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64
29. 4서클과 두 번째 던전 (1)
“대통령님, 어서 오십시오.”
국정원장은 갑자기 국정원 청사를 방문한 대통령을 반갑게 맞이하면서도 의아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시설을 방문할 땐 사전에 고지를 하는 것이 기본.
그리고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대통령 스케줄엔 이런 돌발상황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갑자기 대통령이 비공식적으로 청사를 방문한 만큼 왠지 모를 찜찜함이 느껴졌으나, 국정원장은 표정에 드러내지 않고 오늘따라 유독 날카로워 보이는 경호실장을 힐끔 살폈다.
“수행자들과 진행 중인 연구를 살피려고 왔네.”
그에 국정원장은 이해했다며 웃음을 흘렸다.
“그러셨군요.”
수행자들이 연맹이니 뭐니, 거슬리는 짓을 하니 대통령이 이런 행동을 보이는 모양이다.
정치인들 입장에서 수행자는 관리하기 힘든 이레귤러.
그런 존재들이 힘을 합치니 거슬리는 것이 당연했다.
마음 같아선 모두 깔끔하게 제거하면 편하겠지만, 중국의 특공부대를 홀로 정리하는 무력은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연맹을 정리하기 위해선 대대적인 병력을 투입해야 하는데, 한국에선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그동안 간단히 결과만 알리라고 하셔서 얼마나 입이 간지러웠는지 모릅니다.”
국정원장은 마치 장난감을 자랑하는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대통령을 연구실로 안내했다.
“현재 연구하고 있는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그리고 지하로 연결된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대통령을 향해 연구 내용을 밝혔다.
1. 이상 현상의 원인 규명.
2. 수행자들의 능력 약화.
3. 수행자들의 힘의 근원인 마력의 수집과 활용방안.
이 정돈 이미 대통령도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문제는 어떤 식으로 연구를 진행해왔는지 관심이 없었을 뿐이지.
“수행자들이 많이 고생하고 있겠군.”
대통령은 굉장히 능구렁이 같은 인물이라서 인체 실험을 지시할 인물이 아니다.
아무리 비밀리에 진행한다 해도 나중에 드러나면 큰 논란이 될 테니.
그래서 대통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어중간한 지시를 내렸고, 국정원장은 자신이 총대를 멘다는 생각으로 충실히 그의 심중을 이해하고 명령에 따랐다.
그런데 수행자들로 인해 흘러가는 정세가 바뀌어서일까?
대통령이 이번 일에 개입할 의사를 내비치니 국정원장으로선 목에 걸렸던 가시가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고생하고 있긴 하죠.”
그렇게 국정원장은 대통령을 연구실로 안내했고, 연구 책임자와 수행자를 관리하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지하 벙커를 연상시키는 공간에 유리로 된 벽이 앞을 가로막고, 그 너머에 수많은 연구진과 중무장을 한 국정원 직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앞서 국정원장이 설명한 대로 연구 종류에 따라 구역이 3개로 나눠져 있었는데, 설비와 장비는 달라도 그 중심의 풍경은 모두 똑같았다.
30도 각도로 세워진 두터운 철제 침대.
아랫도리만 하얀 가운으로 가린 남성 세 명이 사지가 결박당한 채, 멍한 표정으로 여러 관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저렇게 수시로 약을 주입하지 않으면 자동회복이란 능력 덕분에 수행자는 금방 깨어나고 맙니다. 깊은 자상도 3시간이면 회복하고, 골절은 하루, 손가락 한 마디의 손실도 이틀만에 회복하더군요. 이제 저들은 육체적 장애인이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는 몸입니다.”
어째서인지 자신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대통령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들어가 봐도 되겠나?”
이 시설 자체가 나라의 것인데 대통령이 들어가지 못하는 장소가 어딨겠는가.
국정원장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대통령은 입을 꾹 닫은 채 연구실 안으로 들어섰다.
“오, 대통령님! 반갑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연구시설에 다가가니, 나이 지긋한 박사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대통령은 몽롱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수행자에게서 시선을 돌려 박사를 바라보았고, 그 박사는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마력의 활용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어제 기체화된 마력을 추출 수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유쾌하게 말을 잇는 박사와 칭찬을 바라듯 대통령을 바라보는 관계자들.
“비록 적은 양이지만, 이것을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쳤군.”
하지만 하기애애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는데.
“네?”
“이게 무슨 짓들이야!”
갑작스런 대통령의 호통에 사람들이 하나같이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 굳었다.
