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44
19. 친구와 옛 동료들 (1)
“선택형 중급 스킬카드라…….”
역시 안개 속에서의 퀘스트는 보상이 후한 거 같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책상 위로 보상들을 펼쳐놨다.
지난번에 얻은 안전가옥도 그랬지만, 언제나 새로운 스킬을 갈구하는 입장에서 선택권을 지닌 스킬 카드는 가장 필요한 보상이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딸려온 보상카드도 무려 5장.
마음 같아선 당장 스킬 카드부터 뜯어 보고 싶지만, 혹시라도 중복 보상이 나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지라, 그냥 깔끔하게 보상카드부터 뜯기로 했다.
스킬카드에 정신이 팔려서 그렇지, 보상카드를 뜯는 것도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능력치와 전투력을 높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보상카드일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도움이 되는 예상치 못한 물건을 토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민첩이 3 증가합니다.]
[1000만 원을 획득했습니다.]
뭐, 그중에서 현금보상은 완전히 꽝이나 다름없는 느낌이지만.
[스킬업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이로써 잔여 스킬업 포인트는 4개.
최상급 보상에서 나온 스킬인 ‘사고 가속’에 쏟아붓지 않을까 싶지만, 아직까지 레벨 1의 사고 가속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데 레벨을 올리면 어떤 참사가 발생할지 모른다.
그래서 스킬이 익숙해지고 나서 잔여 포인트를 투자할 예정이다.
[패시브 스킬 기감을 습득했습니다.]
이거야 원.
우려했던 사태가 발생했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가 없었지만, 역시 스킬도 중복으로 나오는 모양이다.
이 경우 스킬의 레벨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걸까?
기분 탓인지 몰라도 주변의 기운이 조금 더 잘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없는 것보단 낫지만.’
뭐랄까.
카드를 네 개씩이나 깐 것 치곤 보상이 별 볼 일 없는 느낌이다.
지금 내 운이 무려 24에 달하는데, 이건 아니지 않나?
요즘 뽑기 운이 괜찮아서 운 스탯이 높아진 덕분이라 생각했는데, 영향이 없는 걸까?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뺨을 긁적이자, 마치 먹고 떨어지라는 듯 이전보다 화려한 이펙트가 발생했다.
‘당첨!’
지금까지 이런 효과가 발생하면 미래의 정보가 나오거나, 아주 유용한 스킬들이 나왔다.
나는 기대감을 표하며 허공을 응시했고, 하얀색의 천 쪼가리가 펄럭이며 떨어져 내렸다.
[트랜스폼 슈트를 획득했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탄력성이 좋은 일체형 전신 의류였다.
“음.”
뭐라 해야 할까.
트랜스폼 슈트라는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과 달리 이건 아무리 좋게 봐도…….
‘전신 쫄쫄이잖아!?’
예능프로그램에서나 볼법한 복장이었다.
당첨이라 해서 엄청 기대했는데,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계속 손에 들린 쫄쫄이의 탄력성을 테스트하듯 양손으로 늘이던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트랜스폼 슈트 기능]
“응?”
그러다가 상품 택처럼 붙어 있는 종이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 내용을 읽은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1. 변환기능
-트랜스폼 슈트는 착용자의 의지에 따라 모자, 외투, 상의, 하의, 속옷, 운동화까지 원하는 형태로 변환할 수 있다.
단 트랜스폼 슈트 위로 실착했던 의류로만 변환이 가능하며, 높은 강도의 갑옷으론 변환할 수 없다.
2. 불가시 기능
-전자제품에 한해 착용자의 모습을 감춘다.
영상 또는 사진 저장이 불가능하며, 전자망원경과 CCTV 등을 통한 실시간 관측을 피할 수 있다.
3. 자동 수복 기능
-슈트가 심하게 훼손이 되거나 오염되더라도 원래 상태로 수복이 가능하다.
내용을 보는 순간 든 생각은 ‘좋은데?’ 세 글자다.
