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94
42. 공격받는 중동의 수행자들 (3)
안개 장막을 펼치면 더욱 수월하겠지만, 위급상황이 아닌 이상 정체를 노출시키는 짓은 최대한 자제할 생각이다.
나는 사고 가속의 속도를 끌어 올리며, 곡도에 오러를 둘러 휘둘렀다.
-팅팅팅!
현재 내 민첩은 56.
오늘을 포함해 그동안 상급 보상에서 나온 직접 투자할 수 있는 능력치 포인트를 모두 민첩에 투자했다.
이는 ‘사고 가속’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운 움직임을 갖기 위함이다.
여기에 익스퍼트 중급에 해당하는 신체 강화와 근력증가, 순발력증가 마법을 사용하면, 일반인의 눈으론 쫓기 힘든 스피드가 검 끝으로 펼쳐진다.
유유히 총알을 튕겨내며 특수부대로 보이는 군인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슥!
“끄아아악!”
언어가 안 통해도 비명소리는 만국 공통이다.
두 동강이 난 총과 함께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그 군인의 비명에 흥분한 부대원들이 욕설로 여겨지는 말을 내뱉으며 총을 난사했다.
하지만 나는 손이 잘린 군인을 가볍게 앞으로 밀었다.
그는 아주 훌륭한 총알받이가 되어주었다.
-타타탓!
그리고 자세를 낮춘 채 전력으로 달려나갔다.
“아아아악!”
오러로 인해 푸른 바람이 분 것처럼 호텔의 통로에서 반대쪽 통로 끝까지 이동하는데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스쳐 지나간 자리에서 일제히 피가 솟구쳐오르고, 총과 함께 손가락 또는 손목을 잃은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굳이 목숨까진 빼앗지 않을 생각이다.
어차피 이들은 명령을 받는 입장이었으니.
-탕!
하지만 이들의 종교적 신념을 가볍게 본 모양이다.
-팅!
예고 없이 날아든 총알을 튕겨낸 나는 미간을 좁혔다.
잘린 팔을 두고 몇몇 군인들이 권총을 뽑아 들었는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눈빛은 전혀 위축된 것 없이 살벌했다.
그렇다.
이들은 지금 자신들의 행위가 신성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한 명령이라서 마지못해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신념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생각을 고쳐먹어야 했다.
-툭! 툭!
“헙…….”
이동하면서 가로챈 수류탄 두 개를 선물로 던져주곤 다음 층으로 움직였다.
-콰아앙! 콰앙!
수류탄이 폭발하면서 건물 전체가 흔들리고 사람들의 비명이 폭음에 묻혔다.
‘이걸로 포장할 수도 없는 살인자가 되었다.’
방금 전 공격으로 군인들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수행자는 죽으면 다른 세계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어서 온전한 살인이라 보기 힘들지만, 이들은 평범한 사람.
빼도 박도 못하게 확실한 살인자의 반열에 들었다.
하지만, 왜일까?
지금까지 벌여온 행위 때문인지, 연맹원이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하긴 뮤대륙에서 수없이 죽여 놓고 이제 와서 첫 살인이라 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바히드 살아 있어요!?”
나는 계단을 오르며 영어로 소리쳤다.
“네! 4층에 있습니다!”
그에 원하던 대답이 돌아왔다.
이미 호텔에 들어서면서 마력 탐색을 사용했기에 그의 위치는 파악하고 있었다.
바히드는 수행자 사이에 흔치 않은 마법사.
아마 쉴드를 펼친 채 버티고 있지 않을까 싶다.
4층에 올라서자 대비하고 있던 이란의 특수부대가 나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벽을 타고 허공을 밟으며 거리를 좁힌 나는 처음과 달리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푸확!
거의 동시에 4층에 있던 10여 명의 머리가 허공을 날고 한창 총성이 울려 퍼지는 방을 향해 다가갔다.
“아, 악마!”
페르시아어는 잘 모르지만, 아마 이런 뜻이 아닐까?
나는 겁에 질려 뭐라 뭐라 떠들며 위로 도망치는 남성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달려드는 군인들은 봐주는 것 없이 처리했다.
-촤악!
그렇게 마지막 한 명까지 정리한 나는 냄새나는 화장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연맹원을 찾아냈다.
“다친 덴 없습니까?”
영어로 안부를 묻는 내 모습에 그는 감격한 표정으로 눈물을 찔끔거렸다.
“정말 와주셨군요.”
“물론이죠.”
피가 낭자한 호텔의 풍경은 뒷전이었다.
죽다 살았으니, 어찌 안도하지 않겠는가.
그도 몇 명 해치우긴 한 모양이지만, 2서클의 마법사가 쉴드를 유지하면서 적을 사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 조금만 더 늦었으면 그도 뮤대륙에서만 살아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 또한 가족에게 배신을 당했다.
때문에 망설임 없이 미국으로의 이주를 원했는데, 미국이 거절할 이유가 없기에 기꺼이 좋은 조건에 그를 영입했다.
