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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33화 (33/247)

# 33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33

14. 자칭 초능력자 (2)

괜히 엮이면 좋은 꼴을 못 볼 것 같아서, 나중에 또 보자는 기약 없는 약속과 함께 등을 돌려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지훈아 잠깐만.”

그런데 우찬이가 나를 잡았다.

“왜?”

짧은 물음에 녀석은 잠시 말을 잃고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넉살 좋게 웃어 보이며 내 등을 두들겼다.

“야, 왜 그렇게 차갑게 구냐?”

우찬이의 물음에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딱히 살갑게 대할 이유는 없잖아?”

초희와 우찬이는 나를 쳐냈다.

이제 와서 내가 숙이고 들어갈 이유도 없고, 두 사람이 숙이고 들어온다고 해도 이미 본성을 봤는데, 예전처럼 지내긴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럼 서로 불편하게 하는 것보다 그냥 안 맞는 사이인 만큼,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는가.

“혹시 나중에 경사 있으면 연락해, 부조는 할게. 둘이 잘 어울린다.”

고든이 말한 사제관계처럼 친구는 신뢰로 뭉쳐져 있기에 이해득실을 따질 만큼, 세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이는 이미 그것이 깨진 상태.

“겨우 그거 갖고 그러냐. 삐졌어?”

“맞아, 친구끼리 싸울 수도 있는 거지.”

“그나저나 재기했나 보다?”

“내가 보기엔 재기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자존심이 세면 괜히 그런 거 아니라면서 손을 내저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럼 감성적인 행동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편하게들 행동해. 너무 애쓰지 말고.”

“뭐?”

“나 간다. 잘들 지내.”

나는 평범하게 두 녀석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는 걸음을 옮겼다.

“야! 조지훈!”

그 이후로 초희와 우찬이는 나를 잡지 않았다.

솔직히 예민한 청각을 통해 두 사람이 나를 향해 욕하는 것이 들려왔는데, 그런 거에 일일이 반응할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닌지라 가볍게 무시했다.

사람들은 연인이 됐던, 친구가 됐던, 연을 끊는 것이 괴롭다고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던 사이인데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방에 숨겨 놓고, 내 것으로 구매한 보테G베네타 반지갑을 뜯었다.

그나마 취향에 맞는 지갑이라서 샀는데, 막상 이게 70만 원이나 해야 할 물건인가에 대해선 의문으로 남는다.

당장 돈이 많다고 자신에게 명품으로 도배할 생각은 없다.

지금 가진 지갑과 시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부모님만큼 뭐든 최고로 해드리고 싶다.

내가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데는 앞으로도 안전과 관련된 부분이 가장 클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구매한 값비싼 오프로드 차량도 그 연장선이고.

‘예비용 차를 몇 대 더 살까? 오토바이를 구비 해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차고의 넓이를 보면 오늘 구매한 차량과 같은 사이즈로 3대까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신이 내려준 보상엔 모든 이유가 있다느니, 그런 종교인 같은 사고방식을 갖게 된 지라, 차고의 넓이마저 신경이 쓰였다.

‘7월까지의 안전은 확보된 상태니, 당장 필요한 차량은 한 대면 되겠지. 하나씩 추가하자.’

결국, 식량창고처럼 차고까지 가득 채우기로 마음먹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의 판단을 수긍했다.

현재 시각은 오후 5시 30분.

이제 슬슬 나가면 될 것 같다.

저녁은 간단히 햄버거로 때우고, 근처에서 국산 경차를 렌트한 나는 인구 밀집도가 높은 구역으로 이동했다.

일단 첫 번째 목적지는 이태원.

이제부터 조금씩 붐비기 시작할 시간이다.

‘과연 나 말고도 마력을 지닌 사람이 있을까?’

일단 평범한 한국인들에게선 마력을 느낄 수가 없다.

지구의 마나 밀도가 뮤대륙에 비해 낮아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자연적으로도 마력이 집중된 무언가를 찾긴 힘들었다.

아니, 그냥 아예 없다고 봐야 할 수준이다.

