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22
9. 안개 (3)
그나마 안개가 옅던 중심 부근과 달리, 결계처럼 사방을 드리운 안개 속의 가시거리는 1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마력방출.’
-키엑?
창에 푸른 빛이 맺히고, 지도를 나침반 삼아 붉은 점을 향해 창을 찔러넣었다.
마력방출의 효과인 푸른 기운 덕분에 창이 가까워지자,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나마 적의 실루엣이 보였다.
덕분에 창끝에 변화를 줘서 적에 따라 정확한 타격을 할 수 있었다.
-켁!
고블린 세 마리와 오크 한 마리를 제거하고.
반대편의 붉은 점이 시민들을 향해 다가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바쁘게 몸을 날렸다.
득달처럼 안개를 뚫고 나와 자신들의 머리 위를 날 듯이 건너 뛰자 사람들은 하나같이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땅에 착지를 하니, 오크가 한 마리가 약속한 것처럼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흡!”
그에 마력방출과 관통스킬을 중첩으로 사용해 정석적인 찌르기를 내질렀다.
절묘하게 가슴과 목, 머리를 가린 글레이브 때문에 공격할만한 약점이 보이지 않아, 스킬을 믿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깡!
기대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듯, 내 창은 앞을 막아선 오크의 가슴을 글레이브 채로 꿰뚫어 버렸다.
-고고고
적지 않은 충격음이 안개 속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고 그리스 마법을 사용해 손쉽게 창을 뽑아 들었다.
“크으! 검기(창기)까지! 대협!”
시끄러운데 좀 닥쳐 줄 순 없을까?
나는 중년인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보낸 후 연이어 안개를 뚫고 나온 고블린들을 사냥했다.
놀 3마리와 오크 2마리, 고블린 7마리를 사냥하니 붉은 점이 3개밖에 남지 않았다.
-키에에엑!
매우 순조로워 보이는 퀘스트 진행.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미친.”
지금까지 내가 없앤 붉은 점의 두 배만큼, 새로운 붉은 점이 지도에 생겨났고, 그 중엔 처음 들어보는 굵직한 포효소리도 포함이 되어있었다.
스킬을 남발하다 보니, 마력은 어느새 4할이 사라진 상태.
몇 번에 걸쳐 몬스터가 나올지 알 수 없는 만큼, 앞으로는 속도보다 효율을 따져가며 싸워야 한다.
이 경우 시민들의 위험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지만, 적절히 속도와 효율 사이에서 밸런스 조절을 하면 되겠지.
나는 입술을 깨물며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놀들의 진행 방향을 향해 그리스 마법을 사용했다.
***
다행히 그 이후 제 3파는 없었다.
결국 나는 안전하게 시민들을 보호해냈고, 이제 적은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네가 보스냐?”
하지만 문제는 그 적이 범상치 않은 녀석이란 것이다.
“트롤이었군.”
몬스터 사전에서 봤던 트롤의 특징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거대 몬스터를 보며 질린 표정을 지어야 했다.
전에 들었던 처음 들어보는 포효소리는 이 녀석의 것이었다.
‘더럽게 크네.’
키 4미터.
무게 1.2톤.
트롤은 잘린 팔도 1분이면 새로 만들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회복력을 갖고 있으며, 뇌를 완전히 파괴하거나, 머리를 날려야 죽일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가죽도 상당히 질긴 편에 속해 방어력도 상당하며, 막강한 근력은 철제 방어구를 종이처럼 짓이긴다.
나는 엄청난 위용을 뽐내며 나타난 트롤을 향해 창을 겨누며 마른침을 삼켰다.
아껴 쓴 덕분에 현재 남아 있는 마력은 3할 정도.
단 한 마리의 몬스터를 상대하기엔 여유 있는 양으로 보이지만, 트롤은 상대해보지 못한 몬스터인 데다가 귀찮은 특성이 있어서 마력이 여유 있다고 승리를 확신하긴 힘들었다.
게임의 보스 공략하듯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조심하면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압도적인 체격 차이에 긴장감이 몰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 한 마리 남았다는 말에 안도했던 시민들은 안개를 헤치며 나타난 거인의 모습에 헛바람을 삼키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럼, 인사부터.’
창끝으로 녀석의 대가리를 겨눈 나는 관통스킬이 더해진 매직 미사일 다발을 날렸다.
