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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69화 (69/247)

# 69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69

31. 수행자 특구 용산 (2)

포인트 샵을 이용하기 위한 대기실 입장이 지구 기준으로 매월 마지막 날에 이뤄지는 만큼 아직도 많은 기간이 남았다.

기껏해야 지구로 한 달인데 길어봐야 얼마나 길겠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수행자들은 현실에서 한나절, 뮤대륙에서 5일을 보내는 만큼 지구의 한 달은 실제로 5~6달이나 마찬가지였다.

2회차 수행자들이 35일 차로 이제 제법 뮤대륙에 익숙해졌음에도 현실 시간은 겨우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설마 일회용은 아니겠지? 그래도 상급의 당첨인데.’

변변치 않은 포인트를 지닌 사람들 입장에선 상급으로 보긴 힘든, 오히려 꽝으로 칭할 수 있는 보상.

하지만 이미 대량의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더욱 많은 양의 포인트를 찍어낼 수 있는 내겐 시간을 사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상급에 걸맞은 보상이라 할 수 있다.

백금화 1개를 써야 50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극악한 마석 분해 스킬도 나와 만났기에 빛을 발하는 것처럼, 대기실 이용권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어떻게 보면 독보적으로 보상과 돈을 휩쓸고 있는 만큼 당연한 현상이라 볼 수 있지만, 새삼 뮤대륙에서 내 운이 상당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 수치가 높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신이 나를 좋게 봐주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지하 신전에서 보스들이 나를 오스카의 사도라 어쩌고 하면서 오스카 뒷담화 엄청 하던데.’

뭐, 신의 이름이 가이아건 오스카건 중요하지 않다.

우릴 이런 상황에 놓은 신이 그다지 성격 좋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파악하고 있으니.

일단 오스카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겠지만, 당장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책상에 놓인 둥근 물체를 집어 들었다.

-슥.

멸종한 식물의 씨앗.

복숭아씨 크기의 그것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이걸로 뭐하라고?”

상급보상에서 나온 것을 보면 평범치 않은 것은 분명한데, 사용설명이 없으니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공용 아공간을 구매하지 않는 이상은 지구에서 써야 하는데, 뭔지도 모르는 물건을 사용할 순 없지 않은가.

안개 속에서라면 뮤대륙에서처럼 설명을 볼 수 있을 테니, 아무래도 나갔다 와야겠다.

덤으로 턴언데드 설명도 보고.

-팟!

이젠 완전히 익숙해진 트랜스폼 슈트가 잠옷 차림에서 순식간에 외출복으로 변했다.

“아버지 이거 선물이요.”

“응? 이거 네 엄마가 차고다니는 팔찌 아니냐?”

이제 퇴사를 하고 회사에 출근할 일이 없어진 부모님은 1층 거실에서 함께 TV를 보고 계셨다.

나는 아버지에게 실드 아티팩트를 건넸고, 금팔찌를 받아든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같은 거예요. 그러니 항상 지니고 다니셔야 합니다.”

당연히 뮤대륙과 지금 지구에 일어나고 있는 이상 현상에 대해 부모님께도 알려 드렸다.

아무리 자식의 이야기라 해도 처음엔 두 분 또한 쉽게 믿지 않으셨지만, 마법과 스킬 몇 가지를 보여줬더니 어쩔 수 없이 내 말을 받아들이셨다.

덤으로 만약을 대비한 지하 벙커도 보여드렸는데, 부모님은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허탈해하셨다.

처음엔 주변 지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 안 되냐고 물으셨는데, 나라에서도 감추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우리의 신변에 어떤 이상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며 자제를 부탁드렸다.

아직 이 일이 크게 와 닿지 않는지, 아니면 나를 믿는 건지 의외로 두 분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일상을 이어가고 계신 중이다.

“저 나갈게요.”

“옆집 가는 거냐?”

“네, 운동 좀 하다가요.”

집을 나선 나는 새로 뽑은 2020년형 벤C G500 4X4에 몸을 실었다.

직수입으로 구매한 거라 수령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이 차는 오프로드에 특화된 차량으로 타이어 크기만 32.5인치에 달하며 운전석 높이가 버스와 비슷하다.

이 차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오프로드에 이만한 녀석이 없겠거니 생각했는데, 안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전자장비의 사용이 불가능하게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에 고민이 많아졌다.

왜냐하면 이 차도 그렇고 옆에 있는 레인지로버도 그렇고 전자회로가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전자회로가 장착되지 않는 차량이 어딨겠는가.

