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15
7. 기묘함 (1)
보통 ‘놀’이라 하면 늑대인간의 하이에나 버전이라고만 생각되는데, 이쪽 세상의 놀은 이미지가 상당히 다르다.
놀은 이족보행 중형 몬스터로 덩치와 질량에선 오크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다만 전신이 근육으로 이뤄진 타고난 전사 오크와 달리, 놀은 살이 뒤룩뒤룩 찐 덩치 큰 돼지란 점이 다르다.
대가리는 하이에나지만 몸은 사냥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
더구나 지능까지 낮아서 덩치가 아무리 크다 해도 오크보다 질 떨어지는 몬스터로 인지된다.
-다다다닥!
그런데 딱하나 오크보다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녀석들의 돌진이었다.
평소엔 이족보행으로 느릿느릿 돌아다니지만, 사냥감을 발견하면 짐승처럼 네발로 달려온다.
막상 돼지가 달리면 상당히 빠른 것처럼, 녀석의 돌진 만큼은 무기를 쥔 채 달려오는 오크나 홉고블린 등과 비교가 안 된다.
“읏차.”
하지만.
그런 무식한 돌진은 짐승들에게나 통하지, 철저한 준비를 거친 사냥꾼에겐 통하지 않는다.
나는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놀 3마리를 향해 히죽 웃어 보이며 손에 쥐고 있던 밧줄을 당겼다.
그에 40㎝ 간격으로 엮어놓은 자벨린(투척용 창) 6개가 날카로운 강철 촉을 번뜩이며 사선으로 세워지고, 자기 몸무게를 못 이긴 놀들은 알아서 창을 향해 몸을 찔러 넣었다.
-푸욱!
-쿵! 쿠쿵!
요란한 충격음과 함께 놀 두 마리가 자벨린에 꿰뚫려 바닥을 뒹굴었다.
“쉽네.”
그렇게 손짓 한 번에 두 마리를 아웃시킨 나는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달려드는 마지막 놀을 향해 석궁을 겨눴다.
-팡!
무섭게 날아드는 볼트를 마주 달려오면서 피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크어어어!
볼트는 녀석의 어깨 깊숙이 틀어박혔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여전히 달려드는 마지막 놀을 발걸이 밧줄과 스파이크가 반겨주었다.
-쿠당탕탕!
그리고 온몸에 스파이크를 단 채 으르렁거리는 녀석을 주무기인 롱스피어로 마무리.
아주 깔끔하게 전투가 끝이 났다.
만약 한 마리가 더 많거나, 첫 번째 함정에서 두 마리가 살아남는다면, 직접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근접 전투를 어려워한다는 것은 아니다.
마력방출과 도약 스킬이 생기고 나서부턴 조금씩 전투에 재미를 붙여가는 중이니까.
물론 흉악한 면상을 가진 몬스터와 얼굴을 맞대고 싸우는 것은 담이 커야 하지만, 나는 상대방의 외견에 위축될 만큼 겁이 많지 않았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자동회복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높은 공격 성공률. 민첩이 1 향상됩니다.]
[스킬에 대한 높은 이해도. 마력이 1 향상됩니다.]
“좋아! 마력!”
이번 퀘스트는 이전까지와 달리 겨우 이틀 만에 끝이 났다.
난이도는 분명 홉고블린 5마리가 포함된 고블린 사냥보단 높겠지만, 장비와 스킬, 능력치가 대폭 상승한 데다가 대비를 잘한 만큼 쉽게 퀘스트를 완료했다.
지금이라면 오크 사냥 퀘스트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마을로 돌아가자.”
나는 놀 3마리의 가죽과 이 세계에서 약재로 많이 쓰인다는 쓸개를 챙겼다.
아무래도 덩치가 큰 만큼 가죽의 크기가 고블린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여서 지게나 다름없는 가방을 짊어지니, 완전군장 이상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한두 번 정도는 더 싸울 수 있지만.”
지금은 물러나야 할 때다.
마력에 여유가 있다고 괜히 욕심부리다가 사냥터 한복판에서 잠이 깨기라도 하면, 다음 날 어떤 문제가 생길지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퀘스트 완료 후에는 무조건 안전 구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응?”
그런데 그때.
미니맵을 체크하며 빠르게 숲을 벗어나던 나는 신체의 이상을 깨닫고는 크게 놀랐다.
“마력이.”
놀랍게도 마력이 이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 속도로 차오르는 것이었다.
물론, 퍼센티지로 따지면 20초에 1%정도지만, 비교의 기준이 되는 기존 회복 속도가 워낙 느렸기에 이 정도면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는 속도였다.
“자동회복 때문인가?”
예전엔 마력이 떨어지면 그냥 복귀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회복속도면 33분 만에 마력을 모두 채울 수 있단 뜻이니, 앞으로의 전투 스타일이 바뀔 수밖에 없다.
스킬을 아낄 필요가 없는 만큼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고, 그만큼 사냥의 효율과 속도도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도축(액티브 / LV-)
마력방출(액티브 / LV1)
도약(액티브 / LV-)
직감(패시브 / LV1)
자동회복(패시브 / LV1)
스킬창을 열어보니, 자동회복에도 레벨이 존재했다.
