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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31화 (31/247)

# 31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31

13. 향수와 같은 차 (2)

“이게 무어냐?”

“제자가 개발한 홍차입니다. 이것을 유통하는데 힘을 보태주십시오.”

남작은 진지하게 병을 이리저리 살폈다.

“굳이 내게 유통을 부탁하는 것 보면 평범한 차가 아닐 터. 그렇다면 원하는 판매처는 당연히 귀족들이 되겠군.”

“그렇습니다.”

말을 길게 안 해도 알아채 주니 좋다.

“그럼 사치품의 일종인데.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차를 귀족들에게 팔긴 어렵지. 결국 내가 직접 나서서 홍보까지 해야 한다는 뜻인가?”

아무리 돈이 썩어나는 귀족이어도 불필요한 낭비는 하지 않는다.

결론은 누군가가 나서서 귀족들의 흥미를 끌어줘야 한다.

남작의 날카로운 눈빛에 고든은 긴장하며 티세트를 꺼냈다.

“일단 드셔보시고 평가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신만만한 태도의 고든.

남작은 유리병을 열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책상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멘트가 잡상인 같아. 만약 우리가 사숙질 지간이 아니었다면 바로 쫓아냈을 거다.”

가감 없는 말에 고든은 식은땀을 흘리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이어서 그가 직접 차를 우렸는데, 나는 옆에서 우려진 차를 이용해 밀크티와 아이스티를 만들었고, 일전에 고든에게 냈던 것처럼 홍차 3종 세트를 남작에게 건넸다.

“흠.”

방안을 가득 채우는 홍차의 향기로움.

시각을 자극하는 붉은 빛 음료가 남작을 반긴다.

범상치 않은 향 덕분인지 태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의 표정도 변했다.

랜디 크리스토퍼 남작은 차에 꽤나 까다로운 인물이라 들었다.

그런데 홍차의 향만으로 일변한 그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성공을 예감케 했다.

-후룹.

오리지널 홍차를 입에 가져다 댄 남작은 두 눈을 부릅뜬다.

“무슨…….”

이어서 그는 코를 킁킁대고, 홍차를 입에 머금은 채 쩝쩝거리기도 하며 홍차의 향을 느꼈다.

-탁.

어느새 찻잔을 가득 채운 홍차가 바닥을 드러내고 찻잔을 내려놓은 남작은 아이스티에 이어 밀크티까지 맛을 봤다.

“…….”

모든 차를 마시고.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남작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걸 진짜, 네가 개발했다고?”

“그렇습니다.”

실은 지구에 사는 누군가지만, 나는 뻔뻔하게 답했다.

“상상 이상으로 범상치 않은 녀석이구나.”

그리고 남작은 지금까지 흥미를 보이지 않던 갈색 병의 뚜껑을 열며 마약하듯 크게 숨을 들이켰다.

“풀잎에서 어찌 이런 향이 난단 말이냐.”

답을 묻는 것이 아니라, 감탄에 따른 독백이었다.

그는 예쁘게 말린 홍차잎을 적셔 펼쳤고, 그것이 찻잎이란 것을 알아채자 크게 놀랐다.

“그렇군, 홍차는 찻잎을 가공하여 만든 것이야. 찻잎을 다른 무언가에 절인 후 말린 건가?”

마치 새로운 마법 연구에 빠진 듯 홍차를 연구하는 그의 모습은 더없이 진지했다.

하지만 찻잎을 발효한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진 않았는지, 결국 답을 요구했고, 고든은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고든이 그를 믿는다면 알려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건 평민의 힘으로 간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찻잎을 발효한 겁니다.”

“치즈를 만들 때의 그 발효?”

“조금 다릅니다. 그건 외부 작용에 의한 후발효고, 홍차는 자체적 성분을 산화시켜 발효하는 것입니다.”

“음…….”

이 세상의 과학자라 할 수 있는 마법사인 이상, 산화 작용이 뭔지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내부 성분을 산화시키는 것으로 찻잎의 향이 크게 변한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추가 50점.”

“네?”

뜬금없이 점수를 매기는 영문모를 행동에 나는 의아함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안에서의 네 평가 말이다. 100점 만점에 50점으로 시작해서 30점까지 떨어졌었는데, 80점으로 단숨에 내 제자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뭔 개소리야?

황당했지만, 겉으로 표정을 숨기고는 후한 평가에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가 나의 사숙조이긴 하나, 친분이 깊은 것은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다.

예전에 고든이 했던 당부도 있고 일단 귀족은 무조건 조심할 필요가 있으니.

“어떻습니까. 사숙님?”

평가를 요구하는 고든의 물음에 크리스토퍼 남작은 진지하게 답했다.

“차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겐 어떨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 같은 사람에겐 황금이나 다름없는 물건이다.”

예상하긴 했지만, 후한 평가에 가슴이 들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말이야.”

