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46
20. 사제 (1)
카라스마을 고든의 저택.
‘안 어울리게 너무 웃었네.’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지는 거면 몰라도 영업용 억지 미소를 짓는 건 은근히 피곤하다.
내게 백금화 세 개씩을 받고 신이 나서 장비를 구입하러 간 사치코와 태영.
아마 그들 입장에선 내 도움이 큰 호의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천만에…….
단순한 호의 때문에 다른 드림워커를 도와줄 만큼 무르지 않다.
신뢰를 주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 속에 만난 지 며칠 안 된 그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솔직히 같은 마을의 드림워커는 부담스럽기만 할 뿐이다.
내가 그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클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터다.
그전까지 다른 드림워커들과의 연계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김선아가 말했던 것처럼 앞으로 세력형성이 필수가 된다면, 만약을 대비한 수족이 필요하다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김선아를 만나고 태영과 사치코를 거둬들이기로 한 것이다.
‘역시 사람 대하는 게 제일 힘들어.’
회사에서 잘리고 가장 좋았던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는 것.
그런데 흘러가는 상황은 나를 마냥 아웃사이더로 살게 두지 않았다.
아니, 친하게 지내는 뮤대륙인은 많으니까 무조건 아웃사이더라곤 볼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냥 성격대로 적대 세력은 모두 정리해버리는 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만.
이제 함부로 그 방법을 쓰기도 힘들어졌다는 게 문제였다.
‘지훈 님, 안녕하십니까. 클로이 정보원의 전언입니다.’
그것은 내가 저택을 나설 때 있던 일이었다.
클로이가 보낸 정보 길드원이 은밀히 다가와 이와 같은 내용을 알려준 것이다.
‘지훈 님의 정보가 팔렸답니다.’
그 말은 내가 정보 보호로 걸어놓은 금액보다 50%비싼 돈을 주고 정보를 구입한 인물이 있다는 뜻.
그리고 그 정보를 산 인물에 관해서 묻자, 느닷없이 백금화 75개를 요구했다.
한마디로 드림워커가 아닌 이 세계의 부호가 내 정보를 산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달리하여 내 정보를 알고 있는 드림워커가 있는지를 물었고, 미리 준비를 해왔는지 한 클랜의 정보가 흘러나왔다.
그 정체는 바로 김선아가 말했던 나를 배척하겠다는 수행자들의 세력인 ‘어스 클랜’.
즉, 해당 클랜의 뒤를 봐주는 존재가 생겼다는 말이다.
나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남작의 경우처럼.
그도 귀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로 인해 수행자들이 돈이 된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르지.
그리고 정보 길드가 해당 귀족에게 경고를 받았는지 앞으로 수행자들의 암살을 도와주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아직 내가 그 귀족의 의지에 반하며 도와줄 정도의 위치가 아니란 뜻일까?
뮤대륙의 원주민은 신탁 때문에 무턱대고 수행자를 해코지할 수 없지만, 마찰이 생긴다면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는 지침이 있다.
아무리 타 국가라 해도 귀족과 대치하는 건 부담일 수밖에 없다.
‘클로이 정보원이 지훈 님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미심장한 말을 마지막으로 정보 길드원은 사라졌고, 나는 관자놀이를 주물러야 했다.
나의 존재를 위협으로 여기는 인물들도 대가리가 달려 있다면 무언가 대응을 해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설마 다 같이 한 귀족에게 빌붙을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
분명 수행자들은 소속 국가가 다를 텐데, 그 귀족이 모두를 커버할 수 있다는 걸까?
“내 정체가 밝혀진 건 꽤 큰 부담이지만.”
어차피 정보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수밖에 없었다.
언제고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란 건 예상했다.
다만 조금 빠른 게 거슬리는 거지.
‘최근 큰돈을 벌고 있는 수행자.’
‘정보 수집이 되지 않는 카라스 마을의 수행자.’
힌트는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정체가 밝혀진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얼굴을 감춰서 현실에까지 불상사가 이어지는 일이 없게 하는 것뿐이었다.
‘홍차와 시가가 국립 마탑 간의 거래만으로 유통이 되고 있어서 다행이다.’
아직 판매량이 많진 않지만, 케일론 왕립 마탑에서 홍차와 시가의 복제판매를 막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여 각국의 국립 마탑과 계약을 맺었다.
덕분에 아무리 수행자와 귀족이 손을 잡았다 쳐도 당장 홍차와 시가를 생산하긴 힘들 것이다.
