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전 세계로 흩어진 다섯 장로들을 상대로 윤수호의 다섯 권속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사이, 서울에서도 긴박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놈이 저 안에 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총사령관님, 서둘러 후방으로 이동하시지요. 이곳은 너무 위험합니다!”
현장에 직접 나선 천호진을 안절부절 지켜보던 보좌관들의 간언에 천호진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지금 이 나라에 안전한 곳은 있고?”
“하지만……!”
“그쯤 해 둬. 알잖아,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총사령관님이 대원들만 앞장세워 두고 뒤에서 지시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거.”
“하아…….”
보좌관이 거듭 그를 설득하려다가 다른 동료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젓자, 그도 한숨을 쉬며 포기했다.
대충 분위기가 정리되자 천호진은 이번 임무에 투입된 대원들에게 다시 한 번 주의를 강조했다.
“자네들도 잘 알다시피 이번 임무는 인질로 붙잡힌 우리 대원들의 구출이 최우선 목표다. 만약 우두머리의 관심이 다른 곳에 있거나 인질이 다른 장소에 구금되어 있을 경우, 최대한 놈과의 마찰을 피하면서 인질을 구출하는 것을 우선한다. 알겠나!”
“무적!”
“다른 대원들은 치우팀의 서포트에 만전을 기하도록!”
그렇게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상황 속에서, 작전 투입을 기다리는 치우팀은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임무를 같이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요. 임시라서 좀 찝찝하긴 하지만…….”
“걱정 마. 너라면 임시 딱지도 금방 뗄 수 있을 테니까.”
김세민과 강지한이 긴장을 풀기 위해 가벼운 얘기를 주고받자니 옆에 있던 오수영이 두 사람에 주의를 주었다.
“잡담은 거기까지. 임시 딱지를 떼든, 총각 딱지를 떼든 살아야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냐? 긴장들 하자.”
“넌 또 애한테 무슨 말을 그렇게…….”
“자, 가자!”
공승환이 앞장서서 빌딩의 후문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서자 팀원들 역시 그의 뒤를 따라 조용히 빌딩 안으로 입장했다.
이 문은 평소 작업자들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출입문이었기 때문에 관계자들이 아니라면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만큼 주변에 경계 병력이 없는 것도 이해는 갔지만…….
“이거 병력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같은데요?”
“일단은 주변을 철저히 경계하면서 위층으로 올라간다.”
적들이 없다고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치우팀은 천천히 한 층씩 올라가며 인질들에 대한 탐색을 시작했다.
과연 치우팀이라고 해야 할까?
흩어져서 기감을 집중해 퍼트리자 순식간에 한 층을 수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층수를 올라가는데도 아무 일도 없자 김세민이 불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째 느낌이 싸한데. 그놈도 분명 우리가 온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아가리 닥쳐라. 한 번만 더 쓸데없는 소리하면 주둥이를…….”
파지직, 파직!
그 순간, 눈앞에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는 1급 재앙종 게이트들!
“하여간 저놈의 주둥이는……!”
“넌 돌아가면 내 손에 뒈졌어. 김세민, 이 개새끼야!”
“전원 전투 준비!”
공승환의 외침에 무기를 꼬나 쥔 대원들이 긴장감과 함께 기세를 끌어 올리며 전투를 준비했다.
사실 여기 있는 치우팀 팀원들이라면 1급 재앙종 따위는 식후 운동 거리조차 되지 않는 게 사실이었지만…….
이들은 알고 있었다.
1급 게이트에서 나오는 녀석들이 결코 1급 재앙종이 아닐 거라는 사실을…….
아니나 다를까, 사람 한 명이 여유 있게 통과할 정도로 작은 1급 게이트에서 걸어 나온 건 이형의 모습이 섞이긴 했지만 분명 베이스가 인간형인 재앙종들이었다.
콰우우우우우!
게이트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힘을 해방하며 본모습을 드러내는 놈들!