이 장비에 얼굴변환 스킬만 있으면, 활동성이 월등히 높아지지 않겠는가.
나는 얼른 옷을 벗고 트랜스폼 슈트를 입었다.
흰색 쫄쫄이를 입고 거울을 보니, 굴욕적이기 그지없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기능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솔직히 착용감도 상당히 좋은 편이고.
설명대로 슈트를 착용한 상태에서 평소 즐겨 입는 옷들을 입었다가 벗었다.
-착! 착! 착!
그리고 머릿속에 방금 입었던 옷들을 떠올리자, 쫄쫄이의 모습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처음부터 주시하지 않으면 언제 옷이 바뀌었는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
“당첨 인정.”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운동복으로 복장을 변환시켰다.
이거면 앞으로 옷을 살 필요가 없겠다.
아무리 비싼 옷이라도 실측만 하면, 바로 변환할 수 있으니.
또한 갑옷은 안되더라도 방검복으론 변환이 가능했는데, 성능도 일반 방검복과 다르지 않았다.
‘이젠 가방 안 메고 다녀도 되겠어.’
정말 여러모로 유용한 아티팩트였다.
보상운이 없다고 투덜거렸는데, 그 말 취소다.
‘다음은 스킬 카드.’
보상카드를 모두 깠으니,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선택형 중급 스킬카드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카드를 사용하자, 눈앞에 엄청난 양의 스킬들이 떠올랐다.
스킬의 분류는 크게 패시브와 액티브로 나뉘는데, 그 속에 공격, 방어, 보조 세 가지 세부 항목으로 나뉘었다.
열심히 살펴보던 중 내 눈에 띈 스킬은 네 개.
[노스티어 창술 / 패시브 / 보조]
-노스티어는 멸망한 엘도르 왕국의 기사로서 마스터의 재목이라 불리던 백병전의 달인이었습니다.
비록 그는 왕국과 함께 명을 달리했지만, 왕실 근위대 창술을 개량하여 만들어진 그의 창술은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무통 / 액티브 / 보조]
-일시적으로 신체의 통증을 없앱니다. 덕분에 능력치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스킬 해제 후 격통과 감각 불일치의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통증 완화 / 패시브 / 보조]
-신체의 통증이 영구적으로 50% 줄어듭니다. 통증과 함께 성적인 흥분 또한 둔화 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위력증폭 / 액티브 / 보조]
-스킬과 마법의 위력을 30% 증가시켜 줍니다. 상위 스킬인 증폭과 중첩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하나같이 군침이 도는 스킬들이다.
오러를 계속 성장시켜 나가기 위해선 그에 부합되는 전투술은 필수다.
시스템 덕분에 익스퍼트 초급까지 오르긴 했지만, 단순 경비대 창법으론 이 이상의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이쯤에서 제대로 된 창술을 익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로 창술을 선택하자니, 내게 필살기라 할 수 있는 사고가속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스킬들이 눈에 띈다.
무통은 큰 후유증이 따르지만 극한까지 사고가속을 활용할 수 있고, 통증완화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 사고 가속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위에 세 가지를 따지고 보니, 증폭이 조금 약하게 느껴지지만 분명 무난하게 좋은 스킬임은 분명하다.
그렇게 네 가지를 놓고 한참 동안 고민하던 나는.
[노스티어 창술을 습득했습니다.]
사고 가속은 지금처럼 훈련을 지속하기로 하고 실전 능력 향상을 위해 창술을 선택했다.
-파앗!
머릿속으로 입력되는 노스티어 창술의 묘리와 동작, 오러 운용법.
나는 컴퓨터 의자의 등받이를 제치며, 맛을 음미하듯 새로운 기억을 수습했다.
“좋네.”
당장 창술을 익혔다고 달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수련과 노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당연히 머릿속의 지식과 시스템의 백업이 있기에 일반적인 뮤대륙 사람보다 숙달이 빠르겠지만.
나는 만족스레 두 눈을 감고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지잉
[인식: 차 산 거 나왔냐?]
