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92
42. 공격받는 중동의 수행자들 (1)
“완전히 졌어.”
지훈의 지시에 환풍구를 통해 지상으로 올라온 나츠오는 쓰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뭐가?”
그에 긴장한 표정으로 지도를 살피던 니콜라이는 의문을 표했다.
“아무래도 조지훈이란 인간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던 것 같아.”
“뜬금없이 뭔 소리야?”
“그는 분명 냉정한 사람이야. 대를 위해 망설임 없이 소를 희생시킬 수 있고, 자신을 향해 칼날을 들이민 적들에게도 용서가 없지. 하지만 살인을 즐기는 악인으론 보이지 않아.”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악인이 아니라고?”
“관점이 다른 거지. 살기 위해서라는 전제 조건이 포함된 거니, 정당방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거지.”
두 사람은 지훈을 적대시하게 된 계기를 떠올려 보았다.
그것은 분명 지훈이 1회차 수행자들의 목숨이 걸린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지훈은 퀘스트 과정에서 망설임 없이 방해되는 수행자 20여 명을 암살했다.
아무리 사전에 경고했다고 해도, 사정없는 조치에 반감과 공포심이 드는 것은 당연.
그로 인해 30여 명의 인물이 살았고, 그 속에 자신들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결코 기분 좋게 여길 수 없었다.
이후 두 사람은 감정이 향하는 대로 움직였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지훈의 적대 세력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서 자신들이 지훈의 상황에 놓였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솔직히, 망설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우린 단순히 그를 질투하고 두려워했던 것뿐이야. 너도 어제오늘 지훈과 같이 다니면서 느꼈잖아. 그는 불필요한 희생을 원하지 않아. 위험한 일엔 차라리 본인이 앞장서서 나고 말지.”
“…….”
“저 그라프란 기사를 봐.”
둘의 시선이 환풍구를 살피며 안절부절못하는 익스퍼트 최상급의 기사를 볼 수 있었다.
빌리엄이란 기사도 조지훈을 충실히 따르지만, 기사단장이란 직위를 가진 그라프는 진심으로 지훈이 무사하길 기도하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영지조차 받을 수 있는 능력자인 그가 이토록 지훈을 따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적어도 조지훈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에게 아무런 불만을 표하지 않고 측근들은 하나같이 그를 왕처럼 떠받들지. 우리도 나름 인덕을 쌓았다고 하지만, 비교 상대가 아니야.”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니콜라이의 불편한 시선에 나츠오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더는 지훈과 반목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어. 그가 우리에게 어떤 결정을 내리건 사과하려고.”
대충 그럴 것 같다고 느꼈지만, 완전히 생각을 고쳐먹은 나츠오였다.
니콜라이는 거칠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니콜라이를 보며 나츠오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너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난 사과까지 할 생각은 없어. 죽으면 죽는 거고 살면 사는 거야. 그냥 흐름에 따르겠어.”
자존심이 강한 니콜라이는 그리 말했지만 나츠오는 이번 탐색으로 지훈에 대한 그의 인식도 자신처럼 많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만약 지훈이 끝까지 자신들을 무능력한 미끼 취급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들은 결코 생각이 바뀌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훈은 두 사람이 오해를 하게 그냥 두었고, 이는 지훈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졌다.
나츠오는 지훈을 그릇이 다른 인간이라 평가했으며, 니콜라이는 성격은 쌀쌀맞지만, 부하를 아낄 줄 아는 능력 있는 리더라 평가했다.
“주군!”
잠시 후 지훈이 환풍구를 통해 나오자 그라프가 호들갑을 떨며 안도했다.
그리고 나츠오는 니콜라이가 붙잡을 틈도 없이 지훈에게 다가가 말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주저리주저리 자신의 잘못을 고하며 사과를 하는데, 동료로서 듣고 있으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지금이라도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다행이군요.”
미소를 지으며 나츠오의 사과를 받는 지훈의 모습은 누가 봐도 대인배였다.
지금 지훈이 오리하르콘을 얻고 얼마나 기분이 업된 상태인지를 다른 사람들은 알 턱이 없었다.
이어서 지훈의 눈동자가 니콜라이에게 향하자 니콜라이는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의 처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에 지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소득이 적지 않으니, 약속대로 뮤대륙에서의 추방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약속대로 자신들을 놓아주겠다는 대답에 두 사람은 태연한 척해도 속으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을 붙여야겠습니다.”
“조건이요?”
뜬금없이 따라붙은 조건.
그러나 두 사람은 일단 들어보잔 식으로 잠자코 이야기를 기다렸다.