-신교의 적들을 처단하라!
-천마 천세 천천세!
“도대체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이것들은!”
“알 게 뭐야!”
“온다!”
힘을 개방한 놈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그런데 그 속도가 어찌나 빨랐던지 대원들의 손발이 처음부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채채채채챙!
파파파파팟!
“타압!”
콰콰콰콰콰쾅!
공승환의 폭검이 작렬하며 몰려들던 재앙종들을 단숨에 썰어 버린다.
그의 검 끝이 호쾌한 궤적을 그릴 때마다 폭발이 일어나며 터져 나가는 재앙종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상대가 언데드였을 때는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재앙종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약간의 부상만으로도 침투한 공력이 폭발을 일으켜 사지를 날려 버리고, 아무리 재앙종이라고 해도 날아간 사지를 재생하기엔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딜!”
“차아압!”
강한 기합과 함께 무기를 휘두르며 재앙종들을 압박하는 팀원들.
신속으로 이동하면서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오러의 파편이 흩날리며 재앙종들의 찢긴 사지와 피, 그리고 내장 등이 사방에 흩날렸다.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아!”
“이대로는 포위당해서 전멸할 뿐이라고!”
“어떡하지!”
어느새 팀원들이 등을 맞대고 정면을 노려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분명 그들의 활약은 대단했고 아무리 재앙종과 융합한 마교 무인들이라 해도 그들을 상대로 당장 우세를 점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게이트는 지금도 여전히 생성 중이었으며 게이트에서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재앙종 마인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날 뿐이었다.
“지한아!”
“모두 저를 따라오십쇼. 지금부터 전력으로 길을 열겠습니다!”
공승환의 외침에 선두에 선 강지한.
강지한이 오러를 끌어 올리며 동시에 ‘흑령사진공’을 운기하자 어느새 그의 주변으로 검은 그림자가 망토처럼 그의 몸을 감쌌다.
강지한은 그 상태로 계단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마인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펄럭!
강지한이 두르고 있던 검은 망토가 펼쳐지며 공간을 뒤덮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뭐, 뭐야!”
“이것들 갑자기 왜 다 고장 난 것처럼 멈춘 거지?”
그랬다.
검은 망토가 주변 일대의 공간을 뒤덮는 순간, 마인들은 마치 눈 뜬 장님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물론 뒤따르는 팀원들은 전혀 영향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마인들의 멍청한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던 것이지만.
그런 녀석들의 모습에 앞서 달려가던 강지한이 설명했다.
“단순히 시야만 차단된 게 아니에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의 오감은 물론이고 육감까지 차단된 탓에 놈들은 우리를 보지도, 느끼지도 못 할 테니까요.”
“야, 인마. 지한이 너……!”
“잘했다!”
팀원들의 칭찬에 강지한은 살짝 미소를 그렸지만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흑령사진공은 사기적인 능력만큼이나 사기적인 내공 소모를 자랑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타오르듯 증발해 가는 오러가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이걸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요. 서두르죠.”
“그래!”
그렇게 마인들을 바보로 만들어 놓고 마침내 최고층에 도착한 팀원들.
“찾았다!”
“남성분들은 잠시 주변 경계하면서 대기 좀 부탁드립니다.”
주변에 잔뜩 굴러다니는 술병들 사이에서 인질로 붙잡힌 여성 대원들을 발견한 오수영과 이정화가 달려가 인질들의 상태를 살폈다.
“어때? 인질들은 괜찮아?”
“다행히 전원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 같아요.”
“그건 불행 중 다행이군. 그런데…….”
잔뜩 긴장한 채 주변을 살피며 기감을 펼치던 공승환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곳에 있어야 할 범인의 모습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숨어 있는 건 아니겠지?”
“그것보단 여길 떠난 게 아닐까요?”
“지한이 네 생각은 어때?”
“저도 세민 선배의 말씀에 동감…….”