“그럼, 나가요.”
이란에서 무사히 빠져 나가기만 하면 그는 더 이상 배교자라며 위협을 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수행자의 제거를 임무로 하는 이란의 특수부대는 그를 보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낮은 진동음과 함께 창문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미친놈들!’
이상 현상의 정체는 다름 아닌 미사일.
이란 육군의 코브라 전투 헬기가 호텔을 향해 미사일 8발을 발사한 것이었다.
황당하지만 이곳은 시가지다.
미리 시민들을 대비시켜 놓지 않은 이상 어떤 피해가 발생할지 모르는데, 도심 한복판에서 미사일을 날리다니, 제정신이 아니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피, 피해야…….”
그럴 필요 없다.
굳이 미사일이 날아오길 기다릴 필요는 없으니.
나는 미사일의 진로 방향에 쉴드를 연속적으로 펼쳤다.
-콰콰콰콰쾅!
그에 쉴드에 부딪힌 미사일들이 호텔에 닿기도 전에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미사일이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폭발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사실 도망치기로 마음먹으면 미사일이 날아오기 전에 텔레포트를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아직 돌아갈 생각이 없다.
이 기회에 수행자란 존재를 확실히 인식시켜줄 생각이다.
나는 그대로 건물 벽을 날리고는 오러가 깃든 검을 헬기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푸른 빛의 폭발이 일어나 헬기를 집어삼켰다.
-콰아앙!
헬기 조종사들의 눈엔 내가 검을 휘둘러 멀리 떨어진 곳에 폭발을 일으킨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연출이었다.
푸른빛의 정체는 강화가 더해진 제노사이드.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헬기의 프로펠러가 날아가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뒤에 있던 바히드도 내가 검으로 멀리 떨어진 헬기를 날렸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쩍 벌렸다.
“저기에 지휘 차량이 있군요.”
이어서 호텔 앞쪽에 지휘 차량을 발견한 나는 바히드에게 손을 까딱였다.
그리고 의문을 표하며 다가온 바히드와 함께 호텔 4층에서 뛰어내렸다.
“으악!”
잠깐은 당황할 수도 있지만, 도약 스킬을 가진 수행자에게 이 정도 높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떨어져 내리면서 지휘 차량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시늉을 취했고, 지휘 차량과 주변에 있던 군인들이 폭발에 휘말려 날아갔다.
“이대로 당당하게 걸어서 데즈풀을 나서죠.”
“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적은 골목으로 바히드를 이끌었다.
***
-다, 당했다. 적이 휘두른 검에 프로펠러가 파괴…….
-마하메드 중령께서 배교자의 기습에 당하셨다! 지금부터 척결부대 지휘는 부관인 알사드 소령이 맡는다.
-표적인 바히드에게 동료가 있다. 그 또한 배교자이며 척결대상이 되었음을 알린다.
-현재 표적은 32번가 골목을 통해 데즈풀 남쪽 농지 방향으로 이동 중!
-대장님. 데즈풀 시장이 상황을 묻고 있습니다. 경찰 라인을 통해 연락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무시해! 우리 그랜드 모르테자(최고 지도자)님의 지시로 움직이고 있다. 정 궁금하면 대통령께 여쭤보라 하던가.
이란은 신정 공화국이다.
대통령이 행정부를 관리하지만, 그 위에 ‘최고 종교 위원회’가 있고, 해당 단체의 최고 지도자가 국가의 거의 모든 권한을 행사한다.
즉, 정치인이 아닌 성직자가 국가를 좌지우지한다는 뜻이다.
군대 또한 최고 지도자가 통수권을 쥐고 있기에 근래까지 종교적 이념에 따른 전쟁이 발생하는 것이며, 배교자 하나 잡겠다고 시가지에서 미사일을 사용하는 짓까지 서슴지 않는 것이다.
-2중대 2소대 표적 발견!
-주변의 피해는 신경 쓰지 말도록!
-미, 미친! 칼질 한 번에 소대가! 총이나 수류탄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이건…….
-무슨 일인가? 2소대! 2중대 2소대!]
-콰아아앙!
요란한 통신 소리가 귀를 자극하고.
그보다 더 큰 폭음이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온 것을 느끼며, 척결 부대의 남성이 마른침을 삼켰다.
아미르란 이름의 남성은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군에 입대를 했지만, 솔직히 싸우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척결 부대란 알 수 없는 곳에 배치되었을 때도 그리 내켜 하지 않았다.
아미르 또한 배교자는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라 생각했다.
“기, 기껏해야 두 명이야. 모두 긴장하지 마!”
하나도 위안이 되지 않는 소대장의 외침에 아미르는 이를 악물며 소총 방아쇠에 검지를 걸쳤다.
아마도 배교자들과 싸울 다음 부대는 자신들일 것이다.
-저벅. 저벅.
