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16화 (16/247)

# 16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16

7. 기묘함 (2)

내가 열심히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는 꿈속 세상은 ‘뮤’라는 단 하나의 대륙이 존재하며, 이 뮤 대륙은 ‘하이랜드’와 ‘미드랜드’, ‘이블랜드’ 3개의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이랜드는 드래곤을 비롯한 엘프, 드워프, 수인족 등 다양한 유사인종이 태초의 자연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미드랜드는 12개의 국가가 서로를 견제하며 전쟁이 끊이질 않는 인간들의 영역이다.

이블랜드는 불길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악마 종을 비롯해 다양한 괴물들이 둥지를 틀고 있으며, 뮤대륙 전역에 퍼져 있는 몬스터들의 고향이라 칭해지기도 한다.

하이랜드, 미드랜드, 이블랜드는 대협곡과 죽음의 사막으로 막혀 있어, 서로의 영역에 왕래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때문에 땅은 하나로 이어져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3개의 영역을 별개의 대륙으로 보고 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3개의 영역 중 가장 강성한 힘을 갖고 있는 곳은 하이랜드도, 이블랜드도 아닌, 인간들이 다스리는 미드랜드란 점이다.

보통 이런 세계관에서 인간은 위에서 맞고 밑에서 맞는 동네북과 같은 신세인 게 일반적인데, 드래곤이나 악마종이 포함된 두 영역보다도 강성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데 미드랜드가 두 대륙에 비해 강성한 이유는 특별한 게 아니다.

바로 쪽수와 신성력의 존재 때문이었으니.

하이랜드의 드래곤은 지상최강의 생명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막강하다.

오죽하면 드래곤 한 마리의 전력이 국가에 버금간다고 하겠는가.

다만 그 막강한 드래곤은 이제 겨우 4마리밖에 남지 않았으며, 나머지 유사종족도 수가 꾸준히 줄어들어, 미드랜드의 인구수 대비 1/10000도 안 된다고 한다.

또한 이블랜드의 언데드 군단은 상당한 숫자와 강력한 힘을 자랑하지만, 인간 문명 깊숙이 뿌리를 내린 교단의 신성력 앞에서는 제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건 말이 좋아 뮤대륙의 중심 세력이지, 따지고 보면 하이랜드의 쇠퇴와 이블랜드의 약점 덕분에 어부지리로 머리를 차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결코, 미드랜드가 잘난 것이 아니었다.

“귀찮네.”

평소처럼 사냥이나 할 것이지, 이제와서 뜬금없이 꿈속의 세계관을 설명하게 된 이유가 뭐냐면.

바로 이 황당한 퀘스트 때문이다.

[퀘스트 발생]

등급: 하

내용: 뮤대륙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라

보상: 하급 보상카드, 전투보조 스킬

어렸을 때부터 특기를 물어보면 공부라 답할 자신이 있을 정도로 친근한 분야였지만, 아무래도 역시 꿈속에서까지 공부를 하고 싶어 할 정도로 미쳐있는 것은 아니다.

덕분에 지금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서점에서 사 온 ‘뮤대륙의 지리사’란 책을 읽고 있는 상태다.

처음엔 소설책 읽는다는 감정으로 시작했으나, 지리사란 책이 재미가 있을 리 만무.

이제 즐거움이란 느낌은 단 하나도 없었으며, 거의 기계식으로 머릿속에 뮤대륙에 대한 정보를 때려 박고 있다.

신이란 존재는 나를 완전히 이 세상에 정착시키려는 건가?

정말 맥빠지는 퀘스트가 아닐 수 없다.

“그나저나 어느 수준까지 이해를 해야지 끝나는 거야?”

퀘스트 내용이 너무 애매한 거 같다.

“카라스 마을이 소속된 영지는 아드리안 백작령. 케일론 왕국 최대의 곡창을 보유하고 있으며, 상업이 크게 발달한 영지.”

이러다가 미드랜드의 귀족 가문을 전부 외우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전투보조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지혜를 활용한 퀘스트 완료. 지능이 1 향상됩니다.]

[끈기 있는 인내심. 체력이 1 향상 됩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퀘스트는 하루를 넘기지 않고 끝낼 수 있었다.

나는 두터운 뮤대륙 지리사에 이어 읽던 ‘뮤대륙의 정세’를 덮으며 기지개를 켰다.

[-]

힘: 8 체력: 7->8

민첩: 8 지능: 26->27

마력: 5 운: 4

[-]

도축(액티브 / LV-)

마력방출(액티브 / LV1)

도약(액티브 / LV-)

직감(패시브 / LV1)

자동회복(패시브 / LV1)

전투보조(패시브 / LV1)

능력치도 능력치지만 이젠 제법 스킬창이 풍성해졌다.

전투보조 스킬은 패시브여서 사냥을 해야지만 용도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부디 직감처럼 이름만 그럴싸한 스킬이 아니길 빈다.

단순히 레벨이 부족해서인지는 몰라도 ‘직감 LV1’은 평소와 다른 점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레벨이 오르면 달라질 가능성은 높지만, 나는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스킬을 선호하는 편이다.

“오, 추가 퀘스트 없이 이대로 끝이야?”

혹시 싶어 침대에 누우니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꿈에서 깨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따분하지만, 오늘이 가장 쉬웠던 퀘스트가 아니었나 싶다.

