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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08
3. 전투 (3)
지금은 손해 보는 것이 없더라도, 나중에 어떤 패널티가 발생할지 모르는 만큼, 내게 닥친 현상을 제대로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먼저 꿈의 중심사건인 퀘스트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만약 꿈속에서 내려진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고 버티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첫 번째 조사 내용이다.
“…….”
나는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남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촌장에게 부탁해 경비대에서 창의 기본 사용법을 배웠고, 꾸준히 연습한 결과 이젠 제법 그럴싸하게 창을 휘두를 수 있었다.
일주일 동안 주구장창 창만 휘둘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일주일 동안…….
“씨발.”
나는 짧은 욕설과 함께 여관 뒤뜰에서 휘두르던 창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도 그럴 게 퀘스트를 진행하지 않은 요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이젠 돈도 1실버 밖에 안 남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버티면 3일은 더 여관에 묵을 수 있지만, 이 정도면 퀘스트를 진행하지 않는 이상 현실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것이다.
더 이상 버티는 것은 얼마 남지 않은 돈마저 낭비하는 짓.
이제 슬슬 나서야 할 때였다.
“어쩔 수 없지.”
퀘스트 완료를 위해 고블린을 사냥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코르크와 천을 덧대 만든 신발의 끈을 조인 후, 얼마 전 안면을 익힌 목수의 집으로 했다.
“의뢰한 물건 찾으러 왔나?”
“다 됐나요?”
“그럼, 어려운 것도 아닌데.”
그러면서 그는 크고 작은 나무판 여러 개를 건네주었다.
얼핏 보면 뭐에 쓰는 건지 알 수 없는 모양새.
“좋네요.”
그것은 방어구였다.
나무 방패와 나무 헬멧, 배와 등을 보호할 큰 나무판과 손등과 손목을 보호할 작은 나무 판까지.
허술하기 그지없는 장비다.
근육질의 오크나, 인간을 상대로는 어림도 없겠지만, 그래도 고블린의 공격이라면 나무판이라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양새는 별로여도,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이것들을 마련했다.
“정말 그걸 뒤집어쓰고 숲속에 들어갈 생각은 아니겠지?”
목수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나는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내겐 영업용 미소였지만 그의 입장에선 성격 좋은 청년의 안일함이라 생각했는지, 고개를 내저으며 말렸다.
“아무리 재산이 중요하지만, 사람 목숨이 먼저 아닌가. ‘평온의 숲’은 ‘켄트 협곡’만큼은 아니어도 몬스터들이 적지 않게 등장하는 곳이라네. 마을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된 지도 벌써 수년이 지났어.”
나는 몬스터 사냥을 위해 미리 밑밥을 깔아 놓았다.
목수가 재산 어쩌고 하는 이유는 나중에 숲속을 들어가기 위해 짐을 그곳에 두고 왔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카라스 마을에서 몬스터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구역은 평온의 숲과 켄트 협곡이 있다.
용병들이 선호하는 켄트 협곡은 몬스터들의 부락이 많아 분대 단위로 뭉쳐 다니는데다가 출현빈도도 높아서 시간 대비 사냥 효율이 좋은 장소다.
반면 평온의 숲은 협곡에서 낙오된 몬스터들이 둥지를 틀고 있어서 몬스터의 수가 협곡보다 적다.
하지만 초원 형태의 협곡과 달리, 은폐할 장소가 많아 기습의 우려가 있고, 시야의 제약이 심해 몬스터의 접근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위험한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생각이 있으니, 걱정 마세요.”
탐색의 어려움과 기습 걱정은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다.
‘내겐 지도 기능이 있으니까.‘
지도는 몬스터가 일정 거리에 접근을 하면 붉은 점으로 표기가 된다.
때문에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내가 기습을 하면 했지, 당할 일은 없었다.
“이거야 원, 고집이 세구만. 머리가 좋은 자네라면 알아서 잘하겠지. 그런데 혹시 자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나 촌장의 잠자리가 좋지 못할 거네.”
나는 1동화를 지불하고 인정 넘치는 그의 배웅을 뒤로 했다.
지도 기능이 있더라도 당연히 몬스터 사냥이 쉬울 리는 없다.
그래서 아무리 대비를 했다고 한들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건 꿈일 뿐이라며 가볍게 생각하고 싶지만…….’
지나친 현실감에 요 며칠 사이 이것이 정말 꿈이긴 한 걸까란 의문이 들었다.
내게 닥친 이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인데, 이것이 꿈이라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행동 같았다.
