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10
4. 투자 (2)
“감사합니다. 아버지.”
-너무 무리한 짓은 하지 말아라.
“알겠습니다.”
아버지와의 통화를 끝낸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비록 내가 무직자 신세지만, 그동안 쌓아온 신뢰 덕분에 아버지는 별말씀 없이 통장을 털어 7천만 원을 내주셨다.
마음 같아선 대출까지 받아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만에 하나란 것도 있고 이유를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여기에 내 원룸 전세 보증금으로 대출을 받고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합치면, 1억2천만 원까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월급 통장의 3천만 원을 떠올렸다.
내가 회사에서 잘리는 데 결정적 계기를 작용한 돈이자, 마치 이거 먹고 떨어지라는 것처럼 느껴져서 방치하고 있던 돈.
그것까지 더하면 1억5천만 원이 된다.
“정우냐?”
-어,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부탁이 있어서.”
-부탁? 무슨 부탁?
나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친구인 정우와 인식이에게까지 손을 벌렸다.
두 친구 녀석은 흔쾌히 돈을 빌려줬는데, 각각 2천만 원이란 거금을 선뜻 내놨다.
덕분에 두 녀석은 정말로 날 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더욱 잘해줘야겠다.
참고로 현재 사이가 틀어진 초희와 우찬이에겐 연락하지 않았다.
어차피 연락해봤자, 좋은 꼴 보지 못할 테니.
총금액 1억9천만 원.
일반 서민이 급하게 마련한 금액치곤 상당한 액수였다.
나는 빠르게 움직여 바로 주식계좌를 개설하고 T화학 주식을 사들였다.
“내가 설마 이런 불나방 같은 짓을 하게 될 줄은…….”
평생 주식같이 불안정한 시장에 발을 들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부모님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박박 끌어모은 금액.
만약 신문이 잘못됐다면 날 믿어준 사람들의 신뢰를 안고 망하는 거지만, 애초에 잘못된 정보라면 보상으로 내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건 절호의 기회였다.
“후…….”
장이 마감되고 적정가에 주식을 모두 확보한 나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T화학의 현재가는 9,200원.
그런데 신문에는 89,000원까지 오른다고 표기가 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신문엔 많은 정보가 있었지만, 한 달 동안 가장 큰 이익을 내는 것은 단연 T화학에 대한 정보였다.
“미래에 대한 정보를 또 얻을 수 있을까?”
하급 보상이 이 정도라면, 중급, 상급보상에서 미래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면 어느 수준일지 가늠이 안 된다.
하지만 지난번 하급 보상과 명백히 다른 이펙트를 보면 미래에 대한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닐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보상이 등급에 맞게 랜덤으로 주어진다고 하지만, 정작 보상을 받는 사람이 나 혼자면 진짜 랜덤인지 알 수도 없잖아?”
***
예상치 못한 보상으로 일정이 변경되었지만, 나는 오늘 하기로 한 일을 뒤로 미루지 않았다.
“진짜 최근에 운동한 적이 없습니까?”
“네. 그동안 바쁘게 지내서요.”
“그런 것 치곤 근육량이 상당하신데? 체력도 준수하고요.”
동네에서 가장 좋은 시설을 자랑하는 헬스장에 가입한 나는 트레이너의 지시에 따라 상태 테스트를 받았다.
약 30분에 걸친 테스트가 끝난 다음, 트레이너가 보인 반응에 퀘스트를 수행하고 얻은 능력치가 현실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특별할 것 없이 밋밋하고 평범했던 몸 여기저기에 근육이 더해진 것을 보면 확실하다.
근력이 겨우 2가 증가하고 체력과 민첩이 1씩 증가했을 뿐인데도, 몸을 움직이는 것이 훨씬 편했다.
“뭐, 좋습니다. 그 말이 맞다면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혹시 트레이닝에 대해 요구사항 있나요?”
“보여주기식 근육보단, 근력과 체력, 순발력을 고루 성장시키고 싶습니다.”
내 대답에 트레이너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내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도 우락부락한 근육보단 보기 좋게 균형 잡힌 체형을 갖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함께 코스를 짜보도록 하죠.”
어차피 백수에게 남는 것은 시간뿐 아니겠는가.
나는 강도 높은 코스를 짜고, 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2시간에 걸친 PT가 끝나고 나니 온몸이 무겁고 기진맥진했지만, 거기서 끝내지 않고 인근 주짓수 도장에서 심야반까지 끊었다.
창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국내에선 창은 너무 마이너 했고, 우슈에 창술이 있긴 하지만, 실전성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차라리 경비대에서 기본이라며 배운 찌르기, 베기, 치기, 막기 네 개 동작을 혼자 연습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분명 엊그제까지만 해도 꿈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했지만, 겨우 3일째가 되었을 뿐인데 생각이 바뀌었다.
