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97
44. 조금씩 퍼지는 소문 (1)
-단순한 이란의 내부 고발인 건지. 아니면 이 사태를 알고 있는 누군가의 재 뿌리기인지. 차라리 전자면 마음이 편하지만, 후자면 골치 아프군요.
하성훈 대통령의 혼잣말에 화상 회의에 참여한 각국 대표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들은 이란 사태를 기점으로 이상현상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해당 영상만 해도 업데이트되고 8시간 만에 삭제되긴 했지만, 잠깐 방심한 사이 인기 영상에 떠오르면서 조회수가 100만을 기록했으니 말이다.
-이란보단 외부 소행일 가능성이 크겠죠. 그 인간들이 자신들이 박살 나는 영상을 만들 거라곤 보기 힘들군요.
-분명한 것은 이렇게 다양한 영상을 수집하고 편집한 걸 보면 프로가 끼어 있다는 겁니다.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일까요? 누군지 몰라도 정의감에 불타는 인물인가 보네요.
-아니면, 현 상황에 불만이 많은 고위인사의 지시거나.
‘현 상황에 불만이 많은 인물’이란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중국 주석에게 향했다.
그에 가만히 있던 주석이 발끈했다.
-누가 봐도 가장 불만이 많은 건 이란을 포함한 이슬람 시아파잖습니까! 겨우 그런 이유로 이란을 배제하는 건 너무 안일하죠!
그건 그렇지.
애초에 사람의 생각이 모두 다른데 함구한다고 새나가는 정보를 모두 막긴 힘들지 않을까?
나라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혼란을 막기 위해 현 상황을 비밀에 부치는 것은 공감하지만, 국민에게 진실을 숨겨야 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진실을 알리면 당장 마음은 편해지겠지만, 그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한 나라에서 시작된 혼란은 전 세계로 이어질 테니까.
이미 과거 수차례에 걸쳐 혼란 속에서 보여준 인간의 끔찍한 본성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
진실을 알린다고 해도 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미국에서 새로 얻은 정보는 없나요?
그나마 이 정도까지 정보 통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미국을 포함해 각국 정보기관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적은 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해킹에 의한 것이라 판단하고 있는데, 정확한 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은 외부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군요?
-글쎄요. 아직은 판단이 어렵습니다.
이 이야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추적 스킬을 온라인상으로도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무리였으니.
찔리는 것이 있는 나는 평온함을 가장하여 잠자코 있었다.
-애초에 수행자 연맹이 이란에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웬일로 얌전한가 싶던 중국 주석이 괜한 의심을 받은 덕분인지 화를 내게 돌렸다.
발언의 기회가 생긴 것은 좋지만, 그다지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
“수행자 연맹의 존재 이유가 수행자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구조활동을 한 것뿐,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태연한 내 대답에 중국 주석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아무래도 연맹의 회장께선 뮤대륙에 너무 감화된 모양이군요, 군인 천여 명과 민간인 수천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는데, 어찌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한단 말입니까!
평소라면 ‘또 난리네.’ 정도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중국 주석의 반응에 동조하는 지도자들이 많았다.
물론 발언력이 강한 국가들은 잠자코 있었지만 말이다.
“연맹의 수행자들은 공격해 오는 군인들만 상대했습니다. 그래도 살려달라면 살려줬고요. 만약 이란이 우리의 동료를 얌전히 놓아주었다면 이토록 큰 피해를 입지 않았겠죠. 그리고 민간인 사상자는 시가지에서 대량 살상 병기를 사용한 이란군이 자초한 일입니다. 우리의 잘못이라 보긴 힘들 것 같은데요?”
어찌 내 잘못이 없겠는가.
분명 민간인의 희생은 이란 측의 뒤를 보지 않는 대응 탓이지만, 그 상황에 내가 무관하다고만 볼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양심에 목을 맬 입장이 아니다.
하이에나 소굴에서 정신줄 놓으면 뜯어먹히기 딱 좋으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
어깨를 으쓱인 나를 보며 주석을 포함해 많은 국가 정상들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분명 공격해 오는 적들만 처리했기에 정당방위라 합리화할 여지가 있었다.
“아니면, 연맹의 수행자를 죽게 내버려 뒀어야 한다는 겁니까?”
