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07
3. 전투 (2)
무기를 든 몬스터를 상대로 싸우라니.
“솔직히 이런 때가 오리라곤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닥치니 짜증이 솟구쳐 오른다.
이 무슨 미친 짓이란 말인가.
꿈속에서 죽임을 당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절대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싫어한다고 해서 퀘스트가 형편 좋게 바뀌진 않을 터.
나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며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해야 할 일과 앞으로 어쩌면 좋을지.
“이김에 퀘스트를 안 하고 버티면 어떻게 되는지부터 알아봐야겠네.”
일단 이 꿈은 현실과 비교해서 정확하게 정해진 시간 비율이 없다.
어제와 그제, 나는 똑같이 7시간을 잤지만 첫째 날은 10시간 넘게 꿈속에 갇혀 있었고, 둘째 날은 4~5시간 정도를 꿈속에 머물렀다.
더불어 내가 현실에서 활동한 15시간 동안 이곳은 겨우 10시간 정도가 지난 것을 보면, 시간의 공통성을 찾긴 힘들었다.
퀘스트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시스템적인 것이며, 또 하나는 촌장처럼 주민을 통해 받는 것이다.
아직 퀘스트 완료 후, 꿈속을 벗어나는 조건은 확실치 않지만, 이는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을을 둘러봐야지.”
단순히 관광처럼 여기저기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 수집이 주목적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어제 촌장이 건네준 슬리퍼를 신었다.
발바닥에서 통증이 밀려왔지만, 걷기 힘든 수준은 아니었다.
여관은 식당을 겸하고 있었는데, 1층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제는 워낙 경황이 없다 보니 제대로 살피지 못했는데, 손님 대부분이 그림으로 그린 듯한 용병의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일반적인 판타지와 다른 것이 내 신분증에 명시된 케일론 왕국이란 국가의 국민들이 동아시아인과 외모가 흡사해서 억지로 서양 판타지에 동양인을 그려 넣어 놓은 느낌이었다.
“어디 가시게요?”
나를 발견한 여관 주인이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다.
“네, 잠시 마을 좀 둘러보려고요.”
“식사는 안 하셔도 되겠어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세요.”
웃으며 배웅하는 주인을 뒤로하고 유럽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활기찬 마을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흐읍, 후…….”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은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우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바람까지 살살 불어오니, 상쾌함은 배가 된다.
거리를 오가는 주민들이 힐끔힐끔 나를 살폈다.
아무래도 자신들과 미묘하게 다른 복장 때문인 듯한데, 새하얀 면티는 회색과 베이지색 투성이인 주변 복장에 비해 유난히 튀었다.
내가 입고 있는 면티는 어제까지만 해도 반쯤 걸레였는데, 현실로 돌아 갔다 오니, 새것처럼 깨끗해져 있었다.
“시장이 저쪽이었지.”
마을은 제법 구색이 잘 갖춰져 있다.
거리는 오물 없이 깨끗하고, 사람이 다니는 길과 마차길이 구분되어 있으며, 대장간을 포함해 필요한 것을 갖출 수 있는 상점들이 시장에 마련되어 있었다.
더구나 오늘 받은 퀘스트가 퀘스트다 보니 나는 가장 먼저 대장간을 찾아갔다.
지금은 꿈속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를 수 있는지,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고 버티면 어떻게 되는지를 시험할 생각이다.
때문에 지금 당장 사냥을 떠나지 않겠지만, 어차피 나중엔 퀘스트를 수행할 수밖에 없을 테니, 무기를 미리 장만하여 사용법을 익힐 셈이다.
“어제 고블린에게 쫓겨 왔다는 사람이군.”
대장간 주인은 내가 누군지 바로 알아보았다.
“무슨 일인가?”
“무기 좀 보려고요.”
“하긴 그 꼴을 당했으니. 좋아, 마음껏 구경하게. 모름지기 남자라면 무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지.”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한쪽에 진열된 무기들을 살폈다.
