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29
12. 대비 (2)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나는 현관에 쌓여 있는 짐들을 안으로 옮겼다.
현재 내 힘은 14, 체력은 12.
처음 뮤대륙을 헤맬 때보다 힘이 3배, 체력은 4배가 증가하여 체질 자체가 바뀐 상황이다.
덕분에 아무리 박스를 옮기고 옮겨도 별로 힘들다는 느낌이 없었다.
집안에선 따로 보는 사람이 없으니, 좁은 벙커 입구로 물건을 내릴 때 플로트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을 사용하니, 박스 100여 개를 옮기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는 식품 창고로 보이는 곳에 차곡차곡 쌓인 비상식량들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꽉 채우려면 지금처럼 20번은 더 시켜야겠는데?”
물론 굳이 다 채울 필요는 없지만, 식량창고의 크기를 보면 왠지 채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뭐랄까 이 창고의 크기에도 이유가 있을 것 같달까?
여길 가득 채우려면 적지 않은 돈이 깨지겠지만, 지금의 내겐 그렇게 큰돈도 아니었다.
물은 워터 마법이 있으니 주문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내 부재를 대비한 최소한의 용량은 갖춰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겪은 일들을 보면 분명 뭔가가 터지긴 터지겠지.”
그런데 신문을 통해 7월 20일날 대정전이 일어나 큰 혼란을 주긴 하지만, 그전까지 세상이 뒤집혀 생존을 위협하는 절체절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까진 안개만 조심하며 살면 된다는 뜻이다.
“비상발전용 기름도 사둬야겠네.”
이후 벙커를 나선 나는 훈련으로 흘린 땀을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오늘은 택배기사님 외에 집을 찾는 손님이 또 있다.
다름 아닌 내 부모님들.
원랜 조금 더 나중에 집에 대해 알릴 생각이었지만, 문득 그럴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모시나 지금 모시나, 달라지는 것은 집을 손에 넣게 된 과정의 변명 거리밖에 더 있겠는가.
-솨아아
사실 처음엔 나를 중심으로 사건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만큼 함께 있으면 부모님을 위험에 노출 시키는 것 아닐까란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해외에서 일어난 일들처럼 내가 없는 데서 부모님께 문제가 생긴다면 속수무책이니, 최대한 붙어 있는 편이 오히려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무 계산하지 말고 어차피 모실 거 빨리 모시자고 결정한 것이다.
부모님이 2시 오시기로 했으니 곧이다.
적어도 땀 냄새를 풍기며 그분들을 맞이할 수는 없지.
***
도착했다는 전화에 얼른 대문을 나서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리둥절할 모습으로 서 계셨다.
“오셨어요?”
“어? 어……. 그래.”
“들어오세요.”
부모님을 반갑게 맞이한 나는 두 분을 안으로 모셨다.
“이 집 뭐니?”
얼떨떨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마당에 들어선 두 분은 으리으리한 주택을 보며 물었다.
“제 집이에요.”
“응?”
가벼운 대답에 어머니는 그게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웃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말 그대로 제 명의로 되어있는 집이고, 앞으로 두 분과 함께 살 집입니다.”
당연히 지금의 상황이 납득하기 힘들다는 거 안다.
하지만 부모님께 퀘스트에 대한 보상이라고 알릴 수는 없으니, 거짓말을 하던가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집과 마당을 스윽 둘러보시더니,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이 정도면, 부지면적만 150평은 되겠구나. 대충 평당 5천 언저리로 계산해도 70억은 그냥 넘을 텐데?”
“70어어억?”
어머니는 뜨악한 표정으로 내 손을 붙잡으며 째려보시고, 아버지는 어서 설명하라며 턱짓을 했다.
나는 집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정확한 가치를 몰랐었는데, 역시 인생 선배인 아버지는 보기만 해도 대충 견적이 나오는 모양이다.
“시세에 밝으시네요.”
