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38
17. 재정비 (1)
“모르모트가 된 분들 감사합니다.”
시험용으로 네 사람에게 보낸 메시지가 무사히 전달되었다.
사실 이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메시지 전달만으로 살인 퀘스트가 뜨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우려했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곳에선 모두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뮤대륙을 기준으로 잡을 경우 지구의 시간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말은 즉, 우리가 현실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만 않는다면 모순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적어도 지금까지 신이 행해온 나름의 규칙에 의하면 말이다.
‘이로써 이들을 죽여도 뮤대륙에서만 튕겨날 뿐 현실에까지 영향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게 확인되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의 상황은 간단히 정리된다.
내 의견에 따르는 사람은 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죽는다.
메시지로 전달된 거짓말을 믿건 안 믿건 상관없다.
나는 분명 이들에게 기회를 주었고, 그들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단지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아무리 의심스러워도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다는 말을 들은 이상 나태하게 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한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굉장히 오만하거나, 세상 태연한 사람일 것이다.
예정된 D데이는 5월 31일.
뮤대륙 기준으론 100일 차.
아마 이 조건 채우려면 꽤나 빡세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이후, 내 지시에 나머지 46명에게도 해당 메시지가 전달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부산스레 움직였으나, 몇몇은 나와 타임라인이 같은 건지, 무시하는 건지 미동도 안 했다.
***
현실 5월 29일, 뮤대륙 88일 차.
나는 3클래스 마법 숙지에 시간을 보냈고 카라스 마을로 돌아가 용병들과 함께, 켄트 협곡의 오크 중급 부락 처치 퀘스트를 수행했다.
3클래스 마법과 오러를 뿜어내는 나에게 더 이상 오크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젠 오크전사도 일반 오크나 다름없어 보일 정도로 간단히 처치했다.
3클래스가 되고 가장 좋은 점은 마법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파이어볼과 힐링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덕분에 전투는 보다 화려해진 반면 안정성도 크게 확대되었다.
해당 퀘스트의 완료로 민첩과 마력이 1씩 상승했고, 보상으로 얻은 스킬업 포인트는 쓰지 않고 나중을 위해 남겨 두었다.
중급 보상 카드에선 ‘현금 5천만 원’과 ‘조준보조’라는 스킬이 나왔다.
조준보조는 투척, 투사 무기뿐 아니라, 마법에도 사용이 가능해서 꽤나 유용해 보였다.
현실 5월 30일, 뮤대륙 96일 차.
2주에 걸쳐 3클래스 마법을 숙지했는데, 역시 3클래스쯤 되니 수식이 복잡해져서 현대인이라 해도 쉽게 암기할 순 없었다.
그래도 고든이 도와준 덕분에 중요 마법들은 거의 숙지를 했고, 이는 곧 전투력 상승으로 이어졌다.
오러 익스퍼트 초급도 유저와의 격차가 크다지만, 마법사는 특히 3서클과 2서클의 격차가 큰 것 같다.
이때 발생한 메인 퀘스트는 협곡의 대형 오크 부락 처치.
대형 부락은 1000마리가 넘는 오크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으며 족장이란 녀석이 등장하는데, 기사나 다름없이 오러를 방출하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이 녀석들을 처리하는데, 다른 용병 파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카라스 마을에서 유명인사인 덕분에 어렵지 않게 두 개 파티를 구할 수 있었고, 총 15명의 노련한 용병들이 오크 처치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힘을 내도 적의 규모가 워낙 커서, 퀘스트를 완료하기까지 4일이나 걸리고 말았다.
퀘스트 완료로 모든 능력치가 1씩 상승했고, 이번에는 보상으로 스킬업 포인트 2개를 얻었으나, 역시 쓰지 않고 남기면서 총 3개의 잔여 스킬업 포인트가 남았다.
그리고 중급 보상카드 3개를 얻었는데, 각각 ‘운 3’, ‘출혈 스킬’, ‘공중 도약 스킬’이 나왔다.
출혈 스킬은 얕은 공격으로도 큰 출혈을 일으킬 수 있는 확률형 스킬이고, 공중 도약은 말 그대로 허공을 발판삼아 점프할 수 있는 스킬이다.
덕분에 플라이 마법(4클래스)이 없어도 하늘을 날 수…… 아니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마력 소모가 커서 남발은 힘들지만, 이제 도주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듯하다.
아마 보라매 공원에서의 무협광 아저씨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공중 도약을 보고 ‘허공답보다!’라고 외칠지 모르겠다.
그리고 D데이인 현실 5월 31일, 뮤대륙 100일 차.
나는 완전히 친해진 정보길드의 클로이와 차를 마시며 물었다.
“수행자들의 상황은요?”
