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돌아왔다-170화 (170/175)

170.

“자, 그럼 교주님의 허락도 떨어졌으니 우리도 서둘러 움직이도록 하세.”

“먼저 이 땅에 신교의 반석을 세우려면 우리의 존재감을 떨칠 필요가 있겠지?”

“존재감을 떨치고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데 공포만 한 것도 없지.”

장로들의 미소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마교의 반석을 세우고 더불어 자신들의 욕망까지 이룰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자자, 떠들고만 있지 말고 서둘러 움직이자고. 이 땅은 교주님께서 안식을 취하고 계시니 멍청하게 소란 피우지 말고.”

“그럼 나중에 보세들.”

장로들은 허공을 밟아 빠르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수많은 무인들이 그런 장로들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전 세계로 흩어진 다섯 장로들의 행보는 대부분 대동소이했다.

“신교의 성화를 받들라! 그 빛을 품는 자, 영원무궁한 생명을 얻을 것이요, 그 빛을 거부하는 자, 성화의 불길에 영원무궁 고통받으리라!”

“놈들을 막아라!”

“하아……. 굳이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하는가? 인간이란 사는 곳에 구분 없이 참으로 미련한 족속들이로다.”

중국 북경을 찾아온 사장로, 한섬은 자신들의 앞길을 가로막은 중국 공안 특무대 수만 명을 상대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사장로님, 여기는 저희가…….”

“물러서거라. 너희도 몸이 달아 있는 걸 내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않겠느냐?”

“죄송합니다.”

부하를 물린 한섬은 혼자 수만 명의 적들을 눈앞에 두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겁먹지 마라! 숫자는 우리가 더 압도적이다!”

“전군 전진!”

“돌격하라!”

공안 특무대가지지 않고 달려오는 모습에 한섬이 흡족한 듯 미소를 그렸다.

“용맹무쌍한지고. 그렇지. 일국을 수호하는 자들이라면 그 정도 기세와 배짱은 있어야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살기와, 특무대원들의 몸에서 피어오른 오러의 기세를 마음껏 음미하며 한섬이 기운을 가볍게 끌어 올렸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뭐, 뭐야!”

“지진인가?”

“겁먹지 마! 우리에게 돌아갈 길은 없다!”

그것만으로도 대지가 흔들리고 대기가 불안정하게 날뛰기 시작하자 돌진하던 특무대원들도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지휘관들의 말처럼 그들이 돌아갈 곳은 없었다. 여기서 자신들이 포기하면 수도가 멸망할 지경이었으니까.

그러나…….

“어디 한 번 힘내서 버텨 보려무나. 내 기대할 테니.”

기운을 끌어 올린 한섬이 마기를 오른손 바닥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가볍게 손바닥을 내지르자…….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압축된 마기가 검은 호랑이의 형상을 띄고 발출되어 전방으로 뛰쳐나갔다.

크허어엉!

흑호는 마치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사납게 적들을 향해서 뛰어들었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폭발과 함께 섬뜩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평등하게 주변에 뭉쳐 있던 대원들을 모두 집어삼켰다. 오러를 전력으로 끌어 올려 몸을 보호하고, 무기에 오러를 씌워 빛을 공격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것들을 모두 끌어안은 빛이 사라진 자리엔 대원들 대신 거대한 크레이터만 흉물스럽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털썩…….

“마, 말도 안 돼…….”

“일격에 1만 명이 사라졌다고?”

“저건 괴물이야……. 아니, 악마다!”

“이, 이건 자살행위야……!”

단 일격으로 적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준 한섬은 혀를 찼다.

“쯧쯧, 고작 인사 한 번 했을 뿐인데 벌써 겁에 질려 포기하려는가? 이것 참 실망스럽구먼. 좀 더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더니.”

말과는 다르게 입꼬리를 말아 올린 한섬의 표정은 명백한 비웃음과 조롱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마음이 무너져 버린 군인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거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휘관들조차 수습할 수 없는 패닉 상태에 더 이상 전투 운운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끝났어. 이 나라…… 아니, 이 세계가…….”

털썩…….

-응답 바람! 대체 무슨 일인가? 상황을 보고하라!

꿇어앉은 지휘관, 손에서 떨어진 무전기. 그리고…….