내 반문에 중국 주석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의 입장에서 내 행동이 가소롭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현재 내 가치는 어중간한 국가 수장에 비할 수준이 아니었다.
화면 너머의 그를 보며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중국 주석은 말을 말자는 식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결국, 미국의 버나드 대통령이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이 사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군요. 새로운 정보가 나온다면 바로 알리겠습니다. 대신 더욱 각별하게 정보 통제에 신경 써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같은 돌발상황이 발생한다면 다소 강압적인 수단을 쓰더라도 기밀 유지를 위한 조치를 해주시고요.
모두는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제 좀 잠잠해지나 했더니, 바톤을 이어받듯 러시아 대통령의 시선이 똑바로 내게 향하며 강한 불만을 표했다.
-이 기회에 확실히 말하는데, 연맹에서 수행자들을 외국으로 빼돌리는 짓을 그만뒀으면 합니다. 그 무책임한 선동으로 단 하루 만에 11명의 러시아 수행자가 국적을 버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일도 있었지.
오늘따라 나를 공격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나 했는데, 수행자들의 이주 사태로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오늘 하루 만에 11명인 거지, 수행자에 대한 대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러시아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 상황에 수행자를 빼가는 건 우리 러시아 국민들의 희생을 부추기는 짓이 아닙니까! 지금 연맹의 행동은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습니다!
선전포고라니, 러시아다운 표현이다.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저는 러시아를 포함한 몇몇 국가들이 수행자들을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현대 장비로 무장한 이란의 군대를 물리친 수행자들.
충분한 시간만 있단 개인이 군단의 전투력을 발휘하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
D-DAY이후 제대로 된 군사 장비를 사용할 수 없게 될 경우 수행자는 첨단 무기를 대신할 비장의 수단이 될 터.
그런 수행자들이 빠져나가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홀대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러시아 대통령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나는 고민할 것 없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수행자들이 나라를 떠나지 않게끔 유지하려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면 됩니다. 우리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는 다른 누군가의 잘못이 아닌 여러분의 실책입니다.”
꼭 떠난 다음에야 소중한 사람들을 아는 사람들이 있지.
“그리고 떠난 수행자들을 조국으로 돌리고 싶으면 직접 수행자들을 설득하면 되는 일이죠. 아무도 그걸 막지 않을 겁니다.”
설명이랄 것도 없다.
무안할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였으니.
하지만 이 당연한 이야기도 한번 고깝게 생각하니, 계속 거슬리는 모양이다.
-꼭 이런 시기에 그렇게 장사를 해야겠습니까?
나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솔직히 왜 그렇게 수행자에게 야박하게 구는지 압니다.”
이들이 수행자들을 애써 무시하거나 강제하려 했던 이유?
뻔하다.
이 상황이 되어서도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릴까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부아가 치밀지만, 나는 애써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연맹은 수행자들의 의사를 존중합니다. 여러분께서 수행자들에게 부당한 강요나, 협박을 안 한다면 수행자들이 다시 조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했는데, 이 이상 말꼬투리를 잡는다면 나와 싸우자는 뜻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러시아 대통령을 포함해 수행자가 떠난 국가의 원수들은 불만을 애써 삼켰다.
이런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신경전을 주고받는 상황이 제법 출세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솔직히 쓸데없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
이형구.
그는 A신문에 다니는 기자다.
일전에 부정입학과 관련된 학장의 퇴진 운동을 하던 학생들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상부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을 남겨두고 철수해야 했다.
결국, 그 상황은 테러예고에 따른 엠바고를 위한 조치로 알려졌지만.
애초에 엠바고는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요청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언론사는 엠바고 요청에 충실히 응하는 편이지만,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정보 수집 자체를 막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
덕분에 다른 일을 하면서도 목에 걸린 가시처럼 그때의 일이 떠올라 신경이 쓰였다.
아마도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당시 시위를 하던 학생 중 한 명이 그의 동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철수 사유가 테러와 관련이 있는 줄 알았다면 그렇게 동생을 남겨두고 물러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했다.
결국, 그의 동생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그날 이후 마치 넋이 나간 듯 보여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도 알려주지 않았다.
“별일 없었어.”
딱 봐도 별일이 없던 게 아닌데, 동생은 자신과 이야기 나누길 꺼리는 것처럼 피했다.
