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53
23. 새싹 자르기 (2)
버터는 원심분리기로 우유에서 유크림(지방)을 분리하고 그 유크림을 차갑게 냉각한 뒤 숙성하여 강하게 섞어주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뮤대륙엔 원심분리기와 유크림을 버터로 만들기 위한 교반기가 없다.
그래서 우유를 통에 넣어 막대기를 두들기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유크림을 얻고 있는데, 사실 두 장비의 제작방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적은 초기 투자비용, 시장에 형성된 버터의 비싼 가격.
확실히 수행자로서 구미가 당기는 물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버터가 이미 기존에 존재하던 상품이기에 그 자체를 독점생산으로 엮을 수가 없다는 것.
그들이 시장을 선점하기 전에 작정하고 찬물을 끼얹으면 당할 수밖에 없단 뜻이었다.
더구나 내겐 그런 행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힘과 물량으로 압도할 자금이 있었다.
“그들이 만들려고 하는 상품이 뭔지 아는데, 혹시 정보길드에서 관심이 있을까요?”
내 물음에 클로이는 당연히 관심이 있다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대신 다른 나라에 비싸게 팔더라도 어스 클랜이 위치한 위스워드 제국에는 염가로 풀 생각입니다.”
“지훈 님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죠. 원하신다면 위탁 또는 공동 생산을 지원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위탁 생산도 나쁘진 않다.
그럼 단기간에 더 많은 상품들을 찍어낼 수 있고, 자금지원 없이 정해진 수익만 챙기면 되는 거니.
“수입분배는요?”
“그건 어떤 물건이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뮤대륙이 중세시대 수준의 문화라고 나무로 된 고리타분한 장비를 생각할지 모르지만, 원심분리기와 교반기 정도는 마탑의 기술로 얼마든지 현대식에 가깝게 제작할 수 있다.
어쩌면 제대로 된 공장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
나는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품목을 밝혔고 정보길드와 함께 버터 생산을 위한 협업 계약을 맺었다.
결과 위탁 생산이 아닌 동업으로 가닥을 잡았고, 즉시 사업을 시작했다.
***
어스 클랜에는 13명의 1회차 수행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13명을 중심으로 두 개의 파벌이 존재하는데, 어느 파벌에 속하냐에 따라 성향이 극명하게 나뉘었다.
하나는 강해지는 게 먼저라며 퀘스트 수행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무력파.
다른 하나는 클랜을 키워 수행자들 사이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가겠다는 권력파다.
어스 클랜에서 공통적으로 지훈의 존재를 부정하고 적대시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그의 발목을 잡아 주도권을 빼앗아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펼치는 인물들이 바로 이 권력파였다.
“빌어먹을.”
권력파의 핵심인물은 ‘웨이준’이라는 중국인으로 현재 어스 클랜의 리더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었다.
사실 강함으로만 따지면, 어스 클랜 결성에 큰 목소리를 낸 ‘나츠오’란 일본인과 ‘니콜라이’라는 러시아인이 가장 특출나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스스로 무력을 담당하겠다며 클랜 운영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자연히 리더의 역할이 웨이준에게 역할이 돌아갔다.
그가 클랜장이 될 수 있던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클랜 소속 1회차 수행자 중 중국인이 4명으로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웨이준은 위스워드 제국 카이트 영지에 위치한 작은 저택에 들어서며 투덜댔다.
영주가 내려준 작은 저택은 분명 안락했지만, 보호를 명목으로 여기저기 영지병이 배치가 되어 있어서 감시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영주성에 다녀온 웨이준이 욕설을 내뱉자, 저택에 대기하고 있던 1회차 수행자인 중국인이 다가와 물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자금지원이 훨씬 적어.”
“얼마인데요?”
“백금화 10개.”
“허…….”
백금화 10개라면 분명 엄청난 거금이긴 하다.
공짜로 얻은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거금.
하지만 카이트 자작과 어스 클랜이 계약으로 엮여 있는 관계인 만큼, 이득을 얻고자 한다면 그에 따르는 노력이 분명 필요했다.
“이제 만들어서 팔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어쩔 수 없지. 카이트 자작은 우선적으로 성과를 내길 바라니까. 대대적인 투자는 다음이 될 거야.”