-대거 / 30㎝ / 0.4㎏ / 5동화
-숏소드 / 60㎝ / 1.2㎏ / 2은화
-롱소드 / 90㎝ / 2㎏ / 5은화
-브로드소드 / 80㎝ / 1.7㎏ / 4은화
-레이피어 / 85㎝ / 1㎏ / 3은화
-시미터 / 85㎝ / 1.5㎏ / 5은화
-바스타드소드 / 125㎝ / 3㎏ / 1금화
-클레이모어 / 160㎝ / 4.5㎏ / 2금화
-투핸드소드 / 190㎝ / 7㎏ / 4금화
검은 규격화된 9종을 판매하고 있었으며, 무게와 길이, 형태에 따라 가치가 달랐다.
하지만 검은 리치가 길면 너무 무겁고 짧으면 그만큼 위험하니, 초보인 내가 다루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기로 쓴다면 아무래도 가벼우면서 리치가 긴 창이 낫지 않을까 싶다.
-자벨린 / 100㎝ / 1㎏ / 5동화
-숏스피어 / 150㎝ / 1.5㎏ / 1.5은화
-롱스피어 / 200㎝ / 2㎏ / 2은화
-글레이브 / 200㎝ / 2.2㎏ / 3은화
-버디슈 / 200㎝ / 2.5㎏ / 4은화
-크로스 스피어 / 200㎝ / 2.5㎏ / 5은화
-포사르 / 200㎝ / 2.5㎏ / 5은화
-보어스피어 / 200㎝ / 2.5㎏ / 5은화
-파르티잔 / 200㎝ / 2.5㎏ / 5은화
-트라이던트 / 200㎝ / 3㎏ / 5은화
-할베르트 / 200㎝ / 3.5㎏ / 1.5금화
의외로 창의 종류가 굉장히 많았다.
창은 창촉의 형태에 따라 분류가 됐는데, 창대는 요청에 따라 더 짧게 자르거나, 더 길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금속이 장검이나 양손검에 비해 덜 들어가기 때문인지 가격도 준수한 편이었다.
물론 준수하단 것도 검에 비하면 그렇다는 거지, 결코 싼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 세상에서 평민이 고된 노동을 해야 한 달에 5실버를 벌 수 있다고 한다.
때문에 무기값이 굉장히 비싸다고 할 수 있다.
“따로 공격력 같은 게 매겨져 있진 않구나.”
게임처럼 공격력이 매겨져 있지 않을 것을 보면, 극히 현실성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라 볼 수 있겠다.
개인의 능력치는 표기가 돼도, 레벨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긴 토끼를 죽일 때, 데미지 표기 없이 목을 꺾어 즉사시킨 것을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아마 무장만 잘 갖추면 어린아이 체격인 고블린을 상대하는 것도 그리 어렵진 않을 것 같다.
물론, 무장을 충분히 갖출만한 금액이 내겐 없지만.
지금 내 돈으로 할 수 있는 무장은 잘해봐야, 숏스피어 아니면 롱스피어 정도에 나무 방패를 곁드는 수준일 것이다.
방어구는 무기 이상으로 값이 나갔으니.
“신중파구만.”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대장간 주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예 검을 배제하고 있지 않은가? 확실히 무기를 다룰 줄 모르면 무조건 리치가 긴 게 유리하지. 하지만 젊은이들은 기사에 대한 로망이 워낙 강해서 그다지 창을 선호하지 않거든.”
“기사도 말 위에선 창을 쓰잖아요?”
“마창과 일반적인 전투용 창은 다르지. 아무래도 창은 기사보단 병사의 전유물이란 인상이 강하니.”
로망보다 중요한 게 목숨 아닌가.
나는 당연한 선택을 했을 뿐이다.
“경비대 녀석들도 짬밥만 처먹으면 창 대신 검을 들고 다녀. 지들이 무슨 기사라도 되는 양 착각한다네. 이런 시골에선 변변한 오러 심법도 익힐 수 없으니, 과시용에 지나지 않지.”
오러심법?
혹시 내가 예상하는 그것일까?
“오러 심법이 뭔데요?”
