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57화 (57/247)

# 57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57

25. 숨어 살 필요가 없다 (2)

“차라리 잘됐어. 앞으로는 이런 일이 쉽게 발생하지 않을 거 아냐.”

NSA 요원들이 떠난 뒤, 정우와 인식이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이어질 상황에 대한 대책을 의논했다.

인식이는 미국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에 의외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정우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지, 직접 위험한 상황을 겪게 됐으니 충분히 겁먹을 만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물러서기엔 너무 엮여 버렸고.

애초에 내 친한 친구라는 점이 그들을 위기로 빠뜨릴 수도 있으니, 최대한 나와 붙어 있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아무래도 부모님을 빨리 모셔야겠어.”

“그래, 그래야지.”

안 그래도 이 동네에 집들을 추가로 구해놓은 상태다.

위급한 상황에서 두 친구의 부모님이 빠르게 벙커로 대피하실 수 있도록.

집을 살 필요성을 못 느껴 모두 월세로 구했지만 외향만 봤을 땐 남부럽지 않은 집이었다.

“그리고 전문 경호팀도 꾸려야지.”

나 혼자만이라면 미사일이라도 날아오지 않는 이상 큰 위협은 없다.

경호팀은 어디까지나 내 주변 인물들을 지키기 위한 장치.

인식이는 정우의 등을 팡팡 두들기며 괜히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설 경호원에 미국 정보요원까지 더해지면 대통령 수준으로 안전한 거 아냐?”

자신도 놀랐을 텐데, 분위기를 밝게 하려는 인식이의 모습이 짠하면서도 고맙다.

정우도 그런 인식이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고,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로 내게 물었다.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어?”

이번 일로 앞으로 이어질 내 행보는 큰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NSA를 보내고 떠올린 대안들을 밝혔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막고자 최대한 정체를 숨겨왔고, 대외적인 활동을 자제했어.”

두 친구는 누구보다 조심스런 내 성향을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 정체가 다 까발려졌으니까. 이미 미국에서 접촉을 해왔고, 중국 특수 부대에게 공격을 받았지. 그리고 오늘 일로 한국 정부 또한 나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식했을 거야.”

미국과 손을 잡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다.

미국이라면 외부 위협으로부터 확실하게 우릴 보호해 줄 테니.

물론 한국 정부의 행동에 따라 선택의 폭이 늘어날 수도 있지만, 수행자들을 대하는 태도나 행보를 보면 미국이 그나마 나았다.

“그 말은 소극적으로 행동할 이유가 없어졌으니,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거야?”

“맞아. 미국이 나를 이용하려는 것처럼 나도 그들을 이용하면 돼. 미국이 뒤를 받쳐 준다면 한국 정부에선 쉽게 헛짓거릴 못하잖아. 즉, 대놓고 활동할 수 있는 거지.”

눈을 동그랗게 뜬 인식이와 정우.

나는 두 친구의 어깨를 짚으며 선언하듯 말했다.

“내 지지기반이 되어줄 세력을 만들 생각이야. 현실로까지 이어지는 수행자들의 세력 말이지.”

안전과 힘을 동시에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확실한 뒷배가 있어야지만 사용할 수 있는 배짱이었다.

인식이와 잠시 기분이 다운되었던 정우까지 내 계획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내가 작정하고 세력을 만든다면, 그 규모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이제 숨어 살 필요가 없어졌어.”

***

[조건을 충족하여 새로운 퀘스트가 추가되었습니다. 새로운 퀘스트는 지도 하단 퀘스트 아이콘을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

어제 현실로 복귀하기 전에 떴던 메시지 내용.

이런 식의 퀘스트를 받아본 적이 없는지라,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지도 하단을 확인했다.

지도엔 평소 보지 못한 보물상자 모양이 테두리에 장식되어 있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그것을 터치했고.

[조건부 퀘스트 발생]

등급: 상

내용: 차원의 균열로 대대적인 웨이브가 지구에 발생할 예정. 사전에 몬스터를 처치하여 피해를 최소한으로 막아라.