내가 누누이 선점을 강요하긴 했으나, 케일론 왕립 마탑의 행동력엔 박수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탑과 손을 잡은 건 진짜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75백금화를 사용하면 당장에라도 ‘어스 클랜’이란 곳의 뒤를 봐주는 귀족이 누군지 알 수 있지만, 굳이 그 귀족이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거금을 들일 필욘 없다.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되어 정체를 밝혀 올 게 뻔하니까.
‘어쨌든 상황이 귀찮게 됐네.’
당장은 내게 위해를 가하진 못하겠지만, 그들의 행동을 견제하기 위해 김선아를 끌어들이고 자금지원을 할 생각이다.
그럼 그녀의 세력이 알아서 처리해주겠지.
“스승님, 다녀왔습니다!”
사치코와 태영이 제대로 된 방어구와 무기로 무장을 한 채 저택에 들어섰다.
여전히 쇠뇌를 기본 무장으로 한 사치코와 달리, 태영은 기사처럼 플레이트 아머에 방패, 브로드 소드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근심을 떨쳐낸 사치코의 표정은 밝기 그지없고, 내색은 안 하려 하지만 태영의 얼굴도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사치코가 갑자기 나를 스승으로 부르는 이유?
그건 바로 이것 때문이다.
[퀘스트 발생]
등급: 중(90일 지속 평가형)
내용: 태영과 사치코의 전투 능력 향상
보상: 90일간 성장도를 평가하여 대기실에서 포인트 지급
성과에 따른 하~상급 보상카드 지급.
태영과 사치코의 친밀도.
이제부터는 이전 기수가 후 기수를 가르치는 역할을 맡는 걸까?
새롭게 진행 방식이 바뀌면서 내가 고든의 역할로 낙점된 걸지도 모르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마치 방패막이는 가까운 곳에서 찾으라는 것처럼 느껴지는 퀘스트였다.
그런데 보상에 걸려 있는 ‘친밀도’란 것이 은근히 거슬린다.
임의로 사람의 마음을 조종한다는 느낌이랄까?
물론 내가 손을 내민 것을 두 사람은 몹시 기뻐했지만, 시스템적으로 감정을 조종한다면 나중에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뜻 아닌가.
시스템상 친밀도는 항상 뒤통수를 조심해야 하는 입장에선 반가운 보상이지만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 정도면 고블린을 팔 벌리고 환영하지 않는 이상 당할 일은 없을 겁니다.”
내 말에 사치코는 크게 리액션을 하며 헤픈웃음을 흘렸고, 태영은 여전히 나를 어려워했다.
“그럼 용병 3명을 호위로 붙여드릴 테니, 안심하고 사냥을 다녀오세요.”
“같이 안 가시나요?”
“네, 저는 일이 있어서요. 아직 두 분은 수행보다 퀘스트를 돌면서 보상을 획득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호위가 따라가서인지 심리적 안정 덕분인지, 사냥에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스킬은 꼬박꼬박 알려주세요. 그래야 효율적인 전투 스타일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퀘스트를 완료할 경우 얻는 보상은 공통스킬 몇 가지를 제외하고 조금씩 달랐다.
보상카드는 원래 랜덤이라지만, 일반 보상은 모두가 공통인 줄 알았는데 의외인 사실.
아마도 전투 스타일이 참고되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처럼 오러와 마법을 동시에 다루는 수행자가 드문 듯하다.
“다녀오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
잠시 후, 내가 고용한 바트 일행이 도착하고 태영과 사치코는 드디어 마을을 나섰다.
“힘들어 보이는구나.”
내가 고개를 내저으며 차가운 레모네이드에 입을 가져가자, 2층 계단에서 응접실을 내려다보고 있던 고든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역시 전 사람을 대하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모처럼 시끌벅적한 게 좋지 않으냐. 네가 그 두 사람을 들이겠다 했을 땐 놀랐지만,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아.”
어깨를 으쓱이자, 그는 익살스런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아가씨가 밝고 예쁘더구나. 엮어보는 거 어떻겠냐.”
“제가요?”
뜬금없는 제안에 나는 손을 내저었다.
“별로 연애엔 관심이 없습니다.”
“고자 같은 놈.”
***
고든과 함께 방문한 아드리안 시.
허락을 받고 외출에 나선 나는 익숙하게 정보길드로 향했다.
그리고 전언대로 클로이를 찾았는데, 오늘따라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는 복장의 클로이가 홍차 향기를 강하게 풍기며 나를 반겨주었다.
원래 노출도가 높은 옷을 즐겨 입는 그녀지만, 오늘은 완전히 작정한 듯한 느낌이다.
내가 헛기침을 하며 앞자리에 앉자 클로이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즘 너무 방문을 안 하시는 것 같습니다. 수행자들 간에 경쟁 관계가 만들어졌으니, 정보 수집을 부지런히 해서 안전을 도모하셔야죠. 방심하다가 골로가는 건 순식간이라고요.”
