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47
20. 사제 (2)
작위?
그런 소문을 듣긴 했지만, 그게 진짜로 주어진다고?
3서클 마법사겸 오러 익스퍼트라는게 특수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작위가 주어지기엔 약하지 않나 싶다.
아무래도 국왕이 홍차를 즐긴다고 했는데, 그게 높게 평가된 걸까?
“단승 남작이 되면 지금과 뭐가 다르죠?”
내 물음에 클로이는 말을 말라는 듯 양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완전히 다르죠. 단승 작위라곤 하나 분명 폐하로부터 작위를 하사받은 귀족이니까요. 귀족회의에 참석할 수 있으며 폐하께 알현을 신청할 자격이 있는 완전한 귀족이거든요.”
그게 좋은 건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긴, 지훈 님께선 극도의 실리주의자시죠. 계급이 중시되는 이 사회에서 국왕 폐하를 만날 자격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인간으로서의 등급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시면 되죠.”
등급이 다르다라.
“길 가다가 마음에 안 드는 평민을 죽이더라도 벌금 정도로 끝나고 어떤 범죄 행위를 저지르더라도 왕실 감사청에서만 조사가 가능합니다. 폐하를 제외하면 지훈 님께 죄를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죠. 심지어 귀족의 처형은 반드시 폐하의 인가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대귀족이라 해도 함부로 처형할 수 없다는 뜻이죠.”
그게 타국에서도 통용되면 좋을 텐데, 당연히 나라님이 다르니 안 되겠지.
“그리고 땅을 사고팔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다는 것이 특징이죠.”
이야기 들은 적이 있다.
평민은 절대 자신의 땅을 가질 수가 없으며, 영지민은 영주의 재산이기 때문에 자유민이 아닌 이상 함부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도 없다고 말이다.
“땅을 사서 그 위에 마을을 세우면 저도 영주 행세를 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맞습니다. 그리고 일정 규모에 다다르면 정식영주로 서임 받을 수도 있죠. 이 경우 단승 작위가 세습 작위로 바뀌게 됩니다. 물론 3대에 한해서요. 하지만 마을이 영지로서의 규격에 미달 될 경우, 작위는 세습되지 않고 땅과 마을은 왕실로 헐값에 매매가 되죠.”
마을이 영지가 되기 위한 최소 조건은 주택 200호에 인구 1000명, 농지 약 16만 평, 신전과 행정청, 영주성이 존재해야 한다.
웬만한 재산으론 어림도 없는 짓이라는 거다.
이후로도 그녀는 이것저것 거창하게 설명을 했지만, 그다지 와 닿는 것이 없었다.
국왕이 아닌 이상 누구도 나를 대놓고 해할 수 없다는 것과 토지구매건을 빼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작위를 받음에도 태연자약한 내 모습에 그녀는 이건 어떠냐는 의미심장한 투로 말했다.
“또한 단승 작위라해도 남작은 5대 작위 귀족인 이상 공식적으로 기사를 서임하고 개인 사병을 둘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비록 영주가 아닌지라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평민과 가장 큰 차이가 있는 부분이죠.”
“그 부분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단승작위 남작이 서임할 수 있는 기사의 수는 5명.
거느릴 수 있는 사병의 수는 총 100명이다.
기사와 사병들은 귀족의 대리인이기에 공격할 경우 해당 귀족을 공격한 것과 같은 처우를 받는다.
비록 기사를 제외한, 사병은 다른 영주의 도시나 마을에 들어설 때 숫자가 제한된다는 점이 있지만 분명 큰 권리임은 분명하다.
그러면서 클로이는 한 가지 예로 들었는데.
얼마 전 단승 작위 귀족의 사병 2명이 술김에 작은 용병단과 시비가 붙어 칼부림을 벌였다고 한다.
그로 인해 용병단에선 3명이 죽고 사병들은 경미한 부상만 입었다.
그럼에도 체포된 것은 오히려 살아남은 나머지 용병들 쪽.
사병 측에선 담당 귀족이 벌금 몇 푼 낸 게 끝이었다고 한다.
현대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것이 신분 사회가 가져오는 부조리였다.
인간의 존엄보다 계급이 우선시되는 사회의 일면이다.
“귀족이 무섭긴 무서운 존재네요.”
“당연하죠.”
뮤대륙인으로 구성된 나를 주군으로 섬기는 세력.
확실히 이편이 드림워커들보다 신뢰가 간다.
