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28
12. 대비 (1)
[중급 보상]
원룸 침대에 걸쳐 앉아 검은색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나는 작게 한숨을 토했다.
“하아.”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매일이 기적의 연속.
지금까지 내게 일어난 일들을 떠올리면 더 이상 놀랄 일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저쪽 세상에서 지구의 흔적을 접하게 될 줄이야.
“엉망진창이네.”
‘U.S.A.’라 적힌 외투를 입은 사내는 예상치 못한 일에 휘말린 민간인이었다.
내가 그를 민간인으로 확신할 수 있던 이유는 품 안에서 발견된 수첩 덕분이다.
그 수첩에는 안개가 잔뜩 낀 어두운 밤길, 집으로 돌아가던 중 발생한 기이한 사건에 대해 적혀 있었다.
중간중간 약어와 필체를 너무 늘여 써서 알아보기 힘든 부분이 많았지만, 문맥의 흐름으로 대략적인 번역이 가능했다.
사내의 이름은 ‘존 로니스’ 캘리포니아에 거주 중인 30대 남성으로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도 모르는 숲속을 걷고 있었다고 한다.
‘존’은 믿을 수 없는 사태에 자신이 인지를 못 했을 뿐 납치를 당했다고 여겼고, 부랴부랴 갖고 다니던 수첩에 해당 사실을 기록했다.
다이어리에는 자신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 경우를 대비한 유언과 숲속을 헤맨 내용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경계와 공포심으로 가득했던 글.
하지만 첫날의 기록 이후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던 것을 보면 오래지 않아 오크에게 사로잡혔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일어난 일은 내가 알고 있는 그 모습.
‘존’은 지구로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퀘스트 장소에 마련되어 있던 지구의 민간인.
공교롭게도 존은 내가 퀘스트 진행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사망했다.
처참했던 그의 사체는 마치 나에게 긴장하라며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메시지 같았다.
“지금 겪고 있는 이 상황이 나에게만 일어나란 법이 없지.”
‘세상이 선택한 유일한 존재.’ 이런 오만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처럼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이 드디어 등장한 건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처럼 예상치 못한 사고에 휘말려 뮤대륙으로 던져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
즉, 안개가 발생하며 뮤대륙의 몬스터가 이쪽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단 얘기였다.
“대재앙의 전조일까?”
뭔가 사건이 크게 터질 것 같은 분위기다.
나는 중급 보상을 개봉하지도 않고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그동안 애써 확인해 보지 않았던 내용을 검색하기 위해 키보드를 두들겼다.
[꿈…….]
뒤이어 ‘속 퀘스트’, ‘뮤대륙’이란 글자를 추가하려 했는데, 순간 손이 멈췄다.
쓸데없는 망상일지도 모르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만약 이 내용을 아는 다른 누군가가 있고, 또 그가 권력자라면 나 같은 사람을 찾으려 하지 않을까?”
더불어 한국이나 미국 같은 국가기관에서 이미 이상을 파악하고 있지만, 괜한 논란을 막기 위해 은폐하고 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키워드는 자신의 정체를 알려주는 꼴밖에 되지 않을 터.
“바보 같지만, 황당한 일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으니…….”
덕분에 나는 검색을 그만두고 컴퓨터를 껐다.
이젠 영화 속에서 등장할 법한 음모도 가볍게 여길 수가 없었다.
오후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PC방에서 확인해봐야겠다.
“그럼, 이제.”
내 손은 자연히 중급 보상카드로 향했다.
그리고 익숙하게 보상을 확인하는데.
-파앗!
“어?”
예상치 못한 현란한 이펙트가 터지며, 나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떴다.”
이건 당첨의 신호다.
나는 흰색의 빛가루가 아닌 금색의 빛가루를 흩날리며 떨어지는 물건을 손으로 잡았다.
이어서 보상을 확인하는 순간 굳었던 표정이 환하게 펴졌다.
[M석간 신문을 획득했습니다.]
“좋아.”
다시금 보상으로 미래의 신문을 손에 넣은 나는 뒤숭숭한 생각을 떨쳐내고 솔직하게 기뻐했다.
석간신문의 날짜는 7월 20일.
약 두 달 후의 정보가 실린 보물이었다.
기분 좋게 신문을 펼친 나는 대문짝만 하게 기재된 기사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갑작스런 가동 정지! 원자력 발전소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어제 오후 9시경 고리 원자력 발전소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내 모든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지 사태가 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 정지 30분 후, 전력 수급에 차질이 생기며 전국적으로 대정전이 발생. 많은 인명사고가 이어졌으며, 모든 행정체계가 마비되어 국민들을 패닉에 빠뜨렸다.]
[약 8시간이 지난 오전 5시경, 마치 원자로는 원래부터 정상작동하고 있었다는 듯 가동상태로 돌아왔다. 하지만 대대적인 원자로 정지사태와 갑작스런 복구는 상식을 벗어난 기이한 상황인 만큼 큰 의문으로 남았다.]
[오전 11시. 정부의 발 빠른 대처로 행정체계는 대부분 복구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 밤 원자로 가동 중지 사태가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큰 충격을 주었다.]
[미국 언론에 의하면 원자력 발전소뿐만 아니라, 항공모함과 잠수함 등 핵분열 에너지로 움직이는 모든 장비의 가동이 중단되었었다고 한다.]
M석간 신문에도 돈이 될 만한 경제정보가 담겨 있었지만, 메인을 장식한 기사 내용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았다.
“이젠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구나.”
비상전력 덕에 공항이나, 철도, 병원 등에 큰 재앙이 닥치는 일은 없었지만, 많은 시민이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교통사고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몇몇 시민들은 대정전의 혼란을 틈타서 약탈을 비롯한 범죄행위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군인들이 대대적으로 치안유지에 투입된 결과 비인간적인 사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나라의 상황에 비교하면 한국은 대정전 사태를 그나마 안전하게 넘긴 국가였다.