반쯤 죽어 있는 스마트폰이 모처럼 울리고, 친구의 격 없는 메시지 내용에 난 작게 미소를 흘렸다.
[나: 곧 올걸? 지금 검차 중이라 들었으니까.]
[인식: 야, 그럼 바로 끌고 나와라. 형님도 2억 6천짜리 차 좀 타보자.]
우찬이와 초희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외제차 산다는 소문을 인식이와 정우한테 퍼트렸다.
덕분에 한차례 소동을 겪고 어떤 차를 샀는지 알려주었다.
프로모션 포함 2.6억에 구매한 레인지로버 최상위 모델.
녀석들은 내가 비싼 차를 산 것이 뭐가 그리 좋은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었고 일말의 질투심 없는 모습에 새삼 두 친구의 존재에 감사함을 느꼈다.
내 부모님처럼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웃으며 만날 수 있는 사람들.
그게 인식이와 정우였다.
‘마침 잘됐네.’
안 그래도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니.
아무래도 오늘 만나면 될 것 같다.
[나: 초희랑 우찬이도 나오냐?]
[인식: 걔넨 안 불러. 그때 이후로 사이가 틀어진 상태거든. 설마 우리 사이에 그딴 말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니까? 참고로 정우는 나보다 더 열 받은 상태다.]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이거 얼떨결에 나만이 아니라, 인식이와 정우도 두 사람과 거리가 멀어졌다.
예전에 외제차 소문 때문에 아직 사이가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인식: 한턱 크게 쏴라.]
[나: 알았어. 뭐든 말해.]
[인식: A한우 타운에서 봅세.]
[나: ㅇㅇ]
[인식: 올, 진짜 돈 많은 모양인데.]
문자를 주고받는 동안 내 입가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뮤 대륙에서 너무 각박하게만 살다 보니, 이런 시간이 각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
순발력과 근력, 판단력까지, 모든 능력치가 초인에 범주에 든 나다.
덕분에 익숙지 않은 대형 차종을 끌고도 무사히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었다.
운전하는 내내 최고의 긴장감을 맛봐야 했지만 말이다.
나는 레인지로버를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오프로드 차량으로 구매했지만, 레인지로버보다 좋은 오프로드 차량도 많다며 여기저기서 태클이 들어왔다.
심지어 지식인에는 차종을 두고 답변자들끼리 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냥 차고를 채우기 위한 다른 차들은 자칭 오프로드 매니아들의 추천을 참고하기로 했다.
그래서 예비용으로 구매하기로 한 것이 벤C의 G500 4X4.
이미 직수입 업체에서 구매 계약을 맺은 상태다.
이왕 사기로 한 거 제대로 된 차량을 구매해야겠다며 사긴 했는데 이게 또 4억이나 해서,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누가 돈 지랄한다고 욕하는 거 같아서…….
나름 투자라 생각하고, 가성비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라면 그냥 좋은 걸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이게 솔직한 내 생각이다.
“이야, 쩌는데?”
약속 시간보다 10분 빨리 도착을 했는데, 마침 인식이와 정우도 일찍 도착해서 가게 입구에서 만났다.
“역시 지훈이라면 뭔가 해낼 거라 생각했어.”
“네 자릴 찾은 거 같아서 좋다.”
인식이가 내 등을 팡팡 두들기곤 차를 구경했다.
그렇게 한창 차를 살피던 두 친구에게 말했다.
“언제든 필요하면 가져다 써.”
“그래도 돼?”
“당연하지.”
“크, 내 담당 새끼 출근 시간에 맞춰서 한번 끌고 가야겠다.”
나는 언제든지 가져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프지? 먹자.”
A한우 타운은 정육식당이다.
그래서 우린 입구에서 구워 먹을 고기를 직접 구매해야 했다.
두 친구가 슬쩍 가성비 좋은 고기로만 고르려 해서, 내가 나서서 비싼 부위를 바구니에 마구 담았다.