그래서 마력을 지닌 이가 있으면 가장 먼저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인물임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나는 차에 탄 상태로 이동하면서 수시로 마력탐색을 사용했는데, 이태원 주변에선 걸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다음 경리단 길, 서울역, 회현, 명동을 지나 3호선 라인을 따라 다시 압구정으로 향했다.

탐색의 거리는 300미터, 나를 중심으로 한 직경은 600미터로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닌데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정도로 깨끗하다니…….’

정말 뮤대륙의 여행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기적인 건가?

그렇다면 대체 왜 나를?

물론, 내가 돌아다닌 거리는 대한민국 전체로 봤을 땐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한민국 전체 국민 중 약 2할이 서울에 살고 있으며, 퇴근 시간 지하철 라인을 따라 돌아다닌 만큼 족히 수십만 명의 사람을 탐색으로 훑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걸리는 것이 없으니, 자연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직 결론 내리긴 이르지.’

뭐든 섣부른 판단은 금물.

내가 100중 99를 조사해도 나머지 하나가 원하던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응?”

압구정을 지나 가로수길, 그다음 고속터미널역으로 향했는데.

[우 22도 / 높이 –4.5m / 거리 83.2m]

[이외 탐색 결과 없음]

놀랍게도 고속터미널역 근처에서 마력 신호가 잡혔다.

“허…….”

덕분에 큰 기대 없이 운전하던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다행히 차가 서행을 하던 중이라서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저 뒤에서 빨리 출발하라며 요란한 클락션 소리가 울려 퍼질 뿐이다.

[우 34도 / 높이 –4.5m / 거리 86.9m]

[이외 탐색 결과 없음]

차를 탄 상태에서 이동하다 보니, 잠깐 사이 좌표가 바뀌었다.

그리고 좌표가 아니더라도 집중하고 마력탐색 스킬을 살피면 파장에 걸리는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경부선 터미널과 호남선 터미널 사이에 위치한 주차장에 차량을 세워두고는 뛰듯이 차에서 내렸다.

이어서 호남선 터미널 대합실로 들어갔는데, 신호가 아래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얼른 인파에 섞여 중앙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내려가니 S백화점 앞 지하광장이 나타났다.

-솨아아아!

지하광장에는 작지 않은 규모의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분수대 앞에 유독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마력탐지가 가리키는 곳이 바로 그 인파 중심.

-오오오!

뭐가 그리 신기한지 사람들은 연신 감탄사를 토해내고,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용히 인파 속에 파고들었다.

“박성의 초능력쇼! 오늘은 고터에 위치한 F스트리트를 방문했는데요. 보이십니까? 이 인파? 저 박성의 초능력을 보기위해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여주셨습니다.”

그곳엔 개인방송을 하듯, 와이파이 기능이 있는 소형카메라로 스스로를 촬영하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여러분 박수!”

-짝짝짝!

-휘이익!

시민들은 청년에게 단단히 빠졌는지, 쉽게 호응에 응해줬다.

“자, 이 자리에 계신분들께는 이미 자그마한 기적을 보여드렸는데요. 지금부턴 방송을 보고 계시는 분들의 의견을 방영해서 초능력을 사용해 볼까 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이 분수대의 물을 들어 올려 글자를 만들어 볼까 하는데, 선착순 세분. 달풍선 500개 이상 쏘신 분들이 원하는 메시지를 물로 써드리겠습니다.”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닌지, 그는 실시간으로 스마트폰을 들여 보면서 능숙하게 진행을 이어갔다.

“아이고! 엉기님! 달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뭐 써달라고요? 그림? 아아 19금은 안 돼요. 저 잡혀가는 꼴 보고 싶어요? 박성 사기꾼을 써달라고요? 조금 짜증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자! 여기 분수대를 보십시오.”

-딱!

그리고 그 청년이 손가락을 튕기자, 20리터 정도의 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다시금 울려 퍼지는 사람들의 감탄사.

잠시 후 그 물이 조금씩 번지더니, ‘박성 사기꾼’이란 글자를 만들어냈다.

“대박, 저거 어떻게 하는 거지?”

“속임수 아냐?”

“속임수라 쳐도 저걸 어떻게 하는데.”

