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꿈 속 퀘스트 보상은 현실에서 003
1. 이상한 꿈 (2)
“…….”
욕실에서 씻고 나온 나는 여전히 책상 한 구석에 놓여 있는 검은색 카드를 바라보며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게임처럼 퀘스트를 종용하던 이상한 꿈.
그런데 그 퀘스트에 대한 보상이 현실에서 나타났다.
[최하급 보상]
카드를 집어 드니 다시금 검은색 카드에 황금빛 글귀가 새겨지고 홀로그램처럼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카드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이 얼마나 기괴한 상황인지.
설마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걸까?
“음.”
정체 모를 물건.
솔직히 얽히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이 카드가 내게 유해하지 않을 것이란 근거 없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해치지 않아요’라고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것처럼.
가만히 서서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이내 나는 카드를 사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전의 나였다면 무시하고 넘어갔겠지만, 하도 비정상적인 일을 겪다 보니 매사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상책만은 아니라 여기게 되었다.
또한, 현재 상황이 어려운 만큼 일상과 거리가 먼 비일상에 관심이 가기도 했고.
[카드를 사용하시겠습니까?]
결정했으면 남은 것은 행동뿐.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최하급 보상 카드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눈부신 순백의 빛이 작은 카드에서 폭사 되었다.
“뭐, 뭐야?”
그야말로 비상식의 극치.
순백의 빛은 점차 작아지기 시작했고 이내 폭죽처럼 터지며 반짝이는 빛 가루가 눈처럼 허공을 수놓았다.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등장한 것은 자그마한 종이 한 장.
그것은 펄럭이며 천천히 떨어져 내렸고 나는 어렵지 않게 손으로 받아냈다.
[1만 원을 획득했습니다.]
녹색의 지폐를 손에 쥔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였다.
비현실적인 상황과 달리 보상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어깨에 힘이 쭉 빠지는 상황.
뭔가 대단한 것을 바란 건 아니지만 요란했던 이펙트를 떠올리면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게 진짜 돈이긴 한 걸까?”
***
-1만 원을 입금하시겠습니까?
진짜 돈이네.
황당한 루트로 얻은 만 원짜리 지폐를 ATM기에 입금한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꽁돈을 얻은 것은 좋지만, 가볍게 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무려 꿈에서의 일이 현실로 이어진 것 아닌가.
정말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의 상식을 파괴하는 상황.
하지만 이것으로 바뀌는 것은 크게 없다.
그도 그럴 게, 이 어처구니없는 기적으로 손에 넣은 것은 고작 만 원뿐이었으니.
“설마 또 그 꿈을 꾼다던가.”
괜히 희망적 관측으로 기적에 매달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상황을 말도 안 된다며 호들갑을 떨지 모르지만, 나는 가슴이 뜨겁게 타올랐던 만큼 빠르게 식었다.
입사지원과 면접.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은 어제와 같다.
[오늘 새벽 서울을 중심으로 달이 찌그러져 보이는 이상 발생. 이에 과학자들은 대기 불안정에 의한 일시적 현상이니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집으로 향하던 중, 버스 정류장 전광판에서 흘러나온 뉴스 문구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전광판 속에선 어두운 하늘 위의 달이 일몰 직전의 태양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신기하네.”
그러나 나는 그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가던 길을 갔다.
지금은 내 코가 석자였으니.
당장 걱정해야 하는 것은 기현상이 아니라 오늘 오후에 있을 면접이었다.
***
서초동의 한 호프집.
“에휴…….”
내가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자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김정우’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너무 초조해하지 마. 너라면 분명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단정한 정장 차림에 잘생긴 얼굴.
정우는 고등학교 시절 여러모로 나와 비교가 되던 인물이다.
다만 수능에서 삐걱거리는 바람에 3지망 대학을 가긴 했지만, 그곳도 충분히 이름값 높은 명문대였고, 지금은 잘나가는 금융회사 직원이다.
“천하의 조지훈이 이런 꼴이 될 줄이야. 역시 사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
그런데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박우찬이란 이름의 친구가 시비를 걸듯 이죽거렸다.
“야, 친구가 힘든데 무슨 말을 그딴 식으로 하냐?”
그런 우찬이를 향해 정우가 미간을 좁히며 한소리 했고, 함께 자리한 멤버 중 유일한 여성인 이초희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혼자 너무 떨어지지 않아? 원래 이 멤버는 능력 있는 젊은이의 모임이란 느낌이었는데, 27살에 백수라니.”
