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48
21. 망자의 던전 (1)
요즘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졌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부분은 개인 수련이다.
퀘스트를 위한 사냥에 나서도 하루 6시간 정도를 투자할 뿐, 눈을 뜨고 자기 직전까지 가장 긴 시간을 쏟는 건 역시 마법과 오러의 수련이었다.
수련 시간은 대략 마법이 8, 오러가 2 정도.
하지만 마검사(마창사)의 특성인 서클, 오러 불균형에 의한 신체 붕괴 때문에 하나만 집중 성장시킬 순 없다.
그래서 일단 서클이 높아지면 다음은 오러를 집중적으로 수련할 수밖에 없다.
단지 마법이 체질적으로 더 맞아서 자신있는 종목에 먼저 시간을 투자하는 것뿐이다.
두 개를 공평하게 병행하면 좋겠지만, 뮤대륙의 특성상 동시 성장보단 하나라도 먼저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편이 전투력이 급등하는 만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펄럭.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식당 테라스에 앉아 마도서를 읽던 나는 잠시 후 그것을 덮으며 두 눈을 비볐다.
대체 몇 번째 읽는 건지 모르겠다.
덕분에 4서클의 이론은 완전히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상태.
이제 벽을 올라서기 위한 계단을 발견하기만 하면 되는데, 쉽지 않았다.
‘그냥 퀘스트를 집중 클리어 할까? 아니야, 역시 이게 나을 것 같다.’
처음엔 수련과 퀘스트의 빠른 진행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
현재 나는 퀘스트를 5일에 하나씩만 클리어하고 있는데, 수련 시간을 줄이면 5일 동안 2개를 클리어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부턴 능력치 몇 개와 스킬 몇 개에 전투력이 급등하는 단계는 지났기에 기본 기량 향상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막상 퀘스트 진행 속도 보면 나보다 빠른 사람도 없으니.’
클로이가 건네준 수행자들의 몬스터 사냥정보에 의하면 1회차 수행자 중, 나보나 빠르게 퀘스트를 진행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의외의 사실.
수위에 드는 드림워커들도 나처럼 수련에 시간을 쏟는 건가 싶어서 보면 또 그게 아니었다.
이에 대해 클로이는 아주 간단하게 답을 내려주었다.
‘개인 전투 능력의 차이.’
확실히 맞는 말이다.
김선아만 해도 익스퍼트 초급으로 수위에 드는 수행자지만, 나와의 전투력 차이는 굉장히 컸으니까.
나는 일찍이 완료한 트롤 10마리 처치 퀘스트를 김선아는 이제 막 통과했을 정도다.
전투 능력은 곧 퀘스트 수행능력으로 이어지고.
서로 체감하는 퀘스트의 난이도가 크게 차이 나게 된다.
때문에 나는 뮤대륙 체류기간이 끝나갈 때에 맞춰서 퀘스트를 깨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5일 동안 매진해서야 퀘스트를 깨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써 개인 수련에 투자하는 시간에도 큰 차이가 발생하게 되어, 그들과 나와의 간격은 쉬이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방심은 금물.’
꾸준히 수행자들의 퀘스트 진행 속도를 살피는 것은 필수다.
필요하다면 사람을 동원해 방해하는 것도 방법이 되려나?
“으!”
나는 작게 기지개를 켜며 광장 중앙에 위치한 시계탑을 바라보았다.
[11:50]
현재 내가 위치한 곳은 일전에 수행자들을 긴장으로 몰고 갔던 중립도시 발테르의 중앙 광장.
그곳에서 김선아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응?”
그때.
얼굴에 베일을 복면처럼 쓴 모델체형의 여인이 광장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게 보였다.
그러다가 그녀는 카페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며 적지 않게 놀라고 말았다.
‘어떻게 알아본 거지?’
이곳은 카라스 마을이 아닌지라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복면 대신 얼굴변형 스킬을 사용한 나다.
더구나 얼굴도 서울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와도 달랐는데, 그럼에도 똑바로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것을 보니 살짝 닭살이 돋았다.
나는 바뀐 얼굴 위로 복면을 쓰며 헐레벌떡 카페로 들어온 김선아를 맞이해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어, 어서 오세요.”
어울리지 않게 말까지 더듬은 나는 그녀를 앞자리에 안내했다.
“그런데, 어떻게 멀리서 절 알아본 겁니까?”
“딱 보면 알죠. 스킬로 얼굴은 바꿀 수 있지만, 특유의 분위기는 바꿀 수가 없죠.”
