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95
43. 이래서 드워프 드워프 하는구나 (1)
이란은 특이하게 한 국가에 두 개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란군’과 ‘이슬람 혁명수비대’다.
이란군과 이슬람 혁명수비대 모두 개별적으로 육해공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란군이 일반적인 국군의 개념이라면 이슬람 혁명수비대는 이란 최고 지도자의 사병과 같은 느낌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개의 군대 모두 대통령이 아닌, 최고 지도자의 지시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결국은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소리다.
“혁명수비대의 일 처리는 경악할 정도군. 다른 나라 군대와 싸운 것도 아니고, 겨우 배교자 하나 처리하는데 수억 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만든단 말인가?”
이란군 합동참모의장의 비난에 혁명수비대 사령관은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감히 혁명수비대를 욕보이는가! 우린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 신성한 임무를 수행만 하면 뭐 하나? 완수를 못 하고 오히려 그랜드 모르테자 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는데.”
하지만 합동참모의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양군을 총괄하는 최고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추가로 두 명의 배교자를 추적 중이라 들었습니다. 이번 일은 우리 정규군으로 넘겨주시죠. 배교자들을 확실하게 처리하여 최고 지도자님의 명예를 드높이겠습니다.”
“음…….”
최고 사령관 역시 혁명수비대 출신이기에 이대로 일을 진행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수행자라 불리는 배교자 단 한 명에게 입은 피해가 너무 컸다.
그래서 계속 혁명수비대를 끼고돌 수가 없었다.
“알겠네. 그럼 지금 추적 중인 배교자들의 처리는 자네 쪽으로 넘기지.”
“그럴 순 없습니다!”
당연히 혁명수비대 사령관은 크게 반발했지만, 최고사령관의 지시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겨우 칼을 든 한 사람에게 그토록 휘둘린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게!”
-으득.
이란군을 총괄하는 합동참모의장의 조롱에 혁명수비대 사령관은 이를 갈았다.
“내가 현대전의 정수를 보여주지.”
하지만, 몇 시간 후.
겨우 칼 든 사람을 상대로 그만한 피해를 입는 게 말이 되냐던 이란군 합동참모의장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F14 전투기 4대, 토우판 공격헬기 8대, 코브라 공격헬기 2대, 줄피카-3 전차 24대, M109자주포 6문 파괴…….”
총사령관이 보고서를 읽다가 말을 잃자, 혁명수비대 사령관은 몇 시간 전 합동참모의장이 지었던 표정을 고스란히 지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현대전의 진순가? 시설파괴가 멋지긴 했어. 아군의 자주포와 박격포, 공대지 미사일 세례에 두 도시가 괴멸적 타격을 입었으니, 인명 피해는 명함을 못 내밀겠군.”
하지만 마냥 좋다고 비웃을 수 없었다.
단 하루 사이에 입은 군사적 손실은 국가 대 국가의 전쟁에서나 일어날 법한 수준이었으니.
무려 24대나 파괴된 전차도 문제지만.
공격헬기 14대, F14 전투기 5대의 파괴는 굉장히 뼈아픈 전력 손실이었다.
“우, 운이 안 좋았습니다. 차라리 상대가 그 검객이었으면 어이없이 당하진 않았을 겁니다. 설마 총기를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수행자가 있을 거라곤…….”
“수행자가 아니라 배교자야.”
“지금 중요한 게 그것이 아니지 않나!”
허공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발포한 소총의 5.56mm 탄이 큰 폭발을 일으키고, 푸른 빛에 휩싸인 총알이 유도탄처럼 끝까지 따라와 타격을 입힌다.
상대는 볼륨감 있는 몸매에 선글라스를 낀 곱상한 외모의 여성이었는데, 거의 인간 폭격기나 다름이 없었다.
이란군은 혁명수비대처럼 배교자를 모두 놓치고, 그 이상의 전력 손실을 입었으며, 두 개의 도시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그랜드 모르테자 님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되신다면 우린 질책을 피하지 못할 겁니다.”
겁에 질린 합동참모의장의 모습에 최고 사령관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고 숨길 수는 없는 일이지, 그 배교자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었어.”
그에 혁명수비대와 이란군 책임자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배교자는 결코 인간이 아니야. 녀석들은 악마다. 한명 한명이 최신예 병기라 생각해야 해.”
이제야 깨달음을 얻어봤자 늦은 일이다.
수행자들은 모두 이란을 벗어났으며, 앞으로도 오늘의 일은 선례가 되어 이란의 신입 수행자들은 해외로 이주할 테니.