“그렇네요. 잠깐 방심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옷차림 하나에 당황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내게 종이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게 뭔가요?”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종이를 펼쳤고.
예상치 못한 내용에 눈을 크게 떴다.
[어스 클랜, 위스워드 제국 카이트 자작령에 본부 설치 예정]
“이거 설마.”
“네, 지훈 님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클랜의 이야기죠.”
이건 말이 클랜 이야기지, 그들의 뒤를 받쳐 주는 인물이 위스워드의 카이트 자작이라고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저야 좋지만, 문제 되는 거 아닙니까? 상대에게 거액의 정보 보호가 걸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네? 저는 단지 어스 클랜의 행동을 알려 드린 것 뿐인데요?”
보호된 정보를 흘린 적이 없다며 발뺌하는 모습에 헛웃음이 난다.
“위스워드의 카이트 자작 정보를 열람하려면 얼마를 내야합니까?”
“해당 인물은 정보보호가 걸려 있습니다. 열람을 위해선 백금화 75개가 필요하죠.”
그녀가 알려준 것이라곤 이름밖에 없지만, 이런 식으로 행동해도 되는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괜히 문제 되는 건 아니신지요.”
“네, 문제 될 건 없습니다. 지훈 님께서 이를 공론화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죠.”
그럴 리가 있나.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거죠? 우린 아직 5번밖에 만나지 않은 사인데.”
“5번씩이나 만난 거 아니겠습니까.”
뉘앙스만 봐선 그녀는 내게 사무적이지 못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분명 그녀는 남자라면 누구라도 군침을 흘릴 법한 미녀지만, 정보요원이란 사실이 신뢰를 주지 않았다.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 같달까?
“역시 미인계는 안 통하시는 군요.”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클로이는 싱긋 웃으며 얇은 가운을 걸쳤다.
“그런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드네요.”
설명하라며 턱짓을 하자, 그녀는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실은 위에서 내려온 지시가 있습니다.”
“지시요?”
“시가와 홍차 외에 판매하려는 물품 몇 가지의 독점판매권을 우리가 받았으면 한다고요.”
역시 뭔가 목적이 있을 줄 알았다.
아무래도 케일론 왕국 정보 길드에선 내 상품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모양이다.
그녀의 말대로 판매 예정인 물품이 몇 가지 있지만, 이미 내겐 마탑이란 든든한 아군이 있는데 굳이 길드와 손을 잡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애초에 제대로 우리의 독점 생산권을 관리해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독점생산권 관리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떤 의미로 폐하의 공증보다도 강한 강제력을 발휘하거든요. 미드랜드엔 이런 말이 있죠. 군대와 싸우더라도 정보 길드와는 싸우지 말라 라고요.”
“음…….”
대충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 것 같다.
정보 길드가 미친 척하고 덤비면 국왕이어도 상대하기 껄끄러울 테니.
21세기 지구에서도 그러지 않은가 정보가 곧 힘이라고.
“제가 여러분과 계약을 할 경우 기존에 관계를 맺고 있는 마탑과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들은 괜찮을지 몰라도 나는 그렇지 않다.
마탑에서 괘씸하다며 이것저것 태클을 건다면 힘들어질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길드에서 조치해드릴 테니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한곳하고만 거래하기보다 나름 경쟁을 붙이는 편이 지훈 님께도 좋지 않을까요? 솔직히 홍차와 시가는 마탑에서 거저먹은 거나 다름없잖아요.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지만 너무 아까워서…….”
나는 한 번도 마탑과의 거래에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분명 맞는 말이다.
거래처는 다양성을 두는 편이 좋긴 하지.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들이 줄 혜택을 늘어뜨렸다.
-독점 생산권 인정.
-계약금 백금화 200개.
-30백금화 이내 무상 정보제공, 30백금화 이상 정보에 대해선 해당 금액 공제 후 정보 구입 가능.
-실시간 정보 습득을 위한 담당자 배치
-타국에 대한 정보 교란 및 방해활동.
마탑과의 계약에선 이런 혜택이 없기에 확실히 구미가 당겼다.
“그리고 지금 계약을 맺으시면 보너스로 저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자신을 상품처럼 소개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역시 평범한 여자완 느낌이 다르다.
내가 그건 필요 없다고 답하자, 그녀의 고운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일단은 잘 알겠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어요?”
정보길드에서 원하는 바는 잘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끌려다닐 이유는 없다.
“알겠습니다.”
클로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홍차를 건넸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그녀가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박수를 치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훈 님께 단승 남작위가 하사될 거라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