그러고 보니 태영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앞으로는 행동 연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얼굴변형 스킬을 알고 있군요.”
“저도 원래 구매하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마력이 지속적으로 소모된다는 설명을 보고 포기했죠. 그냥 마스크나 써야겠다고요.”
밝게 웃으며 내 안색을 살피는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우상을 쫓아다니는 팬과 다름이 없었다.
대놓고 호감을 표하는데 부담스러울 지경.
아마도 안개 속에서의 활약이 그녀에게 깊이 각인된 모양이다.
당장 여유가 없어 누군가와 정을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나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여러모로 편리하게 작용할 것 같다.
“카라스 마을의 지훈입니다.”
자기소개에 그녀는 살짝 놀라며 괜찮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적대 세력엔 모두 까발려진 내용이다.
머지않아 밝혀질 이름 한번 대고 아군이 될 그녀의 신뢰를 공고히 할 수 있다면 매우 큰 이득이지.
“저를 배척하겠다는 이들과 달리 응원해 주시는 분인데요.”
그에 김선아는 눈에 띠게 기뻐하며, 나를 배척하겠다는 어스 클랜에 대해 욕을 했다.
은혜를 모르는 비겁한 놈들이라니, 결국 그들이 원하는 건 뮤대륙에서의 이권이라느니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소속된 트루스 클랜은 나를 지지한다고 밝혔는데, 나는 길게 잴 것 없이 그녀에게 돈주머니를 건넸다.
“이게 뭔가요?”
“개인적으로 여러분을 지원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내용물을 살펴본 그녀는 경악했는데, 그 안엔 백금화 100개가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너무 과분합니다.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차라리 저희 클랜에 들어오시는 게…….”
“제가 트루스에 들어가면 완전히 적대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딱 지금의 체제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트루스에서 그들의 노골적인 공격을 막아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부탁한다는 투로 말하자, 그녀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이건 진짜 너무 부당하네요.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 어째서 자신의 신변을 걱정해야 하는 거죠?”
“시간이 지나면 오해가 해소되겠죠.”
김선아는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내뱉은 말을 100% 믿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한껏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위선적인 대사를 내뱉었다.
그래도 그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원래 성향이 그런 사람이라며 이해를 해주었다.
“이 돈은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이게 없더라도 우리 트루스는 지훈 님의 편이니까요.”
하지만 너무 오버를 했는지 돈을 받기 더욱 꺼리는 그녀 때문에 돈주머니를 사이에 두고 양보에 양보를 거듭해야 했다.
결국, 돈을 찔러주는 데 성공한 나는 길게 대화를 나눌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벌써 돌아가십니까? 식사라도.”
“우리 마을 신입 드림워커들을 제자로 들였거든요. 덕분에 상당히 바빠져서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녀는 후배 수행자들을 키우라는 퀘스트를 받은 적이 없는지, 내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어울리지 않은 대사를 계속 내뱉어서 온몸이 근질거리는 느낌이다.
얼른 자리를 벗어나려 했는데, 뒤늦게 한 가지 당부할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개인적으로 수행자들을 모으는 것도 좋지만,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박 성씨의 방식은 너무 눈에 띄거든요.”
“안 그래도 쓸데없는 짓을 해서 한소리 해줬습니다.”
하지만 박성은 한소리 듣는다고 물러날 위인이 아니다.
나는 그녀에게 미래 신문의 내용을 오픈했다.
“제가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미래 정보 중에, 자칭 초능력자 박모씨가 정부에 구금되어 인체 실험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네?”
“그러니까, 부디 조심하십시오. 그처럼 경솔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선아씨의 안전이 위협받을 테니까요.”
“다, 당부 감사합니다.”
이어서 눈웃음을 흘린 나는 고개를 돌린 후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역시 사람 대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
***
고든과 함께 마탑에서 하루를 묵고 카라스 마을로 돌아온 내게 예상치 못한 정보가 전달되었다.
“망자의 던전이요?”
“네! 함께 갔던 바트 아저씨는 안에 못 들어가더라고요.”
“수행자 전용 던전입니다.”
게임 같은 시스템 속에 생활하고 있지만 설마 던전까지 등장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더구나 보상이 성과에 따르며 포인트까지 지급된다는 사실에 무조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마 이 두 사람이 이런 걸 물어 올 줄이야.
나는 감탄하며 두 사람을 한껏 치켜세워줬다.
‘의외로 쓸모 있잖아?’