중국과 미국, 의외로 일본도 밤새 범죄가 급증하여 난리였다고 한다.
“이 사태를 인터넷에 기재하면 세계적인 대예언가가 될 수도 있겠네.”
하지만 나는 필요 이상으로 나서고픈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런 행동은 관심종자나 하는 짓이고, 내겐 신변의 안전이 최우선 사항이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맞춰봤자 잡혀가기밖에 더하겠는가.
심상치 않은 사태에 놀라긴 했지만, 내가 모두를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정부에 대정전을 예고해봤자 미친놈 취급만 받을 테고, 괜한 관심으로 행동에 제약이 생기는 것은 사양이다.
그저 이 사태로 내 인척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끔 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비라 생각한다.
“두 달 뒤의 국민 여러분 힘내십시오.”
나는 말뿐인 짧은 응원을 마치고 경제 부분으로 관심을 돌렸다.
주로 주식차트를 살폈는데, 따로 주목할만한 기사가 없어서, 하나하나 현재 주가와 비교하며 급등할 종목을 체크 했다.
“H바이오.”
2달 뒤의 정보임에도 이번에는 T화학 같은 대박 주가 없었다.
가장 많이 오른 종목이 3.2배.
신약 개발업체인 H바이오가 항암제라도 개발했는지 주가가 폭등했다.
대정전 사태로 거의 모든 종목이 하락세를 기록했음에도 상승세를 기록한 몇 안 되는 종목이었다.
“T화학처럼 말도 안 되는 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이게 어디야. 단 두 달 만에 재산이 3배 넘게 늘어난단 뜻인데.”
현재 T화학의 주식은 목표치의 70%에 다다른 상황이다.
지금 한창 S전자에서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지는 몰라도 상승 폭이 예상보다 가팔랐다.
일단 H바이오의 상승치를 살피면서 T화학 주식을 미리 뺄지 말지를 결정하면 될 것 같다.
경제면을 꼼꼼하게 살핀 나는 사회, 정치, 토픽까지 탐독했다.
그러다가 토픽에서 이목을 끄는 기사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부에 납치되어 인체 실험까지 당했다?]
[황당한 주장을 펼치며, 이목을 끌고 있는 자칭 초능력자 박모씨는 10년째 공무원을 준비하는 수험생.]
[정신과 전문의들은 스트레스에 의한 정신착란 증세일 뿐이라며 병원 치료를 권했으나, 박모씨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것임을 대대적으로 예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
그 박모씨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정부에 대한 내 경계심을 높이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조심해야지.”
나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평소보다 한 시간이 넘게 지나 원룸을 나섰다.
***
이번에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케일론 표준 오러 심법’.
기사들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오러를 다룰 수 있게 해주는 수련법으로 국가와 검가에서 애지중지하는 전략자산이다.
서클이 심장에 위치해 있다면, 오러는 아랫배에 응축되어 있는데, 현재 느껴지는 크기는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로 굉장히 작았다.
하지만 그 작은 오러 포인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온몸에 퍼져 있는 마력과 질적으로 달랐다.
오러는 마력을 자신의 것으로 변환하여 축적하는데, 마법에 사용되는 마력보다 조금 더 묵직하고 견고한 느낌이다.
“후…….”
감고 있던 눈을 뜬 나는 참고 있던 숨을 들이키듯 기운을 수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용법이 자동으로 각인 된다는 점이 편하네.”
오러심법을 손에 넣긴 했지만, 이 분야는 고든처럼 나를 지도해줄 선생님이 없다.
하지만 역시 사용하지 못할 보상은 주지 않는다는 듯, 오러심법의 운용방법과 개요가 오랜 시간 수련한 것처럼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다.
지금의 내 능력치는 마법 1~2서클 수준인 오러 유저 수준.
적은 양이지만, 이 오러를 사용하면 신체 능력은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아직 익스퍼트처럼 외부로 기운을 형상화하지 못해도 더 뛰어난 순발력과 예민한 감각, 힘의 폭발력은 이전과 확연하게 비교되는 수준이다.
아직 내 오러 양으론 30분 정도밖에 힘을 유지 할 수 없다.
하지만 꾸준히 오러의 크기를 키워가면 시간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오러는 다른 스킬들과 달리 마법처럼 스스로 수련을 하여 힘을 키울 수 있으며, 그 수련방법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다.
어쩌면 스승의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마법보다 익히기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딩동.
아직 이사하지 않은 용산 저택에서 수련을 이어가던 나는 갑자기 들려온 초인종 소리에 시계를 살폈다.
[12:53]
오러심법에 열중하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몰랐다.
“네, 잠시만요.”
가방에 분리된 창을 때려 박은 나는 얼른 대문으로 내려갔고, 1톤 트럭을 앞에 세워둔 택배기사님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조지훈 님?”
“네, 맞습니다. 잠시만요.”
이어서 나는 대문을 활짝 열었고, 그는 쉴 틈 없이 박스들을 내려놓았다.
“택배기사를 오래 해봤지만, 한 집에 이렇게 많은 짐을 날라 보긴 처음이네요.”
1톤 트럭에 들어있는 내용물 대부분이 우리 집에서 내려졌다.
덕분에 나와 기사님은 한참 동안 박스를 날라야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저흰 건당 수입이라 이런 경우는 행운이나 다름없습니다.”
인상 좋은 택배기사님이 떠나고 현관 입구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박스를 본 나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만약에 대비해 비상식량을 산다고 샀는데.”
엄청 많네.
일이라서 어쩔 수 없이 배송하긴 했지만, 과연 기사님은 이 많은 음식을 내리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