그래서 이 현상을 또 하나의 현실로 염두하고 더욱 조심하기로 마음먹은 상태다.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싸운다만, 방법이 있다면 싸우고 싶지 않았다.
***
-카라스 마을 서문, 평온의 숲 방향.
“외부인인 자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은 없지만,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돈이 필요하면 차라리 마을에서 일을 찾는 것이 어떻겠는가?”
나는 촌장의 제안에 담담히 고개를 내저었다.
“단순한 돈 문제라면 촌장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낫겠죠. 하지만 저는 숲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촌장은 내가 숲에서 잃어버린 짐 중에 중요한 물건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돈을 벌어 용병을 고용하면 편이 낫지 않은가. 자네가 열심히 일해서 갚는다면 내가 빌려줄 수도 있네.”
이 마을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다.
최근 서울에서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많은 것이 부족해도 정이 가득한 이곳이 진짜 살 맛 나는 세상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촌장의 말에 따를 수는 없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퀘스트 완료이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으니.
“죄송합니다.”
“정말 고집이 세구만.”
고블린 사냥을 마음먹은 후로도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다.
‘시스템적인 퀘스트 외에 촌장의 의뢰처럼 주민 퀘스트를 완료하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에 여기저기 들쑤시고도 다녔지만, 따로 퀘스트가 발생하는 일은 없었다.
퀘스트를 한 번에 하나밖에 수행하지 못할 수도 있고.
주민 퀘스트란 것도 목록으로 정해진 시스템일 수도 있다.
결국, 내가 잠에서 깨어나기 위한 방법은 지금으로써 고블린 사냥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촌장의 만류에도 기어이 마을을 나섰다.
무사히 돌아오라며 손을 흔드는 그를 뒤로 하고, 예전에 고블린에게 쫓겼던 언덕을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수풀이 우거진 자연을 마주한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평온의 숲]
지도에 표기되는 현재 위치가 바뀌고, 햇빛이 나무에 가려져 주변의 색감이 어두워졌다.
나는 몬스터의 등장에 대비해 지도를 유심히 살피며 조심조심 전진해나갔다.
지금의 장비로 내가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는 고블린 뿐이다.
무기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이 조잡한 방어구로 고블린 이상의 몬스터에게 달려드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짓이다.
그래서 만약 고블린 사냥이 생각보다 수월하다면, 그것으로 돈을 벌어 장비를 마련할 예정이다.
앞으로 발생할 퀘스트는 이보다 더 위험할 가능성이 높으니.
“!!!!!”
얼마나 숲속을 거닐었을까.
지도에 선명하게 찍힌 붉은 점에 얼른 몸을 숨겼다.
거리는 대략 200m.
표적의 모습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아, 고블린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만약을 위해 다리 걸기용으로 구매한 밧줄을 근처에 묶어두곤 맨발로 밟으면 피부에 깊숙이 파고드는 스파이크를 바닥 여기저기에 깔았다.
[고블린]
처음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는 목표인 고블린.
나는 여관식당에서 얻은 토끼 간이 담긴 작은 나무통을 열어 녀석을 유혹했다.
-킁킁
피냄새가 녀석에게 닿았는지, 고블린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몬스터들을 끌어들일까, 얼른 토끼간이 담긴 통을 밀봉했다.
녀석과의 거리 50m.
30m, 20m.
그리고 거리가 10m까지 좁혀졌을 때.
진흙과 풀로 냄새를 지운다고 지웠음에도 사람의 채취가 느껴졌는지, 녀석이 움찔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여지를 두지 않고 날카롭게 번뜩이는 창끝을 앞 새우며 빠르게 달려들었다.
-키악!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 하나.
‘과연 고블린은 무장한 인간이 달려들면 호기롭게 맞설까?’
참고로 내가 생각한 정답은 ‘도망친다.’였다.
‘좋아!’
녀석은 내가 바란대로 기겁하며 도망쳤다.
지난번에 내 냄새를 맡고도 동료들을 끌고 온 것을 보면 1:1로는 인간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덩치가 작은 만큼 고블린이란 몬스터는 성격이 신중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고블린이 달아난 장소는 내가 방금 함정을 설치한 곳이었다.
팅!
나무 사이에 걸어둔 밧줄을 못 보고 다리가 걸린 녀석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넘어지는 고블린을 여기저기 설치된 스파이크들이 반겨주었다.
-푹!
-키에에엑!
비명을 지르는 고블린.
나는 지체하지 않고 바닥에 쓰러진 고블린에게 창을 찔러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