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68
31. 수행자 특구 용산 (1)
[말도 안 되는…….]
마지막 남은 성기사까지 쓰러지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몇 시간이나 싸운 거지?
반나절? 한나절?
200개에 달하던 마력 포션은 이제 10여 개밖에 남지 않았고, 사고가속을 너무 오래 유지해서 온몸에서 감각이 사라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사고가속을 끌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인데.
오히려 딜레이에 익숙해져서 리얼타임에 괴리감이 들었다.
조금씩 사고가속의 속도를 늦춰서 반대로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녀석들이 자멸해서 다행이지.’
평범하게 전투를 이어 나갔다면 싸움은 더 길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괴물들도 각자 정해진 마력량이 있는지, 나중에 가선 회복속도와 공격능력이 급감하면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전투가 끝이 났다.
물론, 그 마력량이라는 것이 몇 시간 동안 문제없이 싸울 정도의 양이었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말이다.
“끙.”
겨우 1분도 안 된 휴식시간.
그러나 던전에 오래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라 창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켰고 처참한 몰골로 쓰러진 세 보스에게 다가갔다.
그나마 나중에 쓰러진 성기사의 형태는 온전한 편이었다.
가장 먼저 타깃이 된 사제는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검게 타 있었으니.
사제는 내가 자신만 공격하자 배리어로 버텼다.
그런데 몽크는 그림자가 없으면 땅에서 점프나 뛰어야 하는 신세고, 성기사의 원거리 공격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지라, 거의 프리딜이나 다름없이 방어막을 두들길 수 있었다.
사제의 배리어는 굉장히 견고했지만…….
5서클에 준하는 위력을 지닌 ‘콜 라이트닝’에 무기효과로 마법 증폭 40%, 신의 가호로 마속성 공격력 증가 30%, 마지막 관통 스킬까지 더해지니, 오래 버티지 못했다.
더구나 사제의 배리어 캐스팅 속도가 내게 미치지 못했던 만큼, 결국 가장 먼저 마력을 소진하고 처참한 꼴이 되고 말았다.
[마의 교단 고위 사제 로브]
-아라크네의 실을 가공하여 만들어진 로브로 물리 방어력도 상당하며 허리 매듭을 풀면 남성도 무리 없이 착용할 수 있다.
-마법 공격에 대해 약간의 내성을 보인다.
-마법과 오러, 스킬의 마력소모를 20% 줄여준다.
-자동회복 스킬 LV+1
-자가수복
“오.”
사제 또한 이전과 다름없이, 자신이 걸치고 있던 방어구를 온전한 형태로 떨궜는데, 도축하자 강화보주 2개가 나왔다.
게임의 경우 같은 부위에 장비를 중복 착용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이곳은 게임이 아니다.
좋은 옵션의 아이템이라면 욕심을 부려 몇겹을 껴입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음, 좀 불편하네.”
역시 아무리 옵션이 좋다고 해도 옷을 여러 개를 껴입으면 몸이 둔해질 수밖에 없다.
아라크네 실로 만든 로브는 물리 방어력이 상당하다고 하니, 나중에 강도 실험을 해서 몽크의 코트 안에 가죽 갑옷을 입을지 새로 구한 여사제의 로브를 입을지 결정하면 될 것 같다.
“도축.”
그리고 몽크와 성기사에게서 이전처럼 방어구와 보주를 하나씩 더 얻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코어의 파괴뿐이네.’
하지만 리치 때와 달리 이번 던전은 코어가 찾기 힘들게 숨겨져 있었는데, 마력 탐색으로도 걸리지 않아서 여기저기 샅샅이 뒤져봐야 했다.
혹시 분수대에 숨겨져 있는 건가 싶어서 분수대도 파괴하고, 곳곳에 설치된 동상도 파괴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어디 땅속이나 벽 속에 파묻혀 있는 건 아니지?’
미간을 찌푸린 채 주변을 살피던 나는 문득 한곳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곳은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벽이었다.
다른 쪽 벽면엔 동상이 서 있거나 야광주가 붙어 있었는데, 유독 그곳은 아무런 장식이 없었다.
굉장히 평범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었다.
그래서 나는 그 벽 중심을 향해 마법과 스킬이 더해진 창을 투창했고.
창이 벽면 깊숙이 틀어박히자, 마치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가짜 풍경이 산산조각이 나며 숨겨진 방이 나타났다.
‘진짜, 뭐 이런 식으로 숨겨놓냐.’
나는 황당함을 표하며 그 방에 들어섰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홀로 둥둥 떠 있는 푸른빛의 크리스탈을 볼 수 있었다.
그게 코어인 게 분명했다.
-쨍그랑.
오러가 듬뿍 실린 창이 커다란 크리스탈을 산산조각내고.