***

퀘스트를 완료하고 얻은 보상 카드에서 능력치로 힘 2를 얻은 나는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인터넷으로 뉴스를 살피던 중,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했다.

[T화학 반도체 신소재 개발. 과연 어려운 기업 사정을 타파할 계기가 될 것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질까 애써 잊었던 내용을 상기시켜주는 반가운 기사였다.

나는 T화학의 현재 주가를 확인했고 9,200원에서 14,000원까지 상승한 것을 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50%가 넘는 상승.

약 2억의 투자금이 3억까지 불어났다.

아직 많은 사람들은 뉴스 기사를 신뢰 못 하겠는지, 주가가 자잘하게 파도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땐 분명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좋아, 좋아.”

오늘은 여러모로 시작부터 좋은 느낌이다.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창 연습을 위해 만 원주고 구매한 당구채를 가방에 넣곤 버릇처럼 까치산 공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기분 좋게 걸음을 옮기던 나는 잊고 있던 오늘의 일정을 떠올리며 표정을 굳혔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오후 1시에 면접이 잡혀 있었다.

꿈을 꾸며 뮤대륙을 오가기 전만 해도 내가 가장 공들이는 큰일이 취업이었는데, 솔직히 요즘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꿈만 꿔도 큰 이득을 현실에서 얻을 수가 있는데, 굳이 평범함을 고수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더구나 꿈속에 많은 위기가 도사리는 만큼, 그 위기가 현실에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전히 내겐 ‘꿈속에서 죽임을 당한다면?’이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압박이었다.

덕분에 내가 갑자기 돌연사를 하더라도 주식에 넣어 놓은 돈을 현금화할 수 있게, 방 안에 부모님을 향한 유서 아닌 유서를 남겨 놓은 상태다.

재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만약을 대비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 내 현실이었다.

그동안 엄청난 퀘스트 보상에 마음을 빼앗겼으나, 엄연히 이는 정상과 거리가 먼 비정상이었으니까.

“쓸데없는 생각 말자.”

잠시 후, 까치산에 도착한 나는 완전히 전용석이 되어버린 으슥한 수목 속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당구채를 조립해 몸에 익숙해진 찌르기 연습을 실시했다.

“오늘까지만 면접을 보자.”

그런데 만약 이번 면접까지 떨어진다면 운명이라 생각하고 취업에 목을 매지 않을 생각이다.

아예, 취업의 지옥에서 벗어나 내키는 대로 살아보는 것도 좋겠지.

얼마 후면 충분히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자본금이 생길 테니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창 연습을 이어갔을까?

갑자기 뒷목을 자극하는 듯한 불쾌함에 하던 일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

그리고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마주한 나는 크게 당황해야 했는데.

“뭐야, 이거.”

어느새 가시거리가 1m도 안 될법한 짙은 안개가 사방을 감싸고 있던 것이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신경을 쓰지 못했다곤 하지만, 이렇게 짙은 안개가 낄 때까지 이상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더구나 방금까지 뚫어져라 주시하던 당구채 끝이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니, 내가 이상하다기보단 주변이 이상하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괴함.

현실이 만화나 영화 속이었으면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마음 같아선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지만,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드니, 발걸음을 옮기기가 불편했다.

꿈속에서처럼 지도 기능이라도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데, 그때였다.

-팟!

[지도가 펼쳐집니다.]

현실에서 사용할 수 없던 인터페이스가 어째서인지 작동한 것이다.

[사당동 까치산 공원]

그리고 그 지도는 현재의 위치를 정확하게 표기해 냈다.

“무슨.”

덕분에 나는 벙찐 표정을 지어야 했다.

하지만 혼란스러움도 잠시 가만히 서서 생각을 정리했다.

모든 이상의 시발점은 갑자기 나타난 안개부터다.

이 안개가 주변의 환경을 뮤대륙처럼 만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어째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가에 대해선 짚이는 것이 전혀 없었다.

이것도 신의 변덕 같은 걸까?

대체 그 무언가는 내게 뭘 바라는 걸까?

[케일론 왕국 신분증]

이름: 지훈

성별: 남자

계급: 자유민

생년월일: 1076년 5월 25일

출생지: 국왕령 카르디아

범죄경력: 없음

[+]

어김없이 펼쳐지는 신분증과 능력치, 스킬 창들.

지도에선 명확하게 현재 위치를 까치산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지금 내가 딛고 선 이 땅이 서울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기이함의 끝을 달리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키에에엑!

가래 끓는 익숙한 포효와 함께 갑자기 눈앞에 조잡한 단검이 나타났다.

그에 기겁한 나는 뒤로 몸을 굴리며, 당구채에 마력방출을 사용해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빠아아악!

-켁!

무언가와 강하게 부딪힌 당구채는 사정없이 부서지고, 동시에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치직!

열어 놓았던 지도기능에 노이즈가 생기고.

이내 아날로그 TV가 꺼지는 것처럼 축소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방금 전에 사방을 뒤덮었던 안개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평소와 다름없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짹짹.

한가로이 노니는 참새들의 지저귐.

평화롭기 그지없는 까치산 공원의 녹음 속에 나는 굳은 표정으로 부러진 당구채에 묻어 있는 새파란 피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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