“네?”

“이 홍차 잎을 분쇄하여 판매하면 안 되겠나?”

“보안 유지를 위해서 말입니까?”

“그래, 말귀를 잘 알아듣는군. 제조법이 복잡하지 않다면, 누군가가 금세 흉내를 내겠지.”

뮤대륙엔 ‘지적 재산권’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뭐, 대한민국도 얼마 전까지 해적판 책이 버젓이 유통되고, 중국은 최근까지 밥 말아 먹고 있는 개념인데, 뮤대륙은 오죽하겠는가.

크리스토퍼 남작이란 훌륭한 빽이 뒤에 있긴 하지만, 더 높은 작위를 가진 귀족이나 타국에서 홍차를 만들어 판매한다면 대응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문제 될 건 없습니다. 잎 형태가 향을 더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자연스러운 맛을 내지만, 분쇄차도 나름의 장점이 있으니까요.”

찻잎을 분쇄하면 향이 더 강해지고 빨리 우려낼 수 있다.

때문에 지구에서도 밀크티나 과일을 첨가한 아이스티를 만들 때 대부분 분쇄된 잎을 사용한다.

오리지널 티로 즐기는데도 크게 문제는 없고.

“그럼 분쇄차로 시음을 해볼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남작은 홍차 잎을 즉석에서 분쇄했고, 고든은 그것을 받아 홍차를 우려냈다.

“이것도 좋군.”

“전 오히려 이게 더 나은 것 같습니다. 향이 훨씬 짙군요.”

난 그래도 잎 형태가 더 나았지만, 두 사람 모두 분쇄된 찻잎에도 만족스러워했다.

랜디 크리스토퍼 남작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내가 발 벗고 나서주지. 이거라면 누구에게 내밀어도 부끄러움이 없겠어.”

“감사합니다!”

“대신, 사업에 나도 좀 껴주겠나?”

“…….”

홍차가 성공을 거둔다면 유통만 해도 마진이 상당할 텐데, 아예 지분참여를 원하는 남작이었다.

솔직히 내키진 않지만,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이런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고 예상했던 바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그런 내 모습에 남작은 더없이 인자한 모습으로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추가 20점.”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그의 자체 평가 100점을 달성했다.

분명 제자가 80점이라 하지 않았나?

“또 뵙겠습니다.”

“그래, 언제든지 찾아 오거라.”

이후 수익 분배에 대해 지분을 나눈 결과 내가 5, 두 사람이 2.5씩 나눠 갖기로 했다.

덕분에 마탑을 나설 땐 지부장인 그가 직접 나와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나는 마탑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고든과 함께 카라스 마을로 돌아갔다.

이렇게 웃으며 사이좋게 보낼 거면 처음에 왜 그렇게 호통치고 무게를 잡았는지 모르겠다.

내게 있어 크리스토퍼 남작은 괴짜이면서 차를 좋아하고, 돈 냄새를 잘 맡는 노인으로 기억되었다.

그래도 분명 귀족이라는 든든한 아군이 생긴 것은 큰 성과였다.

***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마법을 이용한 백업과 근접 전투의 적절한 균형. 힘과 마력이 1 향상됩니다.]

[보상으로 기감을 습득했습니다.]

“이야, 일주일에 하루 이틀밖에 안 되지만, 지훈 님과 함께하는 사냥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트롤을 이렇게 쉽게 처리하다뇨.”

열심히 손을 비비며 아부를 떠는 바트 일행.

나는 안개 속에서 싸웠던 강적인 트롤을 도축하며 미사여구는 필요 없다고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지금보다 페이스 올리긴 힘들 겁니다. 이것도 스승님께서 겨우 허가해주신 거니까요.”

뮤대륙에 머물 수 있는 8일 중 마지막.

내겐 그날이 퀘스트를 수행하는 날이다.

“에이, 어찌 이 이상 욕심을 부리겠습니까. 충분합니다.”

그러면서 세 사람은 내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기사의 눈치를 살폈다.

기사 자체가 준 귀족이다 보니 내색은 못 해도 상당히 불편해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마을로 돌아가죠.”

마법으로 트롤의 피를 한데 모아 나무통에 담고, 가죽과 함께 고든에게 빌려온 아공간 팔찌에 때려 박았다.

이번 퀘스트는 트롤을 10마리 사냥하는 것.

창과 자체 스킬로만 싸운다면 용병들이 있다 해도 힘들었겠지만, 마법과 오러가 더해지니 오크부락 퀘스트보다도 쉽고 빠르게 완수할 수 있었다.

“퍼슨님.”

내 부름에 뒤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가 팔짱을 풀며 나란히 따라왔다.

“역시 전투 수행능력이 상당하십니다. 괜히 주군께서 아끼시는 분이 아니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기사는 바로 크리스토퍼 남작이 보낸 무예 스승이자, 호위 기사역을 수행하고 있는 퍼슨이었다.