그녀는 귀족영애처럼 우아하게 찻잔에서 입을 떼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46명 중 32명이 발테르로 이동하고 있고 나머지는 각자의 마을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원래 나를 제외하고 51명이 남아 있었는데, 내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을까?
5명이 퀘스트를 수행하다 죽고 말았다.
그 사이 소드 익스퍼트 초급에 들어선 드림워커가 3명이 더 생겼고.
“그럼 예정대로 진행해 주세요.”
짧게 혀를 차며 클로이에게 부탁했다.
“최근 사업을 확장하셨잖아요. 자금 사정은 괜찮으십니까? 수행자들의 실력이 출중해서 확실히 처리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필요합니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마탑과 홍차 독점계약을 하고 20일이 지난 지금 내 자금 상황은 이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 명당 백금화 5개였죠?”
“그렇습니다.”
나는 바로 안주머니에서 백금화를 꺼내 값을 치렀다.
이걸로 내 계획에 어울리지 못한 사람들의 아웃이 결정되었다.
개중엔 퀘스트를 수행할 능력이 안 돼서 시간을 못 맞춘 안타까운 사람도 있을 테고, 내 경고를 맛있게 씹어먹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들의 죽음이 현실에 영향을 끼치지 않길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사람들의 사정 하나하나를 살펴줄 순 없지 않은가.
그렇게 공갈에 놀아난 사람들이 발테르로 이동하고, 넘어가지 않은 사람들이 암살자들에게 목이 날아가는 순간에도 나는 홍차를 마시며 사태가 정리되길 기다렸다.
그리고 약 30분 후.
미리 표적들 근처에 암살자들을 대기시켜 놓고 있던 건지 임무를 완수했다는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클로이의 물음에 눈을 껌벅이며 반문했다.
“뭐가요?”
“그래도 동료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제거하신 것 아닙니까?”
감성적인 표현을 원한다면 애석하게도 들어줄 순 없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이 이렇게 냉정했나 싶을 만큼 머리가 맑았으니.
“신의 뜻입니다. 따르지 않은 사람들은 거기까지인 거죠.”
두리뭉실한 대답.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기도 했다.
어쨌든 이건 뮤대륙의 기준으로 봤을 때 대대적인 살인의뢰이니.
비록 각국에서 수행자들끼리의 트러블엔 관여를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 수행자들을 자국민으로 대하라는 신탁이 있었다.
자칫 케일론 왕국인인 내가 겁도 없이 타국의 치안을 어지럽힌 것이 될 수도 있는 것.
그래서 나는 신의 뜻이라는 말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건 이 사람들 입장에서 나는 신탁을 받은 인물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내 행동을 이해하지만 클로이는 어째서인지 씁쓸할 표정을 지으며 홍차를 들이켰다.
아마 암살의뢰를 대행해주고 있는 클로이도 지금 상황이 썩 유쾌하진 않을 것이다.
암살이 모두 끝났는데도 퀘스트 완료가 안 뜬다.
아무래도 시간을 맞추지 못한 인물이 발테르에 섞여든 모양이다.
‘귀찮게.’
-스륵.
수행자들이 사냥을 통해 상점에 판매한 몬스터 사체목록과 판매 날짜만 봐도 어떤 퀘스트를 언제 수행했는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나는 이미 해당 자료 수집을 클로이에게 부탁해 놓은 상태고 32명의 자료를 보며 날짜가 맞지 않는 사람을 2명을 체크했다.
이게 100% 맞다고 확신하긴 힘들지만, 굉장히 가능성이 높은 추론이었다.
변수라면 깨달음에 의한 강제 퇴장인데, 이것으로 걸러지지 않으면 직접 중립도시 발테르에서 수행자들을 모아서 ‘괜찮으니, 지정한 기간을 못 맞춘 사람은 손들어보세요.’라고 묻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안 되면 마지막으로 지구의 시차를 고려해 서양인 부터 한 명씩 제거하는 방법밖에 없게 된다.
“이 두 명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제거해주세요.”
그렇게 홍차향이 가득한 집무실에서 두 명의 제거가 추가적으로 결정되었다.
아마 다른 수행자들은 자신들을 불러들인 인물이 미동도 않고 다른 도시에서 차나 마시고 있다는 것은 상상치도 못할 것이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면 발테르까진 한순간이지만, 내가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부디 이번 의뢰로 퀘스트가 완료되길 바랄 뿐이다.
‘이번 퀘스트는 어디까지나 타임라인의 모순을 해소하는 거지, 유지가 아니다.’
즉, 일시적이라도 문제가 해소되면 퀘스트 완료가 뜬다는 말.
그리고.
“제거했다고 합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바라던 대로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떠올랐다.
