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천제공! 크하하하하! 과연 내 숙적이구나! 그래, 이렇게 쉽게 끝나 버리면 재미가 없지. 하지만 뭐가 됐건 결국 승리를 쟁취하는 자는 본좌이니라!”
열 배.
대륙을 가른 첫 일격에서도 열 배에 달하는 공력이 천살도에 주입되었다. 그러자 천살도도 이만한 공력을 감당하긴 어려웠는지 도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균열 사이로 빠져나온 공력의 빛 때문에 천살도 자체가 마치 빛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새하얗게 물들었다.
“천류폭살!”
천마의 강한 외침과 함께 천살도가 큰 궤적을 그렸다.
그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해일은 세상을 뒤덮고도 남을 기세로 거침없이 윤수호를 향해 뻗어나갔다.
거대한 검은 해일 앞에서 윤수호는 바다 앞에 개미 같은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휩쓸리면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릴 그런 미물 말이다.
그런데!
“마룡천조.”
윤수호가 천제의 기운이 담긴 검을 내질렀다.
티끌만큼의 군더더기나 불필요함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찌르기. 그 끝에서 발출된 것은 새하얀 용이었다.
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용은 굽이치며 새하얀 날개를 펄럭였다.
용의 크기도 어마어마했지만 다가오는 검은 해일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 부딪히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삼켜질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콰아아아아아!
“……!”
검은 해일에 부딪힌 하얀 용은 순식간에 해일을 집어삼키더니 해일만큼 거대한 용이 되어 늘어난 열 장의 날개를 펄럭였다.
“마천뢰!”
천마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천살도를 수직으로 내리긋자 하늘에서 검은 벼락이 천살도의 궤적에 따라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검은 벼락은 정확히 하얀 용의 머리를 쪼갤 기세로 명중했으나…….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 기세가 워낙 강력했던 탓에 일소하지 못한 천마의 몸뚱이가 수십km 밖으로 빛살처럼 튕겨져 날아갔다.
“크크큭……!”
콰아앙!
무너진 빌딩 잔해를 기력으로 날려 버린 천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어느새 눈앞에 접근한 윤수호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천제공(天帝功)이라니 이름 한 번 잘 지었구나. 과연 천부를 능가하는 천제의 무공이로다.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천부의 무공과 삼라만상을 집어삼키는 천마의 무공을 하나로 융합할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천마의 말처럼 천부의 무공인 천무공은 삼라만상을 다스린다.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무한의 기운을 자신의 것처럼 쓸 수도 있고, 반대로 나누어 줄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공에 있어서는 마르지 않는 바다와 같았다. 말 그대로 무한이었으니까.
그러나 천마의 무공인 천마신공은 삼라만상을 집어삼킨다.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운을 남김없이 집어삼키는데 거기에 적아는 불필요했다. 이러한 천마신공은 천부공의 상극이라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천부공으로 삼라만상의 기운을 아무리 끌어모은다 한들, 천마신공으로 천부공이 모은 기운의 절반 이상을 갈취하면 공력 대결로는 도저히 정면에서 승기를 잡을 수 없었다.
이것이 천부공으로 천마신공과 정면 승부를 할 수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천마신공은 천부공처럼 삼라만상에서 기운을 끌어오는 게 불가능했다. 삼라만상이 천마신공을 거부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천마신공은 내력을 스스로 축적하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필요할 때마다 뺏으면 그만이었으니까.
천마는 거기에 더해 열두 개의 데몬 하트로 천마신공의 유일한 단점인 내력의 부재를 해결하고 더욱 더 강하게 보완하였다.
뺏은 내력에 더해서 열두 개의 데몬 하트를 이용해 발생시킨 마력까지 더할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지금과 같은 천재지변의 무공도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바다가 넓어도 우주에 비하면 티끌조차 못한 법이지.”
“…….”
윤수호의 말을 천마는 부정할 수 없었다. 자신이 열두 개의 데몬 하트로 마력을 보충한다지만 상대는 천부공이다.