“응? 기사가 신체를 강화하고 무기 위로 에너지를 방출하는 기술 아닌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반응.
나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오러 심법을 배우는 게 어렵나요?”
“그렇지, 오러심법을 배우기 위해선 가전 심법을 보유한 검가를 찾아가거나,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해야 하네. 오러심법은 보물과도 같아서 사사로이 전수를 할 수가 없거든.”
무협의 문파 시스템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자연적으로 오러를 깨우치는 사람은 없어요?”
“없진 않지. 오러 심법에는 어쨌든 개발자가 있으니. 스스로 오러를 깨우친 사람들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검호들이라 할 수 있네.”
묻는 대로 나불나불 정보를 토해내는 그의 존재는 아주 만족스럽지만, 서서히 눈빛에 의심이 피어나는 것을 보며 나는 물러나야 할 때임을 느꼈다.
“숏스피어 아님 롱스피어 사고 싶은데, 만져 봐도 됩니까?”
“물론이지.”
이후 의심이 짙어지는 일 없이 그는 뒷짐을 진 채 물러났다.
“창대가 평범한 나무로 보이지만, 여러 종류의 나무를 두루말이처럼 돌돌 말아 접착제로 붙인 것이네. 덕분에 탄성도 좋고 쉽게 부러지지 않지. 우리 카라스 대장간의 무기는 저렴해도 대충 만드는 물건이 없네. 그래서 전투로 먹고 사는 용병들도 자주 애용하지.”
확실히 검은색으로 코팅이 된 창대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자부심이 넘치는 주인장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진지하게 창을 살폈다.
-부웅
1.5미터의 숏스피어는 짧은 만큼 안정감이 있었다.
다만 양팔을 넓게 벌리고 잡으니, 생각보다 짧게 느껴져서 위태로워 보였다.
그런데 2미터의 롱스피어는 너무 길어서 컨트롤이 힘들었다.
“대략 170~180정도의 길이가 적당할 것 같아요.”
그럼 숏스피어(1.5은화)는 봉을 긴 것으로 교체하거나, 롱스피어(2은화)는 잘라야 한다.
창대 교체 비용을 포함해도 숏스피어가 3동화 정도 더 쌌는데, 그 정도 차이면 창날이 더 긴 롱스피어가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정했는가?”
대장간 주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롱스피어 창대를 20㎝ 잘라 주세요. 바로 가능한가요?”
“물론이지.”
결국 나는 조금이라도 공격면적이 큰 롱스피어를 선택했다.
“자벨린은 필요 없나? 하나 사서 투창연습이라도 하지?”
자벨린은 화살을 크게 키워 놓은 것처럼 봉 끝에 짧은 촉이 달려 있다.
찌르기, 베기가 가능한 숏스피어, 롱스피어와 달리 투척용으로만 사용하는 무기였다.
투척용이면 휴대하기 불편한 창보다 차라리 단검이 나을 터.
나는 고개를 저으며 롱스피어 하나만 구매를 했다.
“은화 두 개네.”
“여기요.”
순식간에 재산의 4할이 날아갔다.
여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전투 연습을 위해 구매하긴 했어도 아까운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여기에 나막신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신발까지 구매하면 지출은 더 늘어 날 것이다.
부디 신발은 싸면 좋겠다.
“다 됐군. 자, 한번 잡아보게.”
나는 대장간 주인장이 건넨 롱스피어를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20㎝ 차이임에도 확실히 2m짜리 롱스피어에 비해 다루기가 편했다.
“좋네요.”
그에 주인장은 피식 웃으며, 잠시 떼어놓은 창대의 폼멜을 절단 부위에 부착한 후, 짧은 못을 박아 고정을 했다.
덕분에 창이 자르기 전처럼 깔끔해졌다.
“그다지 여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창날 집은 보너스로 주지.”
공짜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감사합니다.”
나는 기분 좋게 웃어 보이며 그가 건넨 나무로 만든 창날 집을 챙겼다.
“그럼 또 오겠습니다.”
“잘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