장소: 아드리안 숲

시간제한: 성력 4월 15일 4시까지

보상: 보상카드(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 안개 장막(성과에 따라 지급 여부 결정)

그 내용에 미간을 좁혀야 했다.

‘미군 때문에 발생한 퀘스트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안개를 타고 이쪽으로 넘어오면 리바운드가 발생하는 모양.

과연 퀘스트를 받기 위한 조건이 능력치인지, 현장 증인이라서인진 모르겠지만, 솔직히 상급 퀘스트란 점에서 구미가 당겼다.

아드리안 숲에서 가장 강력한 몬스터는 어스웜인데, 정규 기사 수준의 용병들을 고용하고 어느 정도 사전 준비만 거치면 충분히 사냥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해결 가능한 상급 퀘스트란 소리다.

‘몬스터의 특성을 생각하면 당장 설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마치 게임 속, 리젠 시스템처럼 몬스터를 제거해도 금방 다른 지역의 몬스터가 빈자리를 채운다.

그러니 이번 퀘스트에서 중요한 건 제한 시간에 맞춰 전력을 한 번에 투사하는 것이다.

용병들을 대거 고용해서 투입하면 더욱 편하게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겠지.

‘무장에 모든 돈을 투자하는 일반 수행자들은 혼자서 해결하기 힘들 것 같은데.’

이 퀘스트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강력한 동료가 있거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금력 또는 주위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퀘스트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로브를 걸치며 기지개를 켰다.

어김없이 시작된 뮤대륙에서의 생활.

이번엔 해야 할 일이 많으니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일어나셨습니까?”

상회 본부로 쓰고 있는 아드리안 시의 낡은 저택은 거주공간과 사무공간이 확실히 나뉘어 있다.

때문에 거주공간은 상당히 조용했는데, 1층의 거실 겸 응접실로 내려가니 클로이가 스승인 고든, 사숙조인 크리스토퍼 남작과 함께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클로이의 인사를 받은 나는 익숙하게 빈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시녀를 두고 직접 홍차를 따라 건네주는 클로이.

이젠 제법 눈에 익은 풍경이었다.

“여성이 있으니 주변의 환경이 바뀐 것 같구나.”

고든의 감상에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시녀들이 있잖아요. 카라스 마을의 메이가 들으면 슬퍼할 겁니다.”

내 대답에 고든은 손을 내저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시녀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지. 함께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는 사이가 아니잖니.”

고든은 슬기롭고 아량이 넓은 인물이지만, 역시 계급사회를 살아가는 인물답게 시녀는 시녀로만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이 세계에선 이게 나을 수도 있다.

괜히 시녀를 여자로 여기며 추파를 던지면 비참함만 더해줄 테니.

나도 이 사회에 익숙해진 만큼 군소리 없이 오늘도 풍성한 몸매가 강조되는 드레스 차림 한 클로이를 바라보았다.

“이 향, 샴푸를 쓰셨군요?”

“샴푸뿐만 아니라, 린스, 바디샴푸, 폼클랜징까지 사용하고 있죠. 안 그래도 사서 쓰려고 했는데, 크리스토퍼 남작님께서 선물로 한 아름 보내주셨답니다.”

버터는 독점 상품이라 볼 수 없는 공동 사업이고, 정보 길드와 독점계약을 맺은 게 아니다.

나는 이번에 홍차, 시가에 이른 사치품으로 목욕용품을 내놨는데, 그걸 정보 길드와 독점계약을 맺었다.

솔직히 정보 길드에서 독점이란 단어를 얼마나 잘 지켜 줄지 알 수 없기에 시험적인 성향을 더한 제품군이라 할 수 있다.

뮤대륙엔 이미 비누와 향을 더한 입욕제가 존재했으니.

물론 세정력은 비교가 되지 않지만, 기존 제품군과 얼마 되지 않는 파이를 놓고 싸워야 하는 만큼 이전과 같은 폭발적인 성공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런데 웬걸?

우리 상회가 귀족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고 있어서인지, 정보길드의 영업력 덕분인진 몰라도 판매율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특히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젊은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덕분에 항상 공급량이 부족한 홍차, 시가처럼 판매가가 많이 오른 상태였다.