국정원장은 자신들이 실수한 게 있나 싶어 주변을 살펴봐도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사람이 실험용 쥐도 아니고, 어찌 이렇게 다룬단 말인가! 이건 인체 실험이지 않나!”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성을 내는 모습을 본적이 있던가.
덕분에 연구진들은 손에 들고 있던 장비를 떨어뜨리고, 국정원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대, 대통령님. 갑자기 왜.”
“비록 내가 강경책을 써도 된다고는 했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어떻게 이렇게 비윤리적인 짓을 태연하게 웃으며 한단 말이야!”
노도와 같은 분노.
그런데 차갑게 식은 대통령의 눈을 마주한 국정원장은 비로소 그가 어떤 목적을 갖고 이곳을 찾았는지를 알았다.
분명 대통령은 인체 실험을 지시한 적이 없다.
표면적으론 모두 자신의 독단이라 할 수 있는데, 암묵적으로 모른 척 넘어가던 부분을 짚는 이유는 이 일에서 손을 떼려는 것이 분명했다.
‘꼬리 자르기.’
언젠가 이런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 빠르게 자신을 쳐내려 할 줄이야.
“오늘부로 이 비인간적인 실험을 동결하겠네. 그리고 이 사태를 주도한 인물들에게 합당한 처벌이 떨어질 것이야.”
아무리 각오했다고는 해도 기분 좋게 대통령의 분노를 받아들일 순 없었다.
결국, 국정원장은 억울하단 표정으로 대통령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저, 저희는 단지 나라를 위해! 그리고 대통령께서도 예측했던 부분이 아니십니까!?”
“내가 신인가? 지시하지도 않은 내용을 어찌 알겠나. 더구나 정보를 전달해주는 자네들이 알려주질 않았는데.”
흔들리지 않는 눈빛.
대통령이 단단히 마음을 먹었음을 느낀 국정원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촌극도 이런 촌극이 없을 것이다.
“이 사태는 정권의 위기네. 조용히 처리할 수밖에 없는 만큼 불응하지 말고 책임감 있게 벌을 받아들이게나.”
수행자에 대한 정보는 정부뿐만 아니라, 여당과 야당, 10대 재벌이 공유하고 있다.
이들이 힘을 합쳐서 사태를 수습하기로 마음먹으면 사실 하나쯤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때마침 기조실장과 다른 국정원 직원들이 연구실로 들어오고.
-저벅. 저벅.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는지, 국정원장을 비롯해 주요 관계자들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선배. 그러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이건 너무하다고 말렸잖아요. 뭐가 대통령께서 바라실 일이란 겁니까?”
정작 아무것도 모르는 건 너라며 후배에게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국정원장은 실어증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꾹 닫았다.
“어?”
당혹스러움과 경악이 깃든 연구소.
방금까지 대통령에게 마력 활용에 대한 연구 내용을 설명하던 박사가 의문성을 내뱉으며 어느 장치에 다가갔다.
당연히 대통령이 연구 중지를 선언한지라 국정원 직원이 그의 팔을 낚아챘지만, 노인의 힘이 어찌나 강한지 국정원 직원이 쉽게 당해내지 못했다.
“자, 잠깐. 방금 전력계가 반응을…….”
덕분에 박사는 관계자 중 유일하게 테이저건을 맞은 사람이 되었다.
“각하. 돌아가시죠. 볼 게 못 됩니다.”
경호실장의 말에 대통령은 테이저건에 맞아 부들대는 박사에게 시선을 거두며 연구소를 등졌다.
발악하다가 테이저건을 맞은 박사의 혼잣말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마루타 같은 더러운 짓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부디 그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군.”
대통령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국정원 청사를 나서고, 해당 연구시설은 외부에 밝혀지는 일 없이 조용히 폐쇄되었다.
***
29. 4서클과 두 번째 던전
수능 만점자 인터뷰하면 가장 흔히 떠올리는 말이 이것일 거다.
‘교과서로만 공부했어요.’
내가 수험생일 땐, 이 이야기는 말도 안 된다며 도시괴담 정도로 여겼었는데.
“그냥 마도서로만 수행했는데요?”
설마 내가 똑같은 말은 내뱉는 신세가 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수능생 땐 도저히 공감되지 않던 이야기.
누구나 취약한 과목은 있게 마련이고, 나도 서울대에 갈 수 있는 점수를 뽑기까지, 학원에 과외, EBS 강의, 지난 수능 문제 반복풀이 등 안 한 짓이 없었다.
덕분에 내 대답을 들은 연맹 소속의 3서클 마법사 사지타는 미간을 찌푸렸다.