용병의 뒤를 기사가 호위라며 따라다니다니 상황이 우습게 됐다.

바트 일행이 특히 곤욕스럽겠지만, 나는 이 상황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뒤를 받쳐 주는 기사가 있다는 것에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었으니까.

“절대 빈말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지훈 님께선 마법보다 무예 쪽으로의 재능이 뛰어나신 것 같습니다. 경비대에서 배운 창법 4개 동작을 영리하게 사용하시더군요.”

크리스토퍼 남작이 들으면 경을 칠 평이다.

그는 은근히 내가 무예의 길을 선택하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뮤대륙에서 쌓아온 인맥을 모두 잃는다.

절대 그럴 순 없지.

나는 지금 방식에 꽤 만족하고 있으니 말이다.

8일을 쪼개 낭비하는 시간 없이 아주 알차게 보내고 있다.

마법을 배우고, 오러를 배우고, 퀘스트를 수행하고, 홍차와 시가까지 제조하고 있으니.

이중 대부분의 시간이 마법 수련을 위해 쓰이고 있지만, 요즘은 하루하루가 굉장히 바빴다.

크리스토퍼 남작이 홍차 제조를 위한 노예를 보내준다고 했으니, 그들이 도착하면 시간적으로 조금은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같은 인간을 노예로 부린다는 것이 불편하지만,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 남작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마을에 도착해 부산물을 처리하고 정한대로 수입을 분배한 고든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오늘 수련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졸려서 좀 자야겠어요.”

“그러시군요. 그럼 깨시고 난 다음에 이야기하죠.”

그리고 방에 들어온 나는 고든에게 받은 2클래스 마법책을 펼쳐 들었다.

요즘은 정상적으로 퀘스트를 완료하면 침대에 누워야 잠이 든다.

물론 안 자고 버티면 또 쫓겨나겠지만, 날 위한 배려인진 몰라도 시스템은 안전 구역으로 돌아온 후 간단히 씻고 누울 시간까진 주고 있다.

나는 그 잠깐의 여유를 이용해 미뤄 놨던 2클래스의 마지막 마법을 숙지하기로 했다.

한 클래스의 마법을 마스터하면 퀘스트를 완료한 것과 같은 취급을 받아 잠에서 깨어나는데, 제대로 된 보상도 못 받고 하루를 보내는 건 사양이다.

그래서 퀘스트와 같이 한 번에 완료하기 위해 일부러 제일 쉬운 부분만 남긴 채 2클래스 마스터를 미뤄왔다.

이어서 짧은 마지막 수식을 암기하자, 몸이 나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2클래스 마법을 마스터했습니다.]

[마력이 2 향상됩니다.]

[지능이 2 향상됩니다.]

***

뮤대륙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왔음에도 지구로 돌아온 순간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모두 풀려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중급 보상]

퀘스트 완료에 따른 보상카드.

손에 쥐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이었다.

이사 준비를 위해 너저분해진 원룸의 중심에 서서 보상카드를 들어 올린 나는 기도하듯 말했다.

“중급 보상 개봉.”

-파앗!

언제나 봐도 화려한 보상 이펙트.

눈 부신 빛이 시야를 자극하지만 그 외엔 이번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 보상은 현물이 아니었다.

[액티브 스킬 마력탐색을 습득했습니다.]

스킬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당장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니.

비록 이번 보상으로 얻은 ‘기감’과 ‘마력탐색’ 스킬은 전투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보조 스킬들도 유용하게 쓰고 있는 만큼 아쉬워할 필요가 없었다.

패시브 스킬인 기감은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당장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마력탐색은 액티브 스킬인 만큼, 바로 확인가능하다.

‘마력탐색.’

나는 바로 마력탐색 스킬을 사용했다.

그에 소량의 마력이 소모되고 음파 같은 작은 마력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탐색 결과 없음]

이런 느낌이구나.

마력 장이 훑고 지나간 구역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하지만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는데, 아무래도 나를 제외한 마력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이어서 라이트 마법을 조금 멀리 띄워 놓고 탐색을 사용하니.

[좌 35도 / 거리 4.1m]

[이외 탐색 결과 없음]

예상대로 라이트 마법의 위치를 탐색해 냈다.

잘만 하면 유용한 것 같긴 한데, 중급 보상카드에서 나온 스킬치곤 조금 애매한 느낌이다.

“아.”

그런데 그때.

불현듯 마력탐색의 유용한 활용법이 떠올랐다.

항상 뮤대륙을 오가며 궁금해했던 것.

그건 바로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또 있을까?’란 의문이다.

그런데 이 마력탐색을 사용하면 그 의문을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력탐색의 사정거리는 대략 300미터 정도.

이걸 이용해 인구 밀집도가 높은 구역 여기저기를 다니며 마력탐색을 사용하면?

“확실히……”

시험해 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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