때문에 부정할 수 없었다. ‘고작’ 열두 개의 데몬 하트로는 삼라만상의 모든 기운을 끌어 쓰는 천부공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그래도 포기는 안 할 거지?”
“무슨 섭섭한 소리더냐? 이제 겨우 재미있어지기 시작했거늘!”
씨익 웃은 천마가 다시 한 번 윤수호에게 덤벼들었다.
그 후로 두 사람은 정말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한 순간에 수백 합의 공방이 오가면서 수많은 절세의 무공들이 숨 쉴 틈 없이 서로를 몰아 붙였다.
공력이 넘쳐나는 무공의 위력은 서로가 감당했다. 남은 것은 힘을 다하고 흩어지는 공력의 부산물들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망가지기엔 충분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천마가 피한 검기에 산이 사라지고, 윤수호가 흘린 도기에 바다가 증발한다.
분…… 아니, 초 단위로 지형이 바뀌는 싸움이 숨 쉴 틈 없이 이어져 나갔다.
만약 이곳이 결계 밖이었다면 5분 동안 벌어진 두 사람의 싸움만으로 생명체가 멸종을 해도 대여섯 번은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신들의 전투도 어느새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아무래도 어설픈 초식으로는 네놈의 목을 거두기 쉽지 않아 보이는구나. 본좌가 네놈을 위해 특별히 창안한 초식이다. 한 번 받아 보겠느냐?”
천마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옷은 전부 해져서 넝마나 다름없었고 육신 또한 어디 한 군데 멀쩡한 곳을 찾기 어려워 보였다.
그것은 윤수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다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고칠 수 있는 부상이었지만 문제는 그 순간의 틈조차 나지 않았을 만큼 치열한 전투였다는 것이었다.
“…….”
윤수호는 말없이 검을 들었고, 그 의미를 알아챈 천마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공마(空魔)라는 초식이다. 어디 한 번 받아 보거라.”
그 순간, 눈을 감은 천마는 천살도는 수평으로 들더니 더없이 가볍게 도를 휘둘렀다.
그리고 한 번 더. 다시 한 번 더…….
이윽고 천살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공간을 휘갈겼다.
완성된 것은 거대한 구멍. 칠흑의 아가리였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마치 명부의 입구라도 되는 양 거대한 구멍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남김없이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돌이나 구름처럼 눈에 보이는 사물은 물론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운까지도 남김없이…….
그 인력도 어마어마해서 빨아들이면 빨아들일수록 흡입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돌멩이나 물방울만 떠서 흡수되던 것이 몇 초나 지났다고 벌써 땅거죽을 뜯어 삼키고 바닷물까지 끌어 올려 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삼라만상을 집어삼키는…… 블랙홀 그 자체였다.
“공마는 내가 멈추거나 내가 죽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자, 어떻게 할 테냐? 공마의 앞에서는 네놈이 자랑하는 천부의 기운도 소용이 없을 터!”
천마의 말은 사실이었다. 삼라만상의 기운을 끌어 쓰는 천부의 기운도 공마의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천마신공의 공능도 천마처럼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을 제외하면 어떤 효과도 기대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이내 결계를 구상하는 기운마저 흡수당하고 공마가 네 녀석의 진짜 세계마저 흡수할 터. 자! 이제부터 진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끝났어.”
“뭐? 설마 네놈…… 싸움을 이런 식으로 포기하는 건 아니겠……! 이런 식으로 패배를 인정하지 말란 말이다!”
“뭔 개소리야? 내가 이겼다고.”
“……뭐?”
윤수호는 거미줄처럼 균열이 잔뜩 간 설의 칼자루를 놓아주었다. 그러자 설이 산산이 부서지며 공마의 안쪽으로 흡수되었다.
대신 윤수호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파지했다.