덕분에 이거 괜한 짓을 한 건 아닌지 걱정이다.

뭔가 대책이 생기려나?

-부릉.

묵직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울리지 않는 엔진음이 울려 퍼지고 집을 나서자 거대한 위용 때문인지 사람들의 시선이 절로 집중이 된다.

잠시 후 근처 공원에 도착한 나는 차량을 세워두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안개 장막 스킬을 펼쳤는데.

[지도를 통해 대기실에 입장 가능합니다.]

바로 이런 메시지와 함께 지도기능 하단에 대기실 입장 아이콘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대기실엔 당장 입장할 생각이 없다.

당장 장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조금 더 포인트를 바짝 모아서 갈 생각이다.

[턴 언데드 / 액티브 / LV- / 히든(B)]

-언데드를 대지로 되돌리는 스킬.

사용자보다 낮은 등급의 몬스터는 일격에 처치할 수 있지만, 언데드의 등급이 사용자보다 높을 경우 약간의 데미지만 주게 된다.

[멸종한 식물의 씨앗 / ???]

-땅에 심으면 무언가가 자랄 것 같다.

씨앗은 빨리 심지 않으면 썩어버린다.

턴 언데드도 히든급 스킬이란 사실에 반색하던 나는 정작 씨앗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벙찐 표정을 지어야 했다.

‘어쩌라는 거야.’

뭐가 나올지 모르는데 빨리 심어보라니, 이런 도박성 멘트와 친하지 않은 나였다.

그렇다고 상급보상을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

결국, 나는 이 씨앗을 화분에 심어 직접 들고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대처할 수 있게끔 말이다.

어차피 문제가 생기더라도 1일 1회에 한해 모든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신의 가호가 있는 만큼 내가 지니고 있는 편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대신 잘 때는 밤에 아무도 없는 옆집에 두고.

“설마 식인 식물 같은 게 자라는 건 아니겠지.”

나는 실없는 농담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꽃집에서 한 손으로 들기 편한 크기의 화분과 분갈이 흙을 샀다.

***

우연의 일치일까?

지훈의 자택과 새로 구한 사무실이 위치한 용산 삼각지역 옆엔 국방부와 한미연합사령부가 위치해 있다.

미군의 경우 부대를 평택으로 옮겼지만, 연합사령부는 국방부 부지로 이전하면서 그대로 용산에 남게 되었는데, 이 연합사령부 미군 관할구역에 평소와 다른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국방부 장관은 기무사령관의 보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합사의 미군 통행량이 5배는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드래곤힐 호텔에도 빈방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대규모 인원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드래곤힐 호텔은 미군 전용 호텔로 내국인은 숙박이 불가능한 곳이다.

구 용산 미군기지가 시민공원으로 바뀌면서 공원 한복판의 드래곤힐 호텔의 이전도 논의가 되었으나, 그동안 차일피일 협상이 미뤄지다가 올해가 되어서야 이전이 결정되었다.

예정대로라면 슬슬 이전이 진행되어야 할 곳에 갑자기 많은 사람이 숙박하고 있다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국방부 부지에 위치한 연합사의 비정상적인 미군 통행량 또한 거슬렸다.

비록 미국이 동맹국이라지만, 이곳은 한국이다.

무엇을 하던 사전에 논의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합참의장은 알고 있고?”

“네, 안 그래도 직접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상황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이 기밀이라서 알려 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방부 장관은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상황은 자신이 장관이 되고도 처음 겪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기무사에선 뭐 알아낸 거 없고?”

“미국 NSA요원들이 자주 들락날락하는 것 같습니다. 국정원과도 마찰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습니다. 또한 미군에서 삼각지역 주변에 다수의 안가를 구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뭔가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기무사령관은 이 일이 군대에서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 생각한 모양이다.

“대통령님께 보고하지.”

아무리 난다긴다해도 국군소속 정보단체(기무사, 정보사)는 군 내부 또는 북한 쪽 정보를 주로 다루는 곳이다.

반면 대통령 직속의 국정원은 나라 전체의 정보를 다루는 기관이니 내키지 않지만, 이번 일은 국방부가 아닌 국정원에서 처리해야 할 일로 보였다.

“네, 네. 네?”

그런데 대통령과 통화한 국방부 장관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측에서 국내 정보원의 수를 대폭 증원했으며 몇몇 인물을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감시 부대를 꾸렸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국방부 부지에 국정원 임시 본부를 설치할 예정이며 국정원과 국방부가 협력하여 삼각지역 인근에 상시 특수부대를 투입할 준비를 갖춰 놓으란 지시가 내려왔다.

