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11화 (11/247)

# 11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11

5. 돌발 퀘스트 (1)

토끼 피냄새를 맡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고블린 3마리.

그런데 고블린들은 자신을 유혹하던 피 냄새가 네모나게 깍둑 썰린 간임을 발견하곤 당황했다.

이것이 유인임을 알아챈 고블린들은 얼른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뒤를 노리며 거침없이 달려든 나의 창에 한 마리가 그대로 꿰뚫렸다.

동료가 당하자 나머지 두 녀석은 흥분했다.

아마 이쪽의 장비가 충실했다면 도망간다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방어구는 철판이 더해진 건틀렛과 방패를 제외하면 나무로 만들어진 빈약한 것이었고, 녀석들 딴엔 할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위협적으로 소리치며 단검을 휘둘러왔다.

“그래야지.”

나는 녀석들의 눈높이로 묵직한 창을 있는 힘껏 들어 올렸다.

그 창엔 ‘즉사’한 고블린이 꼬치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도축.”

동시에 창이 가벼워지고, 눈앞에 분해된 고블린 사체가 옅은 빛과 함께 흩어졌다.

그렇게 크지 않은 이팩트지만, 흩어지는 고깃덩어리와 피가 더해지니 시야를 가리기엔 충분했다.

-푹!

이젠 완전히 손에 익은 창을 휘둘러 한 녀석을 추가로 꿰뚫고, 나머지 녀석을 향해 오른팔을 힘껏 휘둘렀다.

-빠득!

오른팔엔 철판이 더해진 스몰쉴드가 걸려있다.

덕분에 고블린과 스몰쉴드가 요란하게 부딪혔고, 상대적으로 골격이 약한 고블린에게서 위험한 소리가 들렸다.

-크르르

고블린은 정확하게 가슴 한복판을 찌르면 즉사하는데, 움직이는 표적의 약점을 정확하게 노리기는 쉽지 않다.

덕분에 첫 번째 고블린과 달리 두 번째 녀석은 즉사하지 않고 창에 꿰뚫린 채 바둥거리고 있었다.

-푸악!

그래서 나는 녀석을 밟은 채 창을 뽑아 들었다.

거칠게 창이 뽑혀 나오자 두 번째 고블린은 그대로 쇼크사.

쉴드 차지에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바닥에서 캑캑대던 세 번째 고블린까지 깔끔하게 창으로 정리했다.

고블린 세 마리를 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0여 초.

이젠 고블린 사냥보다, 준비와 유도가 더 오래 걸릴 정도다.

사실 이렇게 신중하게 굴지 않더라도 두세 마리 잡는 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스스로가 정한 규칙이었다.

항상 냉정하고, 무조건 안전하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베스트라 생각되는 상황이 아니면 이길 가능성이 높더라도 싸우지 않았다.

방어구라도 좋으면 모를까, 지금의 빈약한 장비로 방심하다간 순식간에 골로 갈 테니.

신중하긴 해도 전투가 익숙해짐에 따라 자연히 고블린의 사냥속도가 빨라졌다.

오늘 하루 동안 사냥한 고블린이 20마리가 넘으니, 웬만한 초급 용병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고블린: 50/50, 홉고블린: 0/5]

덕분에 퀘스트에서 지정한 머릿수는 이미 예전에 채웠다.

하지만 나는 돈을 모으기 위해 계속 고블린을 사냥하고 있는 상태다.

홉고블린은 오크에 비견되는 강적이니, 퀘스트 완료를 위해선 충실하게 장비를 갖춰야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고블린 단검과 가죽을 챙긴 나는 한쪽에 숨겨 놓은 짐가방에 담았다.

해가 지기까지 꽤 긴 시간이 남았음에도 전투를 끝내는 이유는 마력소모 때문이다.

전투 스킬이 아님에도 실전에서 잘 활용하고 있는 도축은 액티브 스킬이다.

MP가 따로 표기되진 않지만 도축은 분명 소량의 마력을 소모했고, 방금 전 전투로 마력의 잔량이 완전 제로가 되었다.

마력 수치는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대충 머릿속에 퍼센트로 떠올랐는데, 재충전 시간이 상당히 길다.

그래서 마력이 떨어지면 더 이상 욕심부리지 않고 전투를 끝냈다.

따로 도축을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사냥을 이어갈 순 있지만, 그 경우 고블린을 쓰러뜨려도 얻을 수 있는 것은 단검뿐이다.

그래서 비효율적인 전투를 이어가기보단 마력이 떨어지면 개인정비 시간을 가졌다.

“허, 대단하군. 아무래도 자넨 사냥 쪽으로 재능이 있는 모양이야. 이대로 용병이 되는 거 어떻겠나?”

“나쁘지 않죠.”

고블린 50마리와 홉고블린 5마리 퀘스트를 받고 5일째.

이젠 카라스 마을의 촌장도, 경비대도 평온의 숲을 오가는 나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용병들이 찾지 않는 서쪽 숲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에 대해 고마워할 정도다.

대장간에 들러 짐을 내려놓자, 마침 손님으로 있던 용병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여기 있네,”

나는 고블린 단검 23개를 처분하고 2은화 1철화를 받았다.

여기에 고블린 가죽 23장을 처분하면 1은화 가량이 생기니, 하루 벌이로는 상당한 수준이다.

“이제 슬슬 제대로 된 방어구를 갖출 때가 되지 않았나? 돈 좀 모았을 텐데?”

대장간 주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좀 더 모아서 나중에 좋은 걸로 한 번에 장만하려고요.”

현재 내가 소지한 금액은 모두 8은화 정도.

5일 동안 모은 것 치곤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다.

오늘 하루만 3은화를 모았으니, 며칠만 더 고생하면 준수한 수준의 방어구를 풀로 갖출 수 있다.