“뮤대륙에 머무는 5일에 한 번은 반드시 내게 찾아오세요. 내가 직접 두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뭐, 그 정도는.”
무슨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 건가 싶었는데 의외로 간단한 내용이었다.
지훈의 추궁이 진실의 눈을 활용한 것임을 모르는 이들로썬 안도하며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도록 하죠. 주변으로 모이세요. 제 영지로 텔레포트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훈은 선택형 상급 보상에서 얻었던 휴대용 텔레포트 게이트를 사용했다.
***
오리하르콘은 뮤대륙 미드랜드에서 종적을 감춘 환상의 금속이다.
제국의 황제들이 오리하르콘을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은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문이고 오리하르콘이 세상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수백 년간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었다.
그런 귀물을 무려 주먹만 한 사이즈로 얻었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음.”
하지만.
이 귀물을 얻은 것은 더없이 기쁘지만, 사용 방법에 대해선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에서 가공하는 것이 베스트지만, 뮤대륙의 물건을 지구로 옮기더라도 아공간 소유자 개인만이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 가공을 맡길 수가 없다는 뜻이다.
또 뮤대륙의 아무 대장장이에게 맡길 수도 없는데, 애초에 미드랜드의 기술로는 오리하르콘은커녕 아다만티움조차 제대로 가공하질 못한다.
더구나 오리하르콘의 상징성과 가치를 생각하면 무슨 사단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이 정도 크기의 오리하르콘이라면 이 나라의 절반은 살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더 비쌀 수도 있다.
덕분에 최고의 보물을 손에 넣고도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다.
‘포인트 샵에서 형태 변환 기능을 이용하면 금속으로 무기형태로 만들 순 있을 것 같은데.’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 생각하지만, 문제는 포인트샵에 가기까지 아직 지구 시간으로 18일, 뮤대륙 시간으로 90일이나 남았다는 것이다.
당장 급할 이유는 없지만, 살짝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왕이면 최고의 금속으로 최고 장비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그래서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고, 클로이한테 물었다.
“드워프의 금속가공 능력이 뛰어나다고는 들었는데, 인간과 비하면 어느 수준이야?”
“능력치 자체가 다릅니다.”
“어느 수준으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왜 어린아이가 어른을 주먹 싸움으로 이기지 못하냐는 것처럼 말입니다.”
금속가공 능력이 뛰어나다곤 들었지만, 클로이의 비유에 드워프란 존재가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지구의 재련기술과 비교하면 어느 수준일까?
“갑자기 드워프의 이야기는 왜요?”
“희귀 금속을 얻었는데, 미드랜드의 대장장이에게 맡기기가 꺼려져서.”
오리하르콘이란 설명이 없음에도, 클로이는 굳이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게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다.
먼저 말해 줄 때까지 굳이 캐묻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드워프의 도움을 받고 싶다고 생각하신 거군요.”
“응, 노예로 얻을 수 있으면 좋은데…….”
“아주 오래전엔 드워프들도 드물게 노예 시장에 나오곤 했지만, 지금은 볼 수가 없죠.”
아쉽다.
가장 확실하게 비밀을 엄수하며 오리하르콘을 가공할 수 있는 방법이 드워프 노예를 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드워프 노예를 소유하고 있다면 오리하르콘이 아니더라도 100㎏가 넘는 용인족의 뼈도 드워프를 통해 가공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그런데, 드워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진 않습니다.”
“그래?”
“네, 하이랜드와의 경계가 되는 라인 산맥에 미드랜드와 교류하는 드워프마을이 있거든요. 비록 입장이 엄격하게 제한되지만, 아마 수행자이자 귀족인 지훈 님이라면 문제없이 입장 할 수 있을 겁니다.”
처음 들어본다.
나는 하이랜드가 엄청 폐쇄적이라 해서 당연히 교류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라인 산맥은 드래곤이 하이랜드의 침입을 제한하기 위해 세운 천혜의 장벽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곳에 미드랜드와 교류하는 드워프 마을이 있다니 신기할 수밖에.
“대신 이 마을의 드워프들은 콧대가 높아서 미스릴 이상의 희귀 광물과 진귀한 보석이 아닌 이상 가공을 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가공 비용도 엄청나고요.”
나는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그 드워프들이라면 오리하르콘을 가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오리하르콘을 내밀어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밀려왔다.
“비밀엄수와 신뢰 문제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드워프에게 그 두 가지는 기본 소양이니까요. 그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어긴 드워프는 평생 장인의 일을 하지 못하는 제재를 받습니다.”
