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36
16. 모순 (1)
정보길드에서 나선 나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하늘을 올려보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칙칙한 회색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왕립마탑의 로브 자락을 펄럭이게 한다.
백금화 3개로 충실한 정보를 전달받긴 했지만, 덕분에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특히 수행자(드림워커)라 칭해진 나 같은 사람끼리 만나게 될 경우 전투가 발생한다는 부분이 상당한 충격이었다.
미리 알게 돼서 다행이지, 만약 모르는 상태에서 다른 누군가를 만났다면 높은 확률로 목숨을 뺏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 아닌가.
현장에서 열람한 자료에 의하면 12팀, 총 24명이 만나서 단 한 팀을 제외한 11개 팀이 전투를 벌이고 결과적으로 11명이 죽었다.
‘아니, 왜?’
약속을 하고 만났는데, 굳이 싸워서 상대를 죽이지?
설마 강제성 퀘스트일까?
‘그럼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지낸 두 사람은 뭔데?’
이게 정말 퀘스트에 의한 것이라면 경우에 따라 상대방을 죽이라는 퀘스트가 뜨고 안뜰 수도 있다는 거다.
드러난 정보만으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뮤대륙에서의 죽음이 완전한 끝이 아니라지만, 어떤 식으로든 살인을 유쾌하게 저지를 순 없다.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과 인간을 처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으니.
당연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지체 없이 창을 휘두를 성격이지만, 울화가 치미는 게 당연하다.
이럴 거면 뭐하러 서로 만날 수 있게 한 걸까?
그냥 애초에 만날 수 없게끔 제한을 걸어 놓으면 될 텐데.
신에겐 아주 쉬운 일이 아닌가?
그러면서 왜 ‘세상을 잇는 가교’ 같은 헛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장르가 배틀로얄인지, 단순 서바이벌인지 확실히 해줬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나마 나를 해할 수 있는 존재가 몇 안 돼서 다행이다.
“볼일 끝났느냐?”
“스승님.”
정보길드의 자료는 반출이 불가능하여 현장에서밖에 확인을 못 한다.
그래서 중요한 내용만 수첩에 적어온 상태인데, 카라스 마을로 돌아가는 마차에서 찬찬히 훑어보며 머리를 굴려봐야겠다.
더불어 다른 이들을 어떻게 처우할지도 말이다.
“왜 나와 계세요?”
“원래 이런 날을 좋아해서 말이지. 남들은 칙칙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햇빛 쨍쨍한 날보다 흐린 날이 좋거든.”
“취향이 비슷하시네요.”
고든도 내가 눈부신 날보다 흐린 날이 어울린다며 너털한 웃음을 흘렸다.
“잘 됐다. 이대로 돌아가면 되겠구나.”
“사숙조 님께 인사 안 드려도 될까요?”
“부탑주님과 외출하셨거든.”
그럼 나야 편해서 좋지.
마탑 근처에서 마주친 고든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수송 길드로 향했다.
살아남은 52명의 수행자(드림워커) 중, 스승이 있는 사람은 겨우 8명뿐.
나를 포함해 주목할만하다고 말했던 두 명의 익스퍼트도 스승이 있었다.
클로이(1급 정보원)의 말에 의하면 스승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정확한 공략 가이드는 없었지만, 고든을 구하라는 돌발 퀘스트가 애초에 이 사제지간을 염두하고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고든이 없었으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만약 우직하게 혼자의 힘만으로 퀘스트를 진행했으면,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덕분에 정보 길드에선 우리 수행자들의 스승에게도 상당한 관심을 표하고 있었다.
본인들이 인지 못 하고 있을 뿐, 시스템이 배치한 존재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카라스 마을 행 고급마차 맞으시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수송 길드에서 그나마 마차치고 승차감이 좋은 고급마차를 대여한 우리는 자리가 넓음에도 나란히 앉았다.
이어서 마부의 출발 안내와 함께 마차가 흔들리고 고든은 괜히 나란히 앉은 것이 아니라는 듯, 아공간에서 3클래스의 마도서를 꺼내 들었다.
“자, 그럼 수업을 시작할까?”