-쿠쿠쿠쿵!
대가리가 워낙 크기에 빗맞히는 게 어려울 정도.
총 여섯 발의 매직 미사일이 새파란 피를 튀기며 녀석의 머리에 구멍을 냈고, 트롤은 고통스러운 듯 소리를 지르면서 비틀거렸다.
뒤에서 구경꾼이 된 시민들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트롤의 얼굴과 이마에 흉측하게 뚫린 구멍들이 부글부글 거품을 일으키며 빠르게 회복되자 망연자실한 표정들을 지었다.
“미, 미친.”
“저런 괴물을 어떻게 이겨.”
자기들이 싸우는 것도 아닌데, 힘 빠지는 말은 말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방금 공격은 간보기용이었으니.
매직 미사일론 큰 피해를 주지 못했으나, 적어도 녀석은 고속회복이 있어도 고통 해소까진 없다는 걸 알게 되지 않았는가.
이것만 해도 큰 성과라 생각한다.
트롤이 인간형인 만큼 신체 구조도 사람과 다르지 않을 터.
그럼 공략법은 많았다.
충분히 해볼만 하다고 생각 하게 된 나는 자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리스.’
일단 너무 크니 녀석을 눕히고 시작을 해야겠다.
그리스 마법 한 번에 트롤은 보는 사람이 놀랄 정도로 요란하게 넘어졌다.
-쿵!
그런데 이런 대형종의 몬스터는 넘어뜨린다고 다가 아니다.
압도적인 피지컬 차이 덕분에 허우적거리며 휘둘러오는 팔과 다리가 굉장히 위협적이었으니 말이다.
변칙적으로 날아드는 공격은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다.
‘도약.’
-후웅!
발밑으로 녀석의 커다란 손이 바람 찢는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트롤의 공격을 인지하고 손발이 닿지 않을 만큼 높이 날아오른 나는 살기 가득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눈과 목, 명치, 낭심을 향해 관통 매직 미사일을 날렸다.
-크아아악!
눈과 목을 노린 매직미사일은 녀석의 손을 파고들었지만, 명치와 낭심을 노린 공격은 제대로 들어갔다.
고통이 상당한지 트롤은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파닥댔고, 훤히 드러난 녀석의 배를 향해 떨어지며 푸른 빛을 머금은 창을 찔러 넣었다.
-쿵!
가죽을 뚫고 살속 깊이 파고든 창.
도약 스킬의 착지효과로 안정적으로 트롤의 몸 위에 내려선 나는 창을 뽑지 않고 그대로 온몸을 비틀어 뱃가죽을 길게 찢었다.
상황 파악 못 하고 몸부림을 치는 트롤의 행동으로 갈라진 배는 ‘퍽!’하는 소리와 함께 벌어졌다.
덕분에 순식간에 내장들이 양옆으로 쏟아지며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연출했다.
덩치만 크지 머리가 나쁘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 행동이었다.
“우웩!”
시민들에게서 들려온 구토 소리.
하지만 더한 것도 많이 봐온 나는 이정도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후웅!
악에 받친 녀석이 모기 잡듯, 손바닥을 휘둘러 왔다.
그러나 나는 도약을 돌진으로 쓰며 가볍게 자리를 벗어났다.
도약의 안정적인 착지효과는 이럴 때 큰 이점이다.
나는 도약을 이동기로 쓰며 안정적으로 트롤의 몸을 탔고, 털이 잔디를 연상시키는 가슴에 도착하자 창을 높이 들어 올렸다.
‘트롤을 죽이기 위해선 머리를 날리거나, 뇌를 완전히 파괴해야 한다.’
아쉽지만 내 공격수단으로는 일격에 뇌를 파괴하거나 목을 날릴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이 방법이다.
나는 창을 찍어 내리며 가슴에 굵직한 구멍을 냈고, 그 구멍에서 지독한 냄새가 바람과 함께 새어 나왔다.
애초에 내가 정한 표적은 다름 아닌 녀석의 허파였다.
‘워터.’
뚫린 구멍에 공격력 없는 단순한 물이 작은 폭포처럼 쏟아졌다.
아무리 녀석의 덩치가 크다고 해도 허파 한쪽이 물로 가득 차는 것은 금방이었고, 트롤의 무서운 회복 능력은 물이 새지 못하게 스스로 구멍을 틀어막았다.