아무래도 테러가 일어날지 모르는 장소에 자신을 버리고 간 것이 동생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도 동생은 그런 게 아니라며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뭐, 보냐?”
괜히 친한 척 동생의 방에 들어온 이형구는 유X브 영상을 보고 있는 동생에게 다가갔다.
그의 동생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참혹한 영상을 보고 있었다.
영상의 이름은 ‘살인 귀신’.
CCTV에 비치는 군인들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썰려 나갔다.
“CG 진짜 같네.”
당연히 전후 사정을 모른다면 영화의 광고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영화가 아니야.”
“그래?”
그리고 자리를 박치고 일어난 동생의 돌발행동에 이형구는 크게 움찔했다.
그런데 동생은 그에게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시 뭔가가 일어나고 있어. 형 우리 도망쳐야 돼…….”
“도망치다니?”
“어디든 안전한 장소로! 이, 이럴 때가 아니야.”
결코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모습.
이후 동생은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해 전쟁에 대비하듯 비상식량을 사들였다.
[1인당 하루 최대 2박스까지 구매할 수 있는 상품입니다.]
[1인당 하루 최대 1박스까지 구매할 수 있는 상품입니다.]
[상품 생산이 중지되어 구매가 불가능합니다.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비상식량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역시!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이형구는 도무지 동생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갑을 들고 집 밖을 뛰쳐나간 동생은 한참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고, 주변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한나절이 지나고 날이 바뀌었음에도 동생이 나타나지 않자, 결국 이형구와 가족들은 크게 당황하며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해야 했다.
“야! 너 어디 갔었어!”
다행스럽게도 동생은 다음 날 저녁에 제 발로 돌아왔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
대신 더 이상 돌발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건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하루 이틀 동생을 봐온 것이 아니다.
지금 동생은 분명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었다.
가족에게까지 밝힐 수 없는 비밀을 말이다.
[해당 영상은 운영진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사유: 자극적인 콘텐츠
사건의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이는 영상을 다시 찾아본 이형구는 눈살을 찌푸렸다.
동시에 물증은 없지만, 기자로서의 감이랄까?
그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뭔가 있어.”
이후 이형구는 독자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
이번에도 뮤대륙에서 5일 내내 무기를 만드는 데 시간을 소비했다.
덕분에 퀘스트를 진행하지 못했지만, 엄청난 능력치를 지닌 단검 두 자루를 손에 넣은 덕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지금 제작 중인 장검도 페이스를 보면 아마 3~5일은 더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봉봉이에게 깍둑 썬 소고기를 건네준 나는, 넝쿨을 이용해 고기를 입에 때려 넣는 50㎝ 높이의 식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내게 국정원 직원이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혹시 이형구라는 분과 친하십니까?”
이형구?
나는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순간 그게 누굴 말하는 건지 이해를 못 한 것이다.
“회장님의 중, 고등학교 동창이십니다. 같은 반도 몇 번이나 같이 되었던.”
그때서야 이형구란 인물에 대해 떠올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몇 번이고 어울린 적은 있지만, 친하냐고 묻는 말에는 긍정하기 힘들다.
물론 얼굴을 마주한다면 반갑게 인사는 하겠지만,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도 모르는 잊혀진 친구였으니.
그리고 그건 인식이와 정우도 마찬가지였다.
“이형구가 왜요?”
아무 이유 없이 이런 걸 물을 리는 없을 터.
“그가 A신문의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뒤를 캐려는 모습을 보여서 말입니다.”
우리의 뒤를 무슨 수로?
뭔가 접점이 있어야 그럴 것 아닌가.
그에 국정원 직원은 K대 사태를 꺼냈고,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나는 납득할 수 있었다.
“그때, 취재하던 기자 중에 동창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네요.”
더불어 동생은 안개 속에 갇혀서 우리의 몬스터 사냥을 구경한 인물이다.
지금은 국정원의 감시 속에 함구를 하고 있지만, 안개 속에서의 경험이 상당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안개 속에서 아예 일반인은 전부 마법으로 재워 버리면 편했을 테지만, 그때 인원이 너무 많다 보니 관리가 힘들어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처리할 거냐고 묻는 거죠?”
“그렇습니다.”
잠시 고민한 나는 가볍게 말했다.
“한번 만나 보겠습니다. 자리를 마련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