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84
39. 중국 잘 가 (2)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대답과 함께 방을 나서는 장원준 일행을 보며 니콜라이와 나츠오는 고개를 내저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야?”
니콜라이의 물음에 잠자코 있던 나츠오가 한숨을 내뱉었다.
“어찌 됐든 이대로 방관할 수 없지. 수행자 연맹 간부 중에 일본인들이 있어, 그들과 접촉을 해보려고. 가장 최선은 협상으로 해결하는 거니까.”
“장원준에게도 그리 말했으면 좋잖아.”
“좀 의심스러워서.”
“뭐가?”
“한국 정부와 수행자 연맹은 협력관계잖아. 장원준이 저러는 이유가 조지훈의 입김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거든.”
일리 있는 추리.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리일뿐 사실이라 볼 순 없다.
“요즘 러시아 정부에서 흉흉하게 굴어서 가뜩이나 스트레스인데.”
니콜라이는 피곤한 듯 눈 사이를 주물렀다.
“아무리 조지훈이 비인간적이라 한들 예전처럼 마구잡이로 수행자를 제거하진 못할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중국에서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심플하지만 쉽게 이해가 되는 말.
아무리 지훈이 겁 없는 인간이라 해도 중국과 척을 지는 건 원치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 정부와 미국에서 지훈을 보호하려 해도 굳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에 다가갈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나츠오의 상식적인 이야기에 니콜라이는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장원준의 태도를 보면 뭔가 일어날 것 같지 않아?”
확실히 범상치 않은 장원준의 마지막 대답은 신경이 쓰였다.
눈빛에서 느껴지는 독기는 단순한 연극으로 보이지 않았으니.
상식을 기초로 답을 내려도 비상식이 자꾸 눈에 밟힌다.
니콜라이의 반응에 나츠오는 애써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개인이 국가에 덤빈다는 게 말이 안 돼. 녀석들이 할 수 있는 건 우리를 괴롭히는 일뿐이야. 알아서 와해가 되게끔 말이지.”
나츠오의 강조에 니콜라이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나도 중국인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들어. 하지만 이용할 건 이용해야지. 조금이라도 유리한 협상을 하기 위해선 공공의 적이 필요해.”
결국은 나츠오도 중국인을 버릴 생각이란 뜻이었다.
그에 두 사람은 같이 쓴 웃음을 흘렸다.
“오늘 연맹측에 협상 의사를 전달했으니, 곧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돌아올 거야.”
하지만 잠시 후.
장원준으로 인해 사라지지 않던 묘한 불안감이 예상치 못한 사태로 이어졌다.
휴식을 끝내고 슬슬 사냥을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크, 큰일입니다.”
대만인 2회차 수행자가 황급하게 이들이 휴식 중이던 방 안에 들어서며 전혀 예상치 못한 정보를 전달했다.
“카이트 자작이 우리 클랜 하우스를 수색하고 있답니다!”
카이트 자작과는 한때 동업까지 했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그 이후 약간씩 삐걱대긴 했지만, 협력관계가 무산된 것은 아니었다.
“이유가 뭔데?”
“중독성 물질의 거래가 의심된다고…….”
중독성 물질이라니 그게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인가.
“그런데, 그게 사실인 모양입니다.”
나츠오와 니콜라이는 두 눈을 크게 떴고, 이어진 그의 대답에 이마를 짚었다.
“견제를 피하기 위해 클랜장이 몰래 도둑길드와 새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지훈은 정보 길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에 대응하기 위해 도둑 길드와 관계를 맺은 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
도둑 길드와 암살 길드 정도라면 얼마든지 정보 길드의 정보추적을 피할 능력이 있었다.
“그 사업 중에 아편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뭐!?”
뮤대륙엔 마약의 인식이 없고, 거래 또한 금지 되어 있지 않다.
애초에 왜 문제가 되는지 알려져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웨이준 그 미친 새끼가 드디어…….”
