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13
6. 스킬과 장비 (1)
최근 현실보다 꿈속에 머무른 시간이 길어서인지, 내 방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이젠 목재와 황토가 더해진 여관방의 천장이 더 익숙할 지경.
머리를 긁적이며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크게 기지개를 켜며 스트레칭을 했다.
“역시 개운하네.”
꿈속에서 강제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은 누군가의 수법에 놀아나는 느낌이라 불쾌하지만, 자고 일어났을 때의 상쾌함과 보상카드를 보면 불만이 절로 누그러졌다.
나는 머리맡에 놓여 있던 4장의 하급 보상카드를 집어 들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노력하는 만큼의 보상이 주어지는 건 오히려 현실이 아닌 꿈속이네.”
꿈속에서 죽임을 당해도 이상이 없다면 마음이 더 가벼울 텐데, 그건 시험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급 보상]
[카드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불필요한 생각을 떨쳐낸 나는 기분 좋게 보상카드를 사용했다.
이번에도 당첨 같은 녀석이 껴있으면 좋겠는데.
보상을 한 번에 4개씩이나 까본 것이 처음인지라 기대감이 상당히 컸다.
-파앗!
연달아 터지는 새하얀 빛.
[20만 원을 획득했습니다.]
[민첩이 2 증가합니다.]
처음엔 꿈만 꿔도 현찰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이 좋다고 여겼지만, 지난번 엄청난 보상을 얻고 나니, 이 정도는 꽝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이것도 나쁘지 않은 건데, 역시 사람의 욕심이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아쉬움을 느끼던 찰나.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는 듯, 강화된 특별한 이펙트가 발생했다.
“당첨이다!”
나는 주먹을 불끈쥐며 환호했다.
그런데 그 이펙트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연달아 발생했다.
[액티브 스킬 도약을 습득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직감을 습득했습니다.]
이번엔 지난번처럼 물질적인 보상은 아니었다.
세속적인 보상을 바란 입장에선 김이 샜지만, 이것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에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당장의 이득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땐 이게 더 나을 것 같다.”
유일한 물질적 보상인 5만 원짜리 네 장을 지갑에 찔러 넣은 나는 현재 상태를 체크했다.
힘: 7 ->8 체력: 4 ->5
민첩: 4 ->7 지능: 25 ->26
마력: 4 운: 2
능력치 상승률은 이렇다.
현실에선 신분증이 활성화되지 않지만, 이 정도는 굳이 신분증을 안 봐도 기억하고 있다.
퀘스트 완료로 능력치 4개가 상승하고 보상카드로 민첩 2를 추가 획득해 능력치가 6개나 상승했다.
맨 처음 힘이 5, 민첩과 체력이 3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이대로 가다간 슈퍼맨이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더구나 민첩은 처음에 3이었던 것에 비해 무려 2.3배나 증가한 상태니, 모르긴 몰라도 운동선수에 비견되는 수준이 아닐까 싶다.
조금 있다가 공원이나 한 바퀴 달려봐야겠다.
“이어서 스킬.”
도축(액티브 / LV-)
마력방출(액티브 / LV1)
도약(액티브 / LV 확인 못 함)
직감(패시브 / LV 확인 못 함)
마력방출을 얻으면서 알 된 것인데, 스킬은 종류에 따라 레벨이 정해져 있다.
도축은 무레벨의 스킬이고 마력방출은 1, 나머지 두 개는 신분증을 열어야 확인할 수 있다.
스킬 레벨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높아지는 것인지, 처음부터 정해진 등급인지 모르지만, 이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빨리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현실에서의 스킬의 사용 가능 여부였다.
어제는 깜박하고 도축으로 실험하는 것을 잊었는데, 오늘은 반드시 확인을 해봐야겠다.
만약 현실에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면 초능력자나 다름 없다.
“뭐, 능력치가 적용되는 것을 떠올리면 이미 반쯤 초능력자라 할 수 있나?”
가볍게 세수를 하고 모자에 마스크까지 눌러쓴 나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현재 시간 8시 30분.
더구나 내가 사는 곳이 사당동이다 보니, 많은 직장인들을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출근한다고 바삐 움직이는 인파 속에 홀로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게 나쁜 기분만은 아니다.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 개척자가 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힐끔 나를 훑고 지나가는 몇몇의 시선이 불쾌하고, 저 무리에서 벗어난 것 자체가 타의에 의해서라지만, 나는 지금 아주 충실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약 20분 동안 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남성역 인근의 까치산 공원.
도심 한가운데 있는 공원치곤 굉장히 크고 수풀이 우거진 산인지라, 숨어서 무언가를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더구나 평일 출근 시간대라서 그런지 사람이 적어서 산 전체를 전세를 낸 느낌이었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 수풀에 가려진 제법 아늑한 공터를 발견한 나는 풀내음 가득한 공기를 들이켰다.
