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뭐, 뭐야, 이 새끼는!”
꿀꺽…….
104팀의 팀장, 김창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눈을 부릅떴다.
만약 강지한이 중간에 발 빠르게 끼어들어 놈의 공격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영문도 모르고 삼도천을 건넜을 터였다.
‘이게 3급 재앙종의 움직임이라고! 말도 안 돼. 이건……!’
“모두 도망쳐요!”
그 순간, 터져 나온 강지한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김창수가 서둘러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전원 후퇴! 일단 뒤로 빠져서 대형을 다시 갖춘다!”
그렇게 사람들이 도망치자 머뭇거리던 서은송이 한지한을 향해서 목청껏 소리쳤다.
“지한아!”
“뭐 하냐, 지울림! 얼른 은송이 데리고 도망치라고!”
“말 안 해도 간다!”
지울림도 알고 있다. 여기서 자신들이 있어 봐야 강지한에게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방금 전, 녀석의 기습으로 뼈저리게 깨달은 바였다.
“가자, 은송아.”
“하, 하지만 지한이가……!”
“여기 있어 봤자 오히려 저 녀석의 방해만 될 뿐이야. 얼른!”
‘죽지 마라, 강지한!’
그렇게 지울림이 서은송까지 데리고 후방으로 멀어지자 강지한은 눈앞의 인간형 재앙종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강지한은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리며 물었다.
“재미있네. 너…… 정체가 뭐냐?”
게이트의 급수는 수용 에너지의 총량에 따라 결정된다. 즉, 3급 게이트란 3급 재앙종이 가진 에너지 이하를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3급 재앙종이라 구분된다.
당연히 3급 게이트에서 4급 재앙종이나 그 이상의 재앙종이 출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놈이 게이트를 나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게이트를 나선 직후에도 놈이 가진 기운은 1급 재앙종과 비슷하거나 그 이하였다.’
그럼에도 강지한이 녀석을 주시한 이유, 절대로 긴장을 풀지 않고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오러를 끌어 올린 이유는 단 하나.
이상했기 때문이다.
고작 1급 재앙종과 비슷한 기운을 가진 존재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불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그 순간, 녀석이 움직였고 녀석이 가진 기운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그 기운의 증가폭은 무려 6등급 재앙종 이상!
하나, 갑작스러운 기운의 증폭보다 강지한을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녀석의 공세였다.
콰우우우우우!
‘이건……!’
놈이 내민 오른팔을 따라 검고 강맹한 기운이 세차게 팔을 휘감았다.
내뻗은 팔을 타고 뿜어져 나온 검은 폭풍은 순식간에 전방을 휩쓸었지만, 강지한이 펼친 초식에 막혀 더 이상 기운을 뿜어내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강지한은 눈을 부릅떴다.
방금 재앙종이 사용한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너…… 정말로 정체가 뭐냐?”
강지한이 한층 더 무거워진 목소리로 녀석의 정체에 대해 물었지만, 녀석은 대답대신 더 강맹한 초식으로 강지한에게 덤벼들었다.
‘할 수 없지.’
스윽…….
순간, 강지한의 모습이 재앙종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당황한 재앙종은 강지한을 찾기 위해 기감을 펼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촤악! 촤촤!
그땐 이미 팔과 다리가 강지한의 단검에 썰려 날아간 뒤였다.
“대답만 할 거라면 팔다리는 필요 없잖아. 안 그래? 근데 너, 말은 할 수 있냐?”
-크크크크큭……! 푸하하하하!
그때였다. 재앙종의 입이 벌어지더니 마치 쇠를 긁는 듯 듣기 거북한 목소리로 대소를 터트리는 게 아니겠는가?
-설마 이 정도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착각하지 마라. 나는 고작 첨병일 뿐, 위대한 신교의 용사들이 곧 이곳을 찾아올 것이다.
‘뭐지? 중국어하고 비슷한 것 같지만 뭔가 다른 것 같은데…….’
아무튼 대화가 통하고, 이성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했으니 상관없었다. 이대로 놈을 기절시켜 끌고 가면 뭔가 정보를…….
번쩍!
‘이런……!’
콰아아아앙!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는 듯, 사지가 잘린 재앙종은 말을 마치자마자 빛을 뿜으며 폭발해 버렸다.
자신의 기운을 폭주시켜 육신을 폭탄처럼 활용한 것이다.
“지, 지한아!”
“너 괜찮냐!”
그 폭발력이 자못 엄청났기에 후방에서 지켜보고 있던 104팀 대원들도 걱정을 감출 수 없었다.
폭발 한 번에 직경 수십 미터에 이르는 크레이터가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전 괜찮아요!”
먼지를 털면서 모습을 드러낸 강지한의 모습은 다행히 별다른 부상을 찾기 힘들어 보였다. 팀원들은 그에게 달려와 사정을 물었다.
“도대체 뭐야, 그 괴물은? 아무리 봐도 3급 재앙종은 아닌 것 같았는데…….”
“마지막에 뭔가 얘기를 주고받던 것 같던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선배들의 질문에 강지한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나타났던 재앙종들과는 확실히 달라요. 이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렇고, 특히…….”
“특히?”
강지한은 녀석이 죽기 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말 자체는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녀석의 외침 속에 담긴 상상을 초월하는 광기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틀림없어. 놈들은 우연히 여기에 나타난 게 아니야. 분명 무슨 목적을 가지고…….’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통신병이 사색이 된 얼굴로 자신들을 찾아와 보고했다.
“지금 각지에서 발생한 저급 게이트에서 터무니없는 능력을 가진 인간형 재앙종들이 출몰하고 있다고…….”
“뭐!”
“설마…….”
대원들은 말없이 거대한 크레이터를 보다가 서둘러 움직였다.