비록 이 사병들은 지구로 끌고 갈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내 힘이 강해진다는 뜻이니.
“제가 귀족이 되면 그 어스 클랜이란 곳의 주축 멤버들을 제거해도 문제가 될까요?”
“더 큰 문제가 되죠. 지훈 님께서 폐하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지 않는 이상 다른 국가를 공격할 순 없습니다.”
그 말은 암묵적인 동의가 있으면 상관없다는 뜻이군.
하지만 당장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어쨌든 귀족이라는 게 허울이 아니란 것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후 우린 함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현재 나를 제외하고 살아남은 1차 수행자의 수는 총 30명.
이중 13명이 어스 클랜이며, 김선아를 포함한 14명이 트루스 클랜 소속이다.
나머지 3명은 클랜에 소속되지 않은 독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2차 수행자 중 상당수가 두 개 클랜에 몰리면서, 각각 100명이 넘는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이런 집중 현상은 계속 이어질 듯하다.
아직도 클랜에 소속되지 않은 살아남은 수행자의 수가 거의 700명에 달한다고 하니 세력도는 언제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초기 선점 클랜이 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태영은 트루스 클랜의 제안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나중에 사치코와 태영이 완전한 내 사람으로 인지된다면 둘을 적극 지원해서 제3의 클랜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
앞으로는 매달 1천 명 단위로 새로운 수행자가 등장하며 스케일이 커지니 머리를 잘 굴려야 할 것이다.
“트루스 클랜의 김선아요?”
나는 현실에서 했던 약속대로 김선아와의 대면을 위해 그녀에게 메시지를 전달해달라고 요청했는데, 클로이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네, 내일 중립도시 발테르에서 정오에 만나자고 사람 좀 보내주세요.”
“지훈 님 주변엔 사치코란 모자란 여자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사치코가 들으면 슬퍼하겠구만.
마치 나와 특별한 관계라도 되는 척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은 나를 헷갈리게 한다.
이것도 연기인 건지, 아니면 진짜인 건지.
아무래도 정보 길드원이라서 사적인 신뢰를 주진 않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다.
“수행자들 사이엔 별도 의사소통 수단이 있다는 건 파악하고 있지만, 소외 받는 느낌인데요?”
뚱한 표정의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작게 실소를 흘리며 클로이의 옆머리를 스윽 쓸어 넘겼다.
“머리를 가지런히 묶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내 돌발 행동에 클로이가 크게 움찔거렸다.
그리고 나는 항복하듯 양손을 들어 올리며 뒤로 물러났다.
“또 올게요. 정보 잘 전달해 주세요.”
답이 없는 그녀에게서 등은 돌린 후 가벼운 걸음으로 정보길드를 나섰다.
방금 전 돌발 행동은 클로이의 미인계에 대한 사소한 복수였다.
***
“지훈 스승님 너무 멋지지 않아?”
가장 힘들 때 손을 내밀어서일까?
사치코는 완전히 지훈에게 매료가 된 모습이다.
“멋진 분이지.”
태영은 그녀의 말에 기계적으로 대답하며, 안개 속에서 트롤을 쓰러뜨리던 마창사를 떠올렸다.
그때, 위기 속에 모습을 드러낸 마창사의 존재감은 남자가 봐도 반할 만큼 멋있고 강인해서 머릿속에 각인된 채 좀처럼 잊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훈을 볼 때마다 그런 마창사의 모습이 겹쳐져 보이는 것 아니겠는가.
“마스크를 안 쓰시면 더 좋을 텐데.”
“그분도 사정이 있으신 거야.”
사람에겐 느낌이란 것이 있다.
가끔가다가 얼굴이 아닌 뒤통수만 봐도 누군지 알아채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태영은 사치코 몰래 지훈에게 물었고.
‘내가 그 마창사 맞습니다.’
쓴웃음을 흘리며 답하는 그의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었었다.
‘그때 안개 속에서 김선아씨의 말을 들어서 알겠지만 수행자 사이에는 저를 적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딴에는 모두를 살리기 위해 독하게 임무를 수행한 것인데, 리바운드가 되어 돌아왔네요.’
‘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때 독하지 않았다면 저를 포함한 1차 수행자들은 오늘을 맞이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덕분에 현실에서 해코지라도 당할까, 여러분 앞에서도 얼굴을 감출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죠.’
고고한 한 마리의 범.
