트 갱신]
등급: 중
내용: 악마종 패러사이트를 퇴치하라
보상: 선택형 보상카드(기여도에 따른 차등지급)
포인트(기여도에 따른 차등지급)
이어서 떠오른 퀘스트.
그런데 내용이 지난번과 달랐다.
한번 클리어했던 퀘스트라 그런지, 등급도 낮아지고…….
이번에도 손쉽게 선택형 상급 보상을 얻게 되는 건가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그럼 실험을 시작할까.”
이렇게 어렵게 패러사이트를 확보했는데, 평범하게 제거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우선은 지구의 성수가 가이아 교단의 성수를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다.
-키에엑!
녀석이 위협적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검은 촉수를 뻗어왔지만, 나는 가볍게 피하며 가이아 교단의 성수를 녀석에게 뿌렸다.
-치이이익.
그러자 성수가 닿은 부분에서 연기가 올라오며 가죽이 벗겨졌다.
하지만 성체가 된 녀석에겐 큰 데미지가 아니었다.
이어서 나는 아공간에서 가이아 교단의 성수가 아닌, 바티칸에서 공수한 성수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