“고블린을 상대하기엔 지금 장비가 딱이거든요. 은밀하고 또 만만해 보이니까.”

“요즘 혼자 숲속에 들어가시는 분이죠? 그러다가 몬스터가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어요.”

우리의 대화에 참견하길 좋아하는 한 용병이 끼어들었지만, 나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내겐 지도 기능이 있는 만큼, 뒤치기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지금 중무장을 했다가 몸이 무거워지면, 지금까지의 전투 방식을 고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방어구를 사도 중요부위만 철판을 덧댄 가죽 갑옷을 살 생각이다.

며칠 동안 전투를 하며 느낀 점은 동료가 없다면 장갑을 두껍게 해서 몸으로 맞부딪히기보단, 빠르게 도망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났다는 것이다.

“대신 석궁 좀 볼 수 있을까요?”

내 고집을 꺾지 못한 용병은 어깨를 으쓱이며 동료들과 수근댔고, 주인장은 순순히 세 종류의 석궁을 꺼내 내려놓았다.

“보조 무기로 쓸 테니, 휴대하기 편한 걸 원하겠지?”

말을 안 해도 알아서 원하는 것을 찾아주니 편하다.

그의 말대로 석궁을 찾은 이유는 기습 후 도망치는 고블린을 더 편하게 처치하기 위함이었다.

“보조용이면 이걸 추천하고 싶군. 다른 것들에 비해 사거리는 짧지만, 그래도 100미터까진 무리 없이 날아가고, 볼트(석궁화살)를 건 채로 활 부분을 접을 수 있지. 이렇게.”

3개의 석궁 중에 그가 추천한 것은 가장 작은 석궁으로 활 부분 펼쳐도 채 40㎝가 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 석궁의 가장 좋은 점은 역시 휴대성.

날개 부분을 접으면 자그마한 몽둥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탁! 팅!

아래 부분에 위치한 핀을 잡아당기면 활이 펼쳐지고, 방아쇠를 당기면 팽팽히 당겨진 시위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튕겨졌다.

가장 큰 단점은 휴대가 용이한 만큼 자동 장전 기능이 없다는 것.

크기 축소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어차피 보조용 아닌가. 난사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맞는 말이다.

미리 장전해놓고 필요할 때 한발씩 쏘는 게 내가 바랐던 것이니.

“그거 하나 주세요.”

***

-팅!

-케엑!

빠르게 쏘아진 석궁의 볼트가 그대로 고블린의 어깨를 관통한다.

관성에 의해 고블린은 앞에서 자석으로 당긴 것처럼 붕 떠오르더니, 처참히 바닥을 뒹굴렀다.

나는 창을 뽑아 들고 빠르게 달려가 바닥을 기는 녀석의 등을 꿰뚫었다.

석궁이 손에 익자 사냥은 훨씬 더 쉬워졌다.

보조용으로 급하게 쏘는 만큼 명중률이 뛰어나다고 할 순 없지만, 원거리 공격 수단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유용했다.

그래서 오늘 마을에 돌아가면 석궁을 하나 더 마련할 생각이다.

자동석궁도 나쁘진 않지만, 차라리 바로바로 쏠 수 있고 휴대가 쉬운 석궁 두 개를 소지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홉고블린 위치를 파악해볼까?”

이번 퀘스트를 위해 투자한 시간이 10일.

비로소 원하던 금액을 채운 나는 장비를 맞추기 앞서, 타켓의 존재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은 평소보다 숲속 깊이 들어왔다.

평온의 숲에는 놀, 오크 등 고블린보다 위험한 몬스터들도 존재한다.

이미 고블린을 사냥하면서 수차례 녀석들을 발견하긴 했지만, 안전을 위해 싸우지 않고 피하기만 했다.

그나마 늑대나 곰처럼 후각이 극도로 발달한 짐승류가 적어서 다행이다.

몬스터들도 후각이 좋지만, 역시 짐승들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어서 아직까지 선공을 허락하는 일이 없었다.

“그나저나 깊이 들어온 것 치곤 몬스터가 적네.”

홉고블린의 신체 능력은 오크에 못 미치며 놀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오크와 비슷한 선상에 놓는 이유는 높은 지능 때문이다.

초보 용병들이 고블린에게 당했다면 그 뒤엔 반드시 홉고블린이 있다.

장비가 충실한 용병들도 종종 당할 정도니, 준비를 더욱 충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나저나 퀘스트 난이도가 벌써 이렇게 높으면, 나중엔 어떻게 되려나. 걱정이네.”

고블린 5마리를 사냥한 다음에 바로 고블린 50마리와 홉고블린 5마리 사냥이라니, 난이도 차이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차라리 다른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능력치를 높이고, 전투 관련 스킬을 손에 넣고 난 다음이라면 모를까, 이건 좀 너무한 것 같다.

그렇게 속으로 불만을 표하며 이동하길 10분여.

-콰아앙!

갑자기 숲속 한복판에서 울려 퍼진 폭음에 기겁하며 몸을 숙였다.

“뭐, 뭐야?”

조용하던 숲속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멀지 않은 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상황을 살펴야 할까? 아니면 일단 도망치고 볼까?’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

하지만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튀자.”

신중한 성격의 내가 저런 곳에 몸을 들이밀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바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퀘스트 발생]

등급: 하

내용: 근처에서 카라스 마을의 마법사 고든이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를 지원하며 몬스터를 소탕하라.

보상: 하급 보상카드 2장, 마법사 고든과의 친밀도

실패 패널티: 카라스 마을에서 추방

“미친.”

시스템은 내 생각과 달리 여기선 모험을 해야 할 때라는 듯, 강제성을 띈 돌발 퀘스트를 발생시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