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그사이에 내 인상이 좀 순둥해지긴 했지.”
윤수호가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사이, 어느새 천마의 모습이 그의 옆에 나타났다.
“모르는 소리. 네 인상이야 예전부터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 그 자체였고.”
쒜엑!
촤악!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천마의 천살도와 윤수호의 설이 충돌하며 두 사람을 중심으로 충격파가 끝도 없이 퍼져 나갔다.
콰콰콰콰콰콰콰……!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하늘에 깔려 있던 구름뿐만 아니라, 지상의 땅거죽까지 벗겨지며 파도처럼 밖으로 밀려나는 게 아니겠는가?
“변한 건 네놈의 분위기다. 뭐랄까, 내가 네놈을 처음 봤을 적에 말이지. 네놈은 인간이 아니었다. 마치 살아 숨 쉬는 한 자루의 날카로운 검을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정상은 아니었단 소리네.”
“그때의 네놈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었지. 하지만 지금의 네놈에게선 그때의 전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구나.”
천살도와 설이 사라지며 그 주변을 벌떼우는 소리가 가득 채웠다. 너무 빠른 공방을 주고받는 탓에 검과 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두 사람의 주변을 검풍과 도풍이 어우러지며 사방으로 폭발했다.
그야말로 경천동지란 말이 무색한 전투가 아닐 수 없었다.
한데 뒤섞인 검풍과 도풍은 회오리가 되어 지상을 휩쓸기도 하고, 서로 반발하며 거대한 폭발과 함께 지형지물을 바꿔 놓기도 했으니까.
“그것 참 다행이네. 적어도 지금은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증거잖아.”
윤수호는 자신의 우편을 베어 들어오는 천살도를 확인하고 힘을 흘렸다.
천마의 공력을 정면에서 받아 낸다? 미친 짓이었다. 예전 무림에서의 전투에서도 윤수호는 천마의 공격을 단 한 번도 정면에서 받아 낸 적이 없었다.
상대의 공력을 먹어 치워 자신의 공력에 더해 몰아치는 천마신공. 그런 무공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건 그야말로 자살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움찔……!
윤수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타이밍도, 내공의 운용도, 초식의 완성도도 이 이상 없을 만큼 완벽했다.
이전이라면 간단히는 아니더라도 무리 없이 천마의 일격을 흘려 냈을 터였다.
그런데…….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윤수호의 몸이 모로 튕겨져 날아갔다. 힘을 완벽하게 흘리지 못한 탓이다.
“사람다운 삶이 행복할진 몰라도 지금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구나.”
어느새 윤수호의 코앞까지 다가온 천마가 천살도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천살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의 크기가 너무나도 비정상적이었다.
‘이건…….’
마치 도가 아니라 대륙을 들어 올린 듯하다. 아니, 실제로 녀석이 마음만 먹는다면 천살도를 한 번 휘둘러 대륙을 양단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터.
열두 개의 데몬 하트가 공명하며 생산해내는 절대적인 마력을 천마신공이라는 절세의 신공으로 다스린 결과였다.
“그러고 보니 얘기하지 않았구나. 요 근랜 천마라는 호칭보다 마신(魔神)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는 얘기를…….”
후웅!
이윽고 천살도가 윤수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 위압은 마치 대륙을 들어 머리 위로 떨어트리는 것 같았다.
“후우…….”
깊이 숨을 고른 윤수호가 검을 들어 천살도에 담긴 공력을 전력으로 흘려 보냈다.
‘크윽……!’
악다문 어금니 사이로 비릿한 피 맛이 올라왔다.
근육은 비명을 지르고, 통제되지 않은 내공들이 미처 날뛰었다. 마주 달려오는 대형 트력을 비스듬하게 충돌한 소형차가 이러할까?
번쩍!
흘러 나간 천살도의 공력이 지상에 떨어졌다.
빛이 터진다. 거대한 공력을 품은 도기가 지상을 할퀴었다.
그 결과…… 한반도가 두 쪽이 나고, 서해가 쪼개지고, 중국 대륙마저 분단되어 그 사이로 바닷물이 굉음을 내며 쏟아져 흘러들었다.