고든의 교육방식은 상당히 스파르타식이다.
정해진 교육시간은 무조건 채워야 한다는 듯, 마차에서도 저택과 다름없이 1:1 과외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다가 마차의 진동에 어지럽다고 하면 거리낌 없이 힐링마법을 사용해 준다.
덕분에 나는 2시간에 걸친 수업이 끝나고 휴식시간이 되어서야 정보 길드에서 옮겨 적어온 수첩을 꺼낼 수 있었다.
“너는 정말 시간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구나.”
고든은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쉬는 시간은 말 그대로 쉬는 시간이다. 그 시간만이라도 머리를 비워 보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고든 입장에선 내가 잠자는 시간 빼곤 쉴새 없이 무언가를 하기 때문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요즘 뮤대륙에서의 1분 1초가 아깝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서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슬쩍 수첩 바라보았고 고든은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잠깐. 시간이라고?’
그런데.
내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지자 고든은 놀라며 내 어깨를 짚었다.
“왜 그러느냐?”
“뭔가 깨달은 것 같아서요.”
깨달음이란 단어에 고든은 불에 덴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떨어졌다.
이어서 입을 꾹 닫고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아마도 내가 마법에 대해 뭔가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니다.
‘드림워커 간에 뮤대륙에서 만나자는 약속.’
‘강제 퀘스트일 가능성이 높은 서로 죽고 죽이는 전투.’
‘그리고 시간.’
어쩌면 나는 수행자끼리 싸운다는 영문 모를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은 걸지도 모르겠다.
‘시간적 모순.’
당연한 말이지만 시간은 순차적으로 흐른다.
지구에 다녀왔다고 해서 뮤대륙의 날짜가 며칠이 지나있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뮤대륙에 오래 묵었다고 자고 일어났을 때 지구의 날짜가 며칠이 지나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자연스레 어제에 이은 오늘을 보내게 되는 것이고, 이건 다른 수행자들도 마찬가지일 터.
하지만 잊어선 안 되는 것이 수행자별로 퀘스트 진행 속도에 따른 시간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구의 시간은 고정.
그러나 뮤대륙에선 빠른 퀘스트 수행으로 하루만에 현실로 복귀할 수도 있고, 8일을 가득 채운 후 현실에 복귀할 수도 있다.
여기서 두 세계의 시간적 모순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드림워커인 ‘A’와 ‘B’가 현실에서 ‘처음’ 만났다고 치자.
두 사람은 뮤대륙에서 재회키로 약속을 하고, ‘A’가 ‘B’를 찾아갔다.
그런데 만약 퀘스트 진행 속도 차이로 뮤대륙에서 A가 30일 차고, B가 40일 차였다면 어떻게 될까?
‘결론적으로 B는 A를 알아보지 못한다.’
왜냐면 B가 A를 알게 된 것은 40일차의 이야기지, 과거인 30일 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A는 미래의 B와 약속을 하고, 정작 만난 건 과거의 B가 되는 것.
또 과거의 B가 A를 만났다면 두 사람이 현실에선 처음 만난 것이 아니어야 한다.
‘타임 페러독스’가 발생한 것이다.
세상을 프로그램에 빗댄다면 이는 치명적인 오류가 된다.
이 오류를 수정하지 않으면 세상의 타임라인은 엉망진창이 될 터.
세상은 B가 A를 지구에서 처음 만난 경우와 뮤대륙에서 30일 차에 처음 만난 경우 두가지로 분열하게 될 것이다.
‘그럼 두 사람의 시간적 모순을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간단한 해결 방법은 한 사람을 없애는 거다.
신의 입장에서 강제성을 띈 살인 퀘스트를 발생시키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 아닌가.
그리고 완전한 모순 해소를 위해선 패배한 사람이 뮤대륙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까지 사라져줘야 한다.
즉, 해당 퀘스트로 죽은 사람은 현실에서도 눈을 뜨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터무니없는 추측일지도 모른다. 결국은 상상이니까.’
하지만 나는 이것이 상당히 신빙성 있는 추론이라 생각했다.