그에 사치코는 배시시 웃고, 태영은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그런데 용병 바트가 던전은 자신이 발견했으니, 어느 정도 보상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일단 지훈 님께 알려드리고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처리할게요.”
용병이 원래 돈에 따라 움직이는 만큼, 어쩌면 당연한 요구라 생각한다.
물론 살짝 배짱부리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그 정돈 넘어가 줄 만한 여유가 있었다.
“아직 던전에 들어가 보진 않았죠?”
“네, 난이도가 ‘중’으로 되어 있어서…….”
망자의 던전.
이름만 들어선 언데드형 몬스터가 등장할 것 같다.
그리고 퀘스트 난이도가 중이면 문제없이 깰 수 있지 않을까?
“내일 셋이서 같이 가죠.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항상 퇴로를 확보한 채 조심을 기하면 괜찮겠지.
안일한 판단 같지만 어떤 돌발상황이 되더라도 나는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문제라면 덜컥 중급 퀘스트를 받은 이 두 명의 초보들이다.
“네!”
활기찬 사치코와 기대감 어린 표정의 태영.
나는 그런 둘의 모습을 만족스레 바라보았다.
‘아무리 초보라 해도 장비빨에 마력방출 스킬도 있으니 쉽게 당하진 않겠지.’
***
[망자의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마력과 운이 1 향상됩니다.]
태영과 사치코가 말한 대로 던전에 다가가니 위와 같은 메시지와 함께 퀘스트가 떠올랐다.
[퀘스트 발생]
등급: 중
내용: 망자의 던전 코어를 찾아 파괴하라.
보상: 보상카드(기여도에 따른 차등 지급)
포인트(기여도에 따른 차등 지급).
보물상자(기여도에 따른 차등 지급).
아주 흥미로운 상황.
난이도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던전이란 시스템은 어쩌면 성장을 위한 새로운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상으로 걸려 있는 보물상자란 것이 기대된다.
모름지기 던전 하면 그 속에 잠들어 있는 보물을 떠올리게 마련이 아닌가.
“들어가죠.”
나는 두 사람을 이끌고 던전에 들어섰는데, 겨우 한 걸음 차이로 주변의 온도가 뚝 떨어졌다.
[지도 기능이 제한됩니다. 몬스터 탐색 거리 30미터]
지도는 수행자에게 편리와 안전을 제공하는 가장 기본 기능 중 하나.
그런데 그 기능이 일부 제한되자 사치코과 태영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나는 두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 주변을 라이트 마법으로 밝히며 말했다.
“지도 기능이 없어도 별도의 탐색 능력이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역시 스승님!”
양손 엄지를 치켜세우며 호들갑을 떠는 사치코.
죽을 뻔했던 경험을 잊은 건지, 아니면 나를 믿는 건지 긴장감 없는 모습에 미간이 좁혀졌다.
‘차라리 너무 긴장하는 것보단 나으려나?’
항상 긴장감을 유지하는 태영과 비교가 되는 모습이다.
-후우웅!
입구를 통해 들어 오는 거친 바람이 우리를 더욱 안으로 떠미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리고 겨우 10미터 정도 전진했을 뿐인데, 입구의 햇빛이 굉장히 멀게 느껴졌다.
나는 일단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탐색하기로 했다.
굉장히 습하고 서늘한 환경.
다행히 내부가 좁지 않아서 싸우는데 지장이 없어 보인다.
만약을 대비해 숏소드를 챙겨오긴 했지만, 던전이 생각 이상으로 넓어서 그냥 창을 쓰면 될 것 같다.
‘마력 탐색.’
혹시 모를 함정에 대비한 마력 탐색.
하지만 머릿속으로 수백 개에 달하는 탐색 결과가 새겨지자 크게 움찔거려야 했다.
‘언데드 몬스터들이 마력탐색에 걸리는 걸까?’
이게 함정들이라면 이 던전은 망자의 던전이 아닌 트랩 던전이란 이름으로 불렸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마력탐색을 사용하니, 몇 개의 마력이 움직인 것을 보며 몬스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동해요.”
혹시 모를 기계식 함정에 대비해 실드를 펼친 나는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전진했을까?
“조우전이 되겠네요.”
“네?”
마력탐색으로 5개의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챈 나는 경고했고.
탐색 거리가 30미터로 짧아진 지도에 뒤늦게 붉은 점이 표기되었다.
-쿠에에엑.
이어서 가시거리에 들어온 몬스터의 생김새가 또렷하게 눈에 새겨졌다.
[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