“이상하네. 이 상황에서 왜 네가 똥 씹은 사람처럼 표정을 구길까?”
윤수호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물었다.
“이상하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뭐가?”
“아무리 평화에 찌들었다 해도 네놈의 실력이 이 정도이지는 않을 터. 대체 무슨 꿍꿍이냐? 설마 전력을 다하지 않고도 본좌를 이길 수 있다 지금도 그리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글쎄? 궁금하면 너야말로 전력으로 덤벼 보든가.”
“…….”
천마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그의 주변으로 폭풍처럼 쏟아져 나오던 기세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슉.
그와 동시에 윤수호와 자신 사이에 놓인 거리를 지워 버린 천마가 다시 한 번 천살도를 휘둘렀다.
챙!
그런데 이상했다. 방금 전처럼 대륙을 쪼개고, 하늘을 가를 것 같던 기세가 지금의 일격에서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수호의 눈은 오히려 방금 전보다 놀란 듯 커져 있었다.
‘이런 젠…….’
쒜에에엑!
그 순간, 윤수호의 몸이 빛살처럼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얼마나 빨랐던지 순식간에 서해를 넘어 중국까지 날아간 그의 몸뚱이가 몇 개의 산을 부수고 나서야 이름 모를 산중 마을에 처박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당연히 산중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를 마치 운석이 떨어진 듯 수십 km에 이르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흉측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 중심에서 몸을 일으킨 윤수호의 눈앞에 어느새 천마가 서 있었다.
“역시 눈치가 빠르구나. 방금 도격에 세 배에 달하는 공력을 압축시킨 것이다. 섣불리 그 힘을 흘리려고 했다면 지금의 네 녀석은 형체도 남지 않았겠지.”
“재미있는 잔재주를 배워 왔네.”
“네놈을 죽일 잔재주지.”
천마는 다시 거리를 좁히며 윤수호에게 천살도를 휘둘렀다.
챙챙챙챙챙챙……!
방금 전처럼 신들의 전투 같은 화려하고 천지를 개벽할 것 같은 파괴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윤수호가 느끼는 긴장감은 그 이상이었다.
방금 전, 대륙을 가른 일격에 세 배에 달하는 압축된 공력을 한 순간에도 수십…… 수백 합씩 휘두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폭발하는 도기나 주변을 분쇄하는 공력은커녕 실바람 하나 일어나지 않는다.
그만한 공력을 전부 천살도에 집중시켜 단 한 방울의 공력도 흘리지 않고 온전히 윤수호에게 휘두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0.1초도 안 되는 짧은 찰나의 순간에 수백 번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심지어 양자택일도 아니었다.
백 가지가 넘는 문항 중에 정답은 단 하나. 그 정답은 단 한 번이라도 틀리면 형체도 없이 사라지겠지.
‘원래도 괴물이었지만 이건 진짜…….’
적에게 감탄하기는 천마도 마찬가지였다.
‘전력을 내지 못하는 상태로 내 공세를 이렇게까지 감당할 수 있다니…… 과연 검신이라는 호칭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사내로다. 이래야 내가 네놈을 찾아온 보람이 있지. 하지만…….’
천마의 두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으나 어서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결국 네놈은 아무것도 못 해 보고 죽을 것이다.’
“슬슬 몸도 적당히 데워진 것 같으니 공력을 더 올리도록 하지.”
“……!”
빈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천살도에서 느껴지는 공력이 지금까지의 두 배…… 즉, 대륙을 갈랐던 일격의 여섯 배로 증폭된 것이다.
파지직! 파직!
지금까지 단 한 방울의 공력도 흘리지 않았던 천살도가 비명을 지르며 조금씩 새어 나오는 공력의 분류를 방출한다.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천살도 주위에 불꽃이 휘몰아치는 이유는 공력이 주변의 대기를 살라 버리는 탓이었다.
압축된 공력 위에 또 다시 공력을 압축하고, 그 위에 또 다시 공력을 압축한 천살도의 파괴력은 이제 와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어울려 주는 것도 지루하구나. 네 녀석이 무얼 감추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끝까지 드러낼 생각이 없다면 그냥 그렇게 죽어라.”