아마 두 사람이 만나고도 아무 일이 없는 경우는 현실과 뮤대륙의 타임라인이 동일할 때일 것이다.
[가장 먼저 시간의 오류를 깨달았습니다.]
[마법과 오러에 대한 이해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3서클을 달성했습니다.]
[마력이 10 향상됩니다.]
[지능이 2 향상됩니다.]
[오러익스퍼트 초급을 달성했습니다.]
[마력이 5 향상됩니다.]
[힘, 체력, 민첩이 2 향상됩니다.]
눈앞에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창.
뿐만 아니라 세 번째 서클이 생성되고, 오러포인트가 덩치를 불려가자 정신이 없었다.
[퀘스트 발생]
등급: 최상
내용: 수행자들의 타임라인 이상을 해소하라
보상: 최상급 보상카드, 신의 가호
그리고 예상치 못한 퀘스트가 뜨면서 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허허, 3서클이라니.”
허탈함이 가득 담긴 고든의 목소리.
하지만 나는 세상이 어둠에 물드는 것을 느끼며,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응? 자는 게냐? 정말 서클 생성 알러지라도 있는 것…….”
그렇게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며 현실로 돌려 보내졌다.
***
‘자기가 실수를 했으면 알아서 고쳐야지, 그걸 왜 일개 인간에게 맡기는 거야? 설마 이게 짜여진 시나리오? 그것도 아니면 취미 나쁜 악신인가?’
언제나처럼 퀴퀴한 원룸이 아닌, 넓은 용산구 주택에서 일어난 나는 새 이불을 정리하며 이해를 못 하겠단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보상도 빵빵하고 이번에 타임패러독스를 깨달은 것만으로 3서클과 익스퍼트 초급을 달성하였을 뿐 아니라, 보너스로 엄청난 능력치를 얻었기 때문이다.
-촥!
커튼을 젖히니, 뮤대륙에서 보았던 회색 하늘과 다른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가 나를 반겨주고, 나는 그대로 2층 거실과 연결된 테라스를 거닐며 생각했다.
‘타임라인의 모순을 해소하라고?’
가장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그건 바로, 나를 제외하고 뮤대륙의 드림워커 모두를 제거하는 것.
이들과 나는 현실에서의 접점이 없기에 뮤대륙에서 처음 만난다고 해서 모순이 성립 되진 않을 것이다.
이 경우 내게 죽은 사람들은 현실에선 무사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모두 뮤대륙에서 쫓아낸다면 드림워커의 타임라인은 내가 중심이 되기에 자연히 모순이 해소가 된다.
신도 비슷한 방식으로 해결하지 않았는가.
과연 세상을 잇는 가교라는 사람들을 모두 제거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한이 없으니 괜찮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방법.”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강요할 수 있는 성격이지만,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지도 않고 죽이자는 결정을 내릴 만큼 이성이 마비되어 있진 않다.
그러나 정 방법이 없다면 써먹을 수밖에 없는 수단이긴 하다.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게 머리를 잘 굴려봐야겠지만 말이다.
‘정보길드의 자료에 의하면 이젠 나와 다른 사람들간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사소한 차이가 쌓이고 쌓여 점점 큰 간격을 만든다.
이는 내가 특출하게 잘나서가 아닌, 운이 더해진 적절한 선택 때문이라 생각한다.
[T화학 81,340]
[H바이오 16,260]
“빼야겠네.”
햇볕을 쬐며 스마트폰으로 어제 확인 못 한 주가를 살핀 나는 이제 T화학의 주식을 빼야될 때라고 생각했다.
T화학은 내가 아는 최고치에 근접했다.
차라리 지금 빼서 이후 3배 넘게 오르는 H바이오에 넣어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대충 확인해보니, T화학의 주식을 제값 받고 정리하면 약 89억 정도 될 것 같다.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이 아닌가.
이게 두 달 후 세배 이상 불어나게 되니, 얼마 전까지 취준생 신세였던 인간이 수백억대의 자산을 지닌 신흥 재벌이 된다.
어쩐지 많은 돈이 있어도 온전히 인생을 즐기는 데 쓰긴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