“돈도 많을 텐데 엄청 쪼잔하게 구네요.”
“일단 클랜 운영비를 투자하는 수밖에 그리고 나츠오랑 니콜라이한테 지원 요청해봐. 그 두 녀석 돈 많잖아.”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클랜 운영비라고 해봐야 백금화 5개도 되지 않는다.
어스클랜은 분명 수행자들 사이에서 거대한 덩치를 형성하고 있지만, 주축인 1차 수행자 13명을 뺀 나머지 인물들은 클랜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생초보였으니 말이다.
“나츠오랑 니콜라이가 백금화 두 개씩을 보내왔습니다.”
“그럼 총 백금화 18.5개인가……. 그나마 이 정도면 설비를 놀리는 일 없이 지속적으로 운용할 수 있겠지.”
뮤대륙에서 지구 수준의 축산업을 기대할 순 없다.
더구나 우유를 얻기 위한 젖소는 그리 많지 않아서 상당 부분 양젖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럼에도 시장에 나오는 원유값이 상당했는데, 원유 1리터의 가격이 철화 3개씩이나 했다.
“백금화 18.5개면 우유를 6만 리터, 약 60톤 정도를 구매할 수 있겠군요.”
이 중 4% 정도의 용량이 버터가 되는 만큼, 60톤의 원유로 약 2.4톤의 버터를 얻을 수가 있다.
대량생산이란 말이 아까울 정도의 양이지만, 현재 버터 1㎏의 가격이 금화 한 개임을 생각하면, 무려 240개의 백금화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물론 운송료, 보관료, 각종 수수료 등을 빼면 절반 정도로 떨어지겠지만, 백금화 18.5개로 5배 이상의 순수익을 얻는다는 것은 현대적 상식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자작에게 떼어줘야 하는 돈도 있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럼에도 일당으로 백금화 10개는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설이 확충되고 사업의 규모도 커진다면 조지훈이란 녀석의 홍차에 밀릴 이유가 없겠네요.”
웨이준은 그건 힘들 거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버터도 홍차처럼 사치품의 기준에 드는 식품이지만 두 개는 입장이 전혀 다르다.
대량생산으로 인한 가격 인하 폭은 버터가 홍차보다 높을 수밖에 없고 운송과 보관이 어려워 중간 유통비가 비싸다는 큰 단점이 있다.
더구나 시장을 선점하지 못한다면 후발 주자의 추격을 용인할 수 있는 만큼 완전한 독점권을 쥔 홍차에 비교하긴 힘들었다.
그래도 어스 길드의 자금줄이 되긴 충분하단 것은 분명한 사실.
이후 자금만 갖춰진다면 버터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만큼, 상황은 더욱 나아질 것이다.
“분명 클랜장님의 목표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웨이준의 최종 목표는 금속화폐가 주를 이루는 뮤대륙에 ‘은행’을 설립하는 것.
자신들이 뮤대륙의 로스차일드 가문이 되는 것이다.
그 원대한 목표의 첫걸음이 버터라는 게 웃기지만, 뭐가 됐든 거금을 손에 넣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지. 우린 중국인이니까.”
엄한데 중화사상을 들고 오는 웨이준.
그러나 동료 중국인들은 당연하단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쿵!
“뭐라고요?”
이들의 원대한 꿈은 오래가지 않아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원유가격이 2배가 되다니요!”
“아, 왜 성질인가! 시장 나가보게, 그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우유가 있나!”
갑자기 그동안 잘 구매하던 농축산길드의 원유값이 2배로 껑충 뛴 것이다.
웨이준과 어스클랜의 수뇌부들은 크게 당황해야 했다.
대체 어찌 된 일이냐고 물어도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시세에 따라 원유를 구입했고, 계획의 절반 정도의 물량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버터를 만들어 내서 영주에게 판매를 위탁했더니.
“제기랄!”
카이트 자작이 대뜸 자신들의 면전에 대고 욕설을 내뱉었다.
아무리 귀족이 무서운 세계라고 하지만, 위해가 되지 않는다면 신탁에 의해 원주민이 수행자를 해할 수 없다.
더구나 웨이준은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동료들의 시선도 신경 써야 했다.
그래서 얼굴에 불편함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나섰다.
“대뜸 욕을 들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흰 말씀하신 대로 돈이 될 상품을 만들어서 왔는데요.”