그 말은 스킬이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인가?
그리고 마력 회복이 아니라 자동회복이란 포괄적인 이름이 지어진 걸 보면 스킬 효과가 이 정도로 끝은 아닐 것 같다.
“생각보다 훨씬 좋은 스킬이네.”
잠시 후 마을에 도착한 나는 놀의 가죽 더미에 말을 잃은 경비병을 뒤로한 채 시장으로 향했다.
“진짜, 말이 안 나오네요. 당신 고블린 3마리에 쫓겨온 사람 맞아요?”
“아무래도 사냥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이건 재능이란 단어로 치부해도 될 만한 수준이 아닌데요?”
“하하.”
“고블린까진 그러려니 했지만, 놀을 고블린 수준으로 사냥해오니…….”
잡화점의 주인인 메리란 이름의 젊은 여성은 고개를 내저으며 놀 부산물을 처리한 돈 6은화 4동화를 내게 건네주었다.
“저야 도축 스킬로 다듬어진 질 좋은 가죽을 얻을 수 있어서 좋지만.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닌지 걱정이네요.”
그녀의 말에서 느껴지는 진심에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에 메리의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나는 그녀를 뒤로한 채 잡화점을 나섰다.
이어서 여관방으로 돌아와 씻은 다음 침대에 누우니 기다렸다는 듯 꿈에서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계속 퀘스트를 클리어한 후 여관에 돌아와 누워야지 잠에서 깨는 것 같네.’
그리고 나는 보상카드의 내용물을 기대하여 판타지 세상에서 벗어났다.
***
-안녕하십니까. SBN 아침 뉴스입니다. 먼저 해외 사건 사고 소식을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젯밤 12시경, 일본 홋카이도 오비히로 시에서 묻지 마 살인 사건이 발생해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사상자가 무려 13명에 달하며, 피해자들은 단 한 명도 생존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범인은 아직 체포되지 않았으며, 어째서인지 해당 지역의 CCTV가 범행이 발생한 20분 동안 정지한 데다가 목격자도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 시민들은 계획된 테러가 분명하다며, 해당 지역에 출입한 외국인들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경찰에 성토하고 있습니다.
적막감을 깨고자 TV를 켰는데, 나를 반겨준 것은 더없이 흉흉한 뉴스였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도로 TV를 껐다.
“별일이 다 있네.”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그냥 거기까지.
어차피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두 장의 하급 보상카드를 집어 들었다.
“응?”
그런데 문득.
방금 뉴스의 내용을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데자뷰처럼 말이다.
-펄럭.
내 시선은 자연히 방 한구석에 접혀 있는 A조간 신문으로 향하고, 그것을 펼치자 가장 자극적인 기사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K대 캠퍼스서 연쇄 살인 사건 발생. 경찰 CCTV를 확인했지만, 사건 발생 전후 1시간 동안의 영상이 저장 안 돼 수사가 난항.]
얼마 전 보상으로 얻었던 미래의 신문.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주 후에 발생할 일이었다.
“…….”
작동을 안 하는 CCTV.
목격자 없는 대량 살인 사건.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공교로웠다.
“뭐야, 이거.”
동일범?
아니면 정말 계획된 테러?
보도된 자료만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
어차피 진실은 범행을 일으킨 자들만이 알고 있을 테니.
하지만 이 정도면 관련성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마치 나보고 사건을 해결하라는 것 같네.”
영화나 만화 속 주인공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특수한 힘이 내게 주어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마땅히 정의를 구현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힘을 써야 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나는 이런 오글거리는 대사를 순진하게 내뱉고 다닐 만큼 착하지 않다.
내가 양팔을 뻗어 끌어안을 수 있을 정도의 몇안 되는 친우와 가족이라면 모를까, 얼굴도 모르는 타인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아주 이기적인 사고방식.
그러나 애초에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이 신문의 기사를 처음 봤을 때도 학생들을 위해 직접 나서야겠단 생각보다, 경찰에 위험해 보이는 거동 수상자가 있다는 정도의 신고만 해놓을 생각이었다.
“괜히 나섰다가 불똥이 튀는 건 사양이니까.”
만약 동일범이라면 나로 인해 내 주변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사람을 무분별하게 살인하는 사이코들과 엮이는 것은 아무리 봐도 득보다 실이 컸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신문을 덮은 나는 바로 보상카드를 사용했다.
[체력이 2 증가합니다.]
[운이 2 증가합니다.]
내가 너무 야박하게 굴어서일까?
보상도 어중간했다.
스텟이 오른다면, 힘이나, 마력, 민첩이 좋은데…….
특히 운은 어디다 써먹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처음 내 운이 겨우 1이었는데, 이젠 4가 되었다.
그럼 4배 더 좋은 행운이 들어온다는 걸까?
“몰라, 운동이나 하자.”
힐끔 접어둔 신문을 바라본 나는 애써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