“흥미가 떨어졌구나. 저 오합지졸들은 너희들이 처리하도록.”

“존명!”

그의 눈에 한섬의 측근 마인들과 그들의 뒤를 따르는 재앙종 무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째서 지평선을 뒤덮을 정도로 수많은 재앙종의 무리들이 저 마인들을 따르는 것인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 나라는…… 그리고 이 세계는 끝장이었으니까.

그런데!

“허허허!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를 내기에는 아직 이른 게 아닌가?”

검은 연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거구의 노인이 크게 웃었다.

배꼽까지 오는 흰 수염과 턱밑까지 이르는 흰 눈썹은 선풍도골의 그것이었지만 흰 티와 찢어진 청바지가 꽤나 언밸런스한 노인의 등장에 지휘관의 눈이 부릅떠졌다.

“노, 노인장은!”

“아직도 그러고 있는 겐가? 가서 도망친 병사들의 기강을 다잡고 태세를 정비하게. 전쟁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니.”

촤촤촤촤촤촤촤촤촤촤촤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땅거죽을 비집고 기어 나오는 수많은 언데드의 군세. 이윽고 몰려들던 재앙종들과 언데드의 군세가 충돌로 2차전의 포문이 열렸다.

여기저기서 부서지는 소리와 찢겨 나가는 소리, 물어 뜯고,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피와 살점이 난무했다.

그러나 언데드의 군세도, 재앙종들과 마교의 무리도…… 누구하나 물러서지 않고 팽팽하게 맞섰다.

개체의 강함은 압도적으로 재앙종과 마인들이 강했지만 언데드의 강점은 그런 마인들조차 쉽게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쓰러진 마인들도 다시 언데드로 부활하면서 적이 되니 이보다 골치 아픈 일은 없었다.

게다가…….

“다른 조잡한 데스 나이트와는 확실히 다른 놈들이군.”

하이데른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데스 나이트들을 한섬의 측근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하이데른에게는 데스 나이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콰우우우우우우우!

“피해라!”

“저것을 정통으로 맞으면 위험하다!”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본 드래곤의 아가리 속에서 엄청난 양의 마력이 응축되는 것을 느낀 마인들.

그러나 본 드래곤의 브레스는 발사된 상황이었고 무쇠조차 녹여 버릴 맹독의 산성 브레스가 마인들을 집어삼켰다.

아니, 집어삼킨 줄 알았다.

콰아아앙!

“이것 참 위험한 괴물이로고.”

브레스를 걷어 낸 것도 모자라 단숨에 본 드래곤의 머리를 부숴 버린 한섬.

“아무래도 미리 처분해 둬야겠군.”

그가 휘청거리는 본 드래곤의 핵을 발견하고는 손을 쓰려는데…….

“누구 마음대로 나의 작품에 손을 대는고?”

쩌엉!

한섬은 손의 방향을 돌려 다가오는 주먹을 방어했다.

그에 한섬의 신형이 뒤로 가볍게 밀려났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착지하여 하이데른을 쳐다보았다.

“제법이구나.”

하이데른은 어느새 뜯겨 나간 자신의 오른팔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강철도 자신의 육신과 비교하면 솜털이나 다름없거늘……. 그도 모자라 마력으로 더욱 더 내구력을 강화시킨 자신의 팔을 한순간에 앗아 간 것이다.

그 신묘한 기술과 마기가 하이데른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러는 노인장이야말로 왜 이제 기어 나오신 게요? 순 시시한 놈들뿐이라 하마터면 크게 실망할 뻔했지 않소! 크하하하하!”

“곧 죽을 놈이 별소리를 다하는군. 그런데 네놈…… 평범한 마족이 아니로구나?”

‘느껴지는 마력량만 최소 공작급 이상이다.’

한섬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의심할 여지없는 마족의 마력이었다. 당장 하이데른 본인이 공작급 마족을 먹어치우고 지금의 그가 되었으니 절대로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사돈 남 말 할 처지는 아닌 것 같구려, 언데드 노인장.”

마찬가지로 한섬 역시 하이데른이 평범한 언데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더 할 말이 남았소, 노인장? 있어도 기다리기 힘들 것 같아서.”

“그럼 죽어야지.”