냉장 아티팩트 상자에 담긴 버터의 양이 600㎏.
주중으로 600㎏의 버터를 추가로 만들어낼 예정인지라 이는 자금 회수를 위한 1차 생산분이라 할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백금화 60개의 가치를 가졌지만, 며칠 사이 원유 값이 폭등한 만큼 버터의 값도 자연히 올랐을 것이라 판단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이어진 영주의 말은 웨이준은 표정을 굳혔다.
“험한 말이 안 나오게 생겼는가! 지금 버터값이 하루 사이 절반으로 떨어졌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원유 값이 두 배로 올랐는데, 버터값은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어찌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카이트 자작은 신경질적으로 웨이준의 앞으로 직사각형의 나무 바구니를 던졌다.
바구니 안엔 레몬 빛의 무언가가 한가득 담겨 있었는데, 웨이준은 그게 버터임을 알아보았다.
영문을 모르는 그로선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버터가 어제부터 엄청나게 풀리고 있지. 나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네.”
범처럼 으르렁대며 자신을 내려보는 카이트 자작의 얼굴엔 짜증과 분노가 가득했다.
“우리 말고도 버터를 대량생산하는 곳이 생겼다는 겁니까?”
침착한 웨이준의 물음에 카이트 자작은 이를 갈았다.
“지훈 조 베르트 남작.”
순간 어스 길드의 수뇌부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카이트 자작은 친절하게 팔걸이를 내려치며 소리쳤다.
“너희가 적대한다는 홍차의 주인 말이다!”
“…….”
“그 녀석은 혼자서 작위까지 얻어가며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내 수중엔 어째서 덜떨어진 것들만 모인 건지! 처음부터 거금을 투자하지 않아 다행이로군!”
흘려들을 수 없는 비난이 이어졌지만, 지훈이 작위를 가진 귀족이 되었다는 사실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말을 잃은 수행자들을 바라보던 자작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그래도 손해는 아니니 좋다고 해야 할까?”
자작에게 떼어줄 수수료를 포함해 이것저것 빼면 순이익은 원가의 150% 정도.
기대치에 못 미쳐서 그렇지, 앞으로 이 가격이 유지되면 나쁜 장사는 아니었다.
자작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돌아가도록, 버터는 내가 처리하지.”
“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어스 연합은 버터 1차 생산분인 600㎏을 팔아 백금화 15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조지훈. 그 빵즈(한국인 비하)새끼가…….”
그가 버터를 생산해낸 건 단순한 우연일까?
물론 지구인 입장에서 버터란 특출난 물건이라 볼 수 없어서, 여윳돈만 있다면 시도해볼 만한 사업이다.
그런데 그가 소속된 케일론 왕국이 아니라, 위스워드에 벌써 버터가 풀린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었다.
분명 사전 조사 때만 하더라도 버터를 대량생산하는 곳이 없었는데, 단 며칠만에 전 세계에 판매할 만큼 버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건 사전에 정보를 수집해서 작정하고 방해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어.”
트루스와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는 지훈도 어스클랜의 성향을 알고 있을 터.
자신들을 배제하려고 드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보다 빠르게 버터를 대량생산해낸 거죠? 더구나 물량도 엄청난 것 같던데.”
“자금의 차이지.”
대기업이 후발 주자로 나섰음에도 물량으로 중소기업을 찍어 누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신도 진작에 사업을 시작하는 거였는데.
독점이란 단어가 이렇게 무섭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더구나 지훈의 경우 품목 선택도 좋았다는 것이 크게 한몫했다.
“클랜장님. 원유 값이 또…….”
“왜? 분명 축산 길드에서 원유생산량이 증가할 거라 했잖아?”
“그래도 수요를 따라갈 수 없다면서 오히려 값이 50%나 올랐습니다.”
어스 클랜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지훈은 집요하게 그들의 거점인 위스워드의 원유 시장을 현지 상인들을 활용해 철저하게 흔들었고, 버터 생산에 의한 수입은 계속 줄어갔다.
“젠장.”
웨이준은 답답함에 가슴을 쳐야 했다.