주변에선 하나같이 속임수를 찾기 위해 눈을 굴렸으나, 찾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이고 벌교꼬막님이! 1000개! 기쁨을 물로 표현해 달라고요? 물론이죠!”

왜냐하면 저것은 바로 마력을 이용한 스킬이기 때문에.

내가 보유하지 못한 종류의 것이지만, 기감 덕분에 마력의 움직임이 예민하게 느껴졌다.

“…….”

그러나 나는 바라던 상황을 맞이했음에도 어처구니없다는 반응과 함께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뭐야, 저 병신은…….’

아주 대놓고 잡아가라 홍보하네.

‘대체 얼마나 멍청한 거냐?’

이 짓으로 얼마를 버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활동하다가는 언제 끌려갈지 알 수 없다.

내가 만약 이 나라의 지도부에 위치해 있더라도 초능력자 같은 영문모를 존재를 방치하진 않을 테니.

저 사람은 미래 신문을 얻은 적이 없는 걸까?

‘아.’

그러다가 문득 이번에 새로 얻은 미래신문의 토픽을 떠올렸다.

[정부에 납치를 당하고 인체 실험까지 받았다?]

[황당한 주장을 펼치며, 이목을 끌고 있는 자칭 초능력자 박모씨는 10년째 공무원을 준비하는 수험생.]

박씨 성에 자칭 초능력자.

‘너였냐?’

나는 한숨과 함께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

“이야, 돈 벌기 쉽네. 하루 만에 달풍선 1만 개를 채우다니.”

신대방 역에 위치한 원룸촌을 걸으며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박성.

이어서 박성은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서고.

-척.

그런 그의 앞을 야구모자에 마스크를 깊게 눌러쓰고 꽤 큰 백팩을 맨 검은 옷차림의 사내가 막아섰다.

당연히 그 사내는 다름 아닌 바로 나, 조지훈이다.

“박성씨 맞나요?”

내 물음에 그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누구세요?”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 같지만, 담이 큰 건지 스킬을 믿는 건지 표정에 동요가 없었다.

“혹시 10년 동안 공무원 시험 준비하신 분 맞아요?”

그리고 이어진 내 물음에 그의 미간이 좁혀지며 얼굴에 짜증이 서린다.

“10년이 아니라 9년이거든요.”

그거나 이거나.

어쨌든.

이로써 그가 신문에 나왔던 그 초능력자인 게 확실해졌다.

“요즘 이상한 일 안 일어나요? 꿈을 꾸면 다른 세계라던가. 퀘스트를 수행하면 보상을 얻는 다던가.”

“무, 무슨.”

눈에 띄게 흔들리는 동공.

그의 그 모습 자체가 내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역시 나 말고도…….’

다행이다.

기현상을 겪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는 그에게 자세한 정보를 얻고자 말했다.

“죄송하지만 여긴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어울려 줄래요? 대화 좀 하죠.”

인적이 드물다곤 해도 주택가.

나는 더욱 한적한 곳으로 그를 데려가기 위해 손짓을 했고, 크게 놀란 박성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솔직히 나도 혼란스럽지만, 그처럼 갑작스런 상황을 맞이한 게 아닌 만큼, 심적 동요는 적었다.

우린 보라매 공원으로 향했는데, 잘 따라오던 박성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잠깐.”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가방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쪽 가방엔 뭐가 들었죠?”

안개 사건 이후 완전히 내 필수품이 되어버린 백팩.

당연히 그 안엔 창을 비롯한 전투 대비 용품이 들어있었다.

경계심 가득한 그의 물음에 나는 신경 쓰지 말란 투로 답했다.

“아마도 당신의 스포츠백이랑 비슷할 것 같습니다.”

내 백팩처럼 그도 쓸데없이 기다란 스포츠백을 매고 있었는데, 그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 뻔했다.

점점 눈빛이 공격적으로 변해가는 박성.

이런 경우를 예상 못 한 것은 아니기에 나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여긴 한국입니다. 뮤대륙이 아니에요.”

“역시, 당신 드림워커군.”

드림워커라니, 무슨 오글거리는 명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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