그 순간, 천마가 눈을 부릅떴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 윤수호의 손 안에 지금껏 봤던 그 어떤 검보다 위대한 검이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얘기 안 했나? 천제공은 천부공과 천마신공을 같이 쓰는 게 아니야. 그 두 가지 무공을 하나로 합했기 때문에 천제공인거지. 그리고 이게 바로…….”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윤수호의 팔이 벼락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천제공의 진짜 모습이다.”
번쩍!
빛이 터져 나왔다. 빛은 순식간에 세상을 뒤덮었다. 거기에는 천마도, 공마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건……!”
자신을 집어삼키는 강렬한 빛을 보면서 눈을 부릅뜬 천마.
이내, 빛이 사라지자 더 이상 시커먼 아가리를 벌려 세상을 빨아들이던 공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부스스스…….
천마 역시 반쯤 부서진 상태로 나머지 육신도 서서히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사라져가는 와중에도 피식 실소를 터트리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삼라만상을 심판하는 무공이라……. 천부공과 천마신공을 섞어 이런 말도 안 되는 무공을 만들다니, 역시 본좌…… 아니, 내 숙적은 다르구먼.”
“내가 만든 게 아니야.”
“뭐? 그건 또 무슨…….”
“만들고 보니까 원래 하나였더라고.”
“천부공과 천마신공이 원래 하나였단 말이냐? 그럼 대체 누가 그걸 나눈 거지?”
“그걸 이제부터 알아보러 가야지. 그 변태 새끼한테.”
“그런가…….”
천마는 피식 웃으며 윤수호에게 부탁했다.
“알게 되면 내 묘지에 찾아와 나한테도 좀 가르쳐 주라. 아참, 묘비명은 멋없게 천마 말고 적당히 좋은 이름으로 지어서 붙여 주고.”
“너 제정신이냐? 설마 나더러 네 묘비까지 세우라고?”
“부탁 좀 하자.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아, 그리고…….”
슉! 척.
천마는 천살도를 윤수호에게 던졌다. 천살도의 칼자루를 잡아챈 윤수호가 그에게 물었다.
“뭐야, 이건?”
“내 유일한 가족. 부탁 좀 하자. 조금 망가지긴 했지만 너라면 잘 고쳐 써 줄 거라고 믿는다. 그 녀석이 낯을 많이 가리니까 처음에는 좀 다루기 어려울 거야. 아무튼 재미있게 놀다 간다. 크하하하하!
푸스스스스…….
그렇게 큰 웃음을 터트린 천마는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하여간 시종일관 별난 새끼라니까…….”
우웅우웅……!
윤수호는 금이 간 천살도를 등에 빗겨 멘 후, 앞으로 손을 뻗었다.
천제공을 완성한 이후에 깨닫게 된 사실이 두 가지 있다면 천부공과 천마신공이 본래는 하나였다는 것.
그리고 천제공의 원래 목적이 바로 ‘삼라만상의 근원’에 접속하기 위한 열쇠라는 사실이었다.
화악!
이윽고 윤수호의 눈앞에 은은한 빛이 동그란 게이트를 형성하였다. 그에 윤수호는 망설임 없이 빛의 게이트 너머로 입장하였다.
* * *
“여긴…….”
빛의 너머.
윤수호가 발을 들인 곳은 거대한 우주 한복판이었다.
밤하늘의 별보다 많은 은하가 까만 우주를 촘촘히 채우고, 공포보다 신비로움이 먼저 그 마음을 지배하는 곳.
그러나 윤수호의 시선은 무한한 어둠도, 바닷가의 모래알보다 많은 형형색색의 은하도 아니었다.
바로 그 은하들을 연결하는 거대한 줄기들…….
우주의 먼지구름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마치 나무뿌리처럼 우주 곳곳으로 뻗어 나간 그것들은 거대하고 또한 신비로웠다.
천제공을 완성시킨 윤수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것이야말로…….
그래, 저 거대한 뿌리야말로 유니버셜 레코드.
즉, ‘삼라만상의 근원’이라는 것을…….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