처벌이 그거 갖고 되겠나 싶었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드워프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처벌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삶의 이유자 낙이니까요.”
그런 거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제 곧 현실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으니, 당장 갈 수 있는 건 아니라 내일로 미뤄야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츠오와 니콜라이는 그대로 두실 겁니까?”
그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앉아 있는 소파 옆자리를 차지했다.
“원랜 챙길 것만 챙기고 제거할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뭔가 느낀 게 있나 봐, 두 사람의 태도가 바뀌었어. 갑자기 고해성사를 하는데,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진실의 눈 덕분에 내게 어설픈 연극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과는 진짜였고, 황당한 상황에 맥이 풀려버렸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달리 했다.
“그래서 일단은 처리를 연기하려고. 써먹을 수 있으면 써먹어야지.”
제거 취소까진 아니더라도 잠시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말해 주세요.”
***
“그게 무슨 말입니까?”
수행자 연맹 본부에서 봉봉이에게 물을 주던 나는 예고 없이 찾아온 NSA의 테리 요원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슬람 시아파 동맹 사이에서 조직적으로 수행자들을 배척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수행자들을 배교자라 단정 지은 모양입니다.”
그럼 말이 배척이지 제거가 아닌가.
시아파가 같은 이슬람교인 수니파에게 배교자 취급을 받는 걸 생각하면 우스운 상황이다.
“정보가 새어 나간 겁니까?”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웬만한 국가 정부에선 수행자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따로 새어나갈 정보가 없죠. 다만 수행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안 하고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당연히 지켜만 보지 않으시겠죠? 미국 정부에서 우리 연맹원들을 최대한 보호해 주겠다고 하셨으니.”
“무, 물론입니다. 이미 조치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보호하는 데로 유럽으로 이전시킬 생각입니다.”
“그런데 시아파에도 친미 성향의 국가가 있잖아요? 거기도 마찬가집니까?”
이라크, 레바논이 시아파의 대표적인 친미 정권을 가진 국가라 볼 수 있다.
“그게, 종교 문제로 들어가면 간섭이 쉽지 않습니다.”
“그럼 다른 종파 쪽은 문제가 없는 거죠?”
이슬람교의 종파는 수니파와 시아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수니파는 온건하고, 시아파는 극진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IS 등 많은 대형 무장단체가 수니파인 만큼 종파에 따라 성향을 따지는 것은 확실한 분류법이 아니다.
“당장 걱정할 단계는 아닙니다.”
그 말은 언젠가 걱정할 단계가 생긴다는 뜻인가?
아무래도 이슬람국가에선 종파 상관없이 수행자를 좋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
앞으로 종교, 권력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수행자들은 적극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켜야겠다.
‘아주 복을 걷어차는 고만.’
해당 국가의 수행자들에겐 안된 일이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FA시장에 다수의 수행자들이 공짜로 풀린 것 같은 모양새다.
정확하게 해당 지역의 수행자가 몇 명이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한국의 전체 수행자 수보다 많다.
시아파로 대표되는 국가인 이란만 하더라도 인구수가 8천만이 넘었고, 이라크도 4천만에 달했으니.
미국을 포함해 수행자를 원하는 국가는 많으니, 이들은 극진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굳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 나라를 조국이랍시고 지키고 있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딱히 그 종교를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정말 답답하네요.”
“D-DAY를 겪고 나면 생각이 바뀌지 않겠습니까?”
“굳이 그들의 이해를 받을 필요는 없죠. 자신들이 초래한 일이니.”
수행자가 공격을 받으면 수행자 연맹입장에선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나는 중동으로 직접 날아가야 할 것이다.
이래 봐도 나는 수행자들의 리더였으니.
“추가 정보가 들어오면 바로바로 알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돌아가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점점 다가오는 재앙의 날.
이 상황에 인간끼리 다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딨겠는가.
이왕이면 원만하게 일이 해결되면 좋겠다.
“…….”
하지만 왜일까?
머피의 법칙처럼 우려했던 일은 꼭 일어나고 만다.
“이쪽에 항공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회장님!”
이란에서 연맹 소속 2회차 수행자 한 명이 사망하고 만 것이다.
-위이이잉!
오산 공군기지.
냉랭한 표정으로 미 공군 항공기에 탑승한 나는 혀를 찼다.
“엎어버려?”
불쾌함이 가득 담긴 짧은 말.
옆자리를 차지한 NSA의 테리 요원과 경호를 위해 따라온 국정원 직원들은 내 말에 하나같이 기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