어색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이자 어머니는 옆구리를 꼬집으셨고, 나는 대답 대신 등기부 등본을 보여드렸다.
“증여? 이 김하나란 사람이 누군데? 아니, 그보다 세금은? 이 정도 집이면 증여세만 해도 최소 20억이 넘을 텐데?”
“세금이 20억!?”
“최소가 20억. 주택 증여세 비율은 모르겠지만, 30억이 넘을 수도 있어.”
“3……. 30억.”
연신 경악하는 어머니의 표정 때문에 진지한 분위기에 안 어울리게 웃음이 나올뻔했다.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은 어머니.
나는 역시 심플하게 답했다.
“세금 문제도 전부 해결됐어요. 국세청에 확인해 보셔도 되니까 안심하세요.”
“아니, 세금 어떻게 해결했는데? 20~30억이 어딨어서?”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지만 너무 집요하게 물어와서 식은땀이 흐른다.
아마도 두 분은 나를 걱정해서 한 말이겠지만, 이에 답해야 하는 내 입장은 표정은 웃고 있어도 속으론 곤욕스럽기만 했다.
“벌었어요. 이번에 아버지께 빌린 돈이랑 이것저것 합쳐서 주식 투자했거든요.”
“그걸 말이라고.”
아버지에게 돈을 빌리고 이제 겨우 10일 정도 지났을 뿐이다.
내 초기 투자금은 아무리 많아 봤자 2억을 넘기지 못한다는 것을 아버지도 알고 계실 터.
때문에 전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래. 세금은 둘째 치고, 이 집을 증여한 김하나란 사람은?”
“저로 인해 대박 터진 분이요. 실상 그분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자식인데, 지금 내가 숨기는 게 있다는 것쯤은 느끼고 계실 거다.
아무리 부자여도 70억짜리 집을 턱 내놓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내가 계속 에둘러 답하자 아버지는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이 집이 문제가 될 가능성은?”
“융자가 45억 있는데, 주식에 넣어 놓은 상태거든요. 지금 70억 넘게 불어난 상태라서 딱히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너, 참…….”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흘린 아버지는 이내 졌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나름 결론을 내린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내 손을 주무르며 걱정스레 바라보셨다.
“무슨 불법적인 일 하는 거 아니지?”
모두 나를 걱정해서라는 걸 알기에 이 상황이 전혀 귀찮지 않다.
어머니다운 질문에 엄지손가락을 펼쳐 보인 나는 기분 좋게 답했다.
“물론이죠.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으니, 걱정 마세요.”
“그건 우리가 가장 잘 알지…….”
평범했던 집안의 유일한 자랑거리.
그런데 그 자랑거리가 처음으로 삐걱대나 싶었는데, 잠깐 못 본 사이 수십억, 아니 100억이 넘는 재산을 들고 나타났다.
황당한 게 당연하다.
이런 건 개인 능력을 운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
“가구와 가전제품만 들이면 되니, 내일이라도 이사 오시면 될 거에요.”
인테리어는 이미 완벽하게 되어있고, 요즘은 가전제품도 당일 배송이 된다고 하니,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음…….”
갑작스런 제안에 부모님께선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얼마 안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혼자 살다가 우리랑 같이 살아도 안 불편하겠어?”
“물론이죠.”
“그래, 일단 우리도 정리할 게 있으니, 며칠 걸릴 거다.”
“알겠습니다.”
“이거 참. 황당하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설마 우리가 이런 집에 살게 될 줄은.”
어떻게 대충 잘 넘긴 것 같다.
전적으로 부모님께서 날 믿고 대충 넘어가 주신 덕이지만 말이다.
이후로 두 분은 곧 살게 될 곳인 만큼 집 안 구석구석을 구경하셨고, 최신 설비에 계속해서 감탄사를 터뜨렸다.
집구경을 마치고 모처럼 부모님과 외식을 했다.
그리고 전자제품 마트에 들러 집에서 쓸 가전기기들을 함께 정하고 가구점에서 침대와 식탁, 소파 등을 구입했다.