***
아드리안 마탑을 닦달한 덕분에 원심분리기와 교반기를 단 이틀 만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단순히 회전기능이 있는 아티팩트다 보니 제작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중간중간 조정과 버터 제작을 실험하느라 이틀을 더 소비했지만, 그럼에도 대량생산은 어스 클랜보다 빨랐다.
더구나 어스 클랜은 유크림을 분리하는 과정과 교반 과정을 수동으로 진행해서 마력을 동력으로 삼는 우리의 장비에 비해 생산력이 크게 떨어졌다.
이후 정보 길드와 협력하여 사업을 크게 키웠다.
각국에 지부를 두고 버터 생산을 궤도에 올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일주일.
어스 클랜을 방해하기로 마음먹고 11일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중세시대의 산업 수준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속도.
그러나 우린 이를 해냈는데, 이 모든 것은 마법의 존재 덕분이었다.
텔레포트 게이트가 거리에 제한을 없애고, 마력을 동력으로 삼은 아티팩트는 일부 공정을 자동화시켰다.
제대로 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것이다.
-지구시각 6월 5일, 뮤대륙 122일 차.
“카이트 자작과 어스 클랜의 관계가 많이 틀어졌습니다.”
“벌써요? 겨우 상품 하나에 싫증을 내다니, 인내심이 부족한 인물이네요.”
현재 버터값이 가장 싼 국가는 어스클랜이 활동하고 있는 위스워드 제국이다.
당장 우리가 버터를 대량생산한다고 가격이 단번에 절반이나 떨어질 이유가 없다.
이득을 도외시하며 작정하고 싼값에 풀어서 버터값이 폭락한 것이다.
덕분에 위스워드에선 순이익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지만, 위스워드를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 크게 이득을 챙기고 있었다.
돈 냄새에 예민한 몇몇 상인은 위스워드에서 싼값에 버터를 구매해 이웃 국가에 팔려 했으나, 상온에서 운송이 힘든 만큼 냉장 아티팩트가 필요하기에 시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스 클랜에서 머지않아 생산을 중단할 것 같습니다.”
경쟁자가 없어지면 그때 가서 슬금슬금 값을 올리면 되지.
뮤 대륙은 아직 덤핑에 대한 제재조항이 없어서,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찍어 누르기 아주 편리한 곳이다.
현대인 감성으로 보면 욕밖에 나오지 않는 사회지만, 불합리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귀족들이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기도 했다.
즉, 아주 귀족다운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요즘 버터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군요.”
버터는 독점 생산권을 지닐 수가 없어서 내 상회와 정보 길드의 공동 사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엔 케일론 정보길드 뿐만 아니라, 타국의 정보 길드도 엮여서 이익을 분배하고 있다.
독점 생산하는 것보단 수익은 크지 않지만, 정보 길드와 손을 잡으니 제조 공법이 제법 잘 지켜지고 있었다.
“아마 그들은 카이트 자작과 어스 클랜이 버터에서 손을 떼면 거액을 들여 제조 공법을 사들이려 할 겁니다.”
“그럼 그때 가서 어스클랜의 제조 공법을 공짜로 공개하도록 하죠. 누구든 시도할 순 있겠지만, 우리와 염가 싸움에서 이겨야 할 겁니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어스 클랜의 이득을 두고 볼 생각이 없다.
이미 손익분기점은 넘겼고, 다른 사람들이 달려들면 이익이 줄뿐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머진 시장의 흐름에 맡기면 되는 일이 아니겠나.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클로이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어스 클랜이 적대할 상대를 잘못 골랐네요. 괜히 이런 악마 같은 분을 건드려서.”
앞으로 그들이 하는 사업엔 하나하나 다 끼어들 생각이다.
반면 그들은 자금도 도움을 줄 배경도 없어서 내가 하는 사업엔 끼어들기 힘들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독초를 키울 필요가 없지. 고개를 내밀면 짓밟아서 제거하면 되는 거야.’
이것이 내 생각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 낙오자(뮤대륙에서 죽은 사람)로 만들고 싶지만, 아직 카이트 자작의 어스클랜 보호 선언이 철회된 것은 아니기에 무턱대고 일을 저지를 순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정리된 상태라 볼 수 있다.
이번 일로 어스 클랜과 나 사이의 골은 더욱 깊어졌지만, 예전처럼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내진 못할 것이니.
머리가 장식이 아니라면 이젠 체급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