그렇게 수행자들을 배교자로 지정하며 칼을 빼 들었던 이란은 큰 피해만 입고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덕분에 이들 사이에서 수행자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안 좋아졌고, 배교자들을 세상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지만, 전 세계 수행자의 수를 생각하면 가볍게 움직였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었다.
더구나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의 항의도 마냥 무시할 순 없는 노릇.
결국, 이란은 분을 삼킬 뿐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또 이란의 사태가 각국 정부에 알려지면서 반 수행자 정책을 펼치던 국가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닌 덕분에 군에 쫓기던 이란의 연맹원 3명을 모두 구할 수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총을 무려 네 번이나 맞은 위급한 상태였는데, 다행히 모두 급소를 비켜 맞은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회, 회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그 꼴은…….’
뭐, 그 과정에서 혼란을 준다고 얼굴변환 스킬에 이미지 마법으로 여성을 연기하는 어설픈 짓을 저질렀다는 게 우습지만 말이다.
일전에 뮤대륙으로 넘어온 미군에게 얻은 총기에 스킬을 곁들여 마총사의 흉내를 냈다.
단순한 분장에 지나지 않지만, 의외로 효과는 발군.
덕분에 이란의 군부대를 때려 부순 것이 두 남녀 수행자에 의한 것이라 널리 알려졌다.
사정을 모르는 많은 국가들은 연맹에 숨겨진 괴물이 많다고 생각하며 우리를 가볍게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내게 구조된 세 명의 이란인은 앞으로 내 지시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하겠다며 극도로 감사함을 표했다.
사실 그들로 인해 전 세계에 경각심을 심어주었으니 손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여장 이후의 전투에서 꾸준히 개인 화기와 보급품을 챙기면서 적지 않은 이득을 얻었다.
다양한 종류의 수류탄 500개와 돌격소총 200여정, 기관총 25정, 저격총 13정, 대물저격총 10정, 권총 35정에 대량의 탄까지 아주 골고루 챙겼다.
총기는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쓰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필요하다면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한 대비였다.
“주군, 저곳이 하이랜드의 길목인 라인 산맥입니다.”
이것으로 지구의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고. 이제 뮤대륙의 상황을 살필 때다.
“정말 이곳이 라인 산맥 맞아요?”
“네, 그렇습니다.”
나는 하이랜드의 입구인 라인 산맥에 위치한 드워프의 마을을 찾아 왔는데, 눈 앞에 펼쳐진 이질적인 풍경을 보며 체면도 잊고 입을 벌렸다.
하이랜드는 미드랜드 중북부와 위도가 같다.
4계절이 있지만, 겨울이 짧고 여름이 긴 편인데, 어째서인지 라인 산맥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반짝이는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분명 지금은 기껏해야 초가을 날씨.
하지만 산맥 초입부터 눈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며 중턱을 넘어서부턴 완전히 설산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만년설이라기에 지나치게 부자연스러운 풍경이다.
‘라인 산맥에 가면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때서야 클로이가 했던, 이야기의 뜻이 이해되었다.
“주군께선 라인 산맥에 대해 잘 모르시는군요.”
신기해하는 날 보며 기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용병 출신의 빌리엄이 말했다.
“네, 드래곤이 하이랜드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천혜의 성벽이라 듣긴 했습니다.”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거대 산맥.
산맥 하나하나가 어찌나 높은지 꼭대기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으며 험준하긴 또 어찌나 험준한지, 마치 칼날을 보기 좋게 쌓아 올린 모양새다.
분명 장관이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의 침입을 더욱 어렵게 하기 위함이죠.”
“예전에도 그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드래곤이 인간을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에 사람 좋은 미소를 흘린 빌리엄은 장황한 설명을 늘어뜨렸는데,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주신 가이아와 17명의 신족이 천계로 떠나며 신화시대가 끝을 맞이하고.
뮤대륙은 신화종(드래곤, 하이엘프 등)과 악마종의 패권 다툼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전쟁의 결과는 공멸.
양측은 괴멸 수준의 타격을 입고 미드랜드를 중립지역으로 둔 채 하이랜드와 이블랜드로 물러난 것이다.
그런데 강성한 두 세력이 힘을 잃자 득세한 것이 신족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인간들이었다.
실제로 신족의 힘을 물려받은 몇몇 인간들 중엔 드래곤에 필적하는 마법사도, 악마종에 필적하는 전사도 존재했다.
