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59
26. 조건부 퀘스트 (1)
“안녕하십니까.”
이제 완전히 한편이 된 1회차 수행들과 나는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연맹소속 간부가 된 그들은 대부분이 동양인이었으며, 백인은 중동계를 포함해 겨우 4명밖에 되지 않았다.
나와 김선아를 포함한 1회차 수행자 17명의 국적은 아래와 같다.
인도 3명.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각 2명.
독일, 호주, 터키, 파키스탄, 태국,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각 1명.
한국인 2명이 연맹의 회장, 부회장을 독식하고 있어서 얼핏 보면 인맥 경영으로 보이지만, 이는 뮤대륙에서의 영향력을 기반으로 한 직위 설정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소속 국가를 보면, 인구수가 수행자 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긴 해도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란 점을 알 수 있었다.
인구수에 비례하여 수행자의 수가 결정된다면 수행자 10명 중 4명이 중국 또는 인도사람이어야 하지만 그렇진 않았으니 말이다.
분명 중국과 인도사람이 많긴 하다.
그러나 둘이 합쳐봐야 2할이 채 안 됐으며,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서구 선진국들이 인구에 비해 수행자 수가 많은 편이었다.
무엇을 기준으로 국가별 인원이 정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설마 국가별 상한제라도 있는 걸까?
‘혹시 신이 GDP를 따지진 않겠지.’
잠깐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한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수행자들에게 말했다.
“미리 전달했다시피 제가 받은 퀘스트는 수행 여부에 따라 현실에 미치는 피해 규모가 정해집니다. 웨이브란 표현이 사용된 것을 보면 보통의 안개와는 수준이 다른 재앙일 게 분명하죠.”
딱히 지구를 구해야겠다는 의지는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이끄는 만큼 의미부여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분투해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내일 미국과 협의를 맺을 때 자랑이라도 하게 미국산 히어로 같은 흉내를 내보도록 하죠.”
내 이야기를 듣던 ‘수행자’들…… 아니, ‘동료들’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처음 이들이 나를 돕겠다며 나섰을 땐 의외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마주하니 굉장히 든든했다.
돈으로 엮인 용병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다 보니, 동질감을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자, 가죠. 목적지가 멀지 않습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저택을 나섰고, 호위 기사 3명에 고용된 상급 용병 20명, 기부를 통해 신전에서 섭외한 사제 2명까지 더해 대인원을 꾸렸다.
기사급 인원만 무려 40명에 달하니, 당장 경비대가 달려와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경비대 중 내가 귀족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겁많은 영지민들은 우리를 보면 도망치기 바빴지만, 나름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아드리안 숲으로 향했다.
***
수행자란 존재와 이곳 뮤대륙 원주민의 가장 큰 차이는 스킬의 보유 여부다.
같은 익스퍼트 초급의 검사라 해도 일격의 공격력은 많은 스킬을 지닌 수행자에게 원주민이 당해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원주민이 약하다는 뜻은 아닌데, 수행자들이 대부분 속성으로 힘을 손에 넣다 보니, 전투의 기본기가 부족했으며 오로지 한방 공격에만 특화된 존재가 되었다.
때문에 대인 전투능력은 전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사나 용병을 결코 따라가지 못했다.
-콰앙!
“크윽!”
“힐!”
그런데 이런 대인 전투의 약점이 늑대인간과의 전투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이 문제였다.
같은 인간형임에도 힘으로 밀어 붙여오는 오크, 리자드맨과 달리 늑대인간은 지능이 높은 만큼 얍삽하기 그지없고, 심지어 변칙적인 공격을 쏟아붓는 스피드형 몬스터다.
덕분에 한방 한방에 힘을 담는 수행자 입장에선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연맹소속 1차 수행자인 한냐는 말레이시아인으로 머리에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이다.
중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왜소한 체구의 한냐는 터프하게 바스타드 소드를 사용했는데, 늑대인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일격을 맞고 뒤로 길게 밀려났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전투 경험이 적지 않아서인지, 반사적으로 강철 건틀랫으로 날카로운 손톱을 막아냈다는 것.
덕분에 팔목에 부상을 입었지만, 그녀의 방어가 조금만이라도 늦었다면 목이 뜯겼을 것이다.
부상은 성직자의 힐로 금세 치유됐고, 그녀는 다시금 호기롭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냥 검을 롱소드나 브로드 소드로 바꾸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능력치 보너스로 무기를 휘두를 힘은 충분하다.
하지만 일격에 치중한 나머지 섬세함이 떨어졌다.
그런데 이어진 상황에 나는 크게 놀랐는데.
갑자기 한냐의 눈이 붉게 물들더니, 힘과 스피드가 급격히 상승한 것이다.
덕분에 밀리기만 하던 늑대인간을 상대로 순식간에 우위를 차지했다.
-콰직!