니콜라이가 너무 놀라 말을 못 잇자,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을 정리하던 나츠오가 말했다.
“나중에 견제가 들어와도 바짝 돈을 벌 수 있을 만한 수단으론 사용할만해. 아직 뮤대륙엔 마약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고 이걸 거래한다고 불법으로 볼 수도 없으니까.”
나름 틈새시장이란 걸까?
하지만 나츠오의 냉철한 말에 니콜라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짓이지! 그 미친새끼가 돈에 영혼을 팔았네!”
덩치 큰 니콜라이가 성을 내며 벌떡 일어서는 모습은 위협적으로 보였다.
“오히려 카이트 자작의 행동이 이해가 안 돼. 위법으로 정해진 사업이 아닌데.”
“이해가 되든 안 되든, 영주는 해당 지역의 왕이나 다름없어. 그 녀석들이 마음먹고 칼을 빼 들면 당해낼 수 없다고! 그리고 이번 일로 마약의 개념이 자리를 잡고 이를 악으로 규정한다면 우리 수행자들 자체가 큰 위기잖아!”
수행자들의 위기란 니콜라이의 말에 나츠오는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았다.
“맞아, 명분만 있으면 되는구나. 중국에서 뭐라 지랄을 하던지, 대대적인 수행자의 배척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정당성은 연맹 쪽에 있는 거니까.”
그때 서야 큰 그림을 눈치챈 니콜라이도 몹시 당황했다.
“설마 이 상황 자체가.”
“그래 애초에 계획된 걸 거야.”
두 사람은 오한을 느껴야 했다.
방해물을 제거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단 말인가.
대체 얼마나 지훈은 무서운 인간이란 말인가.
***
“난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멸망의 불구덩이로 들어가네.”
거의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어스 클랜의 정보에 헛웃음을 흘렸다.
아편 사태를 빌미로 사업을 주도하던 어스 클랜의 본부 격인 권력파만 쓸어버리면 클랜이 와해 되는 것은 기본이고 중국인들도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음모론을 제기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것이 지훈 님의 계략이라고요.”
“별로 상관없어. 그럼 어스 클랜의 생존자들은 나를 더욱 무서워하고 몸을 사리겠지.”
내가 아무리 냉정하다고 한들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서 대량 살상을 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애초에 녀석들은 이제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으니.
음모랄 것 없이 어스 클랜의 권력파에서 아편을 만들어 팔았고, 도둑 길드의 정보 공작 속에서 그 사실을 알아낸 나는 장원준에게 진실을 알려 줬을 뿐이다.
그에 기겁한 장원준은 어스클랜을 와해하고 중국인들을 뮤대륙에서 몰아내겠다며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는 나는 인심 쓰듯 지원해 주었다.
장원준은 클랜에 불만이 많던 비중국계 수행자들을 규합하고 내게 받은 자금으로 카이트 자작을 움직였다.
덕분에 나는 손에 팝콘을 쥔 채, 이렇게 불구경을 하는 것이다.
“인원지원을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자기들끼리 해결을 해야 마약이 퍼지기 전에 내부에서 알아서 단속한 모양새가 되지. 그리고 내가 나서지 않아도 받은 게 있으니 카이트 자작 측에서 지원할 거야. ”
이 싸움은 수행자들의 안위가 걸린 문제라곤 하나 어스 클랜 내부 다툼으로 정리되는 것이 베스트다.
아무리 장원준이 한국 정부에 소속되어 있다곤 하나 이곳은 지구가 아닌 뮤대륙이며 중국인들이 아편을 만든 것이 사태의 원인이기 때문에 정당성은 이쪽에 있었다.
“그래도 뭐 구경은 가볼까? 정 위급하다 싶으면 정체를 숨기고 도와주면 되니까.”
***
웨이준은 갑자기 클랜 하우스를 덮쳐온 카이트 자작의 행동에 크게 당황했다.