만족할 직업을 갖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지만, 더는 꿈속의 퀘스트를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이미 2억 가까운 돈을 끌어 모아 투자한 만큼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이 당연했다.
헬스 2시간에 이어 주짓수 도장에서도 2시간을 운동하고 나니, 시간은 심야 12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창 연습이라도 더 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이젠 모험을 떠날 시간이다.
-털썩
집으로 돌아와 깨끗이 씻고, 침대에 누운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가자.”
어제 고블린과 피 말리는 실전을 겪었음에도 기대감과 함께 눈을 감았다.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두 개다 나완 거리가 먼 감정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런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나 보다.
기대감이 모험 때문인지, 단순한 보상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늘도 어김없이 꿈속의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
***
“정신이 드는가?”
이젠 익숙해진 감각과 함께 눈을 뜨니 회색 천막에 연습용 창들이 줄지어 놓인 경비대 휴게실이 보였다.
“제가 얼마나 누워 있었죠?”
얼굴이 눈에 익은 경비대원이 내 물음에 어깨를 으쓱였다.
“10분 정도 흘렀을까? 심력 소모가 상당했던 모양이야. 마을에 들어서니 긴장감이 풀린 거겠지.”
시간이 고작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역시 현실과 이곳의 시간 흐름은 제멋대로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온몸에서 텁텁한 냄새가 풍겼다.
고블린과의 전투를 위해 냄새를 지운다고 몸에 풀과 진흙을 비볐던 것이 생각났다.
“아무래도 여관에 들르기 전에 빨래터에서 씻고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네.”
“그래야겠네요.”
“보아하니, 고블린을 몇 마리 사냥한 것 같던데.”
“5마리요.”
“무모한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싸울 줄 아는군.”
싸움을 안 해본 일반인이라도 충실히 무장을 하면 고블린에게 질 이유가 없다.
하지만 실전은 이론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다.
내가 숲속에 들어가 이렇게 무사히 사냥을 마칠 수 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지도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원하던 짐은 찾았는가?”
“아뇨, 그래서 내일 낮에 다시 숲에 들어가 볼 생각입니다.”
어떤 퀘스트가 나오던 일단 고블린 사냥으로 돈을 모을 생각이다.
“그렇군. 아무쪼록 몸조심하게나.”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경비대에서 풀려난 나는 지도에서 가리키는 빨래터로 향했다.
빨래터엔 많은 아낙네들이 빨래를 치대고 있었다.
“그럼 정산하러 가볼까.”
아낙네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씻은 나는 대충 물기를 털어낸 후 시장으로 향했다.
“오, 살아서 돌아왔군.”
가장 먼저 들린 곳은 대장간.
나는 그곳에서 고블린 단검을 처분하기로 했다.
“고블린 무기는 광물값밖에 쳐주지 않네. 그래도 매각하겠다면, 개당 철화 9개씩 쳐주도록 하겠네. 사실 이것도 많이 쳐주는 거야. 고블린의 무기는 불순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거든.”
비록 그가 장사치지만 고객을 상대로 장난을 칠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여긴 나는 밀당 없이 바로 매각했다.
그렇게 얻은 것이 4.5동화.
목숨을 걸고 싸운 것 치곤 싼 느낌이지만, 그래도 여관비 이상을 벌었으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일반 아르바이트로 하루 3동화 이상을 버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잡화점.
그곳에서 고블린 가죽 1개를 매각했는데, 점주가 상태가 굉장히 좋다며, 4철화를 쳐주었다.
만약 고블린 가죽까지 모두 챙길 수 있었다면, 오늘 하루 수익이 6.5동화가 됐을 것이다.
“나쁘지 않은데?”
사냥이 익숙해진다면 더 많은 몬스터를 잡을 수 있을 테니, 벌이는 많아질 것이다.
현재 내 전 재산은 1.4은화.
이중 1은화를 투자해 철판이 덧대진 가죽 건틀렛을 마련하기로 했다.
창을 내지를 때 앞에 위치한 손을 더욱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더불어 스파이크를 몇 개 더 사자, 숙소비용으로 쓸 3동화밖에 남지 않았다.
“완전 하루살이네.”
‘하루살이’라니, 지금의 내게 너무도 잘 어울리는 지칭 같다.
여관으로 향하기 전 항상 창 연습을 하던 공터로 향했다.
그사이 해는 뉘엿뉘엿 베르트 산맥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붉은 노을을 향해 찌르기 연습하길 10여 분.
드디어 오늘의 퀘스트가 발생했다.
[퀘스트 발생]
등급: 하
내용: 고블린 50마리, 홉고블린 5마리 사냥.
보상: 하급 보상카드 2장, 전투 스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