덕분에 고깃값만 40만 원이 넘게 나왔는데, 이젠 현금 감각이 이상해져서 아무런 느낌이 없다.
2㎏이 넘는 고기양을 보며 정우는 먹기도 전부터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인식이는 군침을 흘리며 의욕을 드러냈다.
-치익.
집게는 내가 잡았다.
두 사람에게 대접한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고기를 굽게 할 순 없지.
먼저 기름기가 적은 안심으로 시작해서, 치마살, 부채살, 안창살에 채끝, 살치살, 꽃등심까지.
30분 동안 별다른 대화 없이 먹기만 했다.
그리고 찾아온 잠깐의 현자 타임.
“너희는 지금 직장에 만족하고 있어?”
나는 조심스레 두 친구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에 인식이와 정우는 쓰게 웃으며 그럴 리가 있냐며 답했다.
“내 담당인 전문의가 지랄할 때마다 그만두고 싶지. 솔직히 마지못해 다니고 있다. 내 미래와 부모님의 기대를 위해서.”
“나도 비슷해. 내가 생각했던 금융업과 다르다고 해야 하나? 개인의 의욕만으로 성과를 내고 인정을 받기란 힘들더라고. 견제만 엄청 들어온다.”
솔직히 예상했던 반응.
나는 한 차례 고민하다가 진지하게 물었다.
“나하고 같이 일 안 할래?”
내 제안에 둘은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의 직업은 ‘의사’와 ‘금융전문가’.
이게 우연인지는 몰라도 세계가 미쳐 돌아가고 있는 지금, 내게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내 성격대로라면 기밀 유지를 위해 다른 누구에게도 패를 보여주지 않겠지만, 부모님과 이 두 친구라면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실에서 내가 돈을 벌고자 했던 이유는 부자가 되기 위함이었지만, 이젠 안전한 삶을 살기 위함으로 목적이 바뀌었다.
점점 증가하는 기이한 사건과 미래신문에 나온 핵발전기 가동 중지 사태.
그리고 세계적인 대정전까지, 크나큰 혼란이 예고되고 있다.
또한 드림워커를 ‘두 세계를 잇기 위한 가교’라는 신의 평가와 계속되는 신규 드림워커들의 등장은 앞으로의 세계는 지금과 같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는 사례라 생각한다.
어쩌면 현관문을 열면 태연하게 오크가 반겨주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의학적 전문 지식을 가진 인식이와 해박한 금융경제 지식을 갖고 있는 두 사람에 내 무력과 정보, 자금이 더해지면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언제 어디서 이상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소중한 사람들을 모르는 곳에 방치하고 싶진 않았다.
어쩌면 이게 가장 큰 원인인데, 계산적인 머리가 자꾸 이유를 가져다 붙이는 걸지도 모르겠다.
“얼마 줄 건데?”
인식이는 내 물음이 장난으로 여겨졌는지, 피식 웃음을 흘렸고 나는 진지하게 답했다.
“원하는 대로.”
그때 서야 제안이 장난이 아님을 느낀 걸까?
두 친구는 진심이냐고 물었다.
“지금 내가 운용 가능한 현금자산은 90억 정도야.”
90억이란 말에 두 친구는 헛바람을 삼켰다.
일반인 입장에선 어마어마한 금액이지만, 부자들 사이에서 보면 애매한 금액이다.
“하지만 정우가 도와준다면 빠르게 불어나겠지.”
“너,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냐?”
“아냐, 방법이 있어서 하는 말이야.”
나의 경우 단순 투자로밖에 써먹지 못하는 미래신문.
만약 금융전문가인 정우가 미래신문의 정보로 돈을 굴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모르긴 몰라도 나 같은 경제 무식자보다 월등한 수익을 올릴 게 분명하다.
그리고 운용 가능한 자산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안정적인 미래대비가 가능해진다.
나와 내 가족들, 친구들과 친구들의 가족들까지 말이다.
다들 세력을 갖춘다고 난리인데, 내가 세력을 갖춘다면 이들 외에 누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