예상대로 좁은 골목에 낮은 발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어서 복면으로 얼굴을 감싼 남성과 어리숙해 보이는 페르시아계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쏴!”
동시에 8명씩 3개분대로 이뤄진 소대의 화기가 불을 내뿜었다.
-취이이익!
대전차 미사일이 날아가고, 기관총 3정이 불을 뿜는다.
분대장들은 유탄 발사기를 사용했으며, 소총수들은 수시로 수류탄을 던졌다.
‘이거면 돼! 이거면!’
아미르는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우는 탄막 속에선 어떤 인간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위다!”
스친 상처 하나 없는 한 남성이 대전차 미사일의 폭발로 발생한 연기 속을 뚫으며 나타났다.
그는 놀랍게도 허공을 달렸는데, 눈 한번 깜빡하니 거리가 반으로 줄었으며, 다시 한번 눈을 깜빡였을 때는 코앞에서 검을 휘둘러왔다.
“미, 미친! 컥!”
푸른 빛을 머금은 검은 총이건 사람이건 할 것 없이 경로 상의 모든 것을 베어버렸다.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소대장과 소대장 앞에 위치한 기관 총수까지.
한 번에 4명이 깔끔하게 이등분되어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허공을 나는 이들의 상체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검의 경로가 제비처럼 변하며 대전차 미사일을 사용했던 분대장과 소총수 세 명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사, 살려…….”
골목이 좁다 보니 그의 검이 벽에 부딪혔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검은 벽에 깊은 상처를 남기며 충실히 사람들을 사살했다.
이 모든 것이 바짝 다가온 그를 향해 총구를 돌리기도 전에 발생한 것이었다.
“아아.”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사지 멀쩡한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복면 사이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잠시 자신에게 향했으나, 이내 무심히 지나쳤다.
“가죠.”
“네!”
그리고 복면인의 말에 언제서부터 거기 있던 건지, 옥상에 숨어 있단 바히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사람은 저대로 둡니까?”
“살려 달라는 거 같은데. 살려주죠.”
바히드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할 때 아미르는 간담이 서늘해졌으나, 복면인이 쿨하게 영어로 뭐라하며 아무런 해코지 없이 지나가자 동료를 죽인 적임에도 고마움을 느껴야 했다.
-2중대 3소대. 전황은?
“하,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사망했다. 저건 맨몸으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빌어먹을!
***
나는 무사히 합류하는 데 성공한 NSA와 국정원 직원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뮤대륙의 전투능력은 현대 무기 체계에서 제법 위력을 발휘하는군요.”
내 모습에 테리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위력 정도겠습니까? 해당 지역의 무선은 듣는 게 공포 그 자체였는데요. 코브라헬기 5기, 이란이 자랑하는 최신 전차 12기, 심지어 F14 전투기 한 대까지 떨구셨는데요. 사상자만 5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나중에 농지로 나오니까 완전 총공세를 하더라고요. 전투기는 진짜 운이 좋았어요. 한 대가 명령인지 돌발행동인진 몰라도 저공비행을 하더라고요.”
결국, 바히드는 끝까지 데리고 다닐 수가 없어서 중간에 한국에 있는 우리 집 지하 벙커로 텔레포트 시켜버렸다.
그래서 혼자 편하게 싸운 덕분에 그만한 피해를 입힐 수 있던 것이다.
그리고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화기 분대로 소모전을 고수하자, 나는 거리낌 없이 미리 좌표를 찍어 놓은 합류지점으로 긴급 전이 반지를 사용했다.
“통신에서 계속 검객으로 표현되던 걸 보니, 전력을 다하신 것 같지도 않던데…….”
“혼란을 주려고 한 거죠.”
수행자 사이에 최강자로 꼽히는 인물은 이란의 군대를 털어버린 검객이 아닌, 연맹의 회장인 마창사다.
그런데 정체도 알 수 없는 수행자에게 이만한 피해를 받았다고 하면, 앞으로 쉽게 수행자를 건들기 힘들 것이라 판단했다.
‘이건 표면적인 이유고.’
뭐, 사실 진심은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광신도들이 내 주변에서 찝쩍댈까 봐 그런 것이다.
거의 일격필살이니, 딱히 검술도 필요 없었다.
때문에 이란의 군대는 순순히 나를 검사라 판단했다.
다만 피치 못하게 난전이 되면서 그림자 이동을 사용해야 했지만, 그것만으로 나라고 판단하기엔 여러모로 정보가 부족할 것이다.
“다른 수행자들은 어떻게 됐어요?”
바히드는 당장 급해서 내가 직접 출동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아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더구나 미리 도주를 위한 합류지점을 정해 놓았기 때문에 데리고 도망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란의 경우 14명은 예정대로 확보했지만 2명은 합류지점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군에 쫓기고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의 위치는 지금 파악하고 있습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나라들은요?”
“모두 이상 없이 합류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거, 앞으로 두 번은 더 이 난리를 피워야 할 것 같다.
다음엔 얼굴 변형으로 여자인 척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