상승된 능력치 덕에 산길을 오르고도 힘들다는 느낌이 없었다.
가볍게 손과 발을 풀어주고, 몸을 뒤튼 나는 맑은 하늘을 올려보며 중얼 거렸다.
“도약.”
순간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고.
있는 힘껏 점프를 하자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수목들의 모습.
낮은 나무들의 높이를 넘어 까치산 아래 위치한 사당동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헙!”
비명이 새어 나올 것 같은 높이.
하지만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게 될까 입을 틀어막았다.
중력을 무시하며 뛰어오른 높이는 대략 10~15미터 정도.
나는 현실에서 스킬이 사용 가능하단 사실에 놀라기보다, 서서히 자유 낙하를 하고 있다는 상황에 기겁했다.
몸은 점점 지면을 향해 가속도를 더해가고, 땅이 눈앞까지 다가오자 의지와 상관없이 눈을 감고 말았다.
쿵!
“응?”
그런데.
묵직한 충격음이 들렸지만 예상했던 고통이 없어 눈을 떠보니, 아무렇지 않게 두 발이 땅을 딛고 있었다.
“하, 하하.”
도약 스킬은 점프뿐만 아니라, 착지에 대한 대비까지 되어있던 것이다.
다행이다.
하긴 점프 뛰고 난 후 내 몸을 가누질 못하면 쓸모없는 반쪽짜리 스킬이긴 하지.
“좋은데?”
스킬을 현실에서 쓸 수 있는 사실도 기쁘지만, 당장 이것을 활용하면 꿈속에서의 생존율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도약이란 게 점프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뛰면 돌격으로도 사용할 수도 있어서 응용성이 뛰어났다.
창을 쥔 상태로 앞으로 도약을 한다면 무게와 속도가 더해지니 따로 스킬을 쓰지 않더라도 상당한 공격력을 보일 것이다.
그다음으로 사용해 볼 것은 이번에 퀘스트를 깨고 얻은 공격용 스킬, 마력방출이다.
‘마력방출.’
-스스스.
스킬을 사용하니 머릿속으로 마력을 신체 어느 부위로 출력할지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나는 오른손을 택했고, 그 즉시 푸른빛의 기운이 주먹을 감쌌다.
“이게 마력인가?”
고든의 마법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위력이 궁금해 굵직한 나무에 정권을 지르니.
-빠악!
커다란 충돌음과 함께 나무에 주먹 자국이 깊이 새겨졌다.
뭐, 한 번에 나무가 부러진다든가, 구멍이 뚫리는 등의 극적인 효과는 없었지만, 힘으로 휘두르는 것과 비교되지 않는 위력이었다.
“지속효과는 대충 10초 정도인가.”
또한 마력방출은 단발성 스킬이 아닌, 지속성 스킬이라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다만 여러 가지 장점 속에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마력의 소모가 너무 크단 것이었다.
내가 보유한 마력으로 도축 스킬은 최대 16번까지 사용할 수 있다.
도약의 경우 도축과 마력 소비량이 같았으며 마력방출은 약 3배를 소비했다.
“마력을 높여야겠다.”
현재 내 마력 수치는 4.
수월한 전투를 위해서라면 더욱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보통 퀘스트를 완료하면 진행 방식에 따라 보너스 능력치가 주어진다.
소모가 크다고 아끼지 말고 전투 스킬을 적절히 사용하면 마력도 상승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째 초인이 된 것 같네.”
스킬까지 더해지니, 완전히 평범함과 거리가 멀어졌다.
지금은 마치 헐리우드 영화 속 슈퍼히어로가 된 느낌이다.
물론, 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버릇처럼 내뱉는 정의란 단어와 거리가 먼 인물이었지만 말이다.
“직감은 뭔지 모르겠네. 패시브라는 건 항상 실행되고 있다는 거지?”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느껴보려 해도 딱히 평소와 다른 것이 없었다.
이름만 봐선 위기 상황에서 유용할 것 같은 느낌이지만,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알 수가 없으니,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나는 도약 스킬의 거리 조절과 마력방출의 연계를 연습하곤 신체 능력 확인을 위해 근처 농구장 코트를 뛰었다.
“빠르긴 한데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네.”
민첩이 처음보다 2배 이상 높아졌다고 해서, 100미터를 16초에 뛰던 내가 8초 정도로 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근육량이 두 배 많다고 펀치 기계 점수가 두 배 높게 나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다지 실망하진 않았다.
애초에 이럴 거라 예상했으니까.
그런데 앞으로 능력치가 제한 없이 치솟는다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