비록 철저하게 문제가 될 물건을 관리해온 덕에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하고 돌아갔지만, 영주가 작정하고 수색을 벌였다는 점에서 큰 위기감을 느꼈다.
“이거 골치 아픈 데요? 혹시 아편 판매가 정보 길드 측으로 새어 나간 걸까요?”
어스 클랜은 두 가지 세력이 있다.
오로지 퀘스트 진행을 목적으로 하는 무력파와 중국인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진 권력파로 말이다.
권력파에 소속된 중국인들은 모두 정부에 귀속되어 있으며, 중국 정부에선 수행자들의 자유를 제한하며 계속해서 성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자금확보를 위한 어떤 사업아이템을 들고나오던 반드시 지훈으로부터 견제가 들어왔다.
계속 이런 식이면 중국 측 수행자들은 클랜과 함께 도태될 수밖에 없다.
성과를 내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고 성장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권력파라고 해서 의자에 앉아서 계산기만 두들기는 것이 아니다.
이들도 상당한 시간을 퀘스트에 투자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행자의 성장 요소에서 자금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 문제다.
수행자들의 필수 물품인 포션만 해도 상당히 비싼 편에 속하고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서 장비 강화도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퀘스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용병의 도움은 거의 필수가 되어가고 있으며,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직접 고용비를 지급해야 하는 만큼 비용적 부담이 크다.
그래서 중국 측에선 양심을 버리는 짓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렇겠지. 도둑 길드 새끼들 자신만만해 하더니만.”
“아무래도 아편 제조법을 비싸게 팔아버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냥 돈만 챙기고 손 떼죠.”
웨이준은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편 판매가 탄력을 받고 있던 만큼 굉장히 아쉬웠지만, 미련을 버리고 적절할 때 손을 떼는 것도 능력이라 생각했다.
아편전쟁을 겪은 중국인이 아편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이 이상 일이 커져서 좋을 것이 없었다.
“클랜장!”
“무슨 일이야?”
클랜장 집무실에 중국인 1회차 수행자 한 명이 뛰어들어오고 또 무슨 일인가 싶어 미간을 좁힌 웨이준은 이어진 말에 크게 당황했다.
“장원준이 비 중국계 클랜원들을 모으고 있어! 아무래도 우리를 공격할 생각인가 봐!”
“뭐?”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이야기란 말인가?
물론, 그런 낌새가 이전부터 있었지만, 무력파의 핵심인 나츠오와 니콜라이가 내분을 원치 않았던 만큼 충돌로 벌어지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무력파의 3인자라 할 수 있는 장원준이 나선다면 그 둘 정도는 아니더라도 많은 클랜원들이 힘을 보탤 것이 분명했다.
“장원준이 왜?”
하지만 자신들이 중국 정부에 소속된 것처럼 장원준이 한국 정부와 일하는 것은 간부들 사이에 공공연히 알려진 내용이다.
그런 인물이 나서서 자신들을 친다면 국가적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아편에 대해 알아챈 모양이야.”
“아…….”
이어진 말에 웨이준은 탄식했다.
그들이 아편을 명분으로 들고 나선다면, 중국의 반발은 허공을 울리는 메아리가 될 뿐이니.
“우리의 존재가 수행자 전체를 죽이는 독이라며 뮤대륙 추방을 주장하고 있어.”
뮤대륙에서의 추방은 제거를 뜻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중국인 간부들은 하나같이 분통을 터뜨렸다.
“아무리 알리진 않았다고 해도 우리의 행동은 클랜을 위한 것인데.”
“그 자식 전에는 우리를 보고 클랜을 좀먹는 벌레라더니. 언젠가 배신할 줄 알았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어스클랜의 수행자들이 여러 국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지라 뜻을 알리고 한데 모으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그 시간이면 자신들도 충분히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클랜장, 고민할 필요 없어. 공격해 오면 발뺌하면서 정리하면 돼. 전력과 숫자는 우리가 훨씬 많으니까.”