[최초로 최상급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 향상됩니다.]
[신의 가호가 내려졌습니다.]
[운이 10 향상됩니다.]
[1일 1회 불시의 공격으로부터 수행자를 보호합니다.]
[독에 대한 강력한 내성이 생겼습니다.]
[불사형, 악마형 몬스터를 상대로 마법과 오러, 스킬의 공격력이 30% 상승합니다.]
‘됐다!’
“원하는 목적을 이루신…….”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클로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이유는 신의 가호가 내려지는 효과로 허공에서 아름다운 천사가 내려와 내 뺨을 쓰다듬었기 때문이다.
“맙소사.”
크게 종교에 기대는 편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돌연 내게 기도를 올렸다.
이걸로 해결돼서 정말 다행이다.
여차하면 나머지 30명을 모두 제거할 생각이었으니.
하지만 요란한 메시지 창과 이펙트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대기실로 이동됩니다.]
“어?”
순간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주변 풍경이 뒤바뀌었다.
방금까지 클로이와 차를 마시던 정보길드 집무실이 아닌, 사방이 넓게 트인 새하얀 공간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뭐, 뭐야?”
-웅성웅성
그런데 그 공간에 있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나는 얼른 마법으로 베일을 만들어 얼굴을 가렸고, 수행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발테르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아무래도 지금부터 일어날 기행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일 것 같다.
이어서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간 교정 중입니다…….]
‘이제 와서?’
이렇게 간단한 일이면 뭐하러 많은 사람들이 죽게 방치를 하고 서로 죽이게 만들었단 말인가.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없다.
어쩌면 지금 이 상황을 초래한 신이란 인물이 그리 선한 신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상황을 보며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모두를 위한 선한 신이라면 이런 무책임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내가 그의 덕으로 잘 먹고 잘살고 있긴 하지만, 지구 전체로 봤을 땐 재앙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신의 뜻을 어찌 알겠냐만은 짜증이 치미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간 교정이 끝났습니다.]
[세 개의 공지사항이 있습니다. 내용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정이 뭐가 어떤 식으로 끝났다는 걸까?
나는 가만히 바닥에 앉으며 연달아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타임라인의 오류가 수정되었습니다.]
-앞으로 뮤대륙에서의 체류기간이 5일로 고정이 됩니다.
-5일 동안 클리어할 수 있는 퀘스트의 숫자는 제한이 없습니다.
-전투 중 지정된 체류 기간이 끝날 경우, 강제로 셧다운이 되며 뮤대륙의 육체는 무방비 상태로 놓이게 됩니다.
-지정된 안전 구역에서 셧다운이 될 경우 육체는 시스템에 의해 보호를 받게 되며, 암살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대기실 기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지구 시간으로 매달 마지막 날, 대기실 입장이 가능합니다.
-지도에 대기실 입장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대기실에 입장 가능 시간은 1시간이며 퇴실 후 재입장은 다음 기회에 가능합니다.
-대기실에서 능력치와 아이템, 장비, 스킬 등을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포인트는 퀘스트 완료, 경지 달성, 명성도, 기타 방식의 점수집계 방식으로 획득이 가능합니다.
[새로운 신규 수행자들이 입장합니다.]
-지구 시간으로 매달 1일 신규 수행자들이 입장합니다.
-입장 후 진행 방식은 기존 ‘테스트 인원’과 동일하며, 미드랜드 전역에 국가별 시차를 고려하여 배치가 됩니다.
-신규 입장 인원은 매달 1000명이며 1년 후 변동될 수 있습니다.
-수행자가 뮤대륙에서 죽은 경우, 다시는 대기실에 입장할 수 없습니다.
-신규 수행자와 스승이 공유될 수 있으며, 사제의 성장에 기여할 경우 기타 포인트가 적립됩니다.
뭐야 이거.
웬일로 친절한 설명이 곁들어진 공지.
나는 그 내용을 보며 거칠게 머릴 긁적였다.
분명 마지막 신규 수행자 안내 부분에 ‘테스트 인원’이란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설마 테스트 인원이 예상보다 많이 살아남아서 숫자를 줄이고자 이상한 제한을 둔 걸까?
아니면 정말 모든 게 테스트고, 테스트가 끝나면서 재조정에 들어간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새로운 시스템과 대대적인 인원 투입이 생긴 거고.
‘뭐가 답인지 모르겠다.’
결국, 모두 추론일 뿐이다.
“이런 씨발!”
테스트란 문구에 화가 나는지 옆에 있는 거구의 남성이 하늘에 대고 욕설을 내뱉었다.
“야 이! 개새끼야! 장난하냐!”
그건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외침이었다.
아무리 현실에서 큰 이점을 얻고 있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놀아난다는 것이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