초희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넘겨 들을 수 없다는 듯, 곰 같은 덩치의 김인식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넌 친구를 능력 따져가며 사귀냐?”
“솔직히 우리가 애들도 아니고 이젠 어느 정도 따져야지. 레벨이 맞아야 같이 어울릴 거 아냐.”
정우는 금융회사, 우찬이와 초희는 공기업에 다니며 인식이는 의사다.
얼마 전까지는 나도 이들에게 꿇리지 않는 명함을 갖고 있었으나, 지금은 한낱 백수에 불과했다.
“웃기고 자빠졌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훈이에게 알랑방귀 뀌던 새끼들이.”
초희와 우찬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고비 없이 잘난 인생을 나아가던 나로선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받아보는 냉대였다.
얼마 전부터 두 녀석의 눈빛이 차가운 것 같다고 느꼈는데, 설마 모임에서 대놓고 무시할 줄은 몰랐다.
그동안 우리 5명이 함께 다닌 이후로 서로를 무시하고 싸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인식이의 말대로 초희와 우찬이도 내게 있어선 다른 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친구였다.
“야 인식아, 말은 바로 하자. 그동안 우리가 저 녀석 눈치 보면서 기분 맞춰주려고 얼마나 힘들었냐? 무슨 직장상사 비위 맞추는 것도 아니고, 왜 친구란 녀석의 눈치를 봐야 하는데?”
“맞아, 툭하면 무시하고 깔보잖아. 아마 친구란 감정도 우리의 일방통행일걸?”
작정한 듯 쏘아붙이는 우찬와 초희의 모습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무슨 말이야? 내가 왜 너흴 무시해?”
맹세컨대 한 번도 그들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
내 성격이 계산적이라 한들 친구들에게 조차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 정도의 냉혈한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식이는 조용히 내 어깨를 짚으며 초희와 우찬이를 향해 말했다.
“그건 너희들 생각이지, 난 한 번도 지훈이한테 무시당한 적 없다. 그리고 녀석을 귀찮게 여긴 적도 없고.”
우직한 인식의 대답에 정우도 두 사람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너희 지금까지 계속 그런 생각을 한 거냐?”
인식이와 정우의 반응에 두 사람은 ‘이게 아닌데?’란 반응을 보였으나, 끝내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씨발. 완전히 악당 된 느낌이네.”
덕분에 술자리의 분위기는 점점 더 험악해졌고, 초희와 우찬이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린 이만 갈게. 잘난 베스트 프랜드끼리 놀아라.”
“야, 분위기 이렇게 만들고 가냐? 지훈이한테 사과해야지!”
“됐고, 나중에 저 새끼 없이 보자고.”
나는 그런 두 사람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흘렸다.
***
초희와 우찬이가 떠나고 남은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두 친구에게 대놓고 무시를 당한 상황에 대해선 비참함보단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이 불합리한 상황은 절대 내가 못났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었으니.
그래서 오히려 독기 충만한 감정으로 반드시 꿇리지 않는 직장을 얻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의 상황을 비관하는 것보단 그편이 더욱 미래지향적일 것이다.
‘이 상태로 잘 순 없지.’
나는 씻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어찌 된 건지 몸이 너무 무거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으으!”
술을 꽤 마시긴 했지만,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마시진 않았는데?
더구나 오늘은 이상하게 컨디션이 좋아서 그다지 취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몸은 가위에 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과 따로 놀았고, 오래지 않아 허공에서 자석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앗!’하는 사이, 주변의 풍경이 암흑으로 물들었다.
-스스스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풀 내음 가득한 싱그러운 향기.
이어서 나뭇잎 부대끼는 소리가 청각을 자극하고 시원함 바람이 뺨을 간질였다.
마지막으로 시야가 트였는데, 어둠이 가시며 눈에 들어온 것은 따스한 햇볕을 머금은 푸름 가득한 숲속의 풍경이었다.
“…….”
낮과 밤이라는 점 때문인지, 느낌이 달랐지만 나는 그곳이 어제 꿈속에 등장한 숲이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가상현실 게임이란 게 있다면, 접속할 때 이런 느낌일까?
후각, 청각, 촉각, 시각에 이어 완전히 몸의 통제권을 찾은 나는 짧게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