하지만 웨이준은 이 사태를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장원준이 조지훈에게 도움을 청하면 어쩌려고.”
“어?”
“어쩌면 이미 관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둘이 같은 한국인이잖아?”
웨이준의 걱정에 클랜하우스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확실히 가볍게 넘기기 힘든 추론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뭔가 대안이 필요하다.
“도둑길드에 도움을 청해 보는 거 어떨까? 길드 정도의 세력이면 조지훈이라 해도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것 같은데?”
“음…….”
고민하던 웨이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 제안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이들은 동업 중이던 도둑 길드를 찾아갔는데.
“죄송하지만, 이 이상 여러분과 어울리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카이트 자작령의 도둑길드 지부장의 이야기에 웨이준이 크게 당황했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린 동업자 아닙니까!”
영주에게 경고를 받는다 해도 길드의 규모를 생각하면 위축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어진 지부장의 대답은 충격이었다.
“여러분은 이제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아, 아편 제조법으로 건네 주는 대신 뭘 얻으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제조법은 확보한 상태니까요. 그건 우리가 잘 쓰도록 하죠.”
사기나 다름없는 상황.
웨이준은 분노에 찬 표정으로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길드가 이런 식으로 동업자를 배신하다니. 신뢰에 똥칠을 하는군.”
“그런 도리를 따지실 거면, 다른 길드를 가셨어야죠. 도둑길드가 뭘 하는 곳인지 몰라서 그럽니까? 바로 도둑질하는 곳이잖아요. 우리가 직업에 맞는 일을 했는데 무슨 문제라도?”
웨이준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도둑길드를 선택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거대 길드 중 가장 대우를 해줬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오늘을 위한 복선이었다고 생각하니, 허탈함이 밀려왔다.
지부장은 복장을 정리하며 의자에 앉았다.
“가끔 자신의 가치를 너무 높게 평가하는 수행자들이 있더라고요. 동등한 거래가 하고 싶다면 동등한 가치가 있어야죠. 힘이 없으면 빼앗긴다. 그게 세상의 이치 아닙니까?”
낮은 웃음을 흘리는 지부장을 보며 웨이준이 비틀거리고, 동료들은 참지 못해 검을 빼 들었다.
하지만 어디서 나타났는지, 자신들의 목을 단검으로 겨누는 사람을 보며 굳어버렸다.
“여러분은 강자긴 하지만, 그 정도 무력을 지닌 사람은 뮤대륙에 넘쳐 흐릅니다.”
결국, 웨이준을 비롯한 중국인들은 뮤대륙의 무서움을 몸소 깨달으며 도둑 길드에서 쫓겨났다.
“이런 씨발.”
동료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욕설.
결국, 분노에 부들부들 떨던 웨이준은 최악의 선택을 했다.
“머리를 쳐야 돼.”
“뭐?”
“조지훈을 뮤대륙에서 치워놔야지 우리에게 희망이 있어.”
“당장 쳐들어오는 건 장원준인데?”
“장원준의 뒤에 조지훈이 있을 게 뻔하잖아! 녀석을 제거한 다음 나츠오와 니콜라이한테 중재를 부탁하면 될 거야.”
“하지만 녀석을 처치한다 해도, 400명이 넘는 연맹원들이 들고일어나면 끝이야.”
“잠깐 숨어 있으면 돼. 어차피 조지훈이 없어진다면 연맹은 엉망진창이 될 거야. 그 큰 그룹이 운영되는 건 어디까지나 녀석의 자금 덕분이니까. 상징성으로 보나, 재력으로 보나, 뮤대륙에서 조지훈을 대신 할 수 있는 인물은 없어.”
과격하지만 수긍이 되는 제안.
더불어 조지훈에 대한 악감정이라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인물이 자신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를 것이다.
누구보다 이 상황을 바라는 인물이 지훈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