결국 늑대인간이 한냐의 손에 운명을 맞이하고,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를 보며 나는 흠칫 놀랐다.
“앗!”
눈동자 색이 원래대로 돌아온 그녀는 입을 틀어막으며 얼굴을 붉혔는데, 이미 광전사의 모습을 구경한지라 별로 귀엽게 보이지 않았다.
“스킬입니까?”
“버서커란 히든 스킬이요. 사용 시 근력과 순발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만, 마력소모가 너무 커서 3분 정도밖에 지속을 못 합니다.”
히든 스킬이라니, 흥미로운 이야기다.
내가 갖고 있는 마석분해 역시 히든 스킬로 분류되는데, 전투형 히든 스킬답게 잘만 활용하면 강력한 딜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엔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큰 검을 선호한다 생각했는데, 조금 전의 전투 방식을 보니 확실히 파괴력을 살릴 수 있는 무기가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이 스킬을 쓰면 성격이 너무 난폭해진다는 단점이…….”
하지만 이렇게 작고 가녀린 여자에게 버서커라니, 괴리감이 너무 큰 것 같다.
더구나 전투 방식도 어찌나 더러운지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히잡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
중간중간 히잡을 갈아 쓰는 모습을 보면 그냥 안 쓰는 게 편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종교적 풍습을 강제할 순 없으니 클린 마법으로 깨끗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중에 클린 아티팩트를 선물해 드리죠.”
그러고 보면 그녀처럼 종교색이 짙은 사람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할까?
신의 시련 같은 것으로 생각하려나?
“가, 감사합니다.”
그녀는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 봤지만, 나는 웃으며 새로이 달려드는 늑대인간을 손으로 가리켰다.
한냐는 내 행동이 그 늑대인간을 공격하란 뜻으로 이해하고 바스타드 소드를 어깨에 짊어진 채 달려갔다.
아드리안 숲은 퀘스트의 영향인지 이전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더불어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중앙에 결집해 있었다.
일단은 실력확인을 위해 용병들은 나서지 않고 수행자들만으로 외곽에서부터 몬스터를 정리해 나가고 있는데.
한 마리를 죽이면 또 한 마리가 튀어나오니 전투가 끊이질 않았다.
덕분에 다른 수행자들의 실력을 파악하기엔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나를 제외한 16명의 수행자 중 15명이 익스퍼트 초급의 검사이며, 1명이 3서클의 마법사였다.
“인탱글.”
인도 여성인 ‘사지타’는 마법사로서 전면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보조 마법으로 지원했는데, 파티플레이가 처음이 아닌지 백업이 굉장히 능숙했다.
지금 그녀와 합을 맞추고 있는 인물은 ‘발터’라는 독일인으로 풀플레이트 아머에 커다란 타워실드를 앞세운 탱커였다.
수행자는 대부분이 솔로 위주의 사냥을 하다 보니, 순발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많아, 오히려 중무장이 적은 편이다.
때문에 둘의 모습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크르륵.
“덤벼.”
가죽 갑옷을 종이처럼 찢는 늑대인간도 인간 탱크 앞에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다만 중무장을 한 만큼 움직임이 둔해서, 사지타의 마법지원 없이 1:1로 싸운다면 늑대인간을 상대로 상당히 고전할 것처럼 보였다.
다만 방어력은 확실해서 쉽게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한 마리 빠져나갔어요!”
사지타의 외침과 함께 늑대인간 한 마리가 내게 달려왔다.
하지만 김선아가 내 앞을 막아섰기에 굳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
김선아는 클랜장 역할을 수행하느라 바빴을 텐데도 다른 수행자들과 비교해도 전투능력이 크게 밀리지 않았다.
객관적인 판단으로 충분히 16명 중 상위에 든다고 볼 수 있을 정도.
그녀는 스몰실드에 롱소드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장비처럼 전투 방식도 무난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늑대인간을 압도한다는 것은 아니었는데, 다른 수행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김선아도 꽤나 고전했다.
‘나쁘지 않아.’
그건 수행자들에 대한 내 평가였다.
다들 고전하는 모습에 비하면 제법 후한 평가였는데, 이는 늑대인간을 상대로 한 실전이 처음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이지 수행자들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항상 상대해본 몬스터들하고만 싸우는 게 아닌 만큼 돌발상황에서도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 베스트긴 하지만, 이는 충분히 시간과 노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능력은 준수하나 아직은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
그것이 내 평가였다.
-켁!
그런데 단 한 명.
마치 같은 취급 말라는 듯 압도적인 전투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었다.
“스타버스트……. 스트리임!”
그는 바로 롱소드를 쌍검으로 사용하는 ‘히로시’란 이름의 일본인 남성이었다.
왜 저러나 싶을 만큼, 알 수 없는 스킬 명을 외치며 쌍검을 휘두르는 그의 공격은 대사와 달리 결코 장난이라 여길 수 없을 만큼 위협적이었다.