내가 크리스토퍼 남작을 바라보자 그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딱히 아깝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귀족이 평민에게 선물을 가져다 바치는 건, 오해살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사손의 연인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지.”

크리스토퍼 남작의 말에 클로이가 두 뺨을 감싸며 부끄럽단 표정을 짓고 나는 영문을 모르겠단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그녀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심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만 봐도 내게 호감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니.

하지만 우리가 입을 맞추고 몸을 섞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지금처럼 계속 그녀의 본심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상회 물품 중에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가져가세요. 제가 지배인에게 말해 놓을게요.”

이미 홍차는 눈치를 보지 않고 챙기는 클로이였다.

거기에 몇 개가 더해진다고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말요?”

“물론이죠.”

확실히 예쁜 여성이 화사하게 미소를 흘리는 모습은 보기 좋긴 하다.

“그리고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얼마든지 말씀하시지요.”

기도하듯 겹친 양손을 뺨에 댄 체 얼굴 한가득 미소를 흘리는 클로이.

그런데 이어진 내 말에 그녀의 웃는 얼굴 그대로 정지했다.

“트루스 클랜의 선아씨를 불러 주시겠어요?”

사치코를 대할 때는 이 정도까진 아닌데, 아무래도 그녀는 김선아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

현재 생존한 1차 수행자 수 29명.

현재 생존한 2차 수행자 수 512명.

뮤대륙에서 26일을 보낸 2차 수행자들은 1차 수행자에 비해 생존확률이 매우 높았는데, 그 이유는 트루스 클랜을 중심으로 제공되는 정보 덕분이다.

트루스 클랜은 정기적으로 퀘스트와 몬스터 정보, 돈을 벌기 좋은 사냥터 등, 다양한 팁을 엮어 책자로 만들었는데, 그것을 신규 수행자들에게 무상으로 배포했다.

덕분에 어스 클랜은 모르더라도 트루스 클랜을 모르는 수행자는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약삭빠르게 무상으로 배포한 가이드북 뒤에 트루스 클랜의 가입방법과 가입 시 혜택이 기재했다.

1. 1금화 상당의 초기 장비 지원.

2. 구제 요청 시 숙식제공.

3. 정보 공유를 통한 지구에서의 부 창출.

다른 것은 몰라도 가입하는 것만으로 1금화 상당의 장비가 지원된다는 것은 군침이 흐르는 대목.

덕분에 초기 비등비등한 세력을 자랑하던 어스 클랜과 트루스 클랜의 격차가 크게 벌어져, 동급 선상에 놓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트루스 클랜에서 초청이요?”

그런 클랜에서 솔로를 추구하는 수행자와 소규모 파티플레이를 이어가는 수행자들에게 회담을 요청하는 초청장을 보내왔다.

[수행자들의 미래를 위한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부디 참석하시어 의견을 더해주시기 바랍니다.]

트루스 클랜은 아무 이유 없이 허튼 말을 할 집단이 아니다.

“참석하시겠습니까?”

1서클의 수습 마법사이자, 최근에 오러포인트를 개화한 마검사 최은우는 정보길드에서 나온 심부름꾼의 물음에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는 결국 초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텔레포트 게이트의 왕복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추신까지 더해져서 마냥 무시하기 힘들었다.

“그럼 내일 정오까지 중립도시 발테르의 야외극장으로 모여주시면 됩니다.”

“내일이요?”

“네, 내일입니다.”

당장 내일 참석하라는 말에 당황했지만, 어차피 정해진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일이든 모레든 크게 상관없다는 생각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 유명한 트루스 클랜의 한국인 여성 클랜장을 볼 수 있는 건가?”

같은 한국인이기 때문일까?

최은우는 트루스 클랜의 클랜장에게 관심이 갔다.

그리고 다음 날.

-웅성. 웅성.

약속 장소인 중립도시 발테르의 야외극장을 찾은 그는 열심히 눈을 굴렸다.

최은우를 중심으로 200여 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클랜에 소속되지 않은 일반 수행자들만 모여 있었다.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복면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이는 현실에서 벌어질지 모를 트러블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당연히 최은우 역시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무대 위엔 덩그러니 교탁 같은 연설대가 놓여 있고, 그 뒤로 십여 명의 수행자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1회차 수행자들인가 봐.”