그 순간, 눈을 부릅뜬 강지한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촤악!
그와 동시에 들리는 섬뜩한 소음에 팀원들의 시선이 전부 소음이 들린 쪽으로 돌아갔다.
“정화야!”
“나, 난 괜찮아! 그보다 지한이가……!”
“저도 괜찮습니다.”
‘0.1초만 늦었더라도 위험했겠지만…….’
강지한이 나타난 곳은 다름 아닌 이정화와 쓰러진 인질 사이였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인질이 손끝으로 이정화를 공격했고 그녀의 미약한 살기를 느낀 강지한이 간발의 차이로 이정화를 구한 것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추소담이 소리치자 강지한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아무래도 범인 새끼가 선물을 남기고 간 것 같은데요?”
이윽고 차례차례 자리에서 일어나는 인질들.
그녀들의 몸에서는 어두운 마기가 줄기줄기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혼탁해진 두 눈동자는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콰앙!
“무슨……!”
인질 중 한 명이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리자 그녀의 표적이 되었던 추소담이 눈을 부릅뜨며 팔을 교차해 가드했다.
피하기는 늦었을 정도로 그녀의 움직임이 신속했던 탓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의 스피드만이 아니었다.
쩌엉!
“크억!”
“소담아!”
콰앙!
가드 위를 퍼펙트 오러로 굳건히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일격에 벽까지 날아가 벽을 박살 낸 추소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조심해!”
그 자리에 있던 인질들 여섯 명이 모두 치우팀 개개인을 압도하는 무력을 가지고 덤벼들었던 것이다.
채채채채챙!
콰콰콰쾅……!
“크윽……!”
“꺄악!”
빠르다. 그리고 강하다.
개개인이 치우팀의 역량을 뛰어넘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그들의 연계였다.
마치 매끄럽게 굴러가는 톱니바퀴인 양 서로를 서포트하는 바람에 치우팀이 기회를 잡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강지한이 있기에 밀리지 않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젠장! 이럴 때 삼촌이 계셨다면……!’
아쉽지만 자신은 저들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정확히는 저들에게 걸린 최면, 혹은 세뇌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전투가 길어질수록 이쪽은 힘이 급격하게 빠지는데 반해, 저쪽은 여전히 처음과 같은 강함을 유지했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당할 것인지, 아니면 인질들의 목숨을 빼앗고 동료들을 살릴 것인지…….
“크윽!”
‘죄송합니다!’
결국 강지한은 결심을 굳혔다. 아무리 인질들의 목숨이 소중해도 자신들에게 치우팀 동료들보다 소중한 목숨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흑령사진공을 펼쳐 그녀들의 움직임을 봉쇄한 강지한의 단검이 빛을 번쩍이는 순간!
“여기 있었던 게냐?”
“하이데른 할아버지!”
강지한은 검은 연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하이데른을 진심으로 반가워했다.
털썩, 털썩…….
하이데른이 손을 쓰자 마치 실 끊어진 연처럼 쓰러지기 시작하는 인질들을 보고 강지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 덕분에 살았어요. 안 그랬으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 뻔했으니까…….”
“말은 고맙지만 아직 좋아하기는 이르단다. 나도 이 인간들에게 걸린 세뇌는 풀 수가 없거든.”
“예! 할아버지가 풀지 못하는 세뇌가 있다고요?”
“나보다 높은 등급의 흑마법…… 혹은 권능으로 세뇌를 걸면 나조차 손 쓸 방법이 없지. 그저 이렇게 세뇌 위에 세뇌를 덧씌워 잠시 움직임을 멈추는 것밖에는…… 그조차도 시간문제에 불과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런…….”
경악하는 강지한과 치우팀에게 하이데른은 한층 더 무거워진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자라면…… 생각하긴 싫지만 마왕과 동급이거나 혹은 그 이상의 존재라고 할 수 있겠지.”
검신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