드디어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 완료]
[기여도 100%로 던전 클리어 MVP가 되셨습니다.]
[상급 보상카드 3개를 획득했습니다.]
[포인트 5000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MVP 보물상자의 열쇠를 획득했습니다.]
[기여도 100%를 달성하여 보물상자의 크기가 커집니다.]
[상급 던전을 클리어하여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최초로 상급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 상승합니다.]
보너스로 능력치가 4개씩 올랐을 뿐 아니라, 상급 보상카드를 무려 3장이나 손에 넣었다.
그뿐 아니라, 눈앞에 나타난 보물상자는 말을 잃게 만들었는데.
그 크기가 거의 소형 자동차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좋아, 좋아.”
피곤함을 떨쳐낸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열쇠를 보물상자에 가져갔다.
[상급 MVP 보물상자를 개봉했습니다.]
[액티브 스킬 그림자 이동을 습득했습니다.]
[액티브 스킬 여명의 봉화를 습득했습니다.]
[카르디스 건틀렛을 획득했습니다.]
[스킬업 포인트 5개를 획득했습니다.]
[백금화 312개를 획득했습니다.]
“허…….”
대량의 백금화와 무려 5개에 달하는 스킬업 포인트도 엄청나지만, 나머지 보상들도 범상치 않은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림자 이동 / 액티브 / LV- / 히든(B)]
-시야가 닿는 위치의 그림자로 순간 이동할 수 있다.
-단 이동하고자 하는 그림자는 사용자가 빠져나올 수 있는 크기여야 한다.
[여명의 봉화 / 액티브 / LV- / 히든(S)]
-아군의 모든 능력치(스테이터스)를 20% 향상해준다.
-아군의 스킬, 마법, 오러의 공격력을 20% 향상해준다.
-스킬 발동 시 아군에 걸린 상태 이상을 회복한다.
-스킬 발동 시 아군에 3서클 마법 힐이 적용된다.
-해당 스킬은 전쟁 스킬로 하루 3회만 사용할 수 있으며, 지속시간 1시간이다.
[카르디스 건틀렛 / 소환형 공용 장비]
-블랙 드래곤 카르디스의 비늘로 만들어진 건틀릿으로 미스릴을 상회하는 강도를 지녔다.
-착용된 팔 전체에 건틀렛의 방어력이 적용된다.
-마나 드레인(공격 시 적의 마력을 소량 빼앗는다.)
-대 용족 공격력 30% 증가
-자가수복
그리고 이어진 설명을 본 나는 크게 놀라며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웃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미친놈이란 소릴 할 정도로 심하게 몸을 들썩이며 크게 웃었다.
‘상급이 다르긴 다르구나.’
난이도 만큼이나 보상도 중급과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던전에서 몽크들이 그림자 이동을 쓰는 것을 보며 내심 그 스킬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정말 얻게 되다니.
그림자 이동은 유용성만큼이나 B급 히든으로 분류가 되었는데, 그 스킬도 이름부터 포스가 다른 S급 히든스킬 ‘여명의 봉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비록 내가 솔로 플레이를 지향한다지만.
언제까지 혼자 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스킬은 내 편이 많으면 많을수록 빛을 발하는데, 지난번 차원의 균열과 같은 상황에서 이 스킬을 사용했다면 전투는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다.
더불어 이 스킬의 가장 무서운 점은 스킬이 적용되는 아군의 수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물론 어느 정도 적용 범위 제한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단체를 이끄는 장에게 너무도 어울리는 상징적인 스킬이었다.
-철컥.
스킬뿐만 아니라 현물보상인 건틀렛도 대단한 물건이었다.
소재가 무려 드래곤의 비늘인 건틀렛은 비록 한 짝밖에 없었지만, 팔 전체에 같은 방어력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방패를 대신하는 편리한 방어구였다.
마나드레인과 용족 데미지 증가도 대단하지만 미스릴보다 높은 강도라니, 그럼 오러 블레이드도 어느 정도 방어해낼 수 있지 않을까?
건틀렛는 손등부터 팔꿈치 아래까지 이어지는 평범한 크기를 지녀서 움직임에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이 정도면 무서울 정도네.”
비록 이틀 동안 개고생하긴 했지만, 보상을 생각하면 오히려 고생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던전 밖으로 이동됩니다. 보상을 수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두 번째 던전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
“윽.”
새하얀 천장.
속이 메슥거리는 약품 냄새.
병실에서 눈을 뜬 박성은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며,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떠올렸다.
“아!”
그리고 머지않아 자신이 처해 있던 상황을 기억해낸 그는 기겁하며 자리를 박찼는데, 몸에 붙은 장비가 떨어져 나가자 기계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박성 환자 일어나셨군요.”
그에 병실에 들어선 전형적인 간호사 복장의 여성이 빙긋 웃으며 박성에게 다가왔다.
