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99
45. 성녀 (1)
패러사이트의 몸 여기저기 털처럼 솟은 검은 촉수가 나에게 다가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다.
오라면 가야지.
만약 내게 엘릭서가 없다면 김선아는 꼼짝없이 죽고 말았을 것이다.
동료가 죽기 직전의 고통을 받았으니, 나는 녀석에게 더 큰 고통을 선물해줄 예정이다.
“편히 죽을 생각 마라.”
사고 가속의 속도를 높이며 전투 자세를 취한 나는 스스로에게 1인 버프를 쏟아부었다.
‘오러, 증폭, 여명의 봉화, 스트롱, 패스트, 관통.’
스킬과 장비로 인한 공격력 중폭 효과는 5.57배.
또한 힘과 민첩이 50%씩 추가 증가하며, 나머지 능력치도 20%가 증가한다.
그리고 익스퍼트 중급의 오러와 레벨 10의 관통 스킬이 더해지면…….
마스터도 따라 할 수 없는 공격력이 창끝으로 펼쳐진다.
‘이렇게.’
-파악!
그림자 이동으로 순식간에 패러사이트와 거리를 좁힌 나는 각종 스킬과 마법이 더해서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는 창을 내질렀다.
-키에엑!
그에 몸통 두께가 소형차 수준까지 성장했던 패러사이트의 옆구리가 펀치기로 구멍을 뚫은 것처럼 깔끔하게 도려졌다.
녀석의 등 뒤의 안개까지 구멍이 뚫리며 푸른 하늘이 드러난 것을 보면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허…….”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국정원 직원들과 김선아가 낮은 감탄사를 터뜨렸다.
솔직히 놀라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검은색 촉수를 날리는 적의 공격을 창으로 가볍게 툭툭 튕겨냈다.
동시에 캐스팅된 콜 라이트닝이 쏟아졌다.
-콰릉! 콰릉!
각종 버프로 강화된 콜 라이트닝이 20% 확률로 발동하는 더블샷에 의해 연달아 떨어졌다.
덕분에 패러사이트의 몸통이 터져나가며, 여기저기 파편이 튀었다.
그런데 왠지 녀석의 파편도 감염체일 것 같은 느낌이다.
앞으로 폭발성 마법은 사용을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매섭게 창을 놀렸다.
-슥! 서걱! 쿵!
이어진 것은 철저한 농락.
시각적으로 엄청난 포스를 가진 패러사이트가 내게 단 한 번의 공격다운 공격을 못 하고 계속해서 얻어터졌다.
그렇게 1분여가 지났을 때, 녀석은 온몸이 너덜너덜해졌으며, 내게 겁을 먹은 듯 볼품없는 울음소리와 함께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회장님! 동창분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내게 그쯤 하면 됐다는 듯한 김선아의 외침.
한창 분풀이를 하고 있던 나는 혀를 차며, 녀석을 꼬리서부터 지워갔다.
강력한 찌르기에 동그랗게 도려지듯 증발하는 몸통.
창끝이 보이지 않는 연속 찌르기에 녀석의 머리가 제거되기까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안개도 전력을 다한 내 공격에 여기저기 구멍이 뚫렸지만, 금세 빈공간이 메워졌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압도적인 활약.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퀘스트 MVP 공적 100% 달성.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선택형 상급 보상카드 1장을 획득했습니다.]
[추가 보상으로 선택형 현물 보상카드 1장을 획득했습니다.]
[포인트 10,000을 획득했습니다.]
혹시 있을지 모를 감염체를 제거하기 위해 안개가 사라지기 전에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웠다.
보통은 안개가 사라지면, 사살된 몬스터의 잔해도 함께 사라지지만, 패러사이트가 안개 속에서 생긴 건지 아니면 밖에서 들어온 건지 알 수 없기에 취한 조치였다.
나는 장비를 모두 역소환하곤 김선아에게 다가갔다.
“일단 이형구는 지하로 옮기겠습니다.”
안개가 서서히 옅어지고 나는 이형구를 플로트 마법으로 띄우고는 도망치듯 상가 지하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이형구의 상처 부위를 살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파리해진 얼굴에 손을 덜덜 떨면서도 아직은 정신이 온전한 모양이다.
그의 물음에 나는 태평하게 반문했다.
“나라가 열심히 숨기고 있는 진실을 본 감상이 어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패러사이트의 유충으로 보이는 것은 없는지, 살피고는 다시금 힐을 사용했다.
“존나 멋지네. 영상 찍어서 뉴스에 내보내면 단번에 네임드 기자 되는 건데.”
솔직한 감상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다행히 육안으로 보기엔 상처가 심하지 않았다.
패러사이트가 알에 들어있어서 그나마 내장에 손상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피를 많이 흘린 만큼 장소를 옮겨서 전문가들에게 치료를 받는 게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물어야 할 게 있었다.
“너, 언제 저거에 감염됐는지, 예상되는 거 없어?”
일단 나는 이형구의 동생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일전에 안개를 경험했던 인물이다.
혹시 그때 감염돼서 형인 이형구에게 전염시킨 걸지도 모른다.