대체 무슨 일이냐며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지만, 새로운 국정원 원장이 이곳으로 향할 테니 그와 이야기를 나누라는 말을 끝으로 수화기를 내렸다.

“대체 뭐야? 여기에 뭐가 있길래?”

그렇게 용산구 삼각지역 부근에 보이지 않는 정보의 벽이 설치되고 있었다.

***

나는 인식이가 끌고 온 박성과 그의 패밀리를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방금 계약이 끝난 연맹본부가 될 5층 규모의 빌딩이다.

바로 사용이 가능할 만큼 깨끗했지만, 아직 내부엔 이렇다 할 집기가 없어서 서늘한 공기만이 감돌았다.

“김선아님?”

박성은 나보다도 안면이 있는 김선아에게 관심을 보였는데,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동안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수행자 연맹의 장을 맞고 있는 조지훈입니다.”

내 말에 박성은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내 목소리가 기억에 남아 있긴 한 모양이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화분을 창틀에 올려놓곤 웃으면서 그들에게 다가오란 사인을 보냈다.

“수행자 연맹이 어떤 곳이라고 설명 들었습니까?”

“뮤대륙을 여행하는 수행자들의 주권을 위해 뭉쳐진 단체라 들었습니다.”

“현재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는 수행자 중 약 8할이 우리 연맹에 소속되어 있죠. 앞으로 그 수는 계속 증가하게 될 겁니다. 지금은 이렇게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을 하지만 신규 수행자들의 꾸준한 등장과 미래 정보로 재산을 불려가다 보면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 세력이 되겠죠.”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만큼, 박성은 내 말에 큰 관심을 보였다.

“여러분께서도 당연히 수행자인 만큼 우리의 영입 대상이죠. 이번에 여러분의 상황을 대통령께 알려서 해결을 요구한 것도 우리입니다.”

“오오.”

작게 감탄사를 흘리는 박성의 모습에 나는 웃으면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퍽!

“끄윽!”

그리고 이어진 것은 예정치 못한 보디블로.

내 주먹에 복부를 맞은 박성이 고개를 숙이고 나는 다리를 걸어 그를 바닥에 넘어뜨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김선아는 무표정으로 일관했으며 박성의 동료들은 이게 무슨 짓이냐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이번 일은 전적으로 당신의 책임입니다. 만약 제가 연맹은 만들지 않고, 여러분의 해방을 요구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아무리 대통령 측에 붙은 수행자가 있다지만 박성이 나대지 않았다면 뮤대륙에 오지도 못하는 그들의 정체가 알려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차가운 내 눈빛에 박성의 동료들이 고개를 숙이고, 혼자 바닥을 뒹굴며 켁켁 대던 박성이 호흡을 고르며 지저분한 모습으로 나를 올려보았다.

“아마 계속 인체 실험을 당하고 있었겠죠.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인 줄 아세요. 시간이 더 흘렀으면 여러분이 어떻게 사용됐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핵심을 짚는 내 말에 몇몇이 동조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들도 박성이 원인 제공자임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나마 동료라는 프레임에 함께 행동하고 있지만, 솔직히 이들이 박성을 밟아도 그는 할 말이 없었다.

“저는 중국 특수부대에게 공격을 당했었죠. 그런데 제가 아니라 여러분이 타깃이었다면 꼼작도 못 하고 중국에 끌려갔을 겁니다. 세상은 박성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거든요.”

짧게 혀를 찬 나는 박성에게 힐링 마법을 사용하고 플로트 마법으로 들어 올려 클린 마법까지 사용해 주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됩니까?”

그 모습에 내가 누군지 기억을 났는지, 박성을 포함한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우거를 사냥하셨던?”

“그런데 얼굴이.”

“별거 아니죠.”

얼굴변형 스킬로 예전에 안개 속에서 만났던 중년인으로 변모한 나는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박성씨와는 그전에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분명 그때도 조심하라고 경고했었는데요.”

“헙!”

완전히 상황을 이해한 박성은 내게 맞았음에도 불만을 표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나는 연맹의 덩치를 빠르게 키우기 위해 이들 같은 낙오자들도 받아들일 생각이다.

하지만 박성이 분별없이 나대는 꼴은 볼 생각이 없는 만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잡을 필요성을 느꼈다.

“여러분은 선택 사항이 없습니다. 안심하고 살아가려면 무조건 연맹에 들어와야 하죠.”