부모님은 계속 집에 있는 것도 쓸만하다고 하셨지만, 내가 보기엔 너무 낡아서 교체하는 것이 좋은 수준이었다.
“너무 무리한 거 아냐?”
“이제 이 정돈 별로 무리도 아니에요.”
오늘을 위해 약 3천만 원 정도를 찾아놨었는데, 가구사고 전자제품 사니, 순식간에 잔고가 바닥났다.
역시 돈은 없어서 못 쓰는 것뿐이지, 있으면 허무하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빠르게 소비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
13. 향수와 같은 차
홍차는 제조법과 생산지에 따라 향이 모두 다르다.
청사과를 연상시키는 풋풋함.
들꽃을 연상시키는 싱그러움.
벌꿀을 연상시키는 달콤함까지.
이외에도 홍차는 종류에 따라 다양한 향을 지녔으며, 조합을 통해 새로움을 더할 수 있는 향수와도 같은 차이다.
-홍차에 대한 감상, 출처: 나-
“오.”
“수도 태생 아니더냐? 왜 지방 백작령을 보고 그리 놀라는 것이야?”
스승인 고든을 따라 카라스 마을이 소속된 영지의 수도인 아드리안 시에 도착했다.
수많은 깃발이 펄럭이는 웅장한 성곽과 견고한 성문.
그 안으로 붉은 지붕의 주택들이 줄지어 섰고 가장 중심에 위치한 성이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마치 판타지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광경.
입 밖으로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하하하!
-웅성웅성!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이 유럽스런 도시를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동양인(케일론인)의 생김새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이국적인 풍경이 조금이나마 친숙하게 느껴졌다.
“수도랑은 느낌이 전혀 다르죠.”
“하긴.”
사실 수도도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모르지만.
“그나저나 창을 들고 사냥을 다닐 만한 체력이구나. 이 스승은 한 것도 없이 지치는데.”
아드리안 시에 도착하기 위해 한나절 동안 꼬박 마차를 타고 이동했지만, 자동회복 스킬 때문인지 전혀 힘들지 않았다.
고든은 스스로에게 힐을 사용한 후에도 계속해서 스트레칭을 했다.
이렇게 앓는 모습을 보면 마차 안에서 마법에 대한 강의로 열정을 터뜨렸던 그분이 맞나 싶다.
정말 스승이란 역할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마법사가 좋긴 좋네요. 줄이 저렇게 긴데 프리 패스라니.”
나는 유유히 성문을 지나는 고든과 함께 이동하면서 등 뒤로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검문소를 힐끔 바라보았다.
“왕립 마탑 소속 정식마법사에게 주어지는 사소한 혜택 같은 거지. 너도 이번에 마탑에 등록을 하고, 서클을 한 단계만 더 올리게 된다면 받게 될 혜택이다.”
마법사 자체가 이 세상의 특권층이다.
그리고 나는 무사히 그 특권층에 안착한 상태이고.
“그렇군요.”
지금부터 또래의 모두가 나와 함께 성공을 향해 달려간다고 해도, 자유가 제한되는 일반 평민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유리한 위치에서 서 있다.
고든의 제자로 들어간 것은 내가 한 선택 중 최고의 한 수라 생각한다.
“다 왔다.”
도시의 대로변을 따라 이동하길 10여 분.
거대한 원통형의 높다란 탑이 우릴 반겨주었다.
[케일론 왕립 마탑 아드리안 지부]
오늘 이곳에서 마법사 등록을 하고, 지부장을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다.
아드리안 지부의 지부장은 6클래스의 고위마법사이자 남작 위를 가진 귀족으로 고든과 친분이 깊은 인물이다.
바로 고든의 사숙이자, 죽은 그의 스승을 대신하는 후원인이었으니 말이다.
더불어 우리가 판매할 홍차를 유통하는 데 큰 힘이 되어줄 동아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