“회복 속도가 너무 빠르셔서 따로 조치할 게 없더라고요. 벌써 그렇게 팔팔한 걸 보면 곧 퇴원해도 되겠네요.”
“그게 무슨.”
계속 약에 취해 있었지만,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이 인체 실험을 당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들은 이야기도 꽤 많이 기억하고 있는 편이다.
납치한 게 누군지,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등.
때문에 여자 간호사를 바라보는 박성의 눈초리는 매섭기 그지없었다.
그에 움찔한 간호사가 뒷걸음질을 치고.
-저벅. 저벅.
검은 정장의 사람들이 병실에 들이닥쳤다.
박성은 분명 인간을 상회하는 능력을 지녔지만, 현대의 무기를 압도하는 실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식은땀을 흘리며 주춤거려야 했다.
“간호사분은 잠깐 나가계시죠.”
그건 검은 정장 사내의 말이었다.
“아, 네.”
갑작스런 대치에 대충 상황을 알고 있는 간호사는 박성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물러났다.
“너, 너희 국정원이지? 이런 짓을 하고 무사할 줄 알아?”
그러면서 박성의 양손에 푸른 빛이 깃들었다.
무리 없이 마력이 운용되는 것을 보니, 조금은 할만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지만, 당한 게 있는지라 이전처럼 무식하게 달려들지 않았다.
그런데…….
“박성씨,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 남성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해오자 박성은 바보처럼 입을 벙긋거렸다.
이게 뭔 상황인지 이해를 못 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국정원장의 독단이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시고 비인륜적인 사태를 해결하셨지만, 그로 인한 박성씨의 상처는 바로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
“국정원장은 파면되었으며,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겁니다. 그리고 대통령님께서 직접 자리를 만들어 피해자분들께 정식으로 사과드릴 예정입니다. 적절한 피해 보상도 이뤄질 테니, 부디 사태 해결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날 선 태도를 유지하던 박성은 두 눈을 끔벅이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방이 막힌 벙커와 달리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병원.
비록 수행자의 존재가 기밀인 만큼, 이들이 위치한 장소는 출입이 제한된 곳이었지만 비로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절실히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황당하네, 납치할 땐 언제고 이제와서 미안하데.”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대처가 늦었던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계속 미안하다며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에 맥이 풀린다.
겨우 이것으로 박성의 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마음 한 곳으로 괜히 또 같은 일을 당하는 건 아닐까 공포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말이다.
“오, 일어나셨군요.”
그리고 다시금 문이 열리며 한 남성이 성큼성큼 병실에 들어서고, 국정원을 지나쳐 멀뚱멀뚱 서 있는 박성의 몸 여기저기를 체크했다.
“역시 자동회복 스킬이 좋긴 한 것 같네요. 몸 상태는 이상이 없어 보이는군요.”
의산가 싶었는데, 평범한 복장을 보니 의사 같지 않았다.
“다, 당신 누구야?”
국정원들이 가만히 있는 모습에 혹시 높은 사람인가 싶어 한껏 경계했던 박성은 이어진 사내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반갑습니다. 김인식이라 합니다. 이번에 출범한 수행자 연맹에서 찾아왔습니다.”
***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묵직한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손에 쥐어진 보상카드는 모두 7장.
던전을 클리어하고 얻은 상급보상 3장과 일반 퀘스트였던, 어스웜 3마리 처치 퀘스트를 완료하고 얻은 중급 보상 4장이다.
‘우선 중급 먼저.’
나는 네장의 중급 보상을 개봉했고, 카드에선 ‘스킬업 포인트’와 ‘힘3’, ‘실드 아티펙트’, ‘조준보조 LV2’가 나왔다.
실드 아티펙트는 이미 하나 보유하고 있는데, 2개가 되면서 부모님에게 각 하나씩 나눠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특이한 게 레벨2의 스킬이 나왔다는 것이다.
조준보조는 이미 보유 중인 스킬이었던 만큼 한 번에 레벨 3이 되었다.
‘하지만 중급 보상은 어디까지나 에피타이저.’
아직 내겐 상급 보상카드 3장이 남아 있었다.
‘사용.’
[액티브 스킬 턴언데드를 습득했습니다.]
[멸종한 식물의 씨앗을 획득했습니다.]
중급과는 분위기 자체가 다른 보상 이팩트.
그런데 그 세 개 중에서도 한 개가 유독 화려한 이팩트를 뽐냈다.
‘당첨!’
과연 상급보상에서 당첨은 어느 수준의 보상이 나올까.
두 눈을 크게 뜨고 기대하던 내 앞에 전혀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대기실 이용권을 획득했습니다.]
“어?”
대기실이 그 대기실이 맞는 걸까?
포인트샵이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