“모르겠어.”
“그래…….”
차라리 모든 게 이번 안개 속에서 발생한 거고 나로 인해 해결된 상황이라면 좋겠지만,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
나는 잠깐 뒤로 빠져서 국정원 직원과 이야기를 나눴다.
담당 직원은 지난번에 이어 다시금 목숨을 구해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지만, 애초에 나와 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별로 그가 감사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일단 이형구를 어딘가로 옮겨서 정밀검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이형구 동생의 소재 좀 파악해주세요.”
“네.”
이어서 담당 국정원 직원이 재빨리 어딘가에 전화를 했고, 잠시 후 달갑지 않은 소식이 전달되었다.
“이형구 씨를 옮길 차량은 곧 도착한답니다. 하지만……. 이형구 씨 동생의 소재는 확인이 안 되는군요. 감시 중이던 담당자들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젠장.”
이건 누가 봐도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
[패러사이트]
-기생형 악마종으로 성체가 되면 강력한 전투 능력을 지닌다.
성체는 섀도우웜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숙주를 통해 알에서 부화한 직후 성체가 되기에, 한때 악마종의 주력전투자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패러사이트는 모체와 정신이 연결되며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감염된 숙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뱃속 패러사이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데, 아무리 기행을 벌여도 본인은 이상하단 생각을 못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주변 사람의 행동이 이상해진다면 패러사이트 감염을 의심해 보는 것도 좋다.
한 번 감염된 숙주는 패러사이트의 면역이 생겨 다시는 감염되지 않는다.
패러사이트는 신성력 뿐만 아니라 마력과 오러에도 다소 약한 모습을 보이는데, 오러 포인트나 서클을 보유하고 있는 존재를 숙주로 삼으면 부화하지 못하고 알 속에서 죽게 된다.
다만 마력이 단절된 공간에선 활발한 번식과 성장능력을 지니게 된다.
-번식 및 성장 과정: 모체분할-유충-알-성장-부화-준성체-성체
드워프 촌장의 도움으로 패러사이트에 대한 정보가 담긴 책을 얻은 것은 다행이지만,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표정은 일그러졌다.
패러사이트가 마력과 오러에 약하단 것은 수행자들이 감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에 그나마 안심이 된다.
김선아도 감염되긴 했지만, 패러사이트가 배를 뚫고 나올 일은 없던 것이다.
하지만 ‘마력이 단절된 공간에서 활발한 번식과 성장능력을 지니게 된다’는 부분은 듣는 것만으로 섬뜩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대기에 마력이 충만한 뮤대륙은 그나마 패러사이트의 성장과 번식을 더디게 만들지만, 마력이 단절된 지구는 번식을 위한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패러사이트 퀸
극히 드문 확률로 탄생하며 모습을 원하는 대로 변환할 수 있다.
패러사이트는 퀸의 명령을 절대 거부할 수 없으며, 퀸의 존재로 무리의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변한다.
퀸은 지능이 뛰어나고, 지식 습득능력이 매우 높다.
패러사이트 퀸이 인간으로 둔갑하여 미드랜드에 침입하는 경우는 제법 흔하다.
대부분 인간 사회에 큰 피해를 줬지만 결국에는 가이아 교단에 의해 토벌되었다.
전투 능력은 마스터급이며, 코어를 제거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재생한다.
이거야 원, 산 넘어 산이다.
아직 지구에 패러사이트가 퍼졌다고 확신할 순 없지만, 정황상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만약 패러사이트 퀸이 지구에 존재한다면 그야말로 악몽이 될 것이다.
패러사이트에 조종을 당한 이형구가 우리의 뒤를 파고 있던 게 혹시 퀸의 지시인 건 아닌지 걱정이 밀려왔다.
‘그나마 미래 신문에 이런 내용이 실린 적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미래 신문에 이 내용이 없다는 뜻은 우리가 음지에서 계속 싸웠거나, 이 사태를 해결했다는 뜻이 되니.
그러나 당장은 수습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뮤대륙에서 악마종에 대한 정보를 가장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곳이 가이아 교단이야. 교단 측에 도움을 요청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군.”
나는 언더스틸 마을의 촌장인 쿠루스의 조언에 수긍하며 감사함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최고의 장비를 얻었습니다.”
쿠루스는 필요 없으니 가지라며 패러사이트 등 악마종의 정보가 담긴 책을 넘겨주었다.
“아니, 나야말로 고맙네. 그런 보물을 가공할 기회를 줘서. 또 좋은 보물을 얻으면 꼭 나를 찾아오게, 장인 정신을 쏟아부어 걸작을 만들어 줄 테니.”
뮤대륙 178일째.
오리하르콘으로 원하던 장비를 모두 만든 내가 마을을 떠나려 하자 촌장을 비롯해 안면을 익힌 드워프들이 아쉬움을 표했다.
사실 촌장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내가 가져온 물품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드워프와 친교를 맺어서 나쁠 것은 없기에 나는 싼 가격에 상회의 물품을 납품해 주기로 이들과 계약을 맺었다.