다시금 날아드는 트롤의 손을 피해 부지런히 반대쪽 허파에도 같은 시술을 해준 나는 멀리 몸을 날렸다.
-큭!
그때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트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통스런 표정으로 ‘꺽꺽’ 댔다.
삐져나온 내장으로 구멍을 메우지 못해 흉측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는 녀석의 복수는 시각적인 보너스였다.
숨이 쉬어지질 않는지 자신의 가슴을 후려치며 바닥을 뒹구는 트롤은 완전히 전투 의지를 잃었다.
아니, 전투를 이어갈 여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거다.
“악마다.”
등 뒤에서 누군가의 감상이 들려 왔지만, 무시하며 트롤의 발밑의 그리스를 풀었다.
‘덩치만 크지. 생각보다 쉬운데?’
단순히 내가 잘 싸운 걸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면 사냥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한 번에 두 마리를 상대하는 것은 지금 수준으론 절대 불가능하고 위험성은 오크와 차원이 다르지만 말이다.
-저벅저벅
여유롭게 녀석에게 다가간 나는 얌체처럼 창으로 밧줄처럼 복잡하게 엉킨 창자들을 잘랐다.
손발은 잘리면 도마뱀 꼬리처럼 회복하면 그만.
하지만 양쪽이 이어지는 창자의 중간을 끊으면 어떻게 회복할까?
내가 봤을 때 다시 손으로 잘린 부위를 잇지 않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부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끊어진 창자는 녀석에게 엄청난 고통을 선사할 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꿈틀대기만 하던 녀석의 움직임이 얼마 가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지구에서의 첫 퀘스트. 모든 능력치가 1상승 합니다.]
[중급 보상카드를 획득했습니다.]
[안전가옥을 획득했습니다.]
이어서 주변에 드리웠던 안개가 옅어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외쳤다.
“안개가 걷힌다!”
“살았어! 살았어요!”
그러나 지금 당장 원래대로 돌아가는 가면 내 처지가 난처할 수밖에 없다.
“잠깐만 주무세요.”
“대협?”
나는 그들에게 수면 마법을 사용한 뒤, 가스총과 삼단봉을 포함한 장비들을 수습하고 얼른 수풀 속으로 몸을 숨겼다.
***
몬스터들의 사체는 안개와 함께 사라지고 평소와 다름없는 공원의 풍경이 나를 반겨 주었다.
혹시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 있는 것 아닐까란 걱정을 했는데, 안개는 사람을 물리고 인지를 어지럽히는 기능이라도 있는지 한산하기만 했다.
시간을 보니 분명 시간이 30분 정도 지나있었는데, 아무도 이상을 깨닫지 못했다는 게 이상했다.
지난번엔 안개를 인지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찌 된 걸까?
사람들은 안개가 걷히고 한참이 지나서야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사람이!”
까치산 공원에 들어선 시민들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5명의 남녀를 보고 기겁하며 달려왔는데, 그들의 안전을 확인한 나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가방을 짊어진 채 반대쪽 길로 향했다.
-대혀여엽!
이제 정신을 차렸는지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까치산 공원에 울려 퍼졌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물건들을 꺼내 들었다.
[중급 보상]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원래대로라면 침대 머리맡에 있어야 할 보상이 주머니에서 나왔다.
“중급은 처음이네.”
중급의 보상카드에선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감이 크다.
이왕이면 강력한 스킬이나 지난번처럼 미래에 대한 정보가 나오면 좋을 텐데.
[등기부 등본]
그리고 보상카드와 함께 주머니에서 나온 종이뭉치를 펼친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보상이 안전가옥이라 들었을 때 설마 했는데, 진짜로 집일 줄은 몰랐다.
그냥 명칭만 비슷한 무언가라 생각했던지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소유자 조지훈]
토지와 건물 명의자는 모두 내 이름으로 되어있었으며, 근저당 내용 없이 깨끗했다.
위치는 용산 삼각지역 부근이고, 토지 150여 평에, 건물이 1~2층 합쳐서 65평이다.
그런데 굳이 ‘안전가옥’이라 칭해진 것 보면 뭔가 있을 것 같은데, 등기부 등본만 봐선 특별한 게 없어 보였다.
“그나저나, 용산에서 이만한 집이면…….”
10억은 가볍게 넘지 않을까?
“이게 웬 떡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