흔히 인도 여성 하면 미간에 찍는 점을 떠올리곤 하는데, 그녀는 힌두교 신자가 아닌지라 아무런 장식이 없었다.
“그냥 일반적인 수련으로 그렇게 빨리 서클이 올라간다고요? 회장님께선 오러도 훈련 중이시잖아요?”
사지타가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어제인 132일 차에 내가 4서클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균열 사태 당시, 무아지경의 전투를 통해 느낀 것이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그때 느낌을 온전히 내 것으로 흡수를 하니.
-지이잉.
스승인 고든과 같은 경지인 네 번째 서클을 생성할 수 있었다.
4서클의 묘리는 분리, 분해.
한 번의 캐스팅으로 연타 공격이 가능한 마법이 특징이다.
2서클의 애로우 마법을 5발로 엮어 한점 타격을 하는 ‘스트라이크’류 마법과 방사형 마법을 넓게 펼친 ‘월’류 마법이 대표적이다.
어떻게 보면 이미 사고 가속으로 비슷한 짓을 하고 있지만, 사고 가속 상태에서 스트라이크류 마법을 연발하면 위용이 엄청날 것이다.
물론, 4서클은 이전과 달리 마력소모가 상당한 만큼 생각 없이 난사할 순 없지만.
“전투에서 느낀 점이 큰 도움이 되었죠. 그 외엔 딱히 특별한 게 없어요. 스승님과 마도서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이론 확인을 위한 실험을 한 것밖에요.”
사지타와 다른 것이라면 전투의 강도가 굉장히 높다는 것 뿐이다.
그런데 전투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말고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이고, 말로 설명을 한다고 해서 고스란히 그 사람의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니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내 대답에 그녀는 눈에 띄게 실망한 모습을 보였다.
“분명 뭔가 특별한 수행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인도에서도 엘리트층에 속하는 인물이었고, 유명 IT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아마도 그런 자신이 오러를 함께 수행 중인 나보다 마법의 경지가 낮은 게 불만인 것 같다.
수학적 능력도 사지타가 위고 마법의 시스템이 프로그래밍과 유사한 부분이 많아 그녀가 더 높은 재능을 보일 법하다.
그런데 그녀는 아직도 4서클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
꽤 수월하게 4서클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했던 나로선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수학자가 마법을 배운다고 대마법사가 되는 것은 아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영감을 잡는 능력이랍니다. 이것이 범재와 천재를 나누는 기준인 것이고요.”
그때 클로이가 유유히 내 집무실에 들어서며 말했다.
“남작님, 오늘도 멋지시네요.”
입에 발린 말.
하지만 진실의 눈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덕분에 괜히 헛기침을 하며 클로이에게 물었다.
“영감을 잡는 능력이라뇨?”
고든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내용.
솔직히 3서클도 시스템의 도움이 컸던 만큼 지금의 능력이 온전한 나의 재능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사지타와 나의 시선에 클로이는 친절하게 말을 이어갔다.
“말 그대로입니다. 깨달음이란 불현듯 찾아오는 기연이지만, 연기와도 같아서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하죠. 이것을 얼마나 잘 수습하느냐에 따라 성장 속도가 갈립니다.”
그리고 그녀는 익숙하게 테이블에 놓인 티포트에서 홍차를 잔에 따라 마셨다.
그 행동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방의 주인으로 보일 정도.
“10년 동안 한 경지를 파고도 다음 단계로 못 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겨우 1년 만에 그 단계를 돌파하는 사람도 있죠. 솔직히 10년 동안 수행한 사람의 이해도가 더 높은 것은 당연하잖아요? 즉, 마법과 오러는 머리로만 경지를 높여나가는 것이 아니란 겁니다. 이런 걸 두고 재능이라 하는 거죠.”
하긴.
뮤대륙에선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수행자들도 같은 시작점에서 출발했지만, 성장 속도가 모두 다르잖아요? 여기서도 재능의 차이가 있는 거죠. 물론, 가장 재능이 떨어지는 수행자도 뮤대륙을 기준으론 천재라 칭하기 부족함이 없지만요.”
클로이의 말에 사지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으시겠습니다. 재능 있으셔서.”
그러면서 질투심 가득한 눈빛을 내게 쏘아 보내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어색하게 웃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이곳을 찾은 덕분에 요령을 알게 된 느낌이네요. 감사합니다. 또 올게요.”
사지타는 내게 윙크를 날리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서포트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던 그녀.
그런데 성격은 꽤나 마이페이스였다.
클로이는 그런 사지타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홍차를 들이켰다.