물론 드워프와 거래를 하는 상회가 우리만 있는 게 아니지만, 촌장의 호의에 의해 굉장히 질 좋은 장비를 정기적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연맹 차원에서 큰 도움이 되는 거래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그들과 인사를 나눈 나는 바로 휴대용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해 영지로 돌아왔다.
갈 때는 여행이지만, 돌아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내 집무실로 돌아온 나는 오르하르콘으로 만들어진 4개 장비의 능력치를 살폈다.
[카니네 / 단검 / 소환형 공용장비]
-칼날 30㎝, 손잡이 13㎝. 무게 370g
-스킬, 오러, 마법, 신성마법 효과 75% 증폭
-마속성의 몬스터 160% 추가 데미지
-자동회복 LV+7
-강력한 독 내성, 강력한 저주 내성
-자가수복
[아덴타트 / 단검 / 소환형 공용장비]
-칼날 30㎝, 손잡이 13㎝. 무게 370g
-스킬, 오러, 마법, 신성마법 효과 71% 증폭
-마속성의 몬스터 177% 추가 데미지
-자동회복 LV+7
-강력한 독 내성, 강력한 저주 내성
-자가수복
[파이스 / 장검 / 소환형 공용장비]
-칼날 80㎝, 손잡이 25㎝. 무게 1.3㎏
-스킬, 오러, 마법, 신성마법 효과 135% 증폭
-마속성의 몬스터 306% 추가 데미지
-자동회복 LV+14
-강력한 독 내성, 강력한 저주 내성
-자가수복
[네비노스트 / 창 / 소환형 공용장비]
-창날 50㎝, 창대 140㎝. 무게 2㎏
-스킬, 오러, 마법, 신성마법 효과 105% 증폭
-마속성의 몬스터 262% 추가 데미지
-자동회복 LV+12
-강력한 독 내성, 강력한 저주 내성
-자가수복
능력치는 오리하르콘의 양에 따라 차이가 났는데, 가장 많은 오리하르콘이 들어간 장검의 능력치가 제일 높았다.
참고로 무기의 증폭 능력은 중복 적용되지 않고 공격의 주체가 되는 무기의 능력치만 더해진다.
단검을 양손에 쥐고 있다고 두 개의 능력치가 더해지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애초에 무기는 부과 효과가 더해진 악세서리와 용도가 다르다.
손에 가장 익은 무기는 단연 창.
하지만 능력치와 전투 효율은 검이 좋았고, 공격속도를 따지면 단검 두 자루를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라면 양팔이 따로 노는 것처럼 단검을 컨트롤할 수도 있으니.
‘앞으로는 상황에 따라 무기를 바꿔가며 싸워봐야겠다.’
욕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손을 댄 덕분에 잡캐의 길에 들어서고 있는 나였다.
하긴 마창사 자체가 잡캐긴 하지.
“다녀오셨어요?”
분명 일하는 중이었을 텐데, 번개처럼 달려온 클로이가 집무실에 들이닥쳤다.
나는 그녀와 간단한 스킨쉽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문제요?”
“수행자들의 세상에서 패러사이트란 악마종이 발견됐거든.”
그녀는 패러사이트에 대해 처음 듣는지, 모르는 기색이었다.
그래서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다.
더불어 지구의 환경에 대해서도.
“이런…….”
“그래서 이 패러사이트를 효과적으로 찾거나 처리할 방법이 필요해.”
“네, 어서 조사해 볼게요.”
“그리고 가이아 교단측 고위 성직자와 만나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거라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교단은 수행자에게 우호적이니, 바로 대신전을 찾으면 될 거예요. 대주교는 당장 만나기 힘들더라도 고위성직자들은 지훈 님을 반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쉽지만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아.”
그에 클로이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집무실을 벗어나기 전에 그녀에게 새하얀 단검 한 자루를 꺼내 건네주었다.
“이게 뭔가요?”
“선물. 어느 유적에서 얻은 유해로 드워프가 만든 건데, 드래곤의 뿔과 완전히 같다더군.”
“네?”
[드래고닉 대거]
-용인족의 뿔을 이용해 솜씨 좋은 드워프 장인이 만든 단검
미스릴을 상회하는 강도를 지녔다.
-칼날 25㎝, 손잡이 11㎝. 무게 250g
-스킬, 오러, 마법 효과 25% 증폭
-용족 추가데미지 30%
-자동회복 LV+2
-독 내성, 저주 내성
당연하지만 드워프 마을까지 간 김에 다른 장인들에게 의뢰해서 보유하고 있던 모든 용인족의 뼈와 뿔을 무기로 만들어왔다.
그 장비들은 연맹의 주요 인사들에게 나눠 줄 생각이다.
“이거 너무 귀한 걸 계속 받아서…….”
얼마 전에 그녀에게 긴급 전이 반지도 하나 건네 줘서인지, 단검을 받고도 기뻐하긴커녕 부담스러워 했다.
“신경 쓰지 마, 네 가치를 생각하면 당연한 거니까.”
그리고 나는 그녀의 어깨를 두들기곤 대신전으로 가기 위해 집무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