더불어 공격뿐만 아니라 방어에서도 출중한 모습을 보이며 늑대인간을 주살하는데, 사냥속도가 다른 수행자들보다 월등히 빨랐다.
아마도 나처럼 제대로 된 검술을 익힌 것 같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익스퍼트 중급을 달성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를 제외하면 가장 강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좀 더 빨리! 좀 더!”
다만 싸우면서 입을 닫아주면 좋을 텐데, 마치 무언가에 빙의를 당한 듯한 모습은 괴짜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의 이상 행동 때문인지, 같은 나라 사람인 ‘유이’란 수행자는 히로시를 극도로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외 현실에서도 양궁 선수라며 수행자 사이에서 보기 힘든 궁수를 선택한 인도네시아 수행자는 화살에 오러를 싣는 기예를 보여주었으며, 키가 2m가 호주 남성은 10㎏이 넘을 것 같은 거대한 워액스를 호쾌하게 휘둘렀다.
나머지는 모두 김선아처럼 한 손 방패에 한 손 검을 선호하거나, 나처럼 창을 사용했다.
심지어 전투 스타일도 흡사해서 단순 개인 기량의 차이 외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이제 슬슬 나서야겠다.’
대충 연맹 간부들의 전력을 파악한 나는 ‘인크리스 스팅어’를 소환했다.
-화륵!
푸른 불꽃과 함께 등장한 창은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무기였다.
당연히 내 실력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이들은 호기심을 표하며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성격상 쇼 같은 행동은 좋아하지 않지만…….’
필요하다면 거리낌 없이 광대짓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나다.
남작이란 작위 하나만으로 내 입장은 다른 수행자들과 완전히 다르지만, 이 기회에 확실하게 존재감을 각인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고가속.’
그래서 나는 시작부터 사고가속 스킬을 사용했다.
현재 사고 가속 스킬의 레벨은 4.
사고속도와 시간과의 차이도 크지만, 레벨 1 때와 가장 다른 점이라면 조금 더 주변의 환경을 잘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기감 스킬과 직감 스킬의 능력이 극대화된 것처럼 적을 눈으로 보지 않고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다.
때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달려오는 한 무리의 늑대인간 속에 전속력으로 파고들었고.
-퉁.
가볍게 창을 내질렀다.
-컥!
마치 탄환이 발포되듯 벼락처럼 나아간 창이 늑대인간의 미간에 틀어박히고.
-퉁! 퉁!
같은 방식으로 창을 뺐다 찌르기를 반복하며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늑대인간 세 마리의 머리에도 똑같은 구멍을 만들어 주었다.
이어서 확장된 감각을 통해, 단검과도 같은 놈들의 손톱이 등 뒤와 양옆을 노리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는 공격을 피하기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신체 반응속도와 사고의 괴리에 익숙해진 덕분에 고개를 까닥거리거나 어깨를 빼는 작은 움직임으로 공격을 회피했다.
하지만 사고 가속을 회피 용도로만 쓰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래서 회피 동작에 자연스레 공격을 섞었다.
-스슥.
뱀처럼 장애물을 피하며 날아든 창날이 늑대인간 두 마리의 목을 갈랐다.
-크악!
순식간에 다섯 마리를 처리하고 남은 건 단 두 마리.
그중 하나는 내 목을 물어뜯기 위해 아가리를 벌려왔고, 나머지 한 마리는 영악하게 내 다리를 공격해왔다.
-퍽!
발아래 뻗어오는 늑대인간의 팔을 가뿐히 밟아주고, 악취를 풍기며 아가리를 들이미는 녀석에게 금속을 덧댄 엘보를 휘둘렀다.
자세가 무너진 두 녀석은 그대로 넘어지며 바닥을 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두 마리가 일어서기 전에 깔끔하게 마무리 한 나는 사고가속을 끄며 수행자들에게 ‘참 쉽죠?’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
당연하지만 연맹의 수행자도, 고용된 용병도, 항상 함께 다니는 기사들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아마도 그들의 눈에는 ‘팟’하니 늑대인간 세 마리의 머리에 구멍이 뚫리고.
‘슥’하니 두 마리의 머리가 날았으며.
‘퍽’하니 두 마리가 바닥을 뒹구는 걸로 밖에 안 보일 것이다.
-짝짝짝!
다들 말을 잃고 입은 쩍 벌린 가운데, 김선아와 버서커 한냐 만이 소녀팬처럼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타다다닥!
아무래도 그녀들을 위해 앙코르 공연을 보여주라는 신의 계시인지 다시금 늑대인간 무리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고.
나는 노캐스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연사력으로 한 마리에 한 발씩 아이시클 랜스(3서클)로 머리를 꿰뚫었다.
“미친.”
수행자인지, 용병인지 모를 누군가의 작은 감상이 숲속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