“괜한 짓을 한 것 같습니다.”
“네?”
“저 여자,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할 줄 아는 인물이네요. 앞으로도 계속 들러붙을 가능성이 큽니다.”
진지하게 내뱉은 그 말은 이간질이 아니다.
클로이의 판단이 그런 것.
‘진실의 눈’을 얻고 나서 사람들의 감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좋다.
하지만 진실 여부에 따라 나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 걸린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클로이.
예상과 달리 그녀는 말을 얼버무리면 얼버무렸지 단 한 번도 붉은 기운을 풍긴 적이 없다.
나를 향한 그녀의 호감 표현은 사실이란 것이다.
덕분에 조금 더 그녀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지만, 가끔은 차라리 속마음을 모른 채로 넘어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본능에 충실해?’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카사노바로 살 수 있다.
당연히 나도 남자라서 여자에겐 관심이 많지만,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은 오히려 관계를 망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괜히 체할까 봐 조심하는 것뿐이지, 결코 고자라서 그런 건 아니다.
“오늘은 좋은 소식을 두 가지 들고 왔습니다.”
유혹하듯 다가와 내 어깨를 주무르는 클로이.
그리고 그녀는 짙은 홍차향을 풍기며 말했다.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 다섯 명과 최상급의 기사 한 명을 후보로 구했습니다.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최상급이요?”
그녀가 말한 후보란 내가 갖고 있는 기사 임명권 4개를 사용할 인물들을 뜻한다.
익스퍼트 상급만 돼도 어디 가서 기사단장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위치지만, 설마 익스퍼트 최상급까지 구해올 줄은 몰랐다.
물론 내심 바라긴 했지만, 익스퍼트 최상급이라면 어느 나라든 계승 남작 위를 부여받을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런 인물이 어떻게 FA로 풀린 건지 의문이다.
“안 그래도 많은 국가에서 영입 제안을 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그는 작위보다 돈을 우선시하고 있는데, 그 요구에 맞춰주려는 국가가 없습니다.”
“원하는 돈이 얼만데요?”
“연간 백금화 600개입니다.”
뮤대륙 미드랜드의 부는 거의 귀족들이 독점하고 있다.
귀족이 되면 어떤 식으로든 부자가 될 수 있지만, 귀족이 된다고 앉아서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녹봉을 받으려면 국무를 다해야 하는데, 아무리 명예로운 일을 한다고 해도 개인에게 백금화 600개를 연봉으로 지급하는 국가는 없을 것이다.
익스퍼트 최상급의 기사는 분명 귀하지만, 국가 입장에선 대체할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다른 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아무리 큰돈을 벌고 있다고 해도 덜컥 낼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왜 그런 돈을 요구하는 거죠?”
“아들이 한 명 있는데, 난치병에 걸렸습니다. 완치를 위해선 성녀의 기적이 필요한 수준이죠. 그런데 기적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포션을 물처럼 마시며 생활하고 이어가고 있다는군요.”
“음.”
솔직히 부담스런 금액이긴 하지만, 전력 강화와 내 수련을 도울 수 있는 고수란 점을 생각하면 지불 못할 금액은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일부러 임명권이 4개밖에 없음에도 6명을 찾아온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스킬창에 잠들어 있는 스킬을 떠올린 나는 짧은 감탄사를 터뜨리며 물었다.
“그 병을 고치기만 하면, 백금화를 600개씩이나 지급할 필요 없겠네요?”
“그야, 그렇겠죠. 오히려 진심으로 충성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요?”
성녀의 기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난치병이라면 ‘엘릭서’로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일전에 대기실의 포인트 자판기에서 구매한 엘릭서가 1회 용으로 스킬 목록에 등록되어 있는 상태다.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군요. 그 6명과 약속을 잡아 주시겠습니까?”
“네, 내일이라도 바로 가능합니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엘릭서는 비상용이라 쓸 생각이 없고, 나중에 대기실에 방문해서 추가로 사다 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마석 분해로 포인트를 많이 벌어놔서 대기실을 방문한다면 엘릭서를 다량 구매할 생각이었다.
‘이런 식으로 엘릭서를 팔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겠는데? 그리고 그 대상은 굳이 뮤대륙인으로 한정할 필요가 없지.’
새로운 돈벌이 방법을 떠올린 나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두 번째 좋은 소식은 뭔가요?”
목을 녹이는 듯한 클로이의 마사지를 받던 나는 이어진 대답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전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람들의 진입을 거부하는 장소를 찾아냈습니다.”
그건 바로 던전에 대한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