태영이 지훈을 보며 떠올린 인상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생명의 은인임에도 적대시 받는 신세가 되었으나 그는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비록 자신이 지훈과 사제관계를 맺게 되었지만, 인간으로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덕분에 한편으로 화가 났다.
구함을 받은 주제에 지훈을 매도하고 질투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에.
‘은혜도 모르는 새끼들.’
때문에 지훈이 사람을 돕는 일을 망설이게 되었다고 판단한 태영이었다.
뒤늦게나마 자신들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지.
자신이 잘못한 게 없음에도 괜히 지훈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태영은 사치코 이상으로 지훈에게 빠져 있는 상태였다.
설마 지훈의 이야기에 과장과 거짓말이 포함되어 있으며, 어차피 정체가 까발려진 마당에 인심 쓰듯 자신이 누군지 밝혀 이미지 메이킹을 한 것이라곤 판단할 수가 없었다
“용병 아저씨들이 도와주시니까, 금방 잡네요.”
“그럼요, 지훈 님과 함께 트롤 사냥도 다녔던 몸인데 고블린 정도야.”
두 사람은 지훈이 붙여준 바트 일행의 도움으로 한때 위기를 맞이했던 고블린 5마리 사냥을 순식간에 끝내고, 고블린 50마리에 홉고블린 5마리 사냥에 나서고 있었다.
원래라면 꿈도 못 꿀 진행 속도지만, 오크도 어렵지 않게 처리하는 용병들이 지원을 해주니 두 번째 퀘스트도 절반 이상 수행한 상태다.
“아쉽네, 막타만 카운트가 되니, 결국 두 배로 잡아야 하잖아.”
“이게 어디냐.”
“그건 그래. 너무 배부른 소리지.”
자금지원 한 번에 안전과 성장 속도가 모두 급격히 향상되었다.
신입 수행자 중에 이렇게까지 집중적인 지원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각자 고블린 사냥 수를 30마리씩 채웠을 때, 하늘 위의 태양이 꺾인 것을 보며 숲속에서 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가기 전에 미리 홉고블린 출몰지를 살피고 가죠.”
나름 머리를 굴린 태영의 제안에 사람들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홉고블린 출몰지가, 그물 덩굴 숲이었지?”
“그렇다고 들었어.”
“이쪽으로 해서 계곡 따라 올라가면 될 것 같네요.”
지도 기능이 있는 태영의 이야기에 주로 켄트협곡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평온의 숲 지리를 잘 모르는 용병들은 묵묵히 따랐다.
이미 이들이 지훈처럼 몬스터의 접근을 사전에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라, 용병들도 숲속 이동을 크게 걱정은 안 했다.
“어? 이쪽 길론 못 올라가나?”
그러나 지도의 평면적인 정보에 익숙하지 않은 태영은 길을 잘못 들었고, 낮은 절벽을 마주 보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망자의 계곡]
지도를 보니 방금까지 없던 지명이 나타났다.
심상치 않은 지명에 사치코가 흠칫 놀라고, 태영이 얼른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바트가 한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저쪽에 동굴 같은 게 있는데요.”
교묘하게 나무 틈새에 가려진 위치.
그곳에 갱도처럼 목재로 입구가 보강된 작은 동굴이 위치해 있었다.
[망자의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마력과 운이 1 향상됩니다.]
“망자의 던전?”
태영과 사치코에게 동시에 떠오른 메시지.
던전이란 말에 바트가 반색하며 걸음을 옮겼다.
“뭐, 뭐야? 다가갈 수가 없는데?”
그런데 바트와 용병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가로막은 것처럼 입구 근처 5미터 이내에 접근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태영은 혹시나란 생각으로 동굴을 향해 다가갔고.
“어?”
“뭐지? 어떻게 들어갔어요?”
바트가 다가가지 못하는 경계점을 넘어 동굴 입구를 마주할 수 있었다.
‘수행자들을 위한 던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퀘스트 발생]
등급: 중
내용: 망자의 던전 코어를 찾아 파괴하라.
보상: 보상카드(기여도에 따른 차등 지급)
포인트(기여도에 따른 차등 지급)
보물상자(기여도에 따른 차등 지급)
[던전 퀘스트 부여 후 10일 이내 코어를 파괴하지 못할 경우 자동실패가 되며 재입장이 불가능합니다.]
[해당 던전은 1회성으로 코어 파괴 시 자동 폐쇄됩니다.]
이건 자신들의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조건 지훈에게 알려야 하는 내용.
태영은 퀘스트를 보는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