“장비들 보소.”

주변에서 수군대는 대로 복장이나 분위기를 봐서 클랜의 간부들이 분명했다

그중 여성이 없는 것을 보아 모두 클랜장을 기다리는 모양새다.

“왔나보다.”

잠시 후.

한 동양인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는 실루엣이 비칠 만큼 얇은 베일을 귀밑으로 두르고 있었는데, 눈과 얼굴의 윤곽만으로 상당한 미인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자리를 차지한 수행자 중 8할이 남성이었기에 여기저기서 감탄사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군대에 다시 온 느낌.

“응?”

그런데 트루스 클랜의 클랜장이 마치 비서처럼 누군가에게 이쪽으로 오시면 된다며 공손하게 손짓을 했다.

그리고 무대 위로 다섯 사람이 추가로 나타났다.

연예인 같은 화려함을 지닌 여성을 파트너처럼 옆에 달고, 한눈에 기사임을 알 수 있는 경호원 세 명을 대동한 젊은 사내가 클랜장의 안내를 받으며 중앙으로 향했다.

복면 비율이 굉장히 높은 극장에서 사내와 사내의 일행은 모두 맨 얼굴을 드러낸 상태였다.

그는 정치인이라도 되는 양. 길게 앉아 있던 트루스 클랜의 간부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연설대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쟤 뭐야.”

“원주민인가?”

“복장이 귀족 같은데?”

“하긴 기사도 대동하고 있으니.”

객석의 사람들은 그 사내에 대해 깊게 생각 않고 낮은 단상 위로 오른 여성만을 바라보았다.

-초청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트루스 클랜의 클랜장을 맡고 있는 한국인 김선아라 합니다.

소리 증폭 마법에 의해 극장에 널리 울려 퍼지는 고운 목소리.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이 김선아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최은우는 묘하게 김선아의 안내를 받은 남성에게 시선이 향했다.

어째서인지 알 수 없지만, 다들 클랜의 후원인 정도로 보는 그 남성이 수행자일지도 모른다는 근거 모를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미모의 파트너를 향해 사내가 미소 띤 얼굴로 말을 건네고, 이어서 객석을 살피던 여성이 그를 유혹하듯 찰싹 달라붙으며 귓속말을 건넸다.

최은우는 당황했다.

객석을 훑던 남성의 눈동자가 똑바로 자신에게 고정된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이 자리는 우리의 안전과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에 대해 의논하고자 만든 자리입니다.

분위기에 압도된 최은우는 애써 김선아에게 시선을 돌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여러분께선 아직 이 상황을 적응하는 단계인 만큼, 다른 일을 신경 쓸 여력이 없을 텐데요. 우리가 별생각 없이 판타지 세상을 여행하며 갖가지 보상을 얻는 순간에도 현실에선 위협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희는 여러분께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다들 김선아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이어서 자리에서 일어난 그 남성이 단상으로 다가왔고, 그녀는 어중간한 부분에서 말을 끊고 그에게 자리를 넘겼다.

-저는 트루스 클랜을 공식 후원하고 있는 케일론 왕국의 베르트 남작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그 사내는 클랜을 지원하는 귀족이었다.

하지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

-사실 이건 뮤대륙에서의 형식적인 지위일 뿐, 내용물은 여러분과 같은 수행자죠. 반갑습니다. 127일 차 한국인 수행자인 조지훈입니다.

갑자기 커진 웅성거림.

클랜 소속이 아니라면 수행자들 간의 소통 창구는 없다시피 하다.

때문에 이 자리에 모인 수행자 대부분은 지훈에 대해 잘 몰랐으며, 수행자 중에 귀족이 존재할 것이란 사실도 예상치 못했다.

최은우 또한 헛웃음을 흘리고는 이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작위뿐 아니라 개인의 영향력도 수행자 중 가장 클 게 분명하죠.

뭐야, 자랑하려고 자신들을 불러 모은 건가?

그러나 이어진 말에 극장은 침묵으로 물들었다.

-덕분에 저는 현실에서 특수부대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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