하이데른이 재생된 오른팔을 들어 한섬을 가리켰다. 그러자 한섬이 눈을 부릅뜨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그러길래 누가 남의 몸을 허락도 없이 만지라 하던가?”

한섬이 하이데른의 오른팔을 뽑아내는 순간, 그의 몸속에 압축되어 있던 망령들이 순식간에 한섬의 몸을 파고든 것이다.

한섬의 몸으로 침투한 망령들은 그의 몸을 속부터 갉아먹으며 육체의 통제를 빼앗고 각종 정신착란과 신체 이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가…….”

“쉽게 되겠는가?”

사자후로 망령들을 쫓아내려고 했던 한섬은 어느 순간, 검은 연기와 함께 코앞에 나타난 하이데른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의 공세를 받아 내야 했다.

‘불사의 육신만 믿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구나. 일단은 그 팔부터 다시 뽑아 주마!’

비록 몸속에 침투한 망령 때문에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는 힘들었지만…….

그렇다 해도 육체적인 능력만 믿고 단순무식하게 주먹을 내뻗는 하이데른의 공격 정도는 쉽게 반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휘릭.

“……!”

쩌엉!

금나수의 수법으로 팔을 낚아채는 자신의 손을 가볍게 쳐내며 되레 위력을 올려서 내지른 주먹에 한섬이 그대로 튕겨져 날아갔다.

“크윽……!”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비릿한 피맛에 정신이 아찔했다.

‘틀림없다. 방금 그건……!’

무공의 초식이었다. 그것도 초절정을 뛰어넘은 상승의 권법 초식 말이다.

‘이런 걸 숨기고 있었던 건가? 재미있군!’

튕겨져 날아간 한섬을 쫓아 검은 연기와 함께 공간 이동으로 따라잡은 하이데른의 주먹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단순히 육체적인 완력과 스피드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그의 주먹이, 윤수호가 가르쳐 준 권법의 초식들을 곁들이자 한섬조차 제대로 반응하기 힘든 수준이 되었다.

게다가 상대는 고통을 모르는 언데드다.

비록 수십 합의 공방 끝에 타격을 준다 하더라도 상대의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그마저도 금방 재생해 버리는데다…….

‘놈에게 붙어 있을수록 망령이 점점 더 내 몸속으로 파고든다!’

흑마법사로 보이는 하이데른이 어째서 접근전을 고집하는 것인지를, 한섬은 뼈저리게 깨달았다.

하이데른의 몸속에 숨어 있던 망령들은 그가 한섬과 충돌하는 사이에 빠르게 그의 몸속으로 파고들었고, 대처할 시간조차 없었으니 한섬의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공력이었다면 호신강기로 막을 수라도 있겠지만…….’

망령은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일단 한 번 몸속으로 침투한 망령들은 마기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일단은 거리를 벌린다!’

몸속에 침투한 망령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질수록 상황은 불리해졌다.

지금에 와서는 체술조차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더욱 불리해지는 쪽은 자신이었다.

“타압!”

콰아아아앙!

여기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거리를 벌려 망령들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한섬이 상승의 마공을 사용하여 억지로 하이데른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 때문에 작지 않은 내상을 입었지만 망령만 제거하면 별문제는…….

“자네…… 지금 흑마법사와 전투 중에 거리를 둔 것인가?”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섬의 고개가 하늘로 향했다.

콰르릉, 콰쾅!

언제부터인지 하늘을 가리고 있는 검은 먹구름이 불길한 뇌성벽력을 토했고, 그 너머로 검붉은 빛의 거대한 마력 덩어리가 느껴졌던 것이다.

“나도 이걸 언제 사용할지 고민이었는데 알아서 거리를 두어 주다니 참으로 고맙구먼.”

“이런 젠……!”

콰아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온 검붉은 빛줄기가 한섬을 집어삼켰다.

빛줄기가 사라지자 한섬의 모습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지만, 하이데른은 그를 언데드로 만들지 못한 걸 아쉬워하지 않았다.

‘놈이 나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나마 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음이야. 만약 이후로 놈과 100번을 싸운다면 99번은 나의 패배가 되겠지.’

겉으로는 여유를 부리는 척했지만 그만큼 강한 적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녀석들은 괜찮은지 모르겠군.’

검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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