“이럴 때가 아니지. 서둘러 본대로 복귀한다!”
“예!”
* * *
갑작스러운 재앙의 시작에 특무대 본부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등급에 맞지 않게 터무니없이 강한 인간형 재앙종의 출현이라…….”
“본래 저등급 게이트는 출현 빈도가 높은 대신 출력이 낮아서 소환할 수 있는 재앙종의 등급도 매우 낮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출현한 돌연변이종들은 이 법칙에서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법칙을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출현 당시에는 3급 이하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가 출현 직후에 에너지가 증폭하는 걸 확인했으니까요. 증폭률은 개체마다 다르지만 최소 6등급에서 8등급까지 증폭하는 개체도 확인했습니다.”
“현재 이런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단 말인가요?”
“불행하게도 그렇습니다…….”
장성들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게다가 저등급 게이트의 출현율도 이상합니다. 예년에 비해 현재 3등급 이하의 게이트 출현율이 무려 14배나 급증했다는 탐지국의 보고가 있었으니까요.”
“현재로서는 수호문과 위원장님의 권속들이 나서주시는 덕분에 큰 피해가 없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알겠습니다. 현 시각 이후로 특무대 전체에 국가 위기 사태를 선포하고 휴가 중인 모든 특무대원들에게 복귀 명령을 내리세요. 지금부터 특무대는 국가 존망을 걸고 재앙종에 맞서겠습니다.”
“예! 총사령관님.”
천호진의 명령에 장성들이 분주하게 회의실을 떠났다. 그리고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천호진은 그 즉시 보좌관을 호출했다.
“아직도 폐관 중이신 위원장과는 연락이 되지 않는 건가?”
“죄송합니다! 수호문에 연락해서 현재 남아계신 위원장님의 분신체께 이번 사태에 대해서 말씀드렸지만 본체와 연락할 수단이 지금으로선 전무하다고…….”
“허허, 이런…….”
천호진이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을 때, 한 군인이 서둘러 천호진을 찾아왔다.
“총사령관님! 급하게 드릴 보고가 있습니다!”
“이제는 보고를 받기도 두렵구먼. 대체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그것이…….”
* * *
우우우우웅……!
서울시 한복판.
돌연변이 재앙종의 출현으로 인해 텅 빈 거리 위로 5년 동안 출현하지 않았던 포털이 모습을 드러냈다.
던전의 출입구인 포털의 생성. 그것은 1차 재앙인 몬스터 웨이브의 시작을 의미했으나…….
“끄응……!”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수없이 많은 몬스터가 아닌, 단 한 명의 사내였다.
“여기가 녀석의 고향인가? 짜식, 돌아가야 한다고 그렇게 발광을 하더니 정말로 돌아온 모양이네. 하여간 대단한 녀석이야.”
알몸의 사내는 춥지도 않은 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리다 문득 자신이 알몸이란 사실을 깨닫고 손가락을 튀겼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의 몸을 어느새 휘감은 의복은 다름 아닌 그가 마교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을 때 입었던 바로 그 무복이었다.
“어때, 하후총. 건물도 높고 화려한 것이, 꽤 요란한 곳 같지 않아?”
어느새 포털 너머에서 사내를 따라 모습을 드러낸 존재들이 사내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마천루가 하늘 높이 솟은 것이, 그야말로 신교와 교주님의 위용을 증명하기 적당한 곳이 아닐는지요.”
“그런 건 관심 없고 여기 사는 여자들이랑 술도 건물만큼 화려했으면 좋겠는데…… 어, 딱 쟤처럼.”
천마는 어느새 주변을 포위한 특무대원들 중에서 한 여성 대원을 훑어보더니 씨익 미소를 그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여기 아녀자들은 뭘 먹고 자랐길래 저렇게 발육도 좋고 얼굴도 곱상한지.”
“정지! 더 이상 움직이면 즉각 대응한다!”
포털에서 나온 존재들이 인간과 매우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현장 감독관은 일단 천마에게 경고를 외쳤다.
물론 말이 통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현장 분위기 상 그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천마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인지 개의치 않고 여성 대원에게 다가더니…….
덥석!
“어떠냐. 오늘밤 내 시중을 들겠느냐?”
“……!”
손을 뻗더니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그에 여성 대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었다.
천마의 눈을 보는 순간, 마치 포식자에게 목을 물린 사냥감인 양 숨조차 제대로 쉬는 것도 힘들었던 것이다.
“그 손 못 놔!”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대원이 동료가 희롱을 당하는 모습에 발끈하며 나섰다.
그가 무기를 꺼내 들며 오러를 끌어 올리는 사이, 천마의 심드렁한 시선이 그에게 돌아갔다.
“시끄럽구나.”
단지 그뿐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터져 나오는 폭풍이 그의 시야가 닿는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휩쓸어 버렸다.
건물도, 사람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더욱 경악스러운 건 그렇게 모든 것이 날아가 사라져 버린 상황에서도 그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있던 여성 대원들만큼은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벌레를 퇴치하고자 꽃까지 꺾을 순 없는 노릇이지. 내 자비에 감격해도 좋으니라. 하하하하!”
천마는 검지를 까딱했고 그것만으로 얼어붙어 있던 여성 대원들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여성들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의 품에 안기는 수밖에 없었다. 단지 눈빛만으로 수km를 날려 버리는 그의 모습에 완전히 압도당한 것이다.
“본좌는 저 마천루의 정상에서 여흥을 즐기도록 하겠다. 그러니 너희도 이참에 여흥을 즐기도록 하라.”
“존명.”
부복하는 옛 천마신교의 마인들.
그렇게 여성 대원들을 끌어안은 천마는 마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서울에서 가장 높은 타워로 걸음을 옮겼다.
검신이 돌아왔다