이들이 잊어선 안 되는 사실이 내가 연맹에 들어와 달라고 부탁해야 할 처지가 아니라, 내게 연맹에 넣어달라고 빌어야 할 처지란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면서도 제가 여러분을 기분 좋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중도 하차한 여섯분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내 말에 확실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이해한 그들은 말을 잃었고, 곧 뜨거운 눈빛이 박성에게 쏟아졌다.

결국, 박성은 내게 얻어맞고도 무릎을 꿇고 비는 신세가 되었다.

“앞으로 제 눈 밖에 나는 짓은 마세요.”

내 경고에 박성은 식은땀을 흘리며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NSA의 테리가 건네준 씨T은행 계좌를 들어 올리며 고민했다.

무려 1억 달러가 박혀 있는 통장.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다.

연맹 유지로만 쓴다면 여유 있는 금액이지만, 전 세계에 흩어진 수행자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이김에 투자회사를 만드는 거 어떨까?”

“투자회사?”

역시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다르다는 것을 직접 증명하듯, 미래정보를 쥔 정우가 단 며칠 만에 내 자금 90억을 130억으로 만드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뭐든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 것 같다.

아마 정우라면 이 돈도 유용하게 쓸 것이다.

“나 말고 몇 명의 투자전문가를 추가로 고용해서 자금을 운영하면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야. 나도 완벽하지 않은 만큼 자금은 분산해서 운용하는 편이 좋으니까. 물론 고용된 사람들에게 미래 신문의 내용을 밝힐 필요는 없어. 내가 방향을 정해주면 되니까.”

확실히 수행자 연맹도 대외적인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법인이 존재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굳이 일반에 수행자라는 것을 밝히지 않아도 활동할 수 있는 명함이 있는 편이 좋을 테니까.

사회가 언제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될지는 알 수 없지만, 큰 사건이 발생할 때 가장 먼저 알아챌 가능성이 높은 것이 우리인 만큼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생각해 봤는데, 의료진도 더 전문 인력을 갖춰 놓는 게 좋을 것 같아. 솔직히 간단한 진료는 나도 할 수 있지만, 수술을 해야 하는 사태가 온다면 레지 1년 차인 나론 어림도 없거든.”

“음.”

거기에 인식이까지 한마디 보탰다.

“여유가 있다면 아예 병원을 갖춰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엘릭서를 남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상 그건 불가능하고, 4서클인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힐링은 외상에만 효과를 발휘할 뿐 만능이 아니다.

그래서 만약을 위한 전문 의료진의 존재는 필수라 생각하고 있다.

“좋아, 그렇게 하자. 대신 너희가 믿을 수 있는 사람 위주로 영입하는 거야.”

“그래, 알았어.”

내 허락이 떨어지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나저나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1. 본부, 각국 지부 신설

2. 낙오자 모집

3. 전문 경호팀 신설

4. 비상식량, 비상약품 축적

5. 연구 협력

위 다섯 가지에 새롭게 두 가지가 추가되었으니 말이다.

아예 지구 쪽 연맹운용은 인식이나 정우처럼 일반 사람들에게 더 큰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도 생각한다.

솔직히 수행자들은 퀘스트를 진행하고 힘을 키우는 것만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하니.

“여기가 혈맹기사단의 본부인가?”

지금 나는 사무실로 사용하는 옆집으로 돌아온 상태인데, 갑자기 밑이 어수선해져서 1층으로 내려갔다.

원래 1층에는 한국 수행자들이 모여서 TV를 보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뭔가 평소보다 인원이 많은 것 같다.

“일본 수행자들이 찾아왔어요. 회장님을 뵙고 싶다고요.”

계단 쪽에 서 있던 마검사 최은우의 대답에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김선아를 잡고 늘어지는 검은색 코트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히스클리프!”

내 등장에 소란을 피우던 그 사내가 기세등등하게 외쳤고, 질린 표정의 김선아가 이 인간 좀 어떻게 해달라는 반응을 보였다.

‘쟨 덥지도 않나?’

나는 6월임에도 검은 코트를 고수하는 히로시에게 다가갔다.

히로시는 나를 향해 뭐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영어는 어느 정도 알아들어도 일본어는 전문이 아닌지라 곤란한 기색을 보여야 했다.

“히스클리프 단장에게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다행히 최은우가 일본어를 할 줄 아는지, 히로시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통역 잘못된 거 아니죠?”

“아뇨, 있는 그대로입니다.”

히로시는 왜 날 이상하게 부르는 거지?

뭐, 그가 이상하단 건 원래부터 알고 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용건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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