두 진영은 얕보던 인간의 침입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자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악마종은 강력한 몬스터들을 끌어모아 자신들의 영역을 몬스터 소굴로 만들었으며, 신화종은 라인 산맥이란 천혜의 방벽을 쌓은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굳이 두 세력을 칠 생각이 없었습니다. 신족의 후예임을 자처하던 영웅들은 전쟁을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인간에게서 신족의 피는 옅어져 가고 개개인의 능력이 떨어진 대신 수가 많아지면서 균형을 유지되었다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반면 드래곤과 악마들은 멸종 위기 속에 근근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하죠.”
흥미로운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오래된 전설보다, 이 산맥이 인간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면 드워프 마을을 찾아가기까지 큰 고생하게 되는 것 아닐지, 우려할 뿐이었다.
-저벅저벅.
그런데 그때, 산맥 쪽에서 누구가가 다가왔다.
“베르트 남작님이십니까?”
그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바이킹 같은 인상의 사내였는데, 등에 커다란 투핸드소드를 메고 있었다.
아무래도 클로이가 섭외해놓은 안내역인 모양이다.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공간에서 카드를 꺼내 건네주었다.
“맞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안내역을 맡은 자유기사 카디프라 합니다.”
그것이 있어야 안내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일종의 입장권 같은 것이라 보면 된다.
나는 라인 산맥이 이런 상태인지 몰랐기에 우려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드워프 마을로 향하려면 등반을 해야 하는가? 플레이트아머 차림의 내 기사들은 동상이 걸리고 말 것이네.”
내 걱정에 기사들은 송구하단 표정을 짓고, 카디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드워프 마을은 춥지 않은 곳이니까요.”
하긴 문제가 있으면 클로이가 사전에 안내해 줬겠지.
“가시죠.”
그리고 카디프는 우릴 라인 산맥으로 안내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던 나는 문뜩 생각했다.
‘신화시대의 보물이라 칭해지는 금속으로 신화 종인 드워프가 무기를 만들면 그것이야말로 전설로 치부되는 성검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내 경우엔 성창일까?
***
“어서 오게 인간이여.”
드워프의 마을이라 해서 대장간이 줄지어 있는 산속 마을 같은 것을 상상했는데.
이건 뭐, 거의 공업단지 느낌이다.
카디프가 왜 걱정하지 말라고 한지 알겠다.
드워프의 마을은 라인산맥 위가 아닌 지하에 위치해 있었고, 여기저기 붉은 빛을 토해내는 용광로로 인해 내부는 상당히 따뜻했다.
마을 중심엔 깊은 구멍이 뚫려 있고, 그 구멍을 중심으로 나선 형태의 땅에 공방들이 층층이 줄지어 있었다.
카디프가 내민 내 카드에 무장한 드워프 경비병이 호쾌하게 웃으며 우리의 입장을 허락했다.
“촌장님을 뵐 수 있겠습니까?”
마을 최고의 장인을 찾는 방법은 굉장히 쉽다.
최고의 장인이 촌장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촌장님께선 바쁘시네만…….”
말끝을 흐리는 땅딸막한 드워프 경비병의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마을과 친분을 쌓고 싶어서 대량의 술과 미드랜드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식품을 챙겨왔거든요.”
“오, 그런가?”
선물이 통하는 건 인간이나 신화종이나 마찬가진지, 경비병이 반색하며 직접 마을에서 가장 큰 공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수월하게 드워프 마을의 최고 장인과 만날 수 있었다.
“뭘 좀 아는 인간이군.”
드워프에겐 뇌물이란 개념이 없는 걸까?
촌장이란 작자도 한 번의 거부 없이 내가 호의로 준비한 물건을 달라고 재촉했다.
원래부터 주려고 챙긴 거지만, 빼앗기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클로이에게 드워프들의 성격이 하나같이 츤데레라는 것을 사전에 들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시비로 느꼈을 것이다.
나는 마당에 가지고 온 물건을 아공간에서 잔뜩 꺼냈다.
“이게 포도주, 맥주, 브랜디, 럼주, 위스키, 홍차, 시가, 버터입니다.”
드워프는 하나같이 애주가이자 애연가다.
그래서 이들의 기호에 맞춰 선물을 준비를 했는데, 하나하나 맛을 보고 홍차같은 물건은 먹는 방법까지 알려 주었다.
그리고 모든 설명이 끝났을 때, 한 손에 위스키가 담긴 잔을 들고 입엔 시가를 문 촌장이 마치 이산가족을 상봉한 것처럼 나를 반겨주었다.
“이거야 원, 왜 이제야 왔는가. 반갑네, 나는 이곳 언더스틸의 촌장인 쿠르스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