공간을 접어 접근한 천마의 천살도가 지평선을 따라 궤적을 그렸다.
아름답기까지 한 그의 천살도의 궤적이 윤수호의 목을 긋는 순간에도 윤수호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결국 압도적인 힘의 차이 앞에서 포기하고 만 것인가?
죽음의 그림자가 윤수호를 붙잡으려던 바로 그 순간!
깡!
윤수호가 들어 올린 검이 천살도를 ‘정면’에서 막아 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짧고 굵은 쇳소리. 검에 막혀 멈춰서는 천살도. 그리고 압축이 터지며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공력의 해일!
한 번 물꼬를 튼 공력은 멈출 기미 없이 쏟아져 나오며 해일처럼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국이, 중앙아시아가, 동유럽이, 서유럽이, 지중해가 모두 부서지고 소멸한 뒤에야 격류도 잠잠해졌다.
하나 천마에게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가 관심 있는 건 오로지 하나.
“네 녀석……!”
“오래 기다렸다고 해야 하나? 아주 아쉽겠어. 날 쓰러트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말이야.”
윤수호의 이죽임에 천마는 오히려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래야지! 이래야 네놈을 찾아온 보람이 있지! 푸하하하하! 이런 미친놈이 있나! 이런 괴물이 있나! 네놈은 항상 나를 놀라게 하는구나! 네놈…….”
천마는 흥분에 찬 목소리로 윤수호에게 외쳐 물었다.
“어떻게 천마신공을 익힌 것이더냐!”
* * *
5년 전 그날.
처음으로 천마와의 전투를 현실처럼 생생하게 꿈꾸었던 그날.
윤수호는 그날부터 어렴풋이 직감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감내해야 할 마지막 재앙은 천마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그것을 천부공이 경고해 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그날이후 폐관 수련에 들어간 윤수호는 분심법으로 자신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최대한의 방을 만들어 마음을 나누었다.
그렇게 나뉜 마음은 무려 백 개.
공심공의 공능을 가진 분심들은 그날부터 매일같이 꿈을 꾸고 수련하였다. 바로 천마와의 전투를…….
그러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들은 천부공을 쓰는 윤수호로서 천마를 상대한 게 아니었다.
다름 아닌 천마신공을 사용하는 천마로서 윤수호에게 도전한 것이다.
100개의 나뉜 마음으로 1년을 수행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100년을 꾸준히 수행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었다.
그 결과, 윤수호는 천마신공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구결도, 초식도, 운행도, 아무것도 몰랐지만 천마의 몸으로 100년 동안 자신과 싸운 끝에…… 마치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수영을 배운 것처럼, 지식으론 알 수 없어도 몸으로 익힌 것이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이제 윤수호는 천마신공으로 과거의 자신을 이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윤수호는 만족하지 못했다. 이걸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놈은 반드시 그때와 차원이 다를 만큼 강해져서 돌아오겠지. 그러니 고작 이 정도로는 놈을 상대할 수 없다.’
1을 두 개를 번갈아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만으론 승리가 불가능하다. 1 두 개를 합쳐서 2를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윤수호는 천부공과 천마신공을 하나로 합치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야속하게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작업 도중에 결국 천마가 이 세계로 찾아온 것이다.
윤수호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했다.
분심공을 멈출 순 없었다. 분심공을 멈추는 순간, 지난 5년의 노력이 허사가 될 테니까. 그래서 합칠 수 있는 최소한의 분심을 합쳐 천마에게 대항했다.
그 정도로는 과거의 천마에게도 미칠 수 없었는데 지금의 천마에게 이긴다는 건 그야말로 꿈.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윤수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렇기 때문에!
윤수호는 죽더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단 일말의 희망을…….
그리고 그 희망은 마침내…….
“아무리 그래도 이름은 필요하겠지? 그래, 천부공과 천마신공을 합쳐서 만든 무공인 만큼 천제공(天帝功)이라는 이름이 좋